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이 글을 시작해보자. 대니 보일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퀴즈쇼에 출연한 한 소년의 이야기다. 뭄바이 빈민가 출신의 고아 자말(데브 파텔)은 <백만장자가 되고 싶나요>(Who wants to be a millionaire)라는 TV쇼에 출연해 최종 라운드까지 오르고 엄청난 거액의 상금을 받기 직전이다. 프로그램 제작진은 그를 의심한다. 결국 경찰을 자말을 사기죄로 체포한다. 과연 그는 부정행위를 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정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그가 어떻게 어려운 퀴즈의 정답을 알고 있었을까.
이제 <퀴즈>라는 영국 드라마를 얘기할 차례다. 두 작품 사이에는 퀴즈쇼라는 공통 분모가 있다. 두 작품에 등장하는 퀴즈쇼는 모두 <백만장자가 되고 싶나요>다. 원조는? <퀴즈>쪽이다. <백만장자가 되고 싶나요>는 영국 ITV에서 1998년 방송을 시작한 퀴즈쇼다. 상상을 초월한 인기와 시청률을 기록한 이 퀴즈쇼는 전 세계 100여 개 나라에서 라이센스를 가져갔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퀴즈쇼는 인도 버전의 <백만장자가 되고 싶나요>였다. <퀴즈>의 1편 내용에 따르면 미국의 ABC 직원은 심지어 무릎을 꿇고 저작권을 사갔다.
<백만장자가 되고 싶나요>는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100만 파운드(약 14억원)의 상금을 향해 계속 도전을 해가는 형식이다. 중간에 도전을 포기해도 된다. 그러면 그 단계까지의 상금을 받는다. 만약 도전해서 성공하면 2배 늘어난 상금을 받고, 실패하면 빈 손으로 돌아간다. <퀴즈>는 전무후무의 이 퀴즈쇼에서 100만 파운드의 상금을 따냈으나 상금을 받지 못한 찰스 잉그럼(매튜 맥퍼딘)의 실제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찰스는 당시 영국 육군 소령이었다. 영국의 언론들은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자말처럼 <퀴즈>의 찰스도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100만 파운드의 상금을 따낸 마지막 단계의 퀴즈의 정답을 말하고 수표를 받아갔지만 제작진은 그의 부정 행위를 의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퀴즈>의 첫 장면은 재판장에 들어서는 찰스와 그의 아내 다이애나 잉그럼(시안 클리포드)의 모습을 보여준다. 재판이 진행되고 검사가 이들이 유죄라고 말한 뒤, 자연스럽게 과거의 장면을 보여주는 플래시백이 시작된다. <퀴즈>는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비슷한 내러티브 구조를 가지고 있다. 현재와 과거가 교차된다.
<퀴즈>는 한 편의 추리 소설과 같다. 독자 아니 시청자들은 100만 파운드의 상금이 걸린 퀴즈쇼의 진실에 대한 단서들을 쫓는다. 그 단서들은 주로 과거의 시간에서 발견된다. 이 과정은 퀴즈쇼 자체의 재미가 도드라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퀴즈쇼에 빠져 속칭 폐인이 된 다이애나의 오빠 에이드리언(트라이스탄 그라벨)은 정답을 맞추기 위해 아버지에게 전화 찬스를 쓰지만 아버지는 “모르겠다”고 답하고 만다. <퀴즈>에는 <백만장자가 되고 싶나요>가 만들어내는 퀴즈쇼 그 자체의 묘미를 잘 살린 장면은 이것 말고도 많다.
<퀴즈>의 과거 시간에서 시청자들은 어떤 단서를 얻을 수 있을까. 잉그럼 부부의 변호인(헬렌 맥크로리)은 배심원들에게 기억은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의 시간에서는 치열한 법정 공방이 이뤄진다. <퀴즈>를 보는 시청자들은 법정의 배심원과 마찬가지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제한된 기억의 단서를 통해 이 이야기가 잉그럼 부부의 억울한 사연인지 가증스러운 거짓말인지 판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퀴즈>를 독점 공개하는 왓챠에서 만든 포스터의 카피가 인상적이다. ‘우승일까, 사기극일까, 당신의 정답은?’
이 흥미진진한 추리 게임에 동참할 독자들이라면 한 가지 집중해야 할 지점이 있다. 그것은 기침 소리다. 기침 소리가 이 진실 공방의 핵심 단서와 증거로 제시된다. 찰스가 퀴즈를 풀 때 그 자리에 있던 또 다른 출연자 테크웬 휘턱(마이클 집슨)이 퀴즈쇼 사기극의 공모자로 기소됐다. 찰스가 퀴즈를 풀 때 기침 소리로 정답을 알려줬다고 의심 받은 인물이다.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2000), <더 퀸>(2006), <필로미나의 기적>(2013) 등을 연출한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은 이 기침 소리를 보여주는 장면을 공들여 만들어냈다. 각 에피소드가 끝나는 순간을 주목해보자.
모든 영국인들에게 ‘기침 소령’이라고 조롱 받은 찰리와 그의 아내는 백만장자가가 됐을까. 잉그럼 부부는 여전히 혐의를 부인하고 자신들의 상금을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 아직 이 사건은 진행 중이다. ITV는 이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2017년에는 연극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제 3편으로 구성된 미니 시리즈 <퀴즈>가 나왔다. 한번에 몰아보기 딱 좋은 러닝타임이다. 이제 당신이 배심원이 될 차례다. 영국을 뒤흔든 세기의 퀴즈쇼 스캔들의 피고는 유죄인가, 무죄인가. 당신의 판결을 기다린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