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빗>(위), <반지의 제왕>

원작 소설가 J. R. R. 톨킨이 만들어 놓은 중간계 이야기, <반지의 제왕>. 2000년대를 살았다면, 혹여 영화의 내용을 모르더라도 골룸의 “My Precious”를 들어보지 않았을 이가 있을까. 시대를 풍미했다는 말을 붙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판타지 영화의 고전. 그리고 그의 프리퀄 <호빗>. <호빗: 다섯 군대 전투>의 마지막 장면이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의 첫 장면과 겹쳐지며, ‘뜻밖의 여정’이 ‘반지 원정’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벅차오르기도 했을 테다. 이번 주, <호빗> 시리즈가 왓챠에 들어왔다. 영화를 다시 보기에 앞서 <호빗> 3부작에 관한 소소한 사실을 몇 꺼내어 중간계를 추억해보자.


다니엘 래드클리프(위), 에디 레드메인

1해리 포터가 호빗 될 뻔?

우리가 알고 있듯 <호빗> 시리즈의 주인공 빌보는 마틴 프리먼이 연기했다. 피터 잭슨 감독에게 그는 캐스팅 1순위 배우였다. 감독은 마틴 프리먼이 미국 TV 시리즈 <오피스>의 영국판에 출연한 것을 보고 그의 팬이 되었고, 프리먼을 만나자마자 그가 빌보 역을 위해 태어난 것만 같다 생각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2순위가 없던 것은 아니다. 캐스팅 확정 전 많은 배우가 후보로 언급되었다. <호빗> 시리즈는 당초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연출할 예정이었는데. 당시 다니엘 래드클리프와 제임스 맥어보이가 유력 후보로 거론됐다. 11년간 해리 포터로 살아온 다니엘 래드클리프는, 또 다른 판타지 영화 <호빗>에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출연을 고사하며 맥어보이를 추천했는데. <반지의 제왕>의 주역, 프로도를 연기한 일라이저 우드도 맥어보이를 추천했다고 한다. 맥어보이 역시 제의를 거절했다. 이후 샤이아 라보프, 토비 맥과이어, 에디 레드메인도 빌보 역에 고려되었다.


기예르모 델 토로(위), 피터 잭슨

2기예르모 델 토로의 <호빗> 2부작?

앞서 이야기했듯 <호빗>은 기예르모 델 토로가 감독하기로 되어 있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감독한 피터 잭슨은 각본가로 참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제작사가 파산하는 등 크고 작은 문제로 프리 프로덕션 기간만 18개월이 넘게 지속되고 촬영 일정이 불투명해지자 델 토로는 끝내 하차했다. 당시 잭슨은 <모털 엔진> 제작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새 감독을 섭외하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판단에 스스로 프로젝트를 끝내기로 했다. (<모털 엔진>은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 <호빗: 다섯 군대 전투> 개봉 4년 후인 2018년 공개됐다.) 이로써 잭슨은 중간계 6부작 모두를 감독하게 되었고, 델 토로는 각본에 이름을 올렸다. 잭슨에게 주어진 프리 프로덕션 기간은 단 6개월이었다. 지난 18개월간 이미 제작비 지출이 많았기 때문. 원래 델 토로는 J. R. R. 톨킨의 한 권짜리 소설 『호빗』을 한 편의 영화로 만들 계획이었다. 2부작으로 계획이 바뀌었으나, 잭슨이 투입된 후 3부작으로 한 번 더 확장되었다.


3이안 맥켈런, 촬영 중 눈물 보여

호빗 빌보와, 두린 군주의 손자 소린(리처드 아미티지)을 필두로 한 13명의 드워프. 이들 에베보르 원정대가 제 갈 길 가도록 수호하는 마법사 간달프(이안 맥켈런). 스크린 속에서는 마냥 단단해 보이는 그인데, 사실 간달프를 연기한 이안 맥켈런은 촬영 초기 특수 촬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간달프는 인간, 요정보다 키가 한참 작은 호빗, 드워프와 한 장면에 등장해야 했기에 특수 촬영이 필요했다. 같은 장면을 키가 작은 캐릭터 버전과 그렇지 않은 캐릭터 버전, 두 가지 버전으로 찍어 합성하는 식이었다. 맥켈런은 상대 배역도 없이 홀로 촬영하는 장면이 많아 힘들어했다. <호빗: 뜻밖의 여정>에서 원정대가 처음 한자리에 모인 장면을 촬영할 때였다. 맥켈런은 그린스크린으로 둘러싸인 아무도 없는 방에서 몇 시간을 혼자 연기하다가 급기야 눈물을 보였다. 오죽했으면 그의 닮은꼴로도 유명한 존 허트를 대신 고용할 것을 요청할까 고민했다고. 마이크가 꺼져있는 줄 알고 그가 “이러려고 배우가 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 현장에 있던 모든 캐스트와 스태프에게 전해져 안타까움을 샀었다.


4용 연기 위해 동물원 답사

<호빗> 시리즈에는 고블린, 오크, 트롤, 골룸 등 많은 크리처가 등장한다. 잠시나마 크리처 장인 델 토로가 감독으로 등판했었으니 알 만도 하다. 그중에 제일은 영화의 타이틀(<호빗: 스마우그의 폐허>)에도 이름을 올린 용, 스마우그일 것이다. <셜록>의 셜록(베네딕트 컴버배치)과 왓슨(마틴 프리먼)이 적이 되어 다시 만났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모션 캡쳐로 스마우그를 연기했다. 그는 용을 어떻게 연기할지 공부하기 위해 한동안 런던 동물원을 직접 답사했다. 이구아나와 코모도왕도마뱀의 움직임과 습관을 관찰했다고. 스마우그가 용이기에 얼굴과 팔을 비롯한 상체를 제외한 나머지 부위는 모션 캡쳐가 불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컴버배치는 실제 용처럼 바닥을 기며 온몸으로 연기했다. 스마우그의 목소리 역시 그가 연기했는데. 목 뒷구멍을 긁는 소리, 쉰 소리, 마른 소리. 컴버배치는 이 묘사를 한데 섞은 듯한 목소리 톤을 구현하려 했다. 그의 압도적 퍼포먼스는 개봉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상적인 목소리 연기에 대해 말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호빗>(위), <반지의 제왕>

5장수 엘프 레골라스, 현실은 인간

<반지의 제왕> 3부작과 <호빗> 3부작은 각각 3년에 걸쳐 개봉했지만, 촬영은 동시에 진행됐다. <반지의 제왕>을 2000년에, <호빗>을 2011년에 촬영했다.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가 원정을 떠난 시기를 현재라고 했을 때, <호빗> 속 빌보(마틴 프리먼)의 여정은 그로부터 60년 전의 사건이다. 배우들은 두 시리즈 사이 11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는데, 영화 속에서는 60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 것. 올랜도 블룸의 레골라스가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에 처음 등장했을 때 어딘가 어색했다면, 그것은 레골라스 외모의 역행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톨킨 세계관에서 수천 년을 살며 좀처럼 늙지 않는 엘프인데, 과거에 더 나이든 모습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에 회의를 품은 블룸은 <호빗> 복귀를 고사하려 했으나, 잭슨 감독이 그를 설득했다. 잭슨은 두 트릴로지 속 레골라스 외모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그의 눈가에 빛을 더하는 등 CG를 이용했다. 프로도, 일라이저 우드도 CG를 피할 수 없었다. <호빗> 첫 장면과 <반지의 제왕> 첫 장면은 같은 날을 담는다. 프로도가 절대반지 파괴를 위해 떠나는 그 날을. 영화가 같은 사건을 담을지 모르겠으나, 일라이저 우드는 더이상 19세가 아니었다. 잭슨은 CG로 우드의 주름과 잡티를 지워주었다.


6<반지의 제왕>이 생각나는 장면들

<호빗> 속에는 전작이 연상되는 장면이 수도 없이 많다. 그중 일부만 짚어보자. <호빗: 뜻밖의 여정> 고블린 골짜기에서 골룸을 만난 빌보, 그의 검 ‘스팅'을 골룸에게 겨누자 골룸은 뒤로 물러선다. 60년이 흘러 빌보의 조카 프로도도 골룸을 마주하는데, 프로도는 삼촌에게서 받은 ‘스팅’을 또 한 번 골룸에 겨누며 말한다, “이 검, 전에도 본 적 있지?” 골룸에게서 벗어난 빌보는,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 포니 여관에서 프로도가 손가락으로 반지를 잡았던 그 방식으로 절대 반지를 처음 낀다.


7개근왕, 갈라드리엘과 간달프

2003년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낸 캐릭터들이 2012년 <호빗: 뜻밖의 여정>으로 돌아왔다. 그들을 다시 마주하던 때의 반가움이란. 혹시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에서 해리 포터를 만나게 된다면 딱 이 기분이겠다. 그런데 사실 프로도, 레골라스, 사루만(크리스토퍼 리), 갈라드리엘(케이트 블란쳇)은 호빗 원작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았다. 반지의 제왕에만 나온다. <반지의 제왕> 팬에게 바치는 헌사인 것인지. 책 한 권을 러닝타임이 3시간에 달하는 영화 세 편으로 늘이게 되면서, 보다 풍성한 서사를 위해 사이사이 에피소드를 채우려던 것인지. 어떤 이유가 됐든 잭슨이 그들을 영화에 추가한 것이다. 덕분에 갈라드리엘은 간달프와 함께 여섯 작품에 모두 출연한 단 두 명의 캐릭터가 되었다. <반지의 제왕>이 그랬던 것처럼 <호빗>도 3부작을 한 번에 촬영해 프로덕션 기간이 아주 길었는데. 케이트 블란쳇은 화면에 짧게 등장했기에, 266일의 <호빗> 촬영 기간 중 그가 촬영장에서 지낸 시간은 8일뿐이었다.


루크 에반스, 리 페이스(위), 앤디 서키스

8밤샘 대기하는 팬 직접 깨운 배우

2014년, <호빗>의 주역들이 영화 홍보를 위해 샌디에고 코믹콘을 찾았다. 몇몇 팬들은 패널로 나오는 배우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전날 밤부터 진치고 밤샘 대기를 하곤 하는데. 동이 트기도 전인 이른 아침, 레골라스의 아버지이자 어둠숲의 주인 스란두일을 연기한 리 페이스와 골룸 역의 앤디 서키스가 행사장에 나타났다. 두 배우는 직접 나서 팬들을 깨우며 아침을 알렸고, 팬들에게 사인해주거나 함께 사진을 찍으며 몇 시간을 그들과 보냈다. 지친 페이스는 팬이 마련해둔 매트리스에 뻗어 누워 쉬기도 했다고.



씨네플레이 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