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진짜 좋은 어른이 되는 건 그 어떤 것도 일방적이진 않다는 걸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뭐 하나 뾰족하게 이뤄 놓은 것도 없는데, 정신없이 마스크를 갈아 쓰다 보니 2020년도 어느새 2/3가 거진 다 지났다. 또 정신없이 손을 씻고 소독제를 뿌리고 뉴스를 보다 보면 2021년이 되어 있겠지. 시간이 갈수록 빨리 흐른다는 생각이 들 때면 슬슬 나이가 실감이 난다. 헤아려보니 날 낳았을 때 어머니의 나이가 딱 지금 내 나이였다. 내가 삼 남매 중 나이 터울이 제법 있는 막내이니, 내 부모는 이미 내 나이에 애를 셋이나 낳아 입히고 먹이고 가르치며 키웠던 셈이다. 더는 ‘그래도 집안에선 막내’, ‘업계에선 아직도 내가 막내 세대’ 같은 말로 도망칠 수도 없는 나이, 도리 없이 어른이 되어야 할 나이가 된 것이다.
좋은 어른이 되려면 뭘 어째야 하는 걸까. 어렸을 땐 대답하기 쉬웠다. 내가 만나고 싶은 어른상에 관해 주저리주저리 떠들기만 하면 됐으니까. 입을 열어야 할 순간과 다물어야 할 순간을 잘 파악하는 사람, 날 보고 뒤를 따라오는 후배들에게 본이 되는 길을 걷는 사람, 나보다 젊은 이들의 목소리를 귀 담아 듣는 사람… 정작 내가 나이를 먹고 나니, 뭘 어떻게 해야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좋은 요리사가 되려면요, 재료 본연의 맛을 잘 살리면 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릴 수 있죠? 글쎄요. 그건 저도 모르죠. 질 낮은 콩트 같은 자문자답을 하면서 나이만 먹다 보니 어느 덧 서른 일곱, 난 여전히 시끄럽게 떠들고, 자주 헤매고, 불필요하게 모났다.
<아무도 모른다>(2020)는 ‘좋은 어른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 작품이다. 호텔 옥상에서 추락한 한 중학생 소년과 관련된 진실을 추적하는 어른들을 내세운 이 작품은, 소중한 것을 지키는 데 실패해 본 어른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성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릴 적 연쇄살인마의 손에 친구를 잃고 제 손으로 범인을 잡겠다는 일념 하나로 살아온 형사 차영진(김서형)에게 친구라고 부를 만한 존재는 아랫집 소년 은호(안지호) 뿐이다. 폭력적인 가정환경에서 시들어가고 있던 아랫집 꼬맹이를 조금 도와줬을 뿐인데, 그 꼬맹이는 그 후 7년 간 영진의 집 화분에 물을 주고 영진의 안부를 묻는 존재가 되었다. 학교 폭력 사건을 해결하다가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었던 과거를 지닌 이선우(류덕환) 선생에게도 은호는 특별한 아이다. 말수 적고 주눅이 든 게 영락없이 학폭 피해자 같은데, 어느 선까지 개입하면 좋을지 선우는 확신이 안 선다.
은호가 호텔 옥상에서 추락해 의식을 잃자, 영진과 선우는 죄책감을 느낀다. 사건 해결에 정신이 팔려서 은호가 뭔가 괴로워하고 있는 걸 놓친 건 아닐까? 선생인 내가 진작 나서서 뭐라도 했으면 은호가 무사하지 않았을까? 두 어른은 자신들이 무엇을 놓치고 뭘 망설였는지 자문하며 은호의 추락에 관한 진실을 추적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상처 입은 아이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귀 담아 들어준다. 뻔한 불량 청소년 같았던 동명(윤찬영)의 절박함, 버릇없는 부잣집 도련님으로만 보였던 민성(윤재용)의 외로움을 알아봐 준 어른들은, 아이들이 더 돌아올 수 없는 곳까지 엇나가기 전에 손을 내밀어 묵묵히 잡아준다. 은호를 지키기 위해 시작한 일이, 또 다른 은호들을 함께 지키는 일이 되었다.
“좋은 파수꾼이 불운한 일을 쫓는다.” <아무도 모른다>가 태그라인으로 삼은 16세기 프랑스 문법학자 가브리엘 뫼리에의 격언이다. 타인의 고통과 세상의 불의를 예민하게 짚어내는 이들의 눈엔 불운하고 서러운 일이 더 잘 보이는 법인데, 그런 이들이야말로 ‘좋은 파수꾼’이자 좋은 어른이란 의미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났다면 작품이 이처럼 오래 기억에 남진 않았으리라. 작품의 말미, 진실을 밝혀내고 분노와 복수심에 불타오르던 차영진을 붙잡아준 건 은호였다. 자신이 엇나가지 않게 잡아준 은호 덕분에 영진은 윤리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었고, 아이에게 배우며 영진은 한 뼘 더 어른이 된다. 선우 또한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실수를 사과하기 위해 옛 제자를 찾아간다. 스승과 제자가 서로 사과하고 서로 용서하는 과정 속에서, 선우도 조금씩 진짜 선생이 되어간다.
어쩌면 진짜 좋은 어른이 되는 건 그 어떤 것도 일방적이진 않다는 걸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보호와 가르침을 제공하는 것은 어른들의 의무이지만 그게 아이들에게선 배울 것도 기댈 것도 없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제자가 스승을 일깨우기도 하고, 아이가 어른을 지켜 주기도 하니까. 나이 차이는 잠시 잊고, 나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서로의 눈을 같은 높이에서 마주 본다면,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다면, 상대가 가진 상처를 알아보고 공감하고 위로하며 손을 건넬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보다 젊은 사람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많다는 걸 깨달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어떻게 하면 ‘좋은 어른’이 되는 건지 확신은 안 선다. 진작에 했었어야 하는 고민을 너무 늦게 시작한 건가 싶어 아득하기도 하다. 그래도 일단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를 지킬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부터 시작해 볼 참이다. 그러다 보면, 뭐라도 되어 있겠지.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