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수, 멈추지 않는 <모래시계>
얼마 전 왓챠에서 <모래시계>에 우연히 접속했다가 주말 하루를 몽땅 헌납했다.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한 편만 더 보자, 진짜 한 편만 더, 이게 진짜 마지막이야, 결심만 하다가 결국 마지막 회까지 불태워버렸다. 처음 본 것도 아닌데 왜 또 재밌는데! 1995년, 서울 시민들의 귀가 시간을 앞당긴 전설의 드라마 <모래시계>는 지방 사람들에게는 돌아가지 않는 시계였다. 모래 폭풍 소식을 신문이나 귀동냥으로만 들어야 했던 지방인의 설움이란. 불법 복제 테이프를 공수하거나, 유선 케이블이 달린 집에 모여드는 방식으로 설움에 항거하는 사람도 있었다. 제주도에 살았던 나는 이 드라마를 대우시네마가 출시한 4편짜리 비디오 편집판으로 뒤늦게 봤던 기억이 난다.
처음 드라마를 접했을 땐 한참 중2 감수성에 취해 있던 터라, 세 주인공의 비극적인 운명에 과도하게 몰입했다. 인생이란 게 뭔지 당최 모를 나이에도 태수(최민수)와 혜린(고현정)의 엇갈린 사랑은 마음을 때렸고,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고뇌하는 우석(박상원)은 뭔가 있어 보였다. 조금 커서 다시 봤을 땐, 드라마에 내밀하게 침투해 있는 혹독한 시대상이 보였다. 얽히고설킨 세 남녀의 인생이 역사의 굴곡진 사건들-동일방직사건, 부마민주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삼청교육대-위로 흐르고 있었다. (<모래시계> 이후 광주민주화운동을 담아낸 작품이 많이 등장했지만,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날의 광주’를 이 작품만큼 잘 담아낸 작품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보니, 이건 ‘인간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태수의 선택에 오랜 시간 시선이 머물렀다. 그는 운명에 저항하는 대신, 잔인한 운명이 내민 거래에 손을 덥석 잡음으로써 결국 사형장에서 운명적으로 산화됐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돈도 권력도 삶도 모두 버린 채. 95년 사람들이 왜 그렇게 태수에 열광했는지, 그를 보며 뜨거워졌는지, 조금 더 알 것도 같았다. 그것은 단순히 태수가 보여준 의리나 남성다움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태수는 비록 거친 삶을 전전했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지키지 못한 말을 하지 않았다. 친구 우석에게도, 사랑하는 여인에게도, 그 자신에게도. 그런 태수의 퍼스널리티 완성은 최민수. <모래시계>에서의 최민수는 연기를 잘한다 못한다의 개념이 아니었다. 그냥 그가 태수고 태수가 최민수였다. 뭐였을까. 그가 그토록 강렬한 몰입감과 에너지를 쏟아낸 힘은.
최민수의 혈통은 남다른 데가 있다. 그의 외조부는 북한 최초의 영화감독 강홍식이다. 외조모는 영화배우 전옥. 그들의 딸인 영화배우 강효실은 50-60년대 은막을 풍미했던 최무룡과의 사이에서 최민수를 낳았다. 그러나 최민수에게 세상은 처음부터 험난했다. 부모의 이혼으로 두 살 때부터 친할머니 손에 맡겨진 그는 가족과 생이별하다시피 자랐다. 그런 최민수를 키운 8할은 외로움, 그리고 그리움이었다. 그리고 많은 예술가가 그렇듯, 공허한 감정은 그로 하여금 연기에 더 투신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신이 내린 배우의 유전자를 쥐고 태어난 그는 1987년 영화 <신의 아들>로 데뷔했다. 인생을 걸고 권투를 하는 외로운 남자 최강타는 최민수와 이물감 없이 어울렸고, 날 선 배우의 등장을 알렸다. 터닝포인트는 김수현 작가가 1991년 내놓은 <사랑이 뭐길래>다. 이전까지 야생마 같은 캐릭터를 주로 연기한 최민수는 전국민으로부터 “대발이~”로 불리며 친근한 이미지를 얻었다. 이 이미지는 코미디 영화 <결혼 이야기>(1992) <미스터 맘마>(1992) 등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다. 거친 사나이와 코믹한 인물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전천후 배우로 거듭난 것이다. 그리고 <모래시계>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뭐랄까, 태수는 너무 깊숙이 최민수에게 침투해 버렸다. 누가 말했었지. 스타로 오래 살아남으려면 캐릭터에 완전히 잡아 먹히면 안 된다고. 그러나 당시의 최민수에게 태수는 불가항력처럼 보였다. 그는 원래 자신을 버리고 캐릭터에 몰입하는 스타일의 배우지만, 태수로부터 받은 영향은 유독 컸다. <모래시계> 이후 최민수는 태수처럼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를 연이어 선택했다. 작품 밖에서도 그는 더욱 터프해졌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모래시계> 속에 영원히 박제된 태수와 달리, 최민수가 사는 세상의 시간은 흐르는 것을.
세상이 변했다. 사람들 시선이 변했고, 관점이 변했으며, 매력의 척도가 변했다. 변하지 않은 건 최민수뿐이었다. 2000년대가 열리면서 거친 남자의 시대가 저물어갔다. 세심함, 부드러움, 무해함…최민수가 지닌 이미지와 정반대의 매력들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비장미는 추방당했고, 너무 진지하면 분위기를 흐린다는 핀잔이 날아들었다. 어느 순간 최민수의 남성다움과 특유의 자의식은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 낡은 가치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 자기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하는 그를 세상은 괴짜라고 했다. 이런 이미지가 희화화돼 ‘최민수 시리즈’가 나돌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2008년 “최민수가 노인을 차에 매달아 질주했다”는 언론의 마녀사냥에 가까운 왜곡 보도와 이를 필터링 없이 믿어버린 대중의 오해는 그를 향한 어떤 선입견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 말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힘든 비극에 가까웠다. 이 사건으로 그는 2년간 산에서 칩거했는데, 그건 정말이지 슬픈 고독이었다. 이후 사건은 무혐의로 밝혀졌지만,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양 뻥튀기한 언론은 틀린 것을 바로잡는 데에는 조용했다.
그렇게 비틀거리던 그를 잡아준 건 가족. 최근 그가 ‘강주은의 남편’으로서 외조에 힘쓰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텐데, 그와 별개로 작품 안에서의 최민수도 조금 더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부장검사 문희만을 연기한 <오만과 편견>에서 최민수는 선과 악을 지운 얼굴로 변화를 알렸고, <죽어야 사는 남자>에서는 말도 안 되는 캐릭터를 말이 되게 뒤집는 작두 탄 연기를 선보였다. 다소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힘을 지닐 수 있었던 것. 배우 덕이다.
물론 최민수는 여전히 세상 눈치 보느라 물러서지 않았다. 적당히 타협하지 않는다. 타인의 요구에 움직이기보다 자신의 마음과 소신이 이끄는 곳으로 몸을 맡긴다. 2014년 MBC 연기대상 황금연기상 수상을 거부하며 “아직도 차가운 바다 깊숙이 갇혀 있는 양심과 희망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밝힌 것도 이러한 흐름 안에서 설명 가능할 것이다.
태수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선택했듯, 이것이 최민수가 세상과 소통하는 그만의 선택이고 방식인 것이다.
나는 사실 최민수라는 배우의 긴 인생에서 <모래시계>가 양날의 칼이라고 여겨 왔다. 그러나 드라마를 다시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모래시계>에서 그가 보여준 에너지는 지금 봐도 대단하며, 그것이 호기심으로 작용해 최민수를 향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시간을 견뎌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감흥을 주는 작품과 캐릭터를 만나는 건 모든 배우에게 주어지는 특권이 아니다. 이것이 최민수라는 신화. 어떤 신화를 그렇게 작품과 함께 영원히 남는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