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윤희에게>는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딸이 엄마한테 온 편지를 몰래 읽고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는 내용이 주된 줄거리입니다. 영화에서 남의 편지를 몰래 읽거나 남의 물건을 허락없이 사용하는 행위가 주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일상에서 무심코 하는 행동들이 법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볼게요.
윤희(김희애)는 남편 인호(유재명)와 이혼하고 고교 3학년생인 딸 새봄(김소헤)을 혼자 키우고 있는데요. 새봄이는 아파트 1층 우편함에 꽂혀있는 엄마 윤희가 수신인으로 되어 있는 편지를 몰래 뜯어서 읽게 됩니다. 우편물인 편지는 봉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뜯으면 형법상 비밀침해죄가 성립하지만 친고죄라서 엄마 윤희가 고소를 해야 새봄이가 처벌될 수 있고, 엄마가 딸이 편지를 뜯었다고 고소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일상에서 법적으로 문제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영화에서도 윤희가 새봄이 자신의 편지를 몰래 뜯어본 것 자체를 아는지 여부가 명확하게 나오지 않습니다.
새봄이는 사진찍는 것이 취미라서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일상의 사물 등을 촬영하는데 그 카메라는 윤희가 자신의 모친한테 대학을 안 보내는 대신 받은 선물입니다. 윤희와 새봄 두 명이 살고 있는 집 안에서 새봄이 카메라를 발견하고 엄마한테 말하지 않고 사용하는 것이죠. 절도죄란 타인이 점유하는 타인 소유의 재물을 절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영화에서 새봄이가 사용하는 카메라는 윤희가 선물받은 카메라니까 윤희의 소유이고, 같이 동거하는 집에서 발견한 카메라는 얼핏 두 사람의 공동점유로 보이지만 미성년인 딸과 보호자인 엄마는 상하관계 공동점유에 해당하여 상위점유자인 엄마의 점유에 속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새봄이는 윤희의 카메라를 허락없이 사용한 것이므로 일단 절도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데요(현실에서는 딸이 집에 굴러다니는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을 엄마가 묵시적으로 승낙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 경우에는 절도죄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나, 이하에서는 절도죄가 성립한다는 전제에서의 설명이에요).
그러나 이런 결과는 현실과는 맞지 않아 보이죠. 그래서 형법은 친족상도례 규정을 두어 친족간의 범행에 대해서는 특별한 취급을 해줍니다.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간’에 발생한 ‘일정한 범죄’는 그 형을 면제하고,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친족간(즉, 먼 친척간)에 발생한 범죄는 고소가 있어야 기소할 수 있어요. 영화에서 윤희와 새봄은 직계혈족 관계이고 절도죄는 친족상도례가 적용되는 범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새봄이한테는 절도죄의 형이 면제가 됩니다.
윤희한테 편지를 보낸 일본에 사는 친구 쥰(나카무라 유코)은 고모 마사코(키노 하나)와 같이 살고 있는데요. 사실은 쥰이 윤희한테 편지를 직접 부친 것이 아니라, 고모 마사코가 쥰의 책상 위에 놓여진 쥰이 쓴 편지를 몰래 읽고 쥰의 허락없이 윤희한테 편지를 부친 거에요. 이 경우에도 고모 마사코한테 비밀침해죄가 성립할 수 있으나, 영화에서 쥰은 윤희한테 편지를 실제 부칠 생각으로 쓴 것이 아니라 윤희에 대한 그리움으로 윤희의 꿈을 꾸는 날이면 새로운 내용의 편지를 계속 썼던 것이에요. 그래서 영화에서도 편지를 넣은 봉투가 풀로 봉함되어 있었는지 명확하게 나오지 않고, 만약 열어놓은 봉투 속에 넣어진 편지를 꺼내서 설령 그 편지의 내용을 읽었더라도 마사코한테 비밀침해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나 마사코는 쥰이 쓴 편지를 쥰에게 말하지 않고 우편으로 부쳐버리고 쥰이 그 편지를 찾을 때도 모른척 합니다. 마사코가 남의 편지를 몰래 부친 행위를 형법적으로 평가하면 절도죄를 검토할 수 있어요. 쥰이 쓴 편지는 쥰의 소유라는 것이 명백하고, 마사코와 쥰이 동거하는 집이므로 공동점유에 해당합니다. 마사코-쥰의 공동점유는 윤희-새봄과는 달리 쥰이 수의사면서 고3 딸을 둔 윤희와 동갑으로 추측되므로 고모와의 동거는 대등한 점유라고 볼 수 있고, 대등관계의 공동점유도 점유의 타인성을 인정해요. 한편 절도죄가 되려면 재물성이 인정되어야 하는데 재물은 객관적 가치가 없고 주관적 가치만 있어도 재물성을 인정하는 것이 판례입니다. 따라서 쥰의 편지는 객관적 가치가 없어도 쥰한테 주관적 가치를 가지므로 재물에 해당하여, 마사코의 행위는 남의 재물(편지)을 쥰의 허락도 없이 가져간 것으로 평가할 수 있어 절도죄가 문제될 수 있어요(결과적으로 편지를 우편으로 부쳐버려서 쥰의 편지에 대한 점유를 상실케 함). 그러나 마사코는 쥰의 직계존속(부친)의 형제자매에 해당하여 두 사람은 3촌의 방계혈족 관계이고, 직계는 아니지만 친족에 해당합니다. 친족은 동거하는 경우에만 친족상도례가 적용되는데 마사코와 쥰은 같은 집에 살기 때문에 동거친족 관계에 해당하여 결국 마사코한테 절도죄의 형은 면제돼요.
영화에서 윤희는 동성애자이나 가족의 강압으로 친오빠가 소개시켜주는 남자와 일찍 결혼해서 새봄이를 낳고 결국 이혼을 하게 된 것이에요. 윤희의 전 남편 인호(유재명)는 술을 마시면 종종 윤희와 새봄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찾아 왔고, 영화 후반부에 재혼 소식을 제일 처음 윤희한테 알리면서 흐느껴 울었으며, 왜 이혼했냐는 새봄의 질문에 인호는 ‘네 엄마는 사람을 좀 외롭게 하는 사람이야’ 라고 답하는 장면 등을 통해서, 인호는 윤희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결혼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요. 동성애를 숨기고 결혼한 것은 혼인취소 사유에 해당할 수 있으나 혼인취소는 3개월의 제척기간이 적용되기 때문에 새봄이까지 낳은 것을 보아 당연히 취소기간은 지났고, 기타 혼인을 지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하여 두 사람이 이혼에 협의(법문상 ‘합의’이혼이 아니라 ‘협의’이혼임)가 안되면 재판상 이혼사유가 될 수 있어요. 윤희네 가족이 윤희가 동성애자임을 적극적으로 숨기고 인호와의 결혼을 추진했다면 민법상 불법행위에도 해당하여 인호는 위자료 청구도 고려해볼 수 있으나, 윤희에 대한 인호의 마음을 고려할 때 위자료 청구는 고려하지 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일상에서 우리가 가족간이나 동거하는 친척 사이에서 별 생각없이 하는 소소한 행위들에 대하여 그것이 법적으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한 번 살펴보았습니다.
글 | 고봉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