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엔틴 타란티노

작은 비디오 가게 점원에서 할리우드 거장 감독이 된 지독한 영화광, 삶 자체가 곧 영화인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한결같은 취향과 독보적인 개성으로 할리우드의 고정된 규칙들을 뒤바꿔 놓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역사와 훌륭함을 구구절절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테지만, 하나 분명한 건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다 '재미가 있다'는 것. 영화를 업으로 삼는 이들부터 관객석에서 영화를 즐기는 이들까지. 모두에게 씹고, 뜯고, 맛보고 싶은 지점들을 선사한 그의 작품들은 여전히 '레전드'로 손꼽히고 있다. 좋은 시대. 방구석 1열에서 그의 영화들을 즐길 수 있는 기회는 어쩐지 큰 기쁨으로 다가온다. 지금, 왓챠에서 바로 만나볼 수 있는 쿠에틴 '형님'의 작품 5편을 소개한다.


<저수지의 개들>(1992)

Reservoir Dogs

쿠엔틴 타란티노 세계관의 서막을 연 작품이 바로 <저수지의 개들>이다. 데뷔작부터 그는 남들이 좋아하는 걸 하기보단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걸 고집했다. <저수지의 개들>. 영화에 관심 없는 이들이라도 제목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작품이지만 거대한 서사나 훌륭한 미장센이 펼쳐지는 '그럴듯한' 작품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보석상을 강탈하기 위해 모인 갱들이 경찰 끄나풀을 찾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는 이야기. 그다지 특별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가닥에서 출발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단조로운 서사를 뛰어넘은 쿠엔틴 타란티노는 제 장기라 할 수 있는 '깜빡이 없는' 잔인함과 묘하게 빨려드는 시시콜콜한 대사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비선형적인 구조, 적재적소에 쓰인 음악들을 완벽하게 버무려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하는 오락 영화를 탄생시켰다. 여전히 <저수지의 개들>이 가장 '쿠엔틴 타란티노스러운' 작품으로 손꼽히는 이유다.

검은 선글라스와 검은 양복을 입고 한껏 폼나게 걸어가는 여섯 남자의 모습은 <저수지의 개들>의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다. 그다음 장면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미 <저수지의 개들>을 본 이들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충격적이고 놀랍고 참신하다. 계속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의외성을 경험하고, 순수하게 오락 영화를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저수지의 개들>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작품이다.


<펄프픽션>(1994)

Pulp Fiction

<저수지의 개들>을 통해 쿠엔틴 타란티노라는 '사람'을 엿볼 수 있었다면, <펄프픽션>은 '창작자' 쿠엔틴 타란티노의 천재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개성과 특성이 잘 정돈된, '타란티노 월드' 내 만듦새가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수작이다. <펄프픽션> 제목은 다들 잘 알고 있다시피 "질 떨어지는 종이에 찍어 만든 싸구로 잡지 소설"이란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미 쿠엔틴 타란티노는 제목을 통해 영화에 대한 힌트를 준 것이나 다름없는데, <펄프픽션>은 싸구려 잡지에 실릴만한 짧은 에피소드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어낸 작품이다.

강도짓을 저지르는 커플(팀 로스, 아만다 플러머), 건달 콤비(존 트라볼타, 사무엘 L. 잭슨), 건달 보스의 애인(우마 서먼), 승부 조작을 하는 권투 선수(브루스 윌리스). 접점이라곤 없어 보이는 이들의 연결점을 꿰매고 쪼갠 쿠엔틴 타란티노는, 이들에게 발생하는 여러 사건들을 뒤죽박죽 배치해 2시간짜리 영화를 만들어냈다. <펄프픽션>의 가장 큰 매력 역시 바로 이런 점으로부터 기인한다. 대체 이 사건이 현재에서 일어난 일인지, 과거에서 일어난 일인지, 캐릭터들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빈틈없이 흥미진진하다는 것. 천생 이야기꾼인 쿠엔틴 타란티노의 천재성을 목격할 수 있는 작품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존 트라볼타와 우마 서먼의 댄스 장면 외에도 <펄프픽션>은 그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아카데미시상식' 각본상 수상이라는 진기록을 남겼고, 개봉 2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대 고전 명작으로 남아있다. 영화 팬이라면 꼭 봐야 하는 '필람작'이라 할 수 있겠다.


<재키 브라운>(1997)

Jackie Brown

<저수지의 개들> <펄프픽션> 그리고 곧 소개할 <킬빌>과 <헤이트풀 8>에 비해 <재키 브라운>은 쿠엔틴 타란티노 작품을 언급할 때 다소 적은 비중으로 다뤄지는 작품이다. 크레딧에 적힌 쿠엔틴 타란티노의 이름을 발견하지 못한 이들이라면 그의 작품이란 걸 모를 만큼 쿠엔틴 타란티노만의 인장이 비교적 흐릿하다. <재키 브라운>은 범죄 소설의 대가 엘모어 레너드의 소설 <럼 펀치>를 원작으로 한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만들어낸 세계가 아니라는 점을 주목할만한데, 그래서인지 그는 <저수지의 개들>과 <펄프픽션>에서 보여줬던 비선형적인 구조가 아닌 시간의 흐름을 따르는 서사 방식을 택한다. '무기 밀매상 오델(사무엘 L. 잭슨)의 검은돈을 밀반입하는 승무원 재키(팸 그리어)가 경찰에 덜미를 잡히게 되며, 오델과 경찰 사이에서 재키가 두뇌 싸움을 한다'는 이야기를 쿠엔틴스럽지않게(!) 친절하게 풀어간다.

가장 쿠엔틴스럽지 않은 이 작품을 굳이 굳이 소개하는 이유는? 역시 '재미있기' 때문이다. <재키 브라운>은 많은 이들이 인정하는 잘 만든 범죄 영화다. 그럼에도 쿠엔틴 타란티노만의 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늘 적게 주목을 받아왔다. <펄프픽션>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그가 차기작에서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자신을 한 발 뒤로 숨겼다는 건 뭘 의미하는 걸까. 바로 이야기 자체에 주목하고 싶었다는 말과도 같다. 재키의 이야기 그 자체가 너무 재밌었던 쿠엔틴 타란티노는 온전히 원작을 살리고 싶었다고 한다. 반전의 반전, 속고 속이는 이야기, 철두철미한 긴장감, 캐릭터들의 미묘한 감정선을 알차게 담아낸 쿠엔틴 타란티노. <재키 브라운>은 그의 또 다른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재키 브라운>을 사랑하는 영화 팬들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 중 단연 <재키 브라운>을 상위권에 랭크 시키곤 한다.


<킬빌>(2003)

Kill Bill

노란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일본도를 휘두르던 우마 서먼의 모습은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모두가 알 만큼 <킬빌>은 쿠엔틴 월드 내 가장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다. 긴 러닝 타임으로 인해 1부와 2부가 나뉘어 개봉했을 만큼 장황한 호흡을 가진 작품이지만, <킬빌>은 결국 더 브라이드, 우마 서먼이 펼치는 차디찬 복수에 대한 이야기다. 암살 조직의 유망주였던 블랙맘바(우마 서먼)가 배 속에 아기를 임신한 채로 총상을 입는다. 블랙맘바는 무려 5년 동안 코마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녀를 살해하려 했던 이들은 바로 조직원 동료들과 보스. 블랙맘바는 간신히 깨어나 자신과 아이를 죽인 이들에게 잔혹한 복수를 시작한다.

이야기 구조는 다소 단순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킬빌>의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고민이 될 만큼 <킬빌>은 이야깃거리가 많은 영화다. 수많은 영화들을 향한 오마주, 액션 영화로서의 완성도, 디테일하게 묘사된 아시아 문화, 우마 서먼의 훌륭한 연기 등 <킬빌>을 수식할 말들은 넘쳐나다 못해 줄줄 흐를 정도. 그럼에도 <킬빌>을 봐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를 꼽는다면, 단연 우마 서먼이 여러 상대들과 펼치는 통쾌한 액션의 맛을 이야기하겠다. 1부와 2부를 걸쳐 펼쳐지는 우마 서먼의 다양한 액션 권법(!)은 마치 오락 영화란 무언가에 대한 답처럼 느껴질 만큼 영화적 재미로 가득 차 있다. 검술부터 쿵후, 철퇴, 맨손 액션까지. 아시아인이라면 반가울 액션들을 완벽하게 엮어낸 <킬빌>은 응당한 복수가 가진 짜릿한 쾌감을 고스란히 전한다. 특히나 <킬빌> 1부에서 펼쳐지는 길고 긴 청엽정 액션 시퀀스는 오락 영화, 액션 영화를 즐기는 이들이라면 빠져들어 볼 수밖에 없는 희대의 명장면.


<헤이트풀8>(2015)

The Hateful Eight

<저수지의 개들> <펄프픽션> <재키 브라운> <킬빌> 그리고 <그라인드하우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 이어 쿠엔틴 타란티노는 자신의 8번째 장편 연출작으로 <헤이트풀8>을 세상에 내놓았다. <헤이트풀8>은 제작 전부터 홍역을 앓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쓴 각본 초안이 세상에 유출되어 버린 것. 힘이 빠져버린 쿠엔틴 타란티노는 <헤이트풀8>을 영화로 제작하지 않겠다고까지 선언했지만, 관계자들이 그를 뜯어말려 겨우겨우<헤이트풀8>이 그의 8번째 장편 영화 연출작이 될 수 있었다. 힘겹게 빛을 본 <헤이트풀8>은 떠들썩했던 유출 사건이 무색하리만큼 언론과 평단, 팬들의 입맛을 고루 만족시키며 이야기꾼으로서의 쿠엔틴 타란티노의 천재성은 물론, 그의 독보적인 연출력을 다시금 입증했다.

<헤이트풀8>은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 이은 그의 두 번째 서부극이다. 사실 서부극의 옷을 입고 있긴 하지만 <헤이트풀8>은 미스테리, 서스펜스 장르다. 잡화점이라는 한정적인 공간, 그 속에서 8명의 사람들이 내비치는 각기 다른 속내와 독살 사건이 얽히고 얽혀 중요한 순간 관객의 허를 찌른다. 마차와 오두막, 오로지 두 공간 안에서 여러 인물들이 주고받는 엄청난 양의 대화와 수다, 예측하기 어려운 순간에 벌어지는 잔인한 총성이 한데 어우러져 쿠엔틴 타란티노만의 능숙한 오락 영화가 탄생한 것.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상의 영예를 안은 <헤이트풀 8>은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이 곳곳에 삽입된 작품이기도 하다. 굵직한 배우들의 연기, 서스펜스가 가득 담긴 음악, 보는 사람마저 아픈 핏빛 총질이 어우러진 <헤이트풀8> 역시 지금 바로 왓챠에서 감상할 수 있다.


씨네플레이 유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