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레베카>는 여주인공이 유럽을 여행 중에 남주인공을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남주인공이 소유한 잉글랜드의 대저택으로 가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이 주된 줄거리입니다.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을 만나 결혼하게 되는 과정부터 맨덜리의 비밀이 드러나고 마지막에 발생하는 일들까지 법적인 의미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여주인공(릴리 제임스)은 자신의 고용주인 부유한 중년여성 밴 호퍼 부인(앤 도드)을 시중들면서 몬테카를로를 여행 중에 잉글랜드의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는 잘생긴 남자 주인공 맥심 드 윈터(아미 해머)를 만나게 됩니다. 여주인공은 밴 호퍼 부인한테 거짓말을 하고 외출한 뒤 맥심과 데이트를 즐기면서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이를 눈치챈 밴 호퍼 부인이 뉴욕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이별의 상황에 처한 맥심이 여주인공한테 청혼을 하고 둘은 부부가 되어 잉글랜드의 맨덜리 저택으로 가게 됩니다.
맥심은 작년에 부인 레베카가 불의의 사고로 죽은 뒤 실의에 빠져 유럽을 여행하다가 여주인공을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이에요. 맥심과 결혼해서 드 윈터 부인이 된 여주인공은 맨덜리로 가는데, 대저택에 남아있는 레베카의 흔적들과 레베카 이야기만 나오면 과민반응을 보이는 맥심 때문에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 하나씩 비밀이 밝혀지는데요. 처음에는 레베카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익사한 것으로 알았으나 그 후 난파선에서 레베카의 시신이 발견되고 숨겨왔던 진실이 드러납니다. 레베카는 신혼여행을 가서 맥심한테 런던에 집을 한 채 두고 남자들과 자유로운 생활을 할 것이라고 말했고 그중에는 사촌 파벨도 있었습니다. 레베카는 맥심이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할까봐 이혼은 못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식적인 상황을 즐겼던 것이에요. 어느 날 레베카는 런던에서 돌아오면서 파벨과 맨덜리에서 만나기로 했고 이를 알고 맥심도 맨덜리에 왔습니다. 레베카는 런던의 병원을 다녀왔다면서 창백한 얼굴로 맥심한테, 자신이 임신을 했다면 어떻게 할거냐, 누구 아빠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을 하면서 맥심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맥심한테 권총을 쥐여주면서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서 맥심을 종용하여 결국 맥심은 레베카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게 됩니다.
영화에서는 난파선 안에 레베카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작년에 익사 사고 발생 두달 후 발견된 시신을 레베카로 알고 장례까지 치른 맥심에 대하여 레베카의 살인혐의로 재판이 열리게 됩니다. 영화 후반부에 밝혀지지만 런던의 병원에 다녀온 레베카는 임신이 아니라 자궁암이었고 몇 주밖에 살 수 없는 상태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즉, 레베카는 말기암 환자로 몇 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시한부를 선고받아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고 고통을 멈추고 싶어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맥심한테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것처럼 말하면서 맥심을 우롱하였고 심지어 권총을 쥐여주며 자신을 쏘라고 자극하였던 것입니다. 레베카가 자살하려던 것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객관적 정황은 자살을 계획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맥심은 레베카가 말기암 환자로 시한부였다는 사실을 몰랐고 오히려 파벨의 아이를 임신한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레베카를 향해 방아쇠를 당길 때 살인의 고의가 있었고 레베카의 자살을 방조한다는 고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맥심은 레베카를 살해한 것으로 봐야 할까요 아니면 레베카의 자살을 방조한 것으로 보아야 할까요. 즉, 살인의 고의로 방아쇠를 당겼으나 자살방조의 객관적 정황이 있는 경우 맥심한테 살인죄의 죄책을 물을 수 있느냐는 것이 쟁점이 될 수 있어요. 이에 대해서는 학설이 대립하고 명확한 판례의 입장은 없다고 보이는데요(현실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고, 실무상으로는 살인죄로 재판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요).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상황을 단순화하면, 옆집 유리창을 깨뜨릴 생각(손괴죄 고의)으로 돌을 던졌으나 유리창이 깨진 덕분에 연탄가스에 질식할 뻔 했던 이웃이 살아난 사례가 유사한 학습 사례에요. 돌을 던진 자한테 손괴죄가 성립하는지 여부에 대하여 손괴죄가 된다는 학설, 결과적으로 이웃이 그 덕분에 살아났기 때문에 무죄라는 학설, 손괴죄의 불능미수범이 된다는 학설 등이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레베카의 자살의 의도가 명확하게 나오지 않고, 맥심한테 레베카에 대한 살인죄가 성립하느냐만 주요하게 다뤄집니다. 그러나 레베카가 말기암 환자에 시한부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레베카가 배에 구멍을 내고 바다로 나가 자살한 것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레베카의 죽음과 관련된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간단하게 맥심의 살인죄 여부만 다뤄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죠.
감옥에 갇혔던 맥심은 무죄로 풀려나고 부인과 함께 맨덜리로 향하는데, 맨덜리의 현재 집사이자 레베카를 어렸을 때부터 돌봐주면서 레베카와 함께 맨덜리로 온 댄버스 부인이 맨덜리의 레베카 침실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여 화재가 발생합니다. 맨덜리에는 수 십명의 고용인들이 살고 있고 일을 하는데 맨덜리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사람들은 불길에 휩싸인 저택에서 빠져나오고 아수라장이 되는데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저택에 고의로 불을 놓아 저택을 소훼시킨 댄버스 부인한테는 현주건조물방화죄가 성립하고, 만약 불길에 휩싸인 저택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고용인 중에 사망자가 있거나 다친 사람이 있다면 현주건조물방화치사죄 또는 현주건조물방화치상죄라는 결과적 가중범이 성립하게 되어 사형, 무기 또는 7년(상해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간단한 법률쟁점을 살펴보면, 맥심이 레베카한테 총을 쏘았다는 사실을 숨기고 여주인공과 결혼한 것이 사기, 강박에 의한 혼인 취소사유가 될 수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사람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숨긴 것은 혼인 취소사유가 될 가능성이 높으나, 이것은 취소할 수 있는 기간이 사기를 안 날로부터 3개월로 짧아요.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는 진실을 알게 된 여주인공이 오히려 맥심을 풀려나게 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증거를 수집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므로 여주인공은 맥심과의 결혼을 사기라고 여기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겠죠.
영화의 상황은 현실에서는 발생하기 어렵거나 입증이 어려운, 다소 이론적으로만 상정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영화를 통해서 이론과 현실의 법적 차이를 한 번 살펴보았습니다.
글 | 고봉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