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자유를 넘어서 거의 초능력 수준의 가치로 자리 잡은" 물질만능주의의 폐해를 그리고 싶었다는 봉준영 감독의 제작 의도처럼 영화를 보는 내내 돈의 무서움이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신인 배우, 사회 초년생으로서 영화의 메시지가 더욱 가슴 깊이 느껴졌을 것 같은데. 돈이 주는 공포를 경험한 적이 있나.
돈은 항상 무서운 것 같다. (웃음) 지금도 무섭고... 제가 20대 초반에 연기할 때 대사 한 마디 있는 단역을 정말 많이 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작품에 출연을 했는데, 연기를 시작할 때는 '연기가 좋아서' 시작을 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선 촬영을 나가지 않으면 '월세를 낼 돈이 없어서' 나가게 되더라. 그때부터는 나 자신이 돈을 벌기 위해 연기를 하는 게 느껴졌다. 그런 상태로 꽤 오래 연기를 했는데, 어느 순간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돈은 정말 필요한 거지만, 돈 때문에 제 삶의 중심이 흔들리는 걸 느끼고 나선 돈이라는 게... 정말 인간한테 무서운 도구라는 걸 느낀 것 같다.
소속사도 없는 상태에서 연기해서 밥벌이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것 같다. 그 결심이 후회되거나,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나.
사실 (결심이) 안 흔들렸다고 하면 거짓말인 것 같고, 계속해서 흔들렸던 것 같다. 지금도 흔들리고 있는 중일 수도 있고. 그래도 그때마다 버틸 수 있는 건 회사도 없이 혼자 촬영장을 다녔던 20대 초, 중반 시절의 기억 덕분이다. 그런 (열정 넘쳤던) 세월들이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돼 주었다. 연기를 시작하고 나서 아르바이트를 쉰 적이 없는데, 지금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안 하고 있다. (웃음)
1년 전까지만 해도 아르바이트를 2개나 병행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때 이후로 지금 회사를 만났고, 여러 작품들에 들어가게 돼서 처음으로 몇 개월 정도 아르바이트를 안 하게 됐다. 그래서 좋은데, 지금도 돈은 무섭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또 내 손에서 없어질 수 있는 거니까.
복권 1등 당첨의 어마어마한 공포(?)를 그리고 있는 영화인데, 이런 질문 해도 될지 모르겠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복권에 당첨되는 상상을 많이 하진 않았나. 당첨되면 뭘 하고 싶나.
너무 많이 한다. 진짜 자주 한다. (웃음) 당첨되면 요즘 시대엔 정말 뭔가 큰 걸 사야 할 것 같다. 사회를 알다 보니 현실적으로 투자를 하지 않을까? (웃음)
계속해서 배우 생활을 이어온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럴 때마다 가장 힘이 돼주는 존재가 있었나.
요즘엔 가족인 것 같다. 제가 단역을 많이 하고 그럴 땐 가족한테 일 이야기를 잘 안 했었다. 제 기준으로, 그리고 사회적인 기준으로도 제 역할이 굉장히 작은 역할이고, 남들한테 자랑할만한 게 아닌데 (부모님은 그 역할만으로도) 굉장히 좋아해 주셨다. 너무 좋아해 주시는데, 그 느낌이 저한텐 좀 힘들었다. 사실 뚜껑을 열어 보면 정말 작은 역할, TV로 보면 잠깐 지나가는 역할이니까. 그랬던 때가 있었는데 요즘엔 조금씩 비중 있는 역할들을 맡게 돼서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는 편이다. 오늘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도 제 연기 인생에서 처음이라 (웃음)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