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적인 세계의 고등학교를 다룬다는 점에서 <다세포 소녀>(2006)가 떠오르더라. <다세포 소녀>의 음악 역시 장르가 다양해서 <안은영>을 작업하면서 의식이 됐을 법도 하다.
= 작업할 땐 아무 의식도 못했다. 그저 고등학생과 어떤 음악이 어울릴 수 있을까, 안은영의 판타지를 어떻게 그려줄 수 있을까,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만 생각했다.
<안은영> 제작 중 어느 단계에서 음악을 작업하기 시작했나?
= 90% 이상은 편집본을 보면서 작업했다. 농구문어가 성아라한테 고백할 때, 밴드부가 연주하는 음악 등 촬영장에서 필요한 것들만 먼저 만들었다.
여기저기 세세한 효과음들도 많고, 총 러닝타임만 300분 정도라 작업량이 방대해서 이전 작품들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됐을 것 같다.
= 보통 후반작업이란 기간이 영화마다 다르고 요즘은 특히 그 기간이 짧아진 경우들도 많은데, <안은영>은 한 5개월 넘게 시간을 열어놓았고, 나 역시 <배심원들>(2019), <봉오동 전투>(2019) 마치고 한가했던 기간이라 한 반년 가까이 <안은영>에만 매달렸다.
마감 기한이 짧아 단기간에 바짝 효율적으로 작업해야 하는 경우도 많을 텐데, 아무래도 작업 시간이 길면 더 편한 편인가.
= 어느 정도 만들고 나서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게 좋다. 뒤집어엎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만큼 일을 더 많이 해야 하긴 하지만, 일정이 타이트한 영화음악은 뒤돌아보지도 못하고 서둘러 끝내야 하는 경우들이 대부분인데, 한번 돌아보고 다르게 접근하는 방법을 찾아볼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확실히 좋은 작업이 나올 가능성은 높아진다.
뒤집어엎어서 좋아진 음악은 어떤 것인가?
= 특정한 곡이라기보다 전체 흐름의 문제다. 음악이 어떻게 배치되느냐에 따라서 인물과 사건이 다르게 보일 수 있어서 한두 곡이 아니라 전체를 뒤집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강선의 에피소드가 그렇다. 은영과 강선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할까, 죽어가는 강선과 죽어 흩어지는 강선에게 어떤 음악을 써야 할까... 앞에 어떤 음악을 쌓아왔느냐에 따라서 해당 장면이 다르게 보여서, 앞뒤로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해줘야 할까 특히 고민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