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를 소재로 한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이 꾸준히 많은 사랑을 얻고 있는 가운데, 우리 시대의 가장 유명한 재즈 영화 <라라랜드>를 음악을 중심으로 곱씹어본다.


Another Day of Sun

JUSTIN HURWITZ

<라라랜드>은 오프닝부터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꽉 막힌 LA 고속도로를 보여주다가 스윽 'Another Day of Sun'이 끼어들면서 고속도로의 사람들이 다같이 모여 춤추고 노래하는 판타지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뮤지컬 영화이자 재즈 영화라는 걸 선언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작품의 음악은,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오랜 친구 저스틴 허위츠가 만들었다. 하버드대 재학 시절부터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 두 사람은 셔젤의 첫 영화 <공원 벤치의 가이와 매들라인>(2009)부터 출세작 <위플래쉬>(2013)를 거쳐 <라라랜드>(2016)와 그다음 작품 <퍼스트 맨>(2018)까지 연출/음악 파트너십을 보여줬다. 데뷔작부터 줄곧 재즈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어온 셔젤과 허위츠는 학부 4학년 시절부터 <라라랜드>를 기획했다가 예산 문제로 보류했다가 <위플래쉬>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다시 프로젝트를 재개했다. 문을 여는 'Another Day of Sun'과 더불어 <라라랜드>의 거의 모든 오리지널 스코어는 저스틴 허위츠가 멜로디를, 작사가 콤비 벤지 파섹(Benj Pasek)과 저스틴 폴(Justin Paul)이 노랫말을 썼다. 셔젤과 허위츠처럼 학부 시절부터 작업해온 파섹과 폴은 영화음악 작업을 시작한 2016년에 발표된 <라라랜드>의 성공에 힘입어 <위대한 쇼맨>(2017), <알라딘>(2019) 등 뮤지컬 영화에 가사로 참여했다.


Japanese Folk Song

THELONIOUS MONK

'Another Day of Sun'의 난리통이 끝나고 난 뒤, 카메라는 차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는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을 비춘다. 카세트를 앞으로 돌려 특정 구간을 반복해서 듣고 있다. 그리고 누나가 느닷없이 찾아와 잔소리를 한바탕 늘어놓고 간 후, 세바스찬은 바이닐로 차에서 반복해서 듣고 있던 그 피아노곡을 틀어놓고 그걸 따라 연주한다. 불세출의 피아니스트 셀로니어스 몽크의 'Japanese Folk Song'이다. 몽크가 1967년에 발표한 여섯 번째 앨범 <Straight, No Chaser>에 수록(영화에서 아주 잠시 비추는 바이닐 역시 이 앨범이다)된 이 곡은, 20세기 초 일본에서 발매돼 훗날 음악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큰 인기를 끈 타키 렌타로의 재즈 넘버 '황성의 달'(荒城の月)을 몽크가 자기 식대로 재해석한 것이다. 본래는 10분이 훌쩍 넘는 대곡인데, <라라랜드>에서는 세바스찬이 연습하는 도입부만 짤막하게 쓰였다.


I Ran (So Far Away)

A FLOCK OF SEAGULLS

재즈와 아무 상관 없는 곡도 쓰였다. 미아와 세바스찬이 재즈 클럽에서 달갑지 않게 스쳐지난 후 '봄' 파트가 시작될 때다. 햇볕이 따사롭게 내려오는 평화로운 파티에서 노르웨이의 신스팝 밴드 아하의 'Take on Me'가 울려 퍼지고 있다. 원곡을 틀어놓은 건 아니라, 아마도 파티를 위해 급조된 밴드가 연주하고 있다. 음악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밴드에서 건반을 연주하고 있는 세바스찬을 발견한 미아는 밴드 앞으로 다가가 멀뚱히 그를 바라본다. 보컬이 "신청곡 있나요?"라고 묻자 미아는 대뜸 'I Ran'을 신청한다. 밴드 이름을 말하지 않더라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노래. 재즈에 죽고 사는 세바스찬은 아마도 생계를 위해 밴드 연주로 뛰고 있는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어거지로 연주하고 있던 와중에 또다시 신스팝을 연주해야 한다니, 'I Ran'을 신청한 미아를 보는 세바스찬의 눈엔 당황과 원망이 가득해 보인다. 그 노래가 좋답시고 밴드보다 더 오두방정을 떨면서 음악을 즐기고 있는 미아를 쳐다보는 세바스찬의 표정이 그야말로 가관. 영국 뉴웨이브 밴드 플락 오브 시걸스의 데뷔 앨범에 수록된 'I Ran'은 비록 자국에선 별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호주의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하고 미국과 뉴질랜드에서 높은 차트 성적을 거두면서 80년대의 대표적인 명곡으로 자리 잡았다.


Main Title

LEONARD ROSENMAN

<셸부르의 우산>, <로슈로프의 숙녀들> 등 고전 뮤지컬 영화에 영향을 받았지만, 정작 <라라랜드>가 직접적으로 존경을 바치는 영화는 따로 있다. 바로 제임스 딘 주연의 <이유 없는 반항>(1955)이다. 미아가 아직 <이유 없는 반항>을 못 봤다는 걸 안 세바스찬은 그 영화를 리알토 극장에서 트니 같이 보러가자 약속하지만, 남자친구와의 약속이 겹치는 바람에 세바스찬을 바람맞힌다. 식사 자리에서 어정쩡한 시간을 보내던 미아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대로 리알토 극장으로 달려간다. 이미 어두워진 극장에서 세바스찬을 찾기 위해 스크린 앞에 선 미아, 그녀의 얼굴 위로 자막이 떠다니는 것 보니 그렇게 늦지는 않은 모양이다. 극장으로 달려오던 미아를 비출 때 흐르던 허위츠의 'Mia & Sebasitan's Theme'는 극장 안으로 신이 바뀌자 마치 한 영화의 음악인 양 자연스럽게 <이유 없는 반항>의 메인 테마로 모습을 바꾼다. <이유 없는 반항>의 음악을 만든 이는 레너드 로젠만이다. 제임스 딘과 함께 생활하며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줬던 로젠만은 딘이 그를 엘리아 카잔에게 소개해 <에덴의 동쪽>(1955)의 음악감독을 맡게 되면서 영화음악 작업을 시작했고, 같은 해에 딘의 또 다른 대표작 <이유 없는 반항>의 음악까지 만들면서 널리 이름을 알렸다.


Start a Fire

JOHN LEGEND

미아와의 행복한 시간은 계속되지만, 여전히 세바스찬은 자기의 재즈 클럽을 갖고 싶어하는 무명 뮤지션이다. 예전에 같은 밴드에 몸담았던 키스(존 레전드)를 만나 밴드에서 건반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아 단칼에 거절하긴 했지만, 엄마에게 자기를 자신없게 소개하는 걸 듣고 천장에 누렇게 뜬 걸 보고서, 결국 키스의 밴드에 합류하기로 마음먹는다. 재즈를 고집하겠다는 뜻을 잠시 접고 돈을 벌겠단 생각으로 키스의 밴드에 들어가지만, 그 밴드가 생각보다 크게 성공하면서 세바스찬의 경제적인 상황이 꽤나 좋아진다. 'Start a Fire'는 키스의 밴드 메신저스의 레퍼토리로서 만들어진 곡이다. 키스를 연기한 R&B 뮤지션 존 레전드와 음악감독 저스틴 허위츠, 그리고 <로미오와 줄리엣>과 <물랑루즈> 같은 유명 뮤지컬 영화에 참여한 마리우스 드 브리스의 공동작업으로 탄생했다. 존 레전드는 물론 좋은 곡을 만들어야 하지만, 세바스찬이 억지로 만든 곡이라는 점까지 감안해야 하기에 특히 고심이 많았다고 한다.


City of Stars

RYAN GOSLING & EMMA STONE

<라라랜드>엔 저스틴 허위츠의 선율과 파섹/폴 듀오의 가사가 담긴 수많은 명곡들 가운데 영화를 대표하는 주제가라면 역시 'City of Stars'를 손꼽을 것이다. 미아가 집에 돌아오면 세바스찬이 피아노를 연주한다. 단 몇 음만으로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멜로디, 세바스찬은 "별들의 도시여, 넌 나만을 위해 반짝이는 거니? 별들의 도시여, 눈에 보이지 않는 게 너무나 많구나" 노래를 시작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미아가 "우리의 꿈이 마침내 이뤄질 거라는 예감을" 그 노래를 이어부른다. 일상에서 흥얼거리는 노래처럼 두 사람의 목소리는 다듬어지지 않은 것처럼 들리고, 중간중간 웃음도 터져서 그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더 큰 감동을 전한다. 각자 다른 지친 마음을 품고 집에 돌아온 두 사람이 마주앉아 부르는 이 노래는 "쿵쾅거리는 심장, 난 이 느낌이 머무러주길 바라" 하며 끝나지만, 이 순간 이후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면서 미아와 세바스찬의 마음은 점차 닳아간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와중엔 엠마 스톤이 혼자서 허밍으로 부르는 버전도 들을 수 있다.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총 1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라라랜드>는 주제가상 후보에 'City of Stars'와 미아가 오디션장에서 혼자 노래하는 'Audition' 두 곡이 올라 결국 'City of Stars'가 주제가상의 주인공이 됐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