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로 북미 박스오피스가 문을 닫은 지 벌써 5개월 가까이 지났다. 북미는 여전히 확산세가 무섭지만, 이전보다는 상황이 조금이나마 나아진 것인지 ‘극히’ 일부 극장들이 영업을 재개하며 북미 영화계의 부활을 알리려 한다. 정확한 시기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북미 극장가의 부활에 앞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공개된 작품들의 성적표를 살펴볼까 한다. 이번 주는 올해 공개된 중소배급사 작품과 독립 영화 중 좋은 성적을 거둔 작품들을 소개한다. 북미를 넘어 전 세계 영화계가 빠르게 정상화될 수 있길 바라며.
(선정 기준: STX, 안나푸르나, A24 등 중소배급사, 메이저 배급사 산하 독립영화 스튜디오 작품)
1.
젠틀맨, STX Entertainment
(개봉: 2020.01.24)
로튼토마토: 평단 75% / 관객 94%
메타스코어: 51
개봉주말: $10,651,884
북미최종: $36,296,853
전세계최종: $114,996,853
제작비: $22,000,000
2020년 중소배급사 작품 중 가장 많은 금액을 벌어들인 건 <젠틀맨>이다. 오랜만에 가이 리치 특유의 연출 스타일(잘생긴 남자 배우가 많이 나오는 범죄물)이 한껏 드러난 작품으로, 세계적인 마약 딜러와 억만장자, 사립탐정, 무법자가 얽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관객과 평단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첫 주말 간 1065만 달러 수익을 올리는 데 그쳤는데, 당시 적은 상영관 수와 <나쁜 녀석들: 포에버>의 흥행이 맞물린 결과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2주차 성적이 크게 떨어진 데 이어 <버즈 오브 프레이(할리퀸의 황홀한 해방)>와 맞붙으면서 북미 3620만 달러로 흥행을 마무리했다. 다행히 제작비를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해외 성적을 거두며 전 세계 1억 149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골드>부터 <더 비치 범>까지 흥행 부진에 빠졌던 매튜 맥커너히는 <젠틀맨>으로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2.
그레텔과 헨젤, United Artists Releasing
(개봉: 2020.01.31)
로튼토마토: 평단 65% / 관객 23%
메타스코어: 64
개봉주말: $6,154,007
북미최종: $15,347,654
전세계최종: $21,676,865
제작비: $5,000,000
<그것>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소피아 릴리스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된 <그레텔과 헨젤>은 1530만 달러로 북미 흥행을 마무리했다. 그림 형제의 『헨젤과 그레텔』에서 그레텔에 집중하고 이야기를 비틀어 평단의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정작 관객에게 외면당해 개봉 주말 수익 615만 달러에 그쳤다. 제작비가 500만 달러로 적은 편이라 손익분기점을 넘는 데는 무리가 없었지만, 당시 <그루지>부터 <더 터닝>까지 부진을 면치 못한 2020년 공포 영화 계보를 잇고 말았다. 참고로 올해 호러 장르의 부진을 끊은 작품은 유니버설 픽쳐스의 <인비저블맨>이다. <그레텔과 헨젤>의 전 세계 최종 스코어는 2160만 달러.
3.
더 보이 2: 돌아온 브람스, STX Entertainment
(개봉: 2020.01.21)
로튼토마토: 평단 9% / 관객 44%
메타스코어: 29
개봉주말: $5,823,006
북미최종: $12,611,536
전세계최종: $20,311,536
제작비: $10,000,000
3위는 저주받은 인형 브람스의 이야기를 그린 <더 보이>의 속편 <더 보이 2: 돌아온 브람스>다. 전작이 제작비 1000만 달러로 7000만 달러 수익을 올렸음에도 워낙 평가가 부정적이어서 속편이 나올 거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돈이라면 눈에 불을 켜는 할리우드에서 공포 영화의 성공 법칙인 ‘저비용 고수익’을 충실히 따른 <더 보이>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속편을 제작했는데, 결과는 보다시피 영 좋지 못했다. 관객과 평단의 반응뿐 아니라 흥행마저 전작에 한참 못 미치며, 개봉 2주 만에 ‘사실상 북미 흥행은 끝났다’는 분석과 함께 톱10에서 물러났다. 북미 및 전 세계 스코어는 각각 1260만 달러와 2030만 달러.
4.
엠마, Focus Features
(개봉: 2020.02.21)
로튼토마토: 평단 87% / 관객 72%
메타스코어: 71
개봉주말: $234,482
북미최종: $10,055,355
전세계최종: $25,600,510
제작비: $10,000,000
안야 테일러 조이 주연 <엠마>가 북미 최종 스코어 1000만 달러로 4위를 차지했다. 영화는 마을 사람들의 중매에 나서며 자신의 진실된 사랑을 찾게 되는 엠마 우드하우스의 이야기로, 이미 기네스 펠트로 주연의 영화를 비롯해 TV 시리즈로도 제작될 만큼 인기가 많았던 제인 오스틴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사진작가 겸 뮤직비디오 아트디렉터로도 활동한 어텀 드 와일드 감독의 독특한 비주얼과 고증이 뛰어난 의상, 그동안 공포 영화에서 주로 활약했던 안야 테일러 조이의 연기력에 극찬이 이어지면서 흥행에 청신호가 켜진 듯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모든 게 틀어지고 말았다. 북미와 전 세계 누적 스코어는 각각 1000만 달러와 2560만 달러.
5.
아이 스틸 빌리브, Lionsgate
(개봉: 2020.03.13)
로튼토마토: 평단 50% / 관객 98%
메타스코어: 41
개봉주말: $9,103,614
북미최종: $9,868,521
전세계최종: $11,627,752
제작비: $12,000,000
5위는 북미 986만 달러를 기록한 기독교 영화 <아이 스틸 빌리브>다. <리버데일>로 유명한 KJ 아파가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북미에서만 제작비 12배 가까운 성적을 거둔 <아이 캔 온리 이매진>(역대 기독교 영화 흥행 3위)을 연출한 어윈 형제의 차기작으로, CCM 가수 제레미 캠프가 난소암에 걸린 연인과 함께한 4개월간의 결혼생활과 사별 이후 신앙으로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다. 여느 종교 영화와 마찬가지로 타깃 관객층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아쉽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북미 극장이 폐쇄되면서 <아이 캔 온리 이매진>과 같은 장기 흥행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전 세계 누적 스코어는 1160만 달러.
6.
다운힐, Fox Searchlight Pictures
(2020.02.14)
로튼토마토: 평단 38% / 관객 14%
메타스코어: 49
개봉주말: $4,622,018
북미최종: $8,287,061
전세계최종: $8,899,195
제작비: N/A
지난 2월 공개된 블랙 코미디 <다운힐>은 북미 극장가에서 828만 달러 수익을 올렸다.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수상작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며, 윌 페렐과 줄리아 루이스 드레퓌스가 주연을 맡아 알프스산맥으로 스키 여행을 떠난 가족이 눈사태를 직면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일 당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원작 덕에 잠시 화제가 됐지만, 이내 ‘제목을 따라 내리막을 걷는 작품’이라는 혹평과 함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개봉 성적 462만 달러로 10위로 데뷔, 다음 주말에 곧바로 톱10에서 물러났다. 여담이지만 2월 14일에는 본래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이 개봉을 앞두고 있었으나, 일정이 연기되는 바람에 이 작품이 빈자리를 대신한 것이라고.
7.
날씨의 아이, GKIDS
(2020.01.15)
로튼토마토: 평단 91% / 관객 96%
메타스코어: 72
개봉주말: $1,808,533
북미최종: $7,798,743
전세계최종: $193,176,979
제작비: $11,100,000
신카이 마코토 신작 <날씨의 아이>가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가출한 고등학생 소년이 날씨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소녀를 만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작품으로, <너의 이름은>에 이어 북미에서 개봉한 두 번째 신카이 마코토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신카이 마코토 특유의 영상미와 작화, 음악에 대한 북미의 반응은 상당히 긍정적이었던 반면 개연성과 서사 측면에 있어서는 아쉽다는 의견도 제법 눈에 띈다. 그동안 신카이 마코토 작품들의 장점과 단점을 그대로 이어받은 셈인데, <날씨의 아이>가 전작들에 비해 단점이 더 극명하게 드러났다는 평이 많은 편이라고. 그래도 북미 성적은 전작보다 높은 779만 달러.
8.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Neon
(2020.02.14)
로튼토마토: 평단 98% / 관객 92%
메타스코어: 95
개봉주말: $429,000
북미최종: $3,759,854
전세계최종: $9,919,850
제작비: $5,500,000
지난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거머쥔 셀린 시아마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북미 시네필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1700년대 후반 프랑스,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귀족 엘로이즈의 결혼 초상화를 의뢰받은 화가 마리안느가 그를 관찰하며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는 내용을 담은 퀴어 영화다. 영화에 대한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평단, 관객 가릴 것 없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극찬하기에 바빴는데, 북미 성적은 그에 비해 아쉽게 느껴지는 375만 달러다. 아무래도 자막이 필요한 외국어 영화인 데다, 애니메이션처럼 확고한 타깃 관객이 있는 장르가 아닌 게 흥행에 다소 방해가 된 듯하다.
에그테일 에디터 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