'모여봐요, 동물의 숲'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며 피해를 직격탄으로 맞은 여행이나 영화 및 문화 공연 업계와 달리 '안전한 피난처'라는 말을 들으며 호황을 얻은 업종도 있다. 넷플릭스나 왓챠로 대표되는 OTT서비스와 게임 시장이 바로 그들이다. 특히 모바일 게임 다운로드 횟수나 콘솔 및 PC 게임 시간이 부쩍 늘었다는 통계들이 속속들이 공개되며 팬데믹 시대의 여가로서 게임은 새로운 대안이 되고 있다. 스위치로 발매된 '모여 봐요, 동물의 숲'의 경우는 출시 열흘도 안 돼 260만장이 팔리는 기염을 토했고, 중국 생산처의 문제로 물량이 달려 품귀 현상을 빚으며 오프라인에 줄서서 구매하려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간 게임을 중독에 가까운 질병으로 여기고 편입시키려 했던 WHO는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오히려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을 정도니,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웃음마저 나온다.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

물론 이런 게임도 전혀 코로나의 타격을 입지 않은 건 아니다. 올 상반기 공개될 예정이었던 '마블 어벤져스'와 '아이언맨 VR' 그리고 키아누 리브스가 등장한다고 알려진 '사이버펑크 2077'는 당장 하반기로 밀렸고, '레인보우 식스: 쿼런틴'과 '다잉 라이트2', '갓 앤 몬스터즈' 같은 경우는 아직 정확한 출시 날짜마저 정해지지 못했다. 가장 기대를 모았던 화제의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도 여러 번 출시일이 미뤄지다 극적으로 6월 중순에 공개됐다. 그럼에도 이렇게 공개된 기대작들은 여행도 못 가고 극장도 불안한 상황에서 많은 관심과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블록버스터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물량공세에, 영화보다 더 영화적이고, 드라마보다 더 몰입할 수밖에 없는 최신 게임들은 저마다 뚜렷한 차별점과 매력들로 많은 사람들의 오감을 사로잡았다.

그 즐거움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일급 영화음악가들을 투입하고, 역사와 전통의 색채를 계승해가며 독특한 세계관을 창출해낸 이들 사운드트랙들은 단순히 게임 안에서만 즐기는 것이 아닌, 대중적인 호응과 열띤 교감, 사랑을 이끌어내며 상업적인 성과도 얻었다. 코로나 시대 속 극장과 OTT를 벗어나 활기를 띤 가상현실 속 BGM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

음악 : 구스타보 산타올라야 & 맥 퀘일

(왼쪽부터) '라스트 오브 어스', '라스트 오브 오스 파트 2'

논란도 또 이런 논란이 없다. PS3의 마지막을 장식했고, 또 초기 PS4가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라스트 오브 어스'의 7년만의 후속작은 발매되자마자 순식간에 화제의 중심을 차지하며 초도물량으로 400만장을 팔아치웠다. 하지만 평단과 대중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메타스코어나 오픈크리틱 평점은 최상급인데, 팬들의 반응은 싸늘하기 그지없다. 전작의 요소들을 부정하고 훼손해가는 방식으로 2편의 주제를 강조하는 스토리와 공감되지 않는 불쾌한 캐릭터, 개연성이 떨어지는 구성들은 전작에서 이어지는 설정을 기대했던 많은 게이머들을 당황시켰다. 물론 폭력과 증오, 복수에 대한 어두운 의미를 담아내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제작진의 항변도 나름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굳이 속편에서 이런 극단적인 형식을 통해 도덕적 정당성을 설교하고 포장할 필요가 있었냐 라는 의문이 남는다.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

이런 논란에도 음악만큼은 여전히 인상적이다. 전편에 이어 <브로크백 마운틴>과 <바벨>로 2연속 오스카 음악상을 거머쥔 바 있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기타리스트이자 영화음악가인 구스타보 산타올라야가 그대로 음악을 맡았다. 주로 감성적이고 아날로그적인 사운드를 선사한 터라 그가 심하게 디지털스런 게임 장르에 도전했다는 게 의외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스산하고 황폐화된 세계를 담아내는 데 있어 그의 서글프고 가녀린 기타의 울림만큼이나 잘 어울리는 것도 없어 제작진의 탁월한 선택으로 평가받는다. 전편에서 서정적인 음색으로 조엘과 엘리, 두 인물 간의 디테일한 관계나 감정을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면, 이번 속편에선 미드 <미스터 로봇>과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등으로 인상적인 사운드를 직조했던 키보디스트이자 영화음악가인 맥 퀘일을 영입해 보다 어둡고 파워풀한 색채를 가미했다. 산타올라야가 하지 못했던 혐오와 불쾌함, 역설적인 복수란 행태에 주안점을 주고 플레이어의 역린을 건드리는 음악을 들려준다.

(왼쪽부터) 구스타보 산타올라야, 맥 퀘일


파이날 판타지 7 리메이크

음악 : 하마우즈 마사시 & 스즈키 미츠토 그리고 우에마츠 노부오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

파이날 판타지는 스퀘어 에닉스를 대표하는 3대 RPG 중 하나로 전 세계적으로 역대 가장 많이 팔린 RPG 2위에 오른 게임 시리즈다. 그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교두보가 바로 플레이스테이션 초창기에 출시된 '파이날 판타지 7'인데, 이번 리메이크를 통해 그 전설적인 게임을 새롭게 더 보강된 그래픽과 기술력으로 접할 수 있게 됐다. 원작의 오리지널 스탭진들이 대부분 참여해 그 의미를 더욱 빛냈고, 그래서 기존 팬덤과 신규 유입 팬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흔치 않은 경험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1편에서 9편까지 그리고 14편의 음악을 책임지며 파이날 판타지의 전설이 된 우메마츠 노부오의 음악을 고스란히 쓰려고도 했지만, 세월이 흐르고, 게임도 이에 따라 스타일이 변모한 터라 새로 작업하는 거로 의견이 모아졌다. 따라 역시 이전 시리즈에 참여했던 하마우즈 마사시(10편과 13편, 13-2편)와 스즈키 미츠토(13-2편)가 원작의 음악을 새롭게 매만졌다.

(왼쪽부터) 하마우즈 마사시, 스즈키 미츠토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

고전의 미덕과 새 버전의 혁신을 모두 담아내야 하는 리메이크의 숙명 상 시대에 맞춰 변형된 스토리나 전투 시스템, 바뀐 그래픽 등은 다소 호불호가 나뉠 수 있지만, 음악에서만큼은 예외적으로 호평이 자자하다. 노부오가 작곡한 테마들을 바탕으로 마사시와 미츠토는 전체적인 수정과 편곡, 새로운 곡들을 추가했는데, 원작보다 스피디해진 템포나 현재 스타일에 맞는 편곡, 그리고 웅장한 스케일과 다이내믹한 박진감, 추가된 테마들과의 조화는 가히 압도적이라 할 만큼 환상적인 사운드를 선사한다. 언제나 믿고 듣는 스퀘어 에닉스의 게임 음악이라지만, 그중에서도 신구의 협업이 완벽하게 이뤄진 이번 리메이크 음악은 단연 백미다. 건강 악화로 인해 당분간 음악 작업을 하지 못하는 우메마쓰 노부오는 대신 기술 감수 및 테마송 ‘Hollow’에 참여하며 자신의 빛나는 업적을 다시금 재조명했다. CD 7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은 덤이다.

우에마츠 노부오


둠 이터널

음악 : 믹 고든

'둠 이터널'

'둠 이터널'

FPS 게임의 시조이자, 전설이고, 지금껏 영생(?)을 얻은 현재 진행형 게임으로, 위력적인 쾌감의 타격감과 폭력성을 자랑하는 작품이 바로 '둠'이다. '울펜슈타인 3D'에 이어 93년에 발표된 '둠'은 혁신적인 3D 그래픽에, 네트워크 대전을 지원해 멀티플레이의 대중화를 이끌었고, 현존하는 FPS 게임의 웬만한 규칙과 레벨 디자인을 제시한 선구자적인 게임이었다. 이후 94년과 2004년 두 편의 후속편이 더 나온 뒤, 베데스다에 인수되며 2016년 새롭게 리메이크되었다. 스토리 따윈 전기톱으로 썰어버리고, 스피디하고 과격한 액션과 고어적인 효과로 액션을 강조한 리부트 게임은 절대다수의 찬사를 받으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로부터 4년 만에 나온 '둠 이터널'은 전편을 유아용으로 보이게 할 만큼 더 세고, 영리하며, 어려워졌다. 악마들이 질질 짤 만큼 호쾌한 스래시 메탈풍의 사운드도 여전하다.

믹 고든

음악을 담당한 믹 고든은 호주 출신의 1985년생 사운드 디자이너 겸 음악가로 '킬러 인스팅트'와 일련의 '울펜슈타인' 리부트 시리즈에 참여하며 이름을 알렸다. 클래식 '둠'에서 영감을 받은 강력한 기타 리프와 속주에 가까운 베이스 드럼 비트가 어우러지며 파괴본능을 일깨우는 인더스트얼 사운드 조합은 아드레날린을 분출시키고 분노게이지를 팍팍 올려대며 게임 팬들의 환호를 자아냈다. 특히나 오리지널 테마들을 적절히 리믹스하고 오마주하며 추억을 반추하게 만든 인상적인 소리들은 게임 플레이에 맞게 적절히 응용, 변주되며 격렬한 액션과 분위기에 딱 맞춤 재단된 효과를 안기며 무아지경에 빠지게 만든다. 이번 속편의 사운드 역시 전편 못지않게 하드코어하며 꽉 찬 소리들로 전투력 상승과 스피드 업에 일조하고 있으며, FPS 액션 게임의 본질에 맞는 효과를 안긴다. 비록 OST 출시와 관련한 잡음으로 제작사와 안 좋게 결별하고 말았지만, 믹 고든의 천재적인 감각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믹 고든


하프 라이프 : 알릭스

음악 : 마이크 모라스키

'하프 라이프 : 알릭스'

'하프 라이프' 3편이 아닌, 1편과 2편 사이에 위치한 "알릭스"다. 그럼에도 제작사 밸브는 정식 후속편으로 정의했다. 이게 다 자신감의 발로다. 본격적인 VR을 도입한 게임으로 놀라운 비주얼 쇼크와 새로운 경험치를 선사한다. 98년 발매된 '하프 라이프' 1탄이 '둠'이 서막을 연 FPS게임에 혁신과 생명력을 불어넣었다면, 그 '둠'을 만들었던 존 카맥이 게임 회사를 박차고 나와 VR로 넘어간 시대에 나온 세 번째 '하프 라이프 : 알릭스'는 VR게임의 가능성과 미래를 예견하는 작품이다. 그간 2% 부족하거나 아쉬운 콘텐츠들로 확고한 인지도와 대중성을 얻지 못한 VR 시스템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생생한 몰입감과 혁신적인 상호작용 그리고 엄청난 재미를 안겨준다. 최근 유행하는 만화나 라노벨에서 언급되는 가상현실의 단초를 조금이나마 경험해보고 싶다면 무조건 이 게임을 제일 먼저 해봐야 한다.

'하프 라이프 : 알릭스'

'하프 라이프 : 알릭스'

음악은 애니메이터이자 비주얼 아티스트 겸 프로그래머이기도 한 마이크 모라스키가 담당했다. 그는 86년부터 하드코어 펑크/노이즈 락 밴드를 이끌면서 영화 <반지의 제왕>이나 <매트릭스> 시리즈 등에 특수효과로 참여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인데, 지금은 '팀 포트리스'나 '포탈' 시리즈 등 밸브의 음악 담당으로 더 잘 알려진 편이다. 원래 '하프 라이프'의 음악을 맡고 사운드 디자인을 한 켈리 베일리는 밸브를 떠났지만, 모라스키와 '포탈' 때 공동으로 음악을 작업했었고, 지속적으로 자문을 주고받는 사이이기 때문에 고유의 스타일을 유지하는데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 엠비언트와 노이즈, 일렉 비트로 세팅된 공감각적인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는 '하프 라이프'만의 지장으로, 마치 게임 공간 안에 있는 듯한 착각을 줄 만큼 현장음에 가까운 소리들을 들려준다. 섬뜩하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소리들의 생생한 조화는 게임 음악 본령에 대해 사유하게 만든다. 아직까진 챕터 2까지 음악만 공개됐고, 남은 3부터 13까지는 추후 공개될 예정이다.

마이크 모라스키


고스트 오브 쓰시마

음악 : 일란 에쉬케리 & 우메바야시 시게루

'고스트 오브 쓰시마'

'고스트 오브 쓰시마'

올해 말 PS5의 발매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PS4의 거의 마지막 독점작이라 봐도 무방한 '고스트 오브 쓰시마'는 고전 사무라이 영화들을 연상시키는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다. 시대적 배경은 여몽 연합군이 대마도를 정벌하고 왜국으로 1차 원정을 떠나던 시기에 맞춰져 있는데, 논란을 의식해서 그런지 고려는 빼고 1명의 사무라이가 몽고군에 대항하는 픽션으로 재구성되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나 <츠바키 산주로>를 연상시킬 만큼 역동적인 액션과 시네마틱한 그래픽효과를 구사한 부분에선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과 진부한 게임 진행, 매력적이지 않은 캐릭터들은 다소 아쉽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스타더스트>와 <센츄리온>, <닌자 어쌔신>, <47 로닌> 등 판타지/서사극을 맡았던 일란 에쉬케리와 <일대종사>, <와호장룡-운명의 검>, <소걸아: 취권의 창시자> 등 무협물에서 활약한 우메바야시 시게루가 공동으로 맡은 음악만큼은 일품이다.

(왼쪽부터) 우메바야시 시게루, 일란 에쉬케리

언뜻 안 어울릴 것 같은 신구 세대 동서양 영화음악가들의 조합이지만, 에쉬케리와 시게루는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며 웅장하면서도 장대한 서사시의 진면목을 들려주는 찬바라 사운드트랙을 완성해냈다. 영화보다도 더 영화스러운 게임 음악으로, 샤쿠하치와 고토, 샤미센과 태고, 비와 등 일본 전통악기들과 추임새, 스님의 독경 그리고 일본 전통 5음계에 입각해 만들어진 테마는 무겁지만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과거 몽고 지역이었던 투바 공화국의 뮤지션 라딕 뜨울르우시를 섭외해 배음효과로 동시에 두 개 이상의 소리를 내는 흐미(회메이) 창법과 마두금을 통한 이국적인 소리들의 조화는 일개 단순한 게임 음악으로 치부할 수 없는 공력과 정성을 들였다. 정통적인 할리우드 영화음악 작법에 특화된 영화음악가와 중국과 일본, 한국 및 유럽 등지에서 영화음악을 만들어온 뉴웨이브 밴드 출신의 작곡가가 협업을 통해 완성해낸 결과물은 독특하면서도 재밌는 소리를 제공하며 게임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고스트 오브 쓰시마'


사운드트랙스 / 영화음악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