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우리 모두가 아주 조금씩, 오지랖을 발휘해 세상이 순리대로 돌아가도록 나설 수 있다면 어떨까? 우리가 사는 세계도 조금은 균형을 찾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위겐(문숙)의 안내로 저승과 이승 사이의 공간 ‘융’을 둘러보던 소문(조병규)은, 융의 풍경을 보고 어안이 벙벙하다. 소문의 무의식을 반영한 융의 광경은 평화롭게 파도가 밀려드는 조용한 해변이다. ‘융인’인 위겐 또한 이승을 살다가 죽어 융으로 온 사람으론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신기해한다. 이승과 크게 다르지 않은 융의 광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소문에게 위겐은 웃으며 말한다. “여기서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아. 선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고. 다만 선한 사람은 보상을 받고 악한 자는 반드시 응당의 대가를 치러야 된다는 차이 정도?” 소문은 조심스레 대꾸한다. “엄청난 차이잖아요.”
장이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 삼은 OC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에서, 주인공 소년 소문이 겪어야 했던 난관은 지긋지긋하다. 경찰이었던 부모는 7년 전 의문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그 사고로 두 달 가까이 코마 상태로 누워 있다가 일어난 소문은 실어증과 공황장애, 보행장애를 얻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하나하나 극복했지만, 그렇다고 그게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사랑으로 자신을 키우던 외할머니(이주실)는 작년부터 치매가 와서 자신을 향해 “내 딸 죽인 개 잡놈”이라고 외치기 시작했고, 학교의 일진들은 자신과 절친 웅민(김은수)을 콕 집어 괴롭히기 일쑤다.
그런 소문에게 ‘선한 사람은 보상을 받고 악한 자는 반드시 응당의 대가를 치러야 된다’는 건 결코 작은 차이가 아니다. 소문이 발을 딛고 사는 이승에선 소문의 부모를 치고 간 음주운전 화물차 기사도, 자신과 웅민을 괴롭히는 일진들도 제대로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 소문을 사랑으로 키워준 외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소문과 함께 외할머니의 치매 수발을 드는 외할아버지(윤준상)도 보상을 받지 못했다. 그저 고통을 웃으며 참아내는 능력만 늘어날 뿐인데, 그런 게 보상이라고 하면 너무 아프지 않나. 위겐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 융의 법칙은, 이승을 사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염원하지만 끝내 도착하지는 못하는 ‘순리’다.
하지만 융과 계약을 맺고 이승으로 도망 나온 악귀를 잡는 ‘카운터’로 일하며, 소문도 천천히 알게 될 것이다. 위겐이 말한 그 차이가 가능한 건, 위겐과 같은 융인들이 융에서의 생명을 걸고 카운터들과 함께 활약하기 때문인 것임을. 자신과 같은 카운터들이 온 몸이 부숴져라 싸워가며 이승에서 열심히 악귀를 잡아 융으로 돌려보내면서도 누구에게도 생색 한 번 못 내고 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임을. 우리가 사는 세계가 그렇듯, 〈경이로운 소문〉 속 세계 또한 그 어떤 것도 당연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상 일이 조금이나마 순리대로 돌아갈 수 있는 건, 그 순리를 지키기 위해 발버둥치며 매일매일 싸우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 매일매일의 싸움은, 어쩌면 순리를 지키기 위한 카운터들의 ‘오지랖’에서 시작되는 건지도 모른다. 제 몸 하나 생각했으면 그냥 못 본 척 넘어가도 됐을 학교 일진들의 횡포를 기어이 저지한 소문처럼, 소문의 새 동료들도 모두 하나 같이 오지랖이 넓다. 소문에게 친한 척 굴지 말라며 세상 싸늘하게 굴던 도하나(김세정)는, 일진들을 때려 눕힌 소문이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을 걱정해 그의 편을 들어주려 경찰서로 달려간다. 인간 세상의 일에 함부로 관여하면 안 된다며 소문을 말리기 바쁘던 가모탁(유준상)은 자신의 과거가 소문의 부모와 얽혀 있는 것 같다는 단서를 손에 쥐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건 자료를 찾기 위해 7년 간 찾지 않았던 옛 직장인 경찰서로 달려간다.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고 소문에게 경고했던 추매옥(염혜란)은, 소문이 첫 견습을 나갔던 날 자신들의 지시를 어기고 멋대로 움직인 것을 보고도 다그치는 대신 “네가 이 아이를 살렸다”며 소문을 감쌌다. 죄다, 아닌 척하지만 사실은 자기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될 일에 발 벗고 나서 고생을 사서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 괜한 오지랖을, 옛 사람들이라면 아마 어질 인(仁) 자로 기록했으리라.
화려한 액션과 컴퓨터그래픽으로 중무장한 판타지이지만, 〈경이로운 소문〉의 진짜 핵심은 그게 아닐까?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카운터처럼 괴력을 지니고 세상의 균형을 맞추는 수호자들도 없고, 우리도 소문이나 가모탁처럼 괴력을 지닌 이들이 아니다. 도하나처럼 누군가에게 손을 대는 것만으로 기억을 읽어내는 능력도 없고, 추매옥처럼 사람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아주 조금씩, 오지랖을 발휘해 세상이 순리대로 돌아가도록 나설 수 있다면 어떨까? 우리가 사는 세계도 조금은 균형을 찾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모든 게 순리대로 돌아가는 것만 같아 보이는 융의 권선징악조차, 이승의 카운터들과 융의 융인들이 함께 힘을 합쳐 활약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 어떤 것도 노력 없이 당연하게 바뀌는 일은 없으며, 변화는 모두의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우리 모두가 소문의 마음 한 자락씩 나눠 닮아 본다면, 언젠가는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땅에서도 그 까마득한 순리가 마침내 이뤄질지 모른다. 선한 사람은 보상을 받고, 악한 자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는.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