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녹록지 않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단 걸 머리는 이해해도, 몸과 마음은 자연과 가을바람의 상쾌함을 만끽하고 싶어 한다. 그런 광활하고 자유로운 자연을 만나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의 책임감을 잊지 않을 영화… 알맞은 영화를 찾으니 재난 영화만 한 게 없다.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자연의 상쾌함과 함께, 그 무서움까지 함께 느낄 수 있는 재난 영화 다섯 편을 우리 집 거실에서 즐겨보자.


인투 더 스톰

: 사상 최고의 초대형 토네이도, 마을을 덮치다

재난 영화의 미덕은 무엇인가. 1, 재난을 과학적이고 정밀하게 묘사한다. 2, 재난으로 다 때려 부순다. <인투 더 스톰>은 후자에 올인한 작품이다. 사상 최고의 초대형 토네이도가 발생하면서 완전히 파괴되고 마는 오클라호마주 실버톤을 그린다. 주인공들이 '정부 인사'나 '슈퍼 과학자'가 아니라서 블록버스터급 스케일은 아니나 캠코더로 찍은 것 같은 담백한 영상이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한 생동감을 준다. 지지부진하게 끌지 않고 90분으로 짧고 굵게 관객들을 재난 한가운데에 몰아넣는다. <호빗> 시리즈의 소린을 연기한 리처드 아미티지의 존재감도 무시할 수 없다.


엑시트

: 유독가스 퍼진 서울, 생존 루트는 고층 건물?

재난 영화? 한국에선 못해,라 편견을 깬 <엑시트>. 인재로 발생한 재난에 맞춰 전개를 풀어가는 방향이 영리하다. 특히 조정석과 윤아 두 주연 배우의 연기 호흡, 순발력, 감정선 표현 등이 우리 시대 2030세대의 보편적인 감성을 정확하게 포착한다. '재난'에만 포커스를 맞추면 스케일이 아쉽지만, 일상 속 위급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묘사돼 '교육영화'로 쓸만하다. <엑시트>를 본다면 적어도 'SOS'의 모스부호는 당신의 두뇌에 평생 남을 것이다.

<엑시트>를 보면 음성지원되는 짤


온리 더 브레이브

: 화마에 맞서는 용감한 영웅들

'화마(火魔)'라는 말이 있다. 불이란 게 한 번 퍼지면 걷잡기도 어렵고, 모든 걸 휩쓸어버리니 마귀 같다 하여 붙은 말이다. 실제로 매해 건조한 계절이 오면 전 세계에서 산이나 평야에서 나는 불로 홍역을 치르곤 한다. <온리 더 브레이브>는 그런 불을 사전에 진압하기 위해 투입되는 '핫샷' 팀의 이야기다. '핫샷'은 북미에서 시행하는 시스템으로 산불 초기 진압을 위해 최전방에 투입되는 엘리트 소방관 팀이다. 2013년 애리조나주 대화재에 맞선 핫샷 팀의 고군분투를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다. 지금 현실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병마를 잡기 위해 고생하고 있으니, 그런 영웅들의 노고를 기리는 의미에서 <온리 더 브레이브>를 추천한다.


일본 침몰

: 재난조차 삼키지 못한 것, 감정

추천작에 넣기엔 조금 민망한 영화지만, 할리우드식 재난 영화를 벗어나고 싶다면 한 번쯤 도전해볼 영화. 사실 한국 관객이라면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는 제목이긴 하다. '일본' '침몰'이라니. "너무 진지해서, 너무 지루하다"(김봉석 평론가)는 평처럼 과할 정도로 비장함이 넘쳐흐르지만 간 보지 않고 수도를 다 때려 부수는 스케일은 꽤 감탄스럽다. 평소 재난 영화의 신파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관객이나, 일본식 재난 영화를 맛보고 싶다면 이번 기회에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버티칼 리미트

: 가장 볼품없고 가장 위대한 한 명의 인간

재난 영화의 무서움은 자연이 인간의 예측을 뛰어넘는다는 데서 온다. 그렇기 때문에 '재난'의 정의와는 조금 달라도 산악 영화도 훌륭한 재난 영화로 분류되곤 한다. <버티칼 리미트>가 그 예시다. 세계에서 가장 어렵다는 등반 코스 K2로 향한 이들에게 눈 폭풍이 덮치면서 영화는 생존과 구조의 딜레마 속으로 관객들을 이끈다. 영화는 산악을 하는 과정의 스릴을 챙기는 것 이상으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자연에서 한 개인이 얼마나 볼품없는가는 여과 없이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런 개인이 어떤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 때문. 시나리오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는 평에도 관객들에겐 <버티칼 리미트>가 산악영화 최후의 명작으로 남은 건 인간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영화에 응축했기 때문이 아닐까.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