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걸 다 완벽하게 해내는 건 어려운 일이고,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 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비혼이 드문 결정이 아니게 된 이후엔 그런 질문을 건네는 사람이 줄어들었지만, 내가 결혼 생각이 없고 앞으로도 안 할 거라는 마음을 굳혔던 20대 초반만 해도 “왜 결혼을 안 하겠다는 거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글쎄, 결혼도 싫고 후손을 보기도 싫은 이유를 하나하나 다 헤아리면 밤하늘의 별처럼 많았으나 그걸 굳이 일일이 설명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설명한다고 존중해 줄 것도 아니지 않은가? 보나마나 “요즘 젊은 것들은 이기적이야”라는 험담이나, “얼마나 불행했으면 자기 씨앗도 남기고 싶지 않을까” 같은 값싼 동정이나 할 거면서.
정상가족만이 정답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은 내게서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할 이유”를 짐작하느라 무례하게 굴었고, 육아의 기쁨과 희열을 이야기하는 어른들은 모두 입을 모아 같은 말들을 늘어놓았다. “아이가 생기면 세상이 달라진다”, “진짜 어른은 아이가 생겼을 때 되는 거다”, “나중에 나이 먹고 병들어 적적할 때 아이마저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 같은 학원에서 배워 오셨나, 어쩜 다들 똑 같은 레퍼토리이신지. 내 주변엔 애 낳고도 무책임하게 살고 있는 어른도, 자식이 일곱 명인데 외로울 때 안부 전화하는 놈 하나 없는 어른도 있었지만, 다들 그런 예는 딱히 들지 않았다.
지청구에 시달리다 못해 웃으며 “아이 낳고 키우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전 제 앞가림도 바빠서,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은 없어요”라고 말하면, 어른들은 내가 살면서 들어본 가장 무책임한 말들로 화답했다. “누가 아빠 엄마가 될 준비를 다 하고 아빠 엄마가 되니? 아이가 태어나면서 배워가는 거지.” 아, 그래서 댁네 자제분이 그처럼 불행해 보이셨구나. “아이는 낳으면 알아서 잘 커.” 애가 무슨 들판에 풀어 키우는 산양도 아니고, 낳아서 방목해두면 알아서 잘 큰다는 건 대체 어디서 나온 발상인가? “얘는, 육아는 엄마가 하지, 아빠가 하니?” 무책임하기는 이 쪽이 일등이다. 그래서 엄마들이 그렇게 온 몸이 다 아프고 힘들고 고단한 거다. 지금 나보고 아저씨처럼 양심 없이 살라 이겁니까? 상대의 인생에 빨대를 꽂아 기생하면서?
새삼스레 내가 들어왔던 말들을 곱씹은 건 tvN <산후조리원> 때문이다. 최혜숙 원장(장혜진)이 운영하는 세레니티 산후조리원은 한국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초호화 산후조리원이라니, 못해도 2주에 1000만원은 훌쩍 넘는 시설일 것이다. 세레니티 밖에선 대기업 최연소 상무로 손꼽히며 승승장구하던 오현진(엄지원)조차도 이 안에선 대단한 사람 축에 끼지 못한다. 그런데, 그 많은 돈을 지불하며 출산으로 지친 몸을 달래려 들어온 세레니티 안에서도 현진은 좀처럼 안식하지 못한다. 산후조리원의 제1목적은 ‘엄마’의 몸을 ‘아이에게 모든 걸 다 줄 수 있도록 최적화된 몸’으로 만드는 것이고, 모유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얼마나 많은 걸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따라 계급이 달라진다. 현진이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은, 적어도 세레니티 안에서는 오지 않는다.
현진의 남편 도윤(윤박)은 진심으로 아내 현진과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그가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현진이 겪어야 하는 고통을 다 덜어줄 수는 없다. 현진을 위해 잡아 둔 산후조리원 세레니티조차도 현진에게 최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레니티는 끊임없이 ‘자연분만’, ‘체계적인 태교 프로그램’, ‘완전 모유수유’, ‘직수’ 등의 가치를 모성애의 증거처럼 들먹이며 현진에게 “너는 부족한 엄마다”라는 메시지를 주입하는 공간이다. 육아 인플루언서로 다양한 육아 정보를 쥐고 세레니티의 왕으로 군림하는 은정(박하선)은 그 모든 모성애의 증거를 다 갖춘 사람이지만, 그런 은정조차도 사실은 행복하지 않다. 그 모든 걸 다 완벽하게 해내는 건 어려운 일이고,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 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세레니티가 별난 공간일까? 글쎄, 그런 것 같진 않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아이는 자기가 알아서 큰다”라는 말을 하는 동시에 여자들에게 모든 걸 희생할 것을 요구하고, 그걸 “아이를 낳고 난 여자는 성스러운 엄마로 변한다” 같은 말들로 치장하면서 다른 선택을 하고자 하는 여자들을 향해 “저출산 시대에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란 말을 서슴지 않는다. 각자 사정되는 대로 키우는 것도 말이 쉽지, 다른 집 애들은 어려서 이것도 배우고 저것도 배우는데, 우리 애만 못해주는 것 같은 마음에 엄마만 죄인이 되는 심경이 되는 걸 ‘다 그런 것’이라며 방관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세레니티는 한국 사회의 어떤 한 단면을 잘라 정교하게 축소해 둔 복제품인지도 모른다.
내 인생에 결혼이나 후손은 없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이 일이 남의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친구들이 하나씩 결혼을 하고,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아이 사진으로 바꿀 때마다 난 그들이 감당해야 할 무게를 생각하곤 한다. 그걸 “위대한 모성의 눈물 겨운 희생” 같은 것으로 포장하면서 여자들만 짐을 떠메는 세상을, 우리 대에서는 바꿔야 하지 않을까? 가도가도 세레니티 울타리 안인 세상이라면, 그건 너무 불행한 것 아닌가.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