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고>, 드라마 <파고> 시즌 1 포스터

드라마 <파고> 시즌 2, <파고> 시즌 3 포스터

누구나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원한다. 한순간의 우발적인 분노, 실수, 방심으로 인해 빛 하나 들지 않는 구렁텅이에 빠진 이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들은 제 삶의 숨통을 트기 위해, 현재 닥친 불행으로 미래를 구기지 않기 위해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고 은밀한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침착하게 대처하려 할수록 일이 꼬이고, 빠져나오려 애쓸수록 더 깊은 늪에 빠져든다. 영화 <파고>, 그리고 올해까지 네 개의 시즌이 공개된 드라마 <파고>는 연쇄된 욕망으로 인해 비극의 수렁에서 허우적대는 소시민들의 이야기다.

※ 영화 <파고>, 드라마 <파고> 시즌 1~3는 웨이브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1987년, 미네소타

영화 <파고>, 1996

이것은 실화다. 1987년 미네소타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생존자들의 요청으로 이름은 바꾸었으나 희생자를 존중해 그 나머지 부분들은 있는 그대로 영화화했다.

This is a true story. The events depicted took place in Minnesota in 1987. At the request of the survivors, the names have been changed. Out of respect for the dead, the rest has been told exactly as it occurred.

영화 <파고>

1987년 미국 노스다코타주 파고에 거주 중인 자동차 세일즈맨 제리(윌리암 H. 머시). 빚에 쪼들린 그는 장인의 돈을 노리고 칼(스티브 부세미)과 게어(피터 스토메어)에게 아내의 납치를 의뢰한다. 몸값으로 빚을 갚으려던 그의 계획이 틀어진 건 납치범들이 속도위반으로 검문을 받으면서부터다. 범죄가 들통날 위기에 처하자 경찰을 죽인 칼과 게어는 살인 현장을 목격한 무고한 사람들마저 쫓아가 죽이고 만다. 한편, 연쇄 살인 사건을 맡은 경찰 서장 마지(프란시스 맥도맨드)는 단서를 추적하며 용의자의 범위를 좁혀나간다.

영화 <파고>

코엔 형제 정상에 오르다, 1996년 최고의 영화 <파고>

돈 때문에 아내의 유괴를 청부한 끔찍한 사건을 서늘한 블랙 코미디로 승화시킨 <파고>는 1996년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은 영화다. 탄탄한 짜임새가 돋보이는 각본, 강렬한 미장센까지 어느 하나 놓치지 않은 코엔 형제가 이 작품을 통해 영화계 최정상 자리에 올랐음은 물론이다. 조엘 코엔 감독은 <파고>로 제49회 칸국제영화제 작품상 후보에 올랐고, 감독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작품상 포함, 7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조엘 코엔의 아내이자 <파고> 속 사건의 엉킨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마지를 연기한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그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이 모든 판을 설계한 코엔 형제가 나란히 무대에 올라 각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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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미네소타

드라마 <파고> 시즌 1, 2014

좋은 영화는 드라마 제작자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받기 마련이다.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파고>는 영화 개봉 이듬해인 1997년 파일럿 에피소드 형식의 TV 드라마로 제작됐으나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파고> 시즌 1

그로부터 17년이 흐른 2014년, <파고>를 다시 브라운관에 불러들인 이가 있었으니 바로 프로듀서이자 각본가, 연출자인 노아 홀리. 그의 각본에 감명을 맡은 코엔 형제가 제작자로 참여하며 믿음을 더한 <파고> 시즌 1은 방영 직후 해외 평단으로부터 ‘올해의 드라마’라는 극찬을 받게 된다.

<파고> 시즌 1

이것은 실화다. 2006년 미네소타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생존자들의 요청으로 이름은 바꾸었으나 희생자를 존중해 그 나머지 부분들은 있는 그대로 영화화했다.

This is a true story. The events depicted took place in Minnesota in 2006. At the request of the survivors, the names have been changed. Out of respect for the dead, the rest has been told exactly as it occurred.

드라마의 오프닝에 따르면 2006년의 미네소타에도 1987년의 미네소타에서 벌어진 사건과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미네소타주 베미지의 보험 회사의 영업 사원으로 일하는 레스터(마틴 프리먼)는 집안에서도 무시당하고, 사회에서도 무시당하는 소심한 남자다. 우연히 만난 론(빌리 밥 솔튼)에게 ‘자신을 괴롭혔던 샘(케빈 오그레이디)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내비친 그. 얼마 지나지 않아 샘이 시체로 발견되고, 끔찍한 소망을 바로 실행에 옮긴 론에게 영향을 받은 레스터는 우발적으로 아내를 살해하고 만다. 연쇄 살인 사건으로 발칵 뒤집힌 베미지. 경찰 몰리 솔버슨(앨리슨 톨먼)과 거스 그림리(콜린 행크스)는 론과 레스터로부터 범죄의 냄새를 맡고 이들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파고> 시즌 1

평단, 관객의 극찬 받은 드라마 <파고> 시즌 1

98분의 이야기를 10시간 분량으로 늘리되, 코엔 형제가 영화에 흩뿌려놓은 건조하고 엉뚱한 유머 감각은 그대로 유지한 <파고> 시즌 1은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영화 <파고>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볼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하면서 안정적으로 세계관을 넓히고, 저만의 독특함도 놓치지 않았다는 평을 받은 <파고>의 작품성은 그해 수상 실적이 증명했다. <파고>는 2014년 에미상의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고, 미니시리즈 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이어 이듬해 열린 제7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선 드라마 부문 작품상, 빌리 밥 솔튼이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을 품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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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미네소타

드라마 <파고> 시즌 2, 2015

시즌 1이 성공적인 반응을 얻자 제작진은 앤솔로지 형식의 시즌제를 기획하고 시즌 2 제작에 시동을 걸었다. <파고> 시즌 2는 시계를 거꾸로 돌려 1979년의 미네소타로 돌아간다.

<파고> 시즌 2

이것은 실화다. 1979년 미네소타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생존자들의 요청으로 이름은 바꾸었으나 희생자를 존중해 그 나머지 부분들은 있는 그대로 영화화했다.

This is a true story. The events depicted took place in Minnesota in 2006. At the request of the survivors, the names have been changed. Out of respect for the dead, the rest has been told exactly as it occurred.

라이 게르하르트(키에라 컬킨)는 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레스토랑에서 무려 세 명의 목숨을 앗는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다. 정신없이 레스토랑 밖으로 도망치려는 찰나, 그를 뺑소니로 친 이가 있었으니 미용사 페기(커스틴 던스트). 그녀는 성실한 남편 에디(제시 플레먼스)와 함께 이 사고를 덮으려 고군분투한다. 한편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는 미네소타주의 경찰 루 솔버슨(패트릭 윌슨)이 의문의 살인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파고> 시즌 2

전편보다 나은 속편, 로튼 토마토 지수 100%

결론적으로 <파고> 시즌 2는 <파고> 시즌 1의 성공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며 ‘전편보다 훌륭한 속편’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전편보다 복잡하게 얽힌 인물 관계, 보다 더 선명하게 충돌하는 선과 악의 팽팽한 대립을 통해 서사의 탄탄함, 짜릿한 긴장감을 더한 <파고> 시즌 2는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100%를 기록했다. 어느 누구도 이 작품에 실망하지 않았단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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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미네소타

드라마 <파고> 시즌 3, 2017

시즌 2까지 만족스러운 평가를 받은 <파고>는 이제 전 세계 마니아들이 기대하는 드라마가 됐다. 2017년 방영된 시즌 3엔 1인 2역을 연기한 이완 맥그리거를 비롯해 할리우드의 대스타들이 캐스팅되며 역대 최고의 출연진을 꾸렸다.

<파고> 시즌 3

미네소타주의 세인트클라우드 경찰서에서 근무 중인 레이(이완 맥그리거)는 그가 담당 중인 가석방자 니키(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와 연인 사이다. 더 나은 삶을 원한 이 커플은 레이의 부유한 형, 에밋(이완 맥그리거)에게 있는 레이 몫의 유산인 값비싼 우표를 훔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도둑질을 부탁한 머레인(레이 와이즈)의 엉뚱한 실수로 경찰서장 글로리아(캐리 쿤)의 아버지가 죽는 사고가 발생한다. 레이와 니키는 자신들의 비밀을 알게 된 머레인을 살해하고, 글로리아는 본격적으로 사건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한편 에밋은 어두운 돈을 만지는 V.M. 바가(데이빗 듈리스)에게 얽혀 의도치 않게 그에게 휘둘린다.

<파고> 시즌 3

떡밥의 수준이 높아진 시즌 3

시즌 1과 시즌 2를 거친 시청자들의 눈치만큼 작품도 노련해졌다. 차근차근 떡밥을 쌓이는 떡밥을 의식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 저만의 특색을 살림과 동시에 시리즈가 그간 유지해왔던 날카로운 위트, 섬뜩한 감성을 유지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전편으로부터 전통처럼 이어받아던 오프닝 문구 역시 동일하다.

이것은 실화다. 1979년 미네소타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생존자들의 요청으로 이름은 바꾸었으나 희생자를 존중해 그 나머지 부분들은 있는 그대로 영화화했다.

This is a true story. The events depicted took place in Minnesota in 2006. At the request of the survivors, the names have been changed. Out of respect for the dead, the rest has been told exactly as it occurred.

<파고> 시즌 3

이쯤 되면 모두가 알았을 것. 많은 이들이 실화라는 오프닝 문구에 깜빡 속았겠지만, 사실 <파고>의 세계관 속 미네소타주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사건들은 모두 실화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엔 형제, 그리고 드라마의 수장 노아 홀리가 매번 ‘실화’라는 멘트를 단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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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실화다”

<파고> 시리즈, 몰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

영화가 다루는 실화들은 때로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관객은 보다 더 객관적이고 흥미로운 눈으로 작품을 감상하기 마련이다. <파고> 역시 마찬가지지만,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선 이런 문구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픽션입니다. 묘사된 인물들과 사건들은 모두 허구입니다. 어떤 사람과의 연관성도 없음을 밝힙니다.

대부분의 관객은 이 문구를 놓쳤다. 많은 이들이 <파고>의 이야기가 실화라고 생각했다. 돈을 위해 가족을 유괴범들에게 넘기고, 시신을 끔찍하게 처리한 이 이야기에 설득력이 부여될 수 있었던 건 사건의 시작에 선 제리가 우리의 옆집에서라도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파고> 시즌 1

<파고> 시즌 2

의도치 않게 악에 물든 이들이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섬세히 짚어나가는 것, <파고> 시리즈의 공식이다. ‘자신의 선택이 옳다’는 그릇된 믿음은 이들의 시야를 가려버린다. 제 일상을 지키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고, 그를 덮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평범한 소시민이 악인의 경계선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은 흥미를 돋우기 충분하다. 선과 악, 죄책감과 자기 합리화, 희망과 비극, 잔인무도함과 코미디, 극과 극에 선 것들을 균형 있게 조합해 주인공들의 미래를 두고 밀당을 벌이며 롤러코스터처럼 치닫는 <파고>의 대본은 ‘실화’라는 키워드와 만나 우리 삶의 철학적, 도덕적 기준을 재정립한다. 에피소드마다 푹 빠져 몰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빈틈없는 훌륭함

미장센, 캐릭터, 이스터에그…

<파고> 시즌 1

<파고>가 시즌마다 최고의 드라마로 손꼽힐 수 있었던 건 비단 스토리 덕분만이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평평한 설원의 풍경에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심어낸 매혹적인 미장센 역시 보는 재미를 더한다. 스크린 속 인상 깊은 여성 캐릭터로 한 획을 그었다 평가되는 영화 <파고> 속 마지, 그녀의 계보를 이을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시즌마다 눈부신 활약을 펼친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무엇보다 코엔 형제의 팬이라면 놓쳐선 안 될 작품일 것. 시즌마다 영화 <파고>를 떠올릴 수 있는 장면들이 흩어져있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위대한 레보스키> 등 코엔 형제 대표작들의 반가운 흔적 역시 확인할 수 있다.


할리우드 명배우 총출동

(왼쪽부터) 마틴 프리먼, 빌리 밥 솔튼

<파고> 시리즈가 지닌 가장 큰 힘, 바로 배우들의 얼굴이다. <파고> 시리즈는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의 명연기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볼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다. <파고> 시즌 1에서 영화 속 제리를 본 딴 캐릭터 레스터 역을 통해 선량한 시민이 교활하고 뻔뻔하게 과정을 섬세히 묘사한 마틴 프리먼은 <셜록> <호빗>을 이어 본인의 대표작을 재생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를 각성시킨 빌런, 론을 연기한 빌리 밥 솔튼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시거(하비에르 바르뎀)에 맞먹는 악역 연기를 펼쳤다는 평을 받았다.

(왼쪽부터) 커스틴 던스트, 제시 플레먼스

패트릭 윌슨

<파고> 시즌 2에서 가장 돋보이는 얼굴은 단연 불안정한 멘탈의 페기를 연기한 커스틴 던스트다. 커스틴 던스트는 <멜랑콜리아> 이후 최고의 연기를 펼쳤다는 평을 쏟아졌다. 한국 관객에겐 <컨저링> 시리즈로 유명할 패트릭 윌슨 역시 반가운 얼굴일 것. 페기의 남편을 연기한 제시 플레먼스 역시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아이리시맨> 등 최근 할리우드의 핫한 작품에 꾸준히 눈도장을 찍고 있는 배우다.

1인 2역, (왼쪽부터) 에밋, 레이를 연기한 이완 맥그리거

(왼쪽부터) 캐리 쿤,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데이빗 듈리

<파고> 시즌 3는 1인 2역을 펼친 이완 맥그리거를 중심으로 <버즈 오브 프레이>의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해리 포터> 시리즈의 데이빗 듈리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마이클 스털버그, 오랜 기간 연극 무대 위에서 활동해왔던 캐리 쿤 등 쟁쟁한 배우들이 나와 벌이는 연기 대결을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비주얼만으로도 시청자들을 놀라게 만들 이완 맥그리거의 파격적인 변신을 놓치지 말자. <파고> 시즌 3는 오직 웨이브에서만 감상 가능하다.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