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복식과 거대한 스케일을 앞세운 권력 암투를 그린 사극이 먼저 떠오로는 중국 드라마. 전통적인 시대극이 유명하긴 하지만, 젊은 층을 겨냥한 복합장르의 드라마도 상당하다. 괜한 편견에 여전히 중드를 오해하고 있거나, 미드∙영드가 질리거나 일부 작품을 제외하고 기대 이하인 국내 드라마에 실망감이 쌓여간다면, 변화와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 드라마에 입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중드가 처음인 사람들도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최신 드라마 8편을 소개해본다. 모두 왓챠, 웨이브, 넷플릭스 등의 플랫폼에서 볼 수 있다.
신탐 (2019년, 24부작)
<신탐>은 <셜록>의 중국 버전을 보는 것 같은 미스터리 수사극이다. 모더니즘이 꽃피운 1930년대 상해(프랑스 조계지)를 배경으로 각종 의문의 사건을 해결하는 사립 탐정 라비와 신입 형사 진소만의 공조 수사를 그린다. 경찰국의 고문을 맡고 있는 라비는 명석한 두뇌와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건을 꿰뚫고, 의욕이 넘치는 형사 진소만은 뛰어난 격투 실력으로 운동신경이 꽝인 라비를 대신해 적재적소에서 활약하며 능동적으로 수사를 보조한다. <신탐>은 성격이 다른 두 사람의 투닥거리는 호흡을 경쾌하게 그리며, 하나의 사건을 3편의 에피소드 내에서 해결하는 전개 방식을 취한다. 매회 마지막에 둘의 관계나 사건 밖 이야기를 담은 에필로그도 쏠쏠한 재미. 다만, 후속 이야기를 염두한 듯 모호하게 끝나는 결말이 아쉽다.
<의천도룡기 2019> (2019년, 50부작)
중국 무협 드라마에 입문하고 싶은 초심자에게 추천하는 <의천도룡기2019>는 중화권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 영화와 TV 시리즈로 여러 차례 실사화된 동명 소설의 2019년 버전이다. 총 50부작이며, 한 에피소드당 러닝타임이 45분 분량으로 생각보다 막힘없이 술술 넘어간다. 가진 자는 천하를 호령할 수 있다는 도룡도와 의천검을 중심으로 무림에서 분쟁이 벌어지는 이야기이며, 시리즈의 주인공인 장무기의 서사를 부모의 만남부터 시작해서 사랑과 의리가 넘치는 연대기식으로 방대하게 담아낸다. 등장인물이 굉장히 많지만 각자 특색이 잘 살아있어 흐름을 따라가기 쉽다. 특히 화려한 무공을 선보이는 액션신이 돋보여서 무림 액션 하나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량세환 : 두 개의 인연 (2020년, 36부작)
<의천도룡기2019>로 주연급 배우로 떠오른 진옥기와 <삼생삼세십리도화>의 우몽롱이 주연을 맡은, 미스터리와 로맨스가 만난 시대극이다. 어머니를 죽인 원수의 딸을 해치는 대신 곁에 두고 보살피는 남자 경사와 출생의 비밀을 모른 채 성장한 여자 풍면만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가혹한 운명에도 서로를 향한 마음을 키워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다소 느릿한 전개에도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리는 설정에 기억 상실과 살인 미스터리를 가미해 흥미를 돋운다. 사고로 기억을 잃고 포쾌가 되어 아원으로 살아가는 풍면만과 신분을 숨기고 수사관(현위) 자격으로 그를 찾은 경사가 함께 연쇄 살인사건을 조사하며 나누는 애틋한 감정이 말랑말랑하다. 표정 변화 없는 우몽롱의 연기에 대한 지적이 있지만 비주얼이 열일하고, 기억을 잃기 전후의 풍면만과 그의 쌍둥이 자매 원청리를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진옥기 연기는 훌륭하다. 중국 OTT 서비스 아이치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작품.
치아문난난적소시광 (2019년, 24부작)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로맨틱 코미디 중드를 찾는다면, <치아문난난적소시광>이 제격이다. 광고업을 꿈꾸는 취업 준비 대학생 쓰투모가 기숙사를 나와 엄마 친구의 집에 들어가고, 같은 학교 물리학과 천재이자 알고 보니 엄마 친구 아들인 구웨이이와 단둘이 한집에서 함께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을 연기하는 싱페이와 린이의 풋풋하고 귀여운 모습이 드라마의 매력이다. 서로를 향한 감정을 쌓아 올릴 때 일명 ‘고구마’를 던져주는 악역 역할이 없고 인물 간의 갈등 구조가 약해서 밍숭맹숭한듯 싶은 부분이 있지만, 그 덕에 감정 소모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
진정령 (2019년, 50부작)
중국 판타지 무협 BL 소설 <마도조서>를 드라마화한 작품. 다섯 가문이 천하를 지배하던 시기, 권력을 독차지하려는 온씨 가문의 음모를 눈치챈 위무선과 남망기가 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 이라고는 하지만, 누가 봐도 <진정령>은 사랑 이야기다. 둘의 케미스트리를 ‘우정’이라 포장하기엔,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과 태도, 감정선은 연인 못지않게 섬세하고 달달하게 묘사된다. 여기에 샤오잔과 왕이보의 비주얼까지 더해지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물론 이외에도 속도감 넘치는 전개와 흥미로운 무협 세계관을 갖추고 있어 퀴어 장르가 생소한 이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 될 것이다.
배니도세계지전 : 너와 세상 끝까지 (2019년, 35부작)
유명 프로게이머와 신인 해설가의 사랑과 성장을 그린 드라마. 레전드 팀 프로게이머 지샹콩은 희생적인 플레이와 뛰어난 전략을 갖춘 선수지만, 매니저와의 불화와 패배를 이유로 팀을 떠난다. 이후 크고 작은 고난들로 힘들어하던 지샹콩이 신인 e스포츠 해설가 치우잉을 만나 사랑의 힘으로 성장과 변화를 겪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성장과 사랑을 쟁취한다는 스토리는 평범한 로맨스물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열일’하는 왕이보의 비주얼을 실컷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몇몇 인물들 때문에 고구마 전개가 이어지긴 해도 두 주인공이 투닥거리면서 가까워지는 과정은 귀엽고 풋풋하며, 치우밍의 친구로 등장하는 루 샤오위도 매력적이다.
경여년 (2019년, 46부작)
현대의 기억을 품고 고대에 태어난 소년 범한이 무공 고수가 되고 경도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사건을 그린 타입슬립 무협 성장 드라마. 지략과 뚝심, 체력을 갖춘 주인공이 즐거운 삶을 추구하면서 영웅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무협, 코미디, 로맨스, 정치물 등 여러 장르가 섞였음에도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데, 뻔한 듯 뻔하지 않게 이야기를 잘 푼 각본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덕분이다. 부드럽고 강한 범한의 성격을 잘 살린 장약윤과 중국 대배우 진도명의 퍼포먼스가 가장 인상적이다. 다만 결말은 머리를 쥐어뜯을 정도로 충격이다. 이렇게 끝내 놨으니 반드시 시즌 2가 나와야 한다.
학려화정 (2019년, 60부작)
황태자 소정권이 이복형의 위협과 아버지 황제의 냉대에 시달리고 주변 사람들을 잃으면서도 자신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이들과 고난을 헤쳐나가는 정치 사극. 로맨스도 있지만 주된 내용은 권력을 놓고 벌이는 정치적 음모와 공방, 그리고 서로 끊임없이 의심하고 경계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다. 정갈함, 엄숙함, 압도적인 분위기로 시선을 사로잡는 반면, 고구마 먹은 듯한 답답한 전개와 고난이 끊이지 않는 주인공의 기구한 삶은 눈물을 자아낸다. 라진이 연기하는 태자 정권이 울고 또 울 때마다 답답해서 가슴을 치지만, 그 처절함과 슬픔에 빠져서 어느새 다음 회차를 플레이하게 된다.
에그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