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로 격상됐다. 날씨가 차가워지고 경로를 알 수 없는 소규모 발생이 빈번하게 일어나며 다시 코로나19 확산세가 퍼지고 있는 형국이다. 1주일째 연일 300명대 발병자들이 나오며 3차 유행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으로, 정부는 방역 조취를 강화하고 있다. 그동안 관중 입장이 허용된 각종 이벤트와 공연, 스포츠 경기, 그리고 내수활성화를 위해 지급됐던 할인권들이 모두 중지되며 문화 전반에 다시 암운이 드리워지게 되었다. 이 고난의 시기 기습 티켓 가격을 올리면서까지 헤쳐 나가려 했던 극장가의 풍경도 쉽게 한산함을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블록버스터들과 기대작들은 개봉 일을 뒤로 미루며 관망세를 따지거나 OTT 서비스로 활로를 개척하며 더욱 이번 가을 극장가를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극장에서 새로 개봉되는 영화들은 존재하고, 상영 중인 작품들도 끊임없이 관객들과 교류를 꿈꾼다. 코로나 19의 3차 유행이 도래한 시기에도 굳건히 극장가를 지킬 영화들과 그 음악들을 소개해본다.
엑설런트 어드벤쳐 3
음악 : 마크 아이샴
무려 29년 만에 속편이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이던 8월말 미국에서 극장과 VOD로 동시 개봉해 판데믹 기간 중 공개된 영화 중 5번째로 수익이 많은 작품이 되었다. 시간여행을 통해 위인들을 데려와 역사시험 낙제를 면하고, 지옥에서 저승사자와 내기해 이겨 살아 돌아온 얼빵한 고등학생 둘은 이제 딸을 둔 한물 간 중년의 괴짜 아티스트들이 되었다. 하지만 1989년에 만들어져 깜짝 히트하고, 2년 뒤 속편까지 제작돼 지금은 컬트로 자리 잡은 ‘빌과 테드’의 황당무계한 모험은 한 세대가 흘렀음에도 그 숫자가 무색하게 변함없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원작과 속편의 각본을 쓴 크리스 매디슨과 에드 솔로몬, 그리고 주연을 맡은 키아누 리브스와 알렉스 윈터가 고스란히 합류해 원작의 정신 그대로 노스탤지어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다만 조금 아쉬운 게 있다면 전편들의 음악을 맡았던 데이빗 뉴먼의 능청스러운 선율 대신 3편에선 마크 아이샴으로 음악이 교체된 점이다.
영화음악 거장 알프레드 뉴먼의 장남으로 주로 할리우드 코미디에서 인상적인 결과물들을 낳은 데이빗 뉴먼과 달리 마크 아이샴은 재즈 트럼펫터이자 영화음악가로 ‘코미디를 제외한’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해왔다. 그런 점에서 <엑셀런트 어드벤쳐 3>의 선택이 다소 의아하게 다가오는데, 그가 들려주는 스코어 또한 뉴먼의 전작들에 비해 진지하고 (지구 멸망까지 80분만 남겨둔 상태라) 사뭇 어둡기까지 하다. 게다가 스코어 외에 빌과 테드의 밴드 ‘와일드 스탤리언스’가 연주하는 소스 음악과 삽입된 다양한 락·메탈 음악들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까지 아이샴에겐 비교적 생소한 작업이었을 듯 싶다. 하지만 더 재밌게 하기 위해 웃긴 음악을 배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비현실적인 캐릭터들이 갖는 진실된 감정을 표출하는데 집중한 아이샴의 세련된 사운드는 어른이 된 빌과 테드의 성장한 모습을 보이는데 성공한다. 더욱이 위저를 비롯해 피들라, 콜드 워 키즈, 마스토돈, 램 오브 갓 등이 참여한 사운드트랙은 올해 63회 그래미 컴필레이션 사운드트랙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프리키 데스데이
음악 : 베어 맥크레리
<프리키 데스데이>는 <파라노멀 액티비티> 시리즈의 각본가이자 <해피 데스데이> 시리즈로 깜짝 성공을 거뒀던 크리스토퍼 랜던이 호러 영화의 명가 블룸하우스와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이다. 제목에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듯 과거 디즈니에서 4차례나 제작돼 인기를 끌었던 <프리키 프라이데이>의 아이디어를 차용해왔다. 다만 어머니와 딸의 영혼이 교체되는 것 대신, 연쇄 살인범과 존재감 1도 없는 여고생의 영혼이 바꿔 소동이 벌어진다는 게 키포인트. 자신의 몸이 살인범으로 몰리기 전에 막아야 하는 동시에, 다시 몸도 되찾아야 하는 미션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서스펜스와 코미디가 어우러져 전작인 <해피 데스데이> 시리즈처럼 장르 비틀기의 묘미를 선사한다. 마땅한 신작 경쟁작들이 거의 없는 할리우드에서 지난주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해피 데스데이> 시리즈의 음악을 맡았던 베어 맥크레리가 다시 한 번 랜던 감독과 호흡을 맞추며 호러와 SF, 스릴러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재기발랄한 솜씨를 뽐낸다.
기본적으로 “<13일의 금요일>이 <프리키 프라이데이>를 만났다”는 로그라인에 걸맞게 베어 맥크레리는 슬래셔 호러 스코어와 감동적인 자아 찾기의 틴에이지 드라마 음악을 절묘하게 섞어 모두 구사하고 있다. <해피 데스데이> 시리즈에서 박진감 넘치는 긴장과 기묘한 보이스 효과들로 장르적 매력을 펼쳐 보인 그답게 이번 작품에서도 신경줄을 자극하듯 점층적으로 질주하는 스트링과 소름 끼치는 관악기, 서늘한 피아노, 격동적인 퍼쿠션, 영혼 체인지를 암시하는 주술적인 코러스, 상상하지도 못한 왜곡된 이펙터들이 결합하며 크리스토러 랜던이 블룸하우스에서 만들어낸 뒤틀린 컨벤션으로 신선함을 안기는 이 영화만의 고유한 색채를 부여하고 있다. 정통적인 서스펜스와 슬래셔 스코어로도 손색이 없고, 많지는 않지만 중간 중간 청춘물의 인장을 심어주는 따스한 테마들이 영화의 완급을 조율하며 최근 할리우드에서 노련한 장르 조율사로 자리매김한 그의 솜씨를 인증한다.
마틴 에덴
음악 : 마르코 메시나 & 사샤 리치
잭 런던의 자전적인 원작 소설을 20세기 중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옮긴 <마틴 에덴>은 작년 이탈리아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77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호아킨 피닉스를 제치고 남우주연상을 받은 루카 마리넬리의 열연은 물론, 이탈리아 박스오피스에서도 선전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았다. 다큐멘터리로 시작해 극영화로 옮겨온 피에트로 마르첼로는 봉준호가 ‘사이트 앤 사운드’에서 언급했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루키노 비스콘티나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등을 떠올릴 법한 현대적인 고전을 완성시켰다. 사랑을 통해 예술과 계급 문제를 직접적으로 거론하고, 기록 필름 푸티지와 16mm, 35mm를 다양하게 활용하며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읽어내는 독특한 스타일은 강렬하면서도 황홀한 경험을 선사한다. 여기에 클래식과 일렉트릭 사운드를 적절히 녹여낸 감각적인 음악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마르첼로 감독과 데뷔작부터 함께 한 마르코 메시나와 사샤 리치의 솜씨다.
감독처럼 나폴리에서 태어난 마르코 메시나는 DJ로 경력을 쌓기 시작해 1991년 좌익 강경 힙합그룹 99포세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고, 그룹이 해체된 2000년대 이후 솔로 작업을 하며 피에트로 마르첼로와 의기투합해 그의 작품들 전편에서 음악을 맡았다. 샘플러와 더브 마스터로 활동한 경력답게 감성적인 일렉트릭 사운드를 창출하는데 탁월한 솜씨를 지닌 그는 키보드를 담당하는 사샤 리치와 함께 짧지만 서정적이며 여운 있는 소리들을 조율해냈다. 20세기 중반의 나폴리를 거친 입자로 담아낸 필름 룩과 아카이빙 영상들이 조화를 이루며 스타일리쉬한 방점을 찍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 건 전통적인 오케스럴 사운드 대신 바로 이들의 묘한 노스탤지어를 자아내는 공감각적이고 트렌디한 신디 톤 음색 덕분이다. 여기에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이자 클래식 작곡가인 파울로 마조치가 작곡한 아름다운 전주곡과 아리아가 바흐의 곡과 함께 쓰이며, 조 다상의 샹송 ‘살루트’(Salut)와 다니엘 페이스의 칸초네 ‘다니엘레 파체’(Daniele Pace) 등 대중적인 팝들과 대조를 이루며 명확한 계급과 신분 차를 드러내는 역할을 해냈다.
마리 퀴리
음악 : 에브구에니 갈페리네 & 사샤 갈페리네
국내에 ‘방사성’이란 제목으로 번역된 바 있는 로런 레드니스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마리 퀴리>는 일반적인 전기물과 조금 궤를 달리한다. 퀴리 부인으로 알려진 마리 퀴리의 삶을 조율하는 한편, 그녀가 발견한 물질인 ‘방사성’에 대해 동등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파격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들과 역사적 사료, 다양한 인터뷰들을 통해 입체적으로 방사성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원작처럼 워킹 타이틀에서 제작한 본 영화 역시 주체적이고 집념에 가득 찬 과학자의 일면과 핵에너지의 본질에 대해 포괄적으로 스케치하고 있다. 이란 출신으로 본인 역시 <페르세폴리스>라는 그래픽 노블을 그린 만화가이자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는 마르잔 사트라피가 연출한 이 영화는 로자먼드 파이크와 샘 라일리, 안야 테일러 조이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합류해 독특한 시너지를 안긴다. 그리고 방사성처럼 형형색색 변화해가며 양면성을 드러내는 에브구에니와 사샤 갈레리네 형제가 담당한 미니멀한 음악도 퍽 인상적이다.
러시아 태생으로 6살 터울의 갈레리네 형제는 2000년대 초반부터 프랑스와 유럽 전반에 걸쳐 활동하던 형 에브구에니를 따라 동생 사샤가 합류하며 공동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나 <미라클 벨리에>, <신의 은총으로>, <문신을 한 신부님> 등 감정적 파고를 심하게 남기는 드라마에서 유독 진한 존재감을 뽐냈다. 특히나 고요하면서도 서늘한 분위기 속 폐부를 마구 찔러대는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러브리스>로 30회 유럽영화제 음악상을 수상하는 등 호평을 받아왔다. <마리 퀴리>에서도 이런 미니멀한 접근법은 계속되는데, 반복적이고 계단적인 사운드로 방사성의 의미를 부각시키고,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발전을 형상화한 동시에, 마리 퀴리의 일생까지도 투영시켜 마치 비선형적인 플롯에서 에피소들을 한데 엮어주던 필립 글래스의 <마시마>나 <쿤둔>을 연상케 하는 부분도 느껴진다. 서정적으로 일렁이는 소리의 편린들은 방사성만큼이나 치명적이고 결정적이다.
사운드트랙스 영화음악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