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극장 (사진 영상역사관)

오늘 내용도 거의 ‘라떼~’ 수준이 될 것 같습니다.

흥행판에서 여름은 최고의 성수기이지요. 과거에는 이 시기를 ‘몸비’ 라 하여 일본에서 넘어 온 ‘몸비(もんび, 명절영화)’라는 말을 우리대로 해석해서 ‘몸을 비비고 봐야 할 정도다’를 줄인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방학과 휴가가 있다는 것이 성수기가 된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물론 겨울방학도 있긴 하지만 여름이 확실히 야외 활동이 강하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고의 성수기인 여름시즌은 영화마다 매진행렬이 이루어집니다. ‘sold out' 즉 더 이상 팔 티켓이 없다는 것이죠. 지금은 예전보다 극장도 많아졌고 다들 멀티플렉스라 여러 상영관에서 동시에 같은 영화를 상영하는 경우가 많아 매진 자체가 불가능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매진이 되면 매표소 앞에 ‘매진’이라는 딱지를 크게 붙입니다. 이게 은근히 선전효과가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저 영화 매진이야! 재미있나 보다’라는 인식을 주기도 했죠. (당시는 매표소가 대부분 큰길 쪽 외부에 있었습니다.)

전 회차 매진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경우에는 사람이 꽉 찼다는 의미인 ‘만원사례’라는 팻말을 극장 앞에 붙이고 극장 사장님들은 봉투를 준비합니다. 동음인 ‘만원’의 의미를 담아 봉투에 현금 만원씩을 넣어 극장 관계자며 영화관계자들에게 선심을 씁니다. 이 봉투가 은근히 사람을 기분 좋게 한 기억이 있습니다.

극장이 단관극장에서 멀티플렉스로 발전하기 전에 잠깐 복합상영관 시절을 거치게 됩니다. 극장마다 상영관(스크린)이 약 2~3개 정도였던 시절입니다. 이때는 한 영화가 매진되면 그다음 영화로 관객이 움직이는 경향이 있어 2등 전략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간표를 짤 때 가장 먼저 매진이 나올 영화에게 기본 시간대인 오전 11시, 오후 1시, 3시, 5시, 7시, 9시를 주고 다음 영화를 오전 11시 30분, 오후 1시 30분, 2시 30분 같이 30분씩 뒤로 배정하게 되면 관객이 전 상영관에 골고루 차기도 하였습니다.

<암살>

(저도 들은 이야기지만) 한참 전 몸비때 이야기인데, 당시 극장은 지정석이 아닌 선착순 입장이었다고 합니다. 좌석이 없으면 알아서 계단에라도 앉아서 보라는 식이었던 시절, 극장 앞 광장에 모인 어마어마한 관객들이 서로 먼저 극장에 들어가려 아수라장이 되면, 극장 기도(당시에는 극장에 ‘기도’라고 불리우는 질서 유지를 위한 직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들이 기다란 대나무들을 들고나와서는 관객들을 향해 좌우로 흔들며 ‘앉으셔요. 앉으셔요’ 하며 안전을 위해 사람들을 앉혔다고 하니 지금으로써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당시에는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죠.

이 여름시즌에 있어 피크는 7월 말부터 8월 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 2주 동안 극장에 나오는 관객이 연 전체 관객에서 10% 정도인 약 1700만 정도나 되니 극장으로써는 신날 수밖에 없겠죠. 배급사들도 때가 때인 만큼 자신들이 가진 최고의 영화들을 시장에 내놓죠. 결국 천만을 기록한 한국영화 25편중에서 9편이 이 여름시즌에 나오게 됩니다. <괴물>, <해운대>, <도둑들>, <명량>, <암살>, <부산행>, <택시운전사>, <베테랑>, <신과함께-인과 연>이 이 시기 작품들이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이랬던 여름시즌이 올해는 역대 최악이지 않나 싶습니다. 느닷없는 코로나19에다 예상치 못한 긴 장마로 인한 수해까지, 관객들이 극장에 갈 여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빨리 비도 좀 그쳐주고 조금이나마 삶의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재밌다고 하는데, 이거라도 봐줘야 여름을 보내는 느낌이 나지 않겠습니까?


글 | 이하영

하하필름스 대표, 《영화 배급과 흥행》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