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영화음악 감상실에서 곱씹어볼 작품은 이안 감독의 로맨스 <브로크백 마운틴>(2006)이다. 스무 살 즈음 처음 만나 어느새 사랑을 깨닫고, 20년 넘을 시간 동안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한 두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장식한 음악들을 살펴보자.


Brokeback Mountain 1

GUSTAVO SANTAOLALLA

<브로크백 마운틴>의 오리지널 스코어는 구스타보 산타올랄라(Gustavo Santaolalla)가 만들었다. 아르헨티나 태생의 산타올랄라는 1967년 아르헨티나 록 음악의 선구자로 불리는 밴드 아르코 아이리스(Arco Iris)의 기타리스트로 음악계에 발을 디딘 이래 수십 년간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쳤다. 그가 영화음악 작업을 시작한 건 멕시코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아모레스 페로스>(2000)부터. 이냐리투의 <21그램>(2003)과 월터 살레스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2004)를 연달아 만들면서 라틴 아메리카는 물론 금세 전세계 영화 팬들까지 사로잡았다. 기타리스트 출신답게 <브로크백 마운틴> 오리지널 스코어의 중심을 잡는 악기는 기타다. 어쩌면 쓸쓸하게 들릴 정도로 평화로운 기타 선율이 나긋나긋 흐르는 것만으로도 두 주인공 에니스(히스 레저)와 잭(제이크 질렌할)이 동고동락하는 브로크백 마운틴의 풍경이 완성된다. 비단 목가적인 분위기뿐만 아니라, 기타 소리 주변에 오케스트레이션의 변주를 주거나 앰비언트 사운드를 더하는 미니멀한 작법으로 에니스와 잭의 감정을 따라가며 때마다 명암을 조절해낸다. 산타올랄라는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오스카 음악상을 받은 데 이어, 이듬해 <바벨>(2006)로도 또 한번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No One's Gonna Love You Like Me

MARY MCBRIDE

에니스와 잭이 브로크백 마운틴을 내려오고 서로 헤어진 지 1년, 두 남자 모두 각자의 시간을 지난다. 에니스는 결혼한 아내 엘마(미셸 윌리엄스)와 빠듯하게 가정을 꾸려나가고, 잭은 에니스가 오길 기다리며 일자리 센터에 찾아온다. 에니스를 만나기는커녕 일자리 센터 사장에게 지난 여름의 관계를 들켰음을 알게 된 잭은 로데오 경기장에서 '텍사스 최고의 미녀' 루린(앤 헤서웨이)을 만난다. 술집에서 서로 눈을 맞추고 있던 두 사람은, 루린이 먼저 다가오면서 감미로운 음악에 맞춰 몸을 맞대고 춤을 춘다. 컨트리 가수 매리 맥브라이드(Mary McBride)가 부른 'No One's Gonna Love You Like Me'다. 실제로 맥브라이드가 술집에서 노래하는 가수로 출연하고, 잭과 루린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음악에 몸을 맡긴 채 스윗한 시간을 보낸다. 실제로 60년대 미국 시골마을에서 들을 수 있을 법한 'No One's Gonna Love You Like Me'는 사실 구스타보 산타올랄라가 직접 <브로크백 마운틴>을 위해 작곡한 노래다. "아무도 나만큼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라는 가사가 들려오는 가운데, 루린은 잭에게 흠뻑 반한 듯 눈을 떼지 못하지만, 에니스를 잊지 못하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남자에게 접근하는 잭은 루린처럼 상대방을 그리 좋아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A Love That Will Never Grow Old

EMMYLOU HARRIS

잭이 에니스의 집으로 찾아오면서 그들의 만남도 지속된다. 차로 14시간이 걸리는 텍사스와 와이오밍 사이의 어마어마한 거리에도 불구하고 잭은 늘 즐거운 마음으로 그를 찾아온다. 다만 그들의 만남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에니스가 이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로지 밀러의 컨트리곡을 테디 톰슨과 루퍼스 웨인라잇이 커버한 'King of the Road'를 들으면서 신나게 와이오밍으로 달려오지만, 에니스는 그 날이 한 달에 한 번 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날이라며 그를 돌려보낸다. 잭이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와이오밍으로 오는 앵글과 완전히 똑같이 찍혔지만, 그가 느끼는 감정은 완전히 정반대다. 처연하게 눈물을 쏟아낸다. 이때 차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에밀루 해리스(Emmylou Harris)의 'A Love That Will Never Grow Old'다. 앞서 소개한 매리 맥브라이드의 곡과 마찬가지로, 구스타보 산타올라야가 작곡했고 에밀루 해리스가 목소리를 보탰다. 엘튼 존의 단짝 가사 파트너 버니 토핀(Bernie Taupin)이 가사를 쓴 노래는 "절대로 시들지 않을 사랑"을 노래하고, 잭의 마음 역시 그 노랫말과 똑같은데, 어릴 적 아버지가 마을의 동성애자를 죽이고 자신에게 그 시체를 보여준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에니스는 미적미적한 태도로 잭을 울린다.


It's So Easy

LINDA RONSTADT

에니스가 이혼했지만 두 남자의 관계는 점점 더 멀어진다. 부잣집에 장가 간 잭은 루린이 돈만 쫓는다고 투덜대지만, 하루하루 빠듯한 형편을 벗어날 수 없는 에니스는 그런 투정에 면박을 준다. 그렇게 잭과 헤어진 에니스는 술집에서 홀로 앉아 있다가 캐시(린다 카델리니)의 유혹을 받는다. 쥬크박스에서 스티브 얼(Steve Earle)의 'The Devil's Right Hand'를 틀고 에니스에게 다가와서는 춤을 추자고 말하고, 자리에 앉아 린다 론스태드(Linda Ronstadt)의 'It's So Easy'를 들으며 가벼운 대화를 나눈다. 잭과 루린이 처음 만났을 때처럼, 캐시가 적극적으로 에니스에게 호감을 드러내는 것에 비하면 에니스는 그저 밍숭밍숭한 반응만 보인다. 1958년 발표된 로큰롤 트랙을 20년 후 컨트리 가수 린다 론스태드가 커버한 'It's So Easy'는, 1978년 당시 여성 아티스트로는 두 번째로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앨범 <Simple Dreams>에 수록됐다.


D-I-V-O-R-C-E

TAMMY WYNETTE

에니스는 연인이 된 캐시와 함께 그의 딸 앨마(케이트 마라)를 만난다. 오랜만에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에 불쑥 찾아온 캐시 때문에 분위기는 어색하다. 에니스가 쥬크박스를 보는 사이, 캐시는 앨마에게 "아빠가 재혼할 마음이 있는 것 같아?"라고 묻는다. 이때 술집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제목이 아는 이들이라면 곧장 그 대답을 예상할 수 있다. 'D-I-V-O-R-C-E'. 그럭저럭 흥겨운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어색한 분위기는 좀처럼 깨지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앨마는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대답한다. "내가 부족한가보구나"라는 캐시의 말에 곧장 아니라고 말하는 앨마의 반응은 어쩌면 앨마가 아버지가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앨마는 올맨 브라더스(Allman Brothers Band)의 'Melissa'를 틀어놓고 캐시와 함께 춤을 추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He Was a Friend of Mine

WILLIE NELSON

<브로크백 마운틴>의 엔딩 크레딧엔 3개의 음악이 사용됐다. 잭이 간직하던 피 묻은 셔츠를 바라보며 "잭, 맹세할게.."하며 울먹이는 엔딩과 함께 산타올라야의 스코어 'The Wings'가 흐르고, 새카만 화면에 산타올라야의 이름이 올라올 즈음 윌리 넬슨(Willie Nelson)의 'He Was a Friend of Mine'가 이어진다. 한동안 밥 딜런(Bob Dylan)이 데뷔 앨범을 만들 당시에 녹음했던 음원이 여러 부틀렉에 수록되면서 오랫동안 그가 작곡한 노래로 알려졌으나, 실은 작자미상의 민요가 원곡이다. 60년대 초반부터 2020년 현재까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컨트리 뮤지션 윌리 넬슨이 <브로크백 마운틴>을 위해 커버한 곡이다. 분명 영화는 에니스와 잭의 관계를 사랑이라고 보여주고 있지만, 엔딩 크레딧을 채운 노래는 세상을 떠난 그를 두고 '친구'라고 말해서 두 사람의 사랑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온다. 슬픔으로 가득한 곡임에도 단 한 순간도 절제를 잃지 않은 넬슨의 목소리가 관객들이 가만히 엔딩크레딧을 바라보게 만든다.


The Maker Makes

RUFUS WAINWRIGHT

그리고 이어지는 노래, 루퍼스 웨인라잇(Rufus Wainwright)의 'The Maker Makes'. 영화 전반을 채운 컨트리풍의 노래들과 달리, 'The Maker Makes'는 낮은 피아노 소리와 웨인라잇의 목소리가 전부다. "당신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난 사슬을 하나 더 끊지만 신은 내가 끊어버리지 못하도록 사슬을 하나 더 엮지." 마치 세상을 떠난 잭의 마음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노랫말은 일찌감치 게이라고 커밍아웃 한 바 있는 웨인라잇이 가사와 멜로디를 쓰고 노래까지 불러 그 진심이 더 크게 전해진다. 천천히 침잠하듯 같은 자리를 맴도는 듯한 피아노 연주가 서서히 속도를 늦추고 "살아가자, 보잘것없는 것들이여"라고 중얼거리면 관객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흑막을 마주한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