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영화' 하면 흔히 따사로운 햇볕 아래 평화롭게 혹은 열정적으로 감정을 누리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이번 '영화음악 감상실'은 그런 '예쁜' 영화 대신, 여름의 더위와 습기가 스며들어 이성을 마비시키는 듯한 영화 <지옥의 묵시록> 속 음악을 소개한다.


The End

THE DOORS

<지옥의 묵시록>의 대장정을 여는 노래는 도어즈의 'The End'다. 울창한 나무가 빽빽한 숲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헬리콥터가 지나가 흙먼지가 사방을 뿌옇게 채우면, 로비 크리거(Robby Krieger)의 기타 소리가 흐느적댄다. 악기들이 하나씩 더해지고 또 다른 헬리콥터가 지나가자마자 숲에 폭발이 일어나고, 도어즈의 프론트맨 짐 모리슨(Jim Morrison)이 "This is the end~"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숲이 불타고 그을음이 가득한 풍경 위로 주인공 윌러드 대위(마틴 신)의 얼굴이 중첩되어 나타난다. 잠시 음악을 멈추고 윌러드가 중얼거리는 게 이어지다가, 그가 기이한 행동을 하면 다시 한껏 강렬해진 'The End'가 다시 등장한다. 모리슨이 주술처럼 흥얼거리고, 레이 만자렉(Ray Manzarek)의 오르간이 화면을 뚫고 나올 기세로 작렬한다.

<지옥의 묵시록>은 12분에 달하는 대곡 'The End'의 부분부분을 발췌해 총 3번에 걸쳐 사용했다. 나머지 한 번은, 영화 마지막 윌러드가 커츠 대령(말론 브란도)을 죽이고 커츠 왕국의 주민들이 의식을 치르는 걸 교차하는 클라이맥스의 인용이다. '끝'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에 배치돼 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단 두 테이크만에 녹음을 마친 'The End'는 도어즈의 데뷔 앨범 마지막 트랙이자 도어즈의 마지막 콘서트에서 마지막에 공연된 곡이었다.


The Ride of the Valkyries

RICHARD WAGNER

윌러드는 커츠에게 가는 길 수많은 광기를 목격한다. 그것들이 켜켜이 누적되어 커츠 왕국이 뿜어대는 불가해한 매혹에 당위를 부여한다. 임무 중의 윌러드가 처음 목도하는 광기의 주인공은 킬고어 중령(로버트 듀발)이다. 성격도 호쾌하고 부하들의 신뢰도 두터워 보이지만, 네이팜 폭탄 냄새를 승리의 향기라 좋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정도로 전쟁에 미쳐 있는 사람이다. 그저 적이 혼비백산하는 걸 보고 즐기기 위해 헬리콥터에서 대지를 무자비하게 공습한다. "'콩'들이 기절초풍하게" 만든답시고 리하르트 바그너의 '발키리의 기행'을 틀어놓고 공격을 준비한다.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4장 중 1장 <발퀴레>의 3막의 전주곡 '발퀴레의 기행'은 발퀴레 부대가 말을 타고 전장을 질주하는 걸 묘사한 곡이다. 현악이 하나둘 쌓이는 전주가 터지자마자 위협적인 기운이 순식간에 퍼져 전투를 그리는 수많은 대중문화에서 인용된 바 있다. 평화롭던 마을이 금세 쑥대밭이 되는 이 처절한 풍경에도 정답처럼 들어맞는다. 히틀러가 생전에 존경했던 바그너의 음악응 이런 학살 신에 배치했다는 건 신나라 포탄을 갈기는 미군 역시 나치와 다를 바 없다는 탄식처럼 보인다.


Suzie Q

FLASH CADILLAC

힉스 상병이 윌러드와 함께 정글에서 호랑이를 만나고 이성을 잃으면서 <지옥의 묵시록>을 이루는 공기는 한층 더 서늘해진다. 얼마 후 그들이 도착한 곳은 <플레이보이> 모델들이 동원된 위문공연 현장. 어둠 속에서 헬리콥터가 나타나 사회자가 "화끈한 쇼"를 보여주겠다며 짤막한 멘트를 얹으면, 밴드가 연주를 시작한다. 우리에게는 코미디언 故 이주일의 BGM으로 친숙한 노래 'Suzie Q'다. 'Suzie Q'는 로큰롤 뮤지션 데일 호킨스(Dale Hawkins)가 1957년 발표해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 크리덴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reedence Clearwater Revival), 호세 펠리치아노(Jose Feliciano) 등 수많은 후대 뮤지션으로부터 리메이크 된 곡이다. 위문공연장에서 선보이는 버전은 (코폴라 감독이 제작을 맡은) 조지 루카스의 초기작 <청춘 낙서>(1973) 사운드트랙에 참여한 밴드 플래시 캐딜락의 재해석한 곡이다. 세 모델들이 무대에서 몸을 흔드는 걸 보고 군인들이 미친 듯이 날뛰고 2분도 채 지나지 않아 몇몇이 무대에 난입하면서 아수라장이 되고 말고, 'Suzie Q'는 현장의 난리통에 묻혀 사라진다. <지옥의 묵시록> 사운드트랙에서도 연주가 갑자기 끊기는 듯한 버전으로 수록됐다.


(I Can't Get No) Satisfaction

THE ROLLING STONES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음악은 정작 그다음 시퀀스에서 등장한다. 다시 목적지를 향해 떠나는 대원들은 실실 웃으면서 시덥잖은 얘기들을 늘어놓는다. 늘 그랬던 것처럼 윌러드는 그걸 그냥 듣기만 하고, 커츠의 자료들을 훑어보기만 할 뿐. 무리 중의 막내 클린(로렌스 피시번)이 틀어놓은 무전에서 롤링 스톤즈의 '(I Can't Get No) Satisfaction'이 흘러나오면, 윌러드는 놀란 듯 고개를 든다. 공격적인 기타 소리가 마치 적이 공격하는 소리인 양. 불안도 잠깐, 평소에도 촐랑대며 까불던 클린이 로큰롤 사운드에 마음껏 춤추면 여름 낮의 평화가 이어진다. 다른 대원들도 어설프게 노래를 따라부르면서 즐거운 분위기는 무르익는다. 영화 속에서 가장 평화로운 대목임에도 불구하고, 미군이 탄 배가 주변의 동네 사람들 주변을 놀리듯 지나갈 때, 문득 미군이 전쟁 중에 즐기는 유희는 베트남인에게 고통이 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텁텁함은 가시지 않는다.


Voyage

CARMINE COPPOLA & FRANCIS COPPOLA

원래 <지옥의 묵시록>의 오리지널 스코어는 코폴라의 전작 <컨버세이션>(1974)의 음악감독이었던 데이빗 샤이어(David Shire)가 작업했지만 수년째 지연됐던 제작 일정 탓에 결국 영화에 쓰이지 못하고 사장돼 2017년에야 음반으로 나올 수 있었다. 결국 코폴라는 <레인 피플>(1969)과 <대부 2>(1974)에 참여한 아버지 카르미네 코폴라와 함께 직접 오리지널 스코어를 만들었다. 두 부자가 만든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신디사이저가 뒤엉킨 음악은, 처음부터 혼돈이었고, 시간이 갈수록 더 커다란 혼돈으로 휘말려 들어가는 베트남 전쟁의 지옥도를 선명케 한다. 앞서 소개한 음악들이 얼마간 숨통을 트이게 했지만, 문명의 흔적이란 찾아볼 수 없는 커츠의 왕국에 도착하면 온전히 코폴라 부자의 스코어만이 형언할 수 없는 공간을 채우게 된다. 신디사이저의 차가운 전자음이 나섬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적하는 기세로 뻗어나오는 오케스트레이션이 신디사이저의 한기를 흩뜨려놓아, 베트남 정글 한가운데서 느낄 수 있는 습한 공기가 형성된다. 위에 링크를 붙인 트랙 'Voyager'는 대원들이 하나둘씩 죽고 난 뒤 커츠 왕국에 가까워져 드디어 도착하게 되는 여정에 흐른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