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이틀 남겨두고, 난 수능을 본 적이 없었던 장그래를 다시 생각한다
“힘드네요.” 회사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후배 A가 한탄하며 말했다. 합리성을 중요시하고 반골 기질이 다분한 A는 회사에 들어가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면접관이 충성심을 떠보는 질문을 던질 때마다, 속에서 욱 하고 올라오는 심기를 다 숨기지 못한 탓에 면접에서 미끄러지곤 했다. 그런 A를 채용한 회사의 간부는, A를 따로 불러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네가 학벌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자기 주관이 있는 게 마음에 들어서 위험을 무릅쓰고 도박한다는 마음으로 뽑은 거라고.
A가 인턴을 거쳐 정규직이 된 이후, 그의 ‘자기 주관’은 종종 문제가 되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자기 주관’과는 무관한 학벌을 들먹였다고 한다. 쟤가 학벌이 뭐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고 어쩌고 저쩌고…. 그런데 그런 일을 겪은 후배가 A 하나가 아니다. 한 연구기관에서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후배 B는 처음 몇 년간 ‘좋지 않은 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해야 했다. 모 회사 간부는 ‘뜻 있는 청년들을 응원하고 싶다’며 자기가 마련한 술자리에서 후배 C에게 “네 학벌로는 우리 회사 못 들어온다”며 “너 고등학생 때 공부 안 해서 지금 그 학교 다니는 거 아니냐”는 폭언을 일삼았단다.
나는 후배들의 이런 고충을 들을 때마다 함께 분노해줄 뿐, 달리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얼떨결에 전업 칼럼니스트가 되었고, 일에 매진하다가 대학 졸업장 없이 사회로 나왔다. 다행히 내게 일을 제안했던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이력서를 요구하거나 출신 학교, 학점 평균, 자격증 보유 여부 따위를 묻지 않았다. 그랬기에 난 후배들이 그런 처우를 받고 있는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 학교도 나름 서울 소재 4년제 대학교인데, 들어가려면 이 악물고 치열하게 공부해야 했던 학교인데. 후배들이 이런 취급을 당하려고 어른들 말을 고분고분 들으며 공부를 한 게 아닐 텐데. 나는 내가 겪지 못한 고통을 겪고 있는 후배들을 보며, 해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매번 무력감을 느꼈다.
윤태호 작가의 동명 원작을 영상화 한 tvN 드라마 <미생>에서, 어린 날을 전부 헐어 바둑에 매진했으나 입단에 실패한 청년 장그래(임시완)는 그를 딱하게 여긴 후원자의 주선으로 대기업 원 인터내셔널에 입사한다. 그러나 ‘검정고시 고졸 학력으로 들어온 낙하산’을 곱게 보는 사람은 없다. 선임들에게는 일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가르쳐서 ‘사람’을 만들어야 하냐는 걱정과 한숨을, 같이 입사한 동기들에게는 ‘우리가 기울인 노력과 우리가 겪은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공정한 경쟁을 거치지 않은 낙하산’이라는 분노를 산다. 실제로 투입했을 때 일을 얼마나 잘 하는지로 평가받는 게 아니라, 그간 그가 거쳐온 이력과 간판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어느 어느 대학을 나왔으니 공부머리는 있겠고 그러니 일머리도 있겠지. 어디에서 인턴쉽을 했으니 그만큼 경쟁력이 있겠지…. 사람들은 뚜껑도 열어보기 전에 장그래의 포장만 보고 그를 깎아내린다.
드라마가 방영된 직후 한국사회는 ‘2년 계약직 청년 장그래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자신이 오상식(이성민)이라고 착각하는 수많은 중년들은, 자신의 젊은 날을 장그래의 그것과 비교하며 ‘나 때는 말이지…’라고 웅얼거렸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당장 서울 소재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조차 ‘학벌이 안 좋다’고 취업 시장에서 불이익을 겪거나 입사 뒤에도 음으로 양으로 무시를 당하는 마당에, 지방 소재 대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얼마나 무시당할 것이며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든 사람들은 뭘 더 얼마나 굴욕을 당해야 할 것인가? <미생>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으면 뭐 하나. 사람의 간판만 보고 평가하는 습성은 버리지 않았는데. 눈 앞에 장그래가 있어도 못 알아보고 무시할 텐데.
칼럼니스트가 된 이후 매년 수능이 끼어 있는 주간이면 그래도 글 속에 희망 찬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애썼다. 지금 당장은 앞날이 막막해 보여도 견디다 보면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 노력이 보답 받을 기회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니 포기하지 말라는 이야기 같은 걸 글 안에 빼곡하게 담으며, 단 한 명이라도 이 글로 위로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온 세상이 잿빛이었던 고3과 고통스러웠던 수능을 나도 경험했으니까, 그 마음이 뭔지 아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나는 사회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입할 게 아니라, 그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고 어른들을 향해 외쳤어야 했던 게 아닐까. 어느 대학 출신인지와 무관하게, 아니, 대학 진학 여부와 무관하게, 모두가 존엄을 보장받는 세상을 하루라도 더 빨리 만들자고 했어야 했던 게 아닐까. 수능을 이틀 남겨두고, 난 수능을 본 적이 없었던 장그래를 다시 생각한다. 모르면 가르쳐 줄 수 있지 않냐며 기회를 요청하던 그의 빨간 볼을 생각한다. 장그래를 보며 저마다의 감흥에 취했었던 우리에겐, 그도 웃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