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코스트너의 감독/주연의 영화 <늑대와 춤을>(1990)이 30년 만에 재개봉해 한국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1991년 최고 흥행을 기록할 만큼 당시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다.


* <늑대와 춤을>의 원작자이자 각본가인 마이클 블레이크는 애초부터 이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쓰려고 했다. 전작 <환상 커플>(1983)을 함께 한 케빈 코스트너와 프로듀서 짐 윌슨은 소설로 먼저 써보면 어떻겠냐고 설득했다. 시나리오보다는 소설로 더 잘 팔릴 이야기고, 그게 더 영화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소설은 서른 군데가 넘는 회사로부터 거절당한 끝에 소규모 출판사인 ‘포셋’에서 출간됐다.

* <늑대와 춤을>의 프로듀서이기도 했던 케빈 코스트너는 영화화가 결정되고 세 명의 감독(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에게 시나리오를 보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누군가는 지나치게 길다 했고, 다른 이는 도입부의 남북전쟁 파트를 빼길 원했다. 결국 자기가 직접 감독을 맡기로 마음먹었다.

* 케빈 코스트너는 <늑대와 춤을>을 작업하기 위해 <허영의 불꽃>(1990), <딕 트레이시>(1990), <붉은 10월>(1990), <의혹>(1990) 등의 캐스팅을 고사했다.

* 대사의 25%가 영어가 아니다. 배우들은 수우족이 쓰는 라코타어를 배워야 했다. 그레이엄 그린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난 말하지 않겠어”라고 반응했다. 케빈 코스트너는 라코타어를 익히지 않은 이들은 해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 두 의사가 부상당한 주인공 존 던바(케빈 코스트너)를 살피는 영화 첫 장면, 병상에 누워 있는 존은 사실 케빈 코스트너의 대역이다. 오른쪽의 의사가 바로 코스트너였다. 왼쪽은 <늑대와 춤을>의 프로듀서 짐 윌슨, 목소리는 다른 배우가 더빙한 것이다.

* 존 던바가 자살을 불사하고 적진을 향해 달리는 영화 초반의 신, 두 팔을 벌린 채 말을 타는 건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제스처라 스턴트 감독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 케빈 코스트너는 물소 사냥 신에서 안장 없이 말을 타거나 고삐를 붙들지 않고 총을 쏘는 걸 대역 없이 소화했다.

* 원작소설에서 원주민은 코만치족이지만, 영화 속 원주민은 수우족으로 설정됐다. 물소 떼를 발견한 다코타 남부에서 가장 세력이 큰 종족이 수우족이기 때문이다.

* ‘머리에 부는 바람’의 긴 머리카락은 배우 로드니 A. 그랜트의 것이다. 그는 영화 속에서 가발을 쓰지 않았다.

* 존 던바가 강물에서 끄집어내는 죽은 사슴은 모형이 아니다. 척 봐도 무거워 보여야 했기에, 고속도로에서 죽은 사슴의 사체를 구해서 사용했다.

* 존 던바의 친구인 늑대 ‘양말 두 개’는 배우 마이클 케인이 키우던 늑대 벅과 테디 두 마리가 연기했다. 둘은 구분하기 위해 한 마리만 하얀색 양말을 신겼다. 촬영을 마친 후에는 캘리포니아의 동물 보호소 ‘워킹 와일드라이프’에 맡겨졌다.

* 길들여진 물소들 가운데 두 마리는 뮤지션 닐 영에게서 빌려왔다.

* 영화 속에서 ‘새 걷어차기’는 ‘주먹 쥐고 일어서’의 양아버지다. 하지만 실제로 ‘주먹 쥐고 일어서’ 배우 메리 맥도넬은 ‘새 걷어차기’ 배우 그레이엄 그린보다 생일이 두 달 빠르다.

* 테네시 전투 시퀀스의 배경은 무조건 가을이어야 해서 4만 리터에 달하는 노랑 페인트를 옥수수밭과 나뭇잎에 칠해 가을의 색감을 만들었다.

* 촬영감독 딘 세믈러의 딸이 영화의 말지기를 맡았다. 그가 타고 있던 말이 갑자기 겁을 먹고 그를 내동댕이쳐서 양팔에 골절상을 입었다.

* ‘주먹 쥐고 일어서’가 어린 시절을 꿈꿀 때 그의 아역을 케빈 코스트너의 딸 애니 코스트너가 연기했다. 케빈은 애니에게 도망칠 때 오른쪽으로 돌아보라고 지시했는데, 아직 6살이었던 애니는 왼쪽과 오른쪽을 구분하지 못해 양쪽을 번갈아 돌아봤다.

* 물소가 ‘많이 웃다’에게 돌진해오는 신, 사실 물소는 오레오 쿠키 더미를 보고 달려왔다.

* 물소 사냥을 비롯한 여러 시퀀스가 50년대에 다코타 남부의 부지사를 지냈던 로이 하우크가 소유한 5만5천 에이커의 땅에서 촬영됐다. 그는 촬영 계획을 짜는 데에도 중요한 조언을 해줬다.

* 헬리콥터 1대, 픽업 트럭 10대, 원주민 라이더 24명, 엑스트라 150명, 말지기 20명, 물소 모형 25개, 카메라 7개가 동원돼 8일 동안 물소 사냥 신을 찍었다.

* 케빈 코스트너의 틱 프로덕션은 물소 사냥 신을 찍을 때 혹시라도 물소를 해할 것에 대비해 25만 달러를 들여 모형 물소를 제작했다.

* 물소 사냥을 마치고 ‘머리에 부는 바람’이 존 던바에게 주는 물소의 간은 ‘Jell-O’ 젤리 크랜베리맛으로 만든 것이다.

* 살갗이 벗겨진 물소들의 사체가 널브러져 있는 신은 종이로 만든 모형이 사용됐다. 하지만 그게 너무 리얼한 나머지 촬영장을 지나던 행인이 신고하는 바람에 무장 경찰들이 나타나 잠시 촬영이 중단됐다.

* ‘주먹 쥐고 일어서’ 역의 배우 매리 맥도넬은 케빈 코스트너와 정사신을 찍을 때 아주 긴장했고, 결국 맥도넬의 요청으로 수위를 조절했다.

* ‘새 걷어차기’를 연기한 배우 그레이엄 그린은 이듬해 <레드 그린 쇼>에 출연했다. 그가 연기한 캐릭터 에드가는 한 에피소드에서 <늑대와 춤을>을 언급하며 원주민 남자 배우가 오스카상을 받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 한곳에 모아놓은 물소들은 촬영이 시작하면 제각각 흩어져 10마일 바깥까지 가버려서 다시 모으는 데에만 꼬박 한나절이 걸려 물소들이 모여 있는 신은 하루에 한 번밖에 찍지 못했다.

* 음악감독 존 베리는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작업을 수락했다. 후반작업 중 그는 영화의 마지막 신에 감동 받은 나머지 스코어를 지휘하던 중 눈물을 터트렸다.

* 예산이 오버되면서 제작이 진행되는 걸 보고 몇몇 영화 관계자들은 <늑대와 춤을>이 ‘케빈의 문’이 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를 표했다.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들여 완전히 망해버린 웨스턴 <천국의 문>(1980)에 빗댄 말이다. 다행히 <늑대와 춤을>은 대성공을 거뒀지만, 1995년 당시 역대 최고의 제작비를 들였지만 실패를 기록한 <워터월드>(1995)가 그 오명을 가져가게 됐다.

* 업계에서 워낙 서부극을 꺼리고 예산도 빠듯해서, 케빈 코스트너가 자비 1800만 달러를 보탰다. 결국 영화 수익이 1억 달러를 훌쩍 넘기게 돼서 코스트너는 투자금을 4000만 달러로 돌려받을 수 있었다.

* 사실 가장 나중에 찍은 초반부의 남북전쟁 시퀀스를 제외하고, 영화는 서사 순서대로 촬영이 진행됐다. 촬영 분량이 대부분 야외 촬영이라 날씨 변화를 담아내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촬영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대부분의 영화는 내러티브 순으로 찍지 않는다.

* 고증을 위해 배우들에게 수우족이 쓰는 라코타어를 가르칠 언어강사까지 동원됐지만, 워낙 언어가 까다로운 탓에 남성형/여성형 구분은 굳이 구분하지 않은 채 수업이 진행됐다. 라코타어 원어민은 완성된 작품을 보면서 라코타 전사들이 여자처럼 말하고 있다며 재미있어했다.

* <늑대와 춤을>의 첫 편집본은 무려 5시간 30분에 달했다. 제작사는 그에 반도 못 미치는 2시간 20분으로 줄이긴 원했지만, 결국 3시간 분량으로 완성됐다. 나중에 55분이 추가된 ‘감독판’ 버전이 공개됐지만, 정작 감독인 케빈 코스트너는 그 버전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 6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12개 부분 후보에 올라,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총 7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던 케빈 코스트너는 제작자와 감독 자격으로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 한국에서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고 일주일 후인 1991년 3월 31일에 개봉돼, 서울 관객 98만 명을 동원하고 1991년 최고 흥행작에 등극했다.

* 제작비의 19배에 해당하는 4억242만 달러를 벌어들였지만, 한 번도 미국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지 못했다. 딱 1주간 (<나홀로 집에>에 밀려) 2위를 차지했던 게 최고 순위. 그 대신 근 6개월간 박스오피스 10위권 내에 머무르며 꾸준한 사랑을 받아 결과적으로 대박을 기록했다.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지 못하고 가장 큰 수익을 거둔 영화’의 왕좌를 11년 동안 지키다가 <나의 그리스식 웨딩>(2002)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 90년대 초반, 웨스턴 영화 최고 흥행작에 등극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웨스턴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가 그 기록을 깼다.

* 영화의 어마어마한 성공과 원주민에 대한 호의적인 대우 덕분에, 케빈 코스트너는 수우족으로부터 명예 민족 자격을 얻었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