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행’ 하면 흥한다
배급의 관점에서 영화는 일단 개봉하면 그 순간부터는 관객과의 교감을 통해 수명이 결정되는 생명체로 전환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개봉을 통해 탄생되고 그렇게 탄생된 영화는 극장에서 간판이 내려지는 날 그 운명의 종착점을 맞이하게 된다고 보는 것이죠. 영화가 생명체로 있는 동안에는 관객과 여러 형태로 교감하게 되는데 그 모양도 각양각색이라 흥행 모습도 제각각이지요.
그 중 하나로 ‘역주행 흥행’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할리우드에서는 ‘슬리퍼 히트’(Sleeper Hit)라고 칭하고 있고 업계에서는 ‘겟쓰아가리’(尻上がり)라고 과거 일본식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지금은 역주행 흥행이라는 용어로 통용되고 있는데, 역주행 흥행의 특징은 영화가 지닌 엔터테인먼트 속성 탓에 뒤로 갈수록 관객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객이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역주행 흥행은 크게 두 가지 경우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상했던 것보다 관객 반응이 월등히 좋은 경우인데, 이런 의외의 반응은 영화 개봉 전 마케팅에서 생긴 오류, 즉 소구대상에 대한 판단 미스, 콘셉트 미스, 잠재관객파악 미스, 경쟁작 판단 미스 등이 영화 상영 중에 바로 잡히면서 관객의 호응도와 함께 관객이 늘어나는 경우입니다. 대다수가 여기에 속한다 하겠습니다. 또 하나는 경쟁영화에 의해 생긴 반사 작용입니다. 개봉당시에는 경쟁영화가 힘이 좋아 뒤로 밀렸지만 막상 까보니 (경쟁영화가) 기대치에 못 미치면서 그 반대급부로 뒤늦게 관객이 몰리는 경우입니다. 반사각이 크면 클수록 역주행 효과도 커집니다. 이 두 가지 경우 모두 주체는 관객입니다. 영화가 관객의 손으로 넘어가다보니 역주행 흥행을 시작하면 마치 브레이크 없는 질주와도 같아 대박을 칠 확률이 높아집니다.
이렇게 역주행으로 흥행을 한 한국영화로는 <써니> <7번방의 선물> <늑대소년> <도가니> <완득이> <베스트셀러> <박수건달> <오싹한 연애> 등이 있었고, 한참 전에는 <주유소 습격사건>과 <킬러들의 수다>등이 역주행 흥행을 한 영화들입니다. 외화로는 <알라딘>부터 시작해서 <어벤져스> <인터스텔라> <서치> <보헤미안 랩소디> <라라랜드> <맘마미아!> <레미제라블> <비긴 어게인> 등이 있는데 특히 음악영화가 역주행 흥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최근 극장가에 역주행하고 있는 영화가 있습니다. 역대 일본박스오피스 1위를 19년 만에 갈아치웠다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 그 영화입니다. 1월 27일 개봉되어 첫 주말 10만, 2주차 주말 13만 6000명으로 첫 주보다 관객이 많이 들면서 역주행 흥행을 시작합니다. 수치로만 봐서는 소소한 역주행 흥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극장가가 코로나19 펜데믹 상황이라는 것, 15세이상관람가 애니메이션 영화(과거 전체관람가 영화 가운데 <겨울왕국>이 역주행 흥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흔치 않은 일입니다.
그러면 이 영화가 역주행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영화는 메가박스 단독으로 개봉을 시작합니다. 개봉 8일째 되는 날 전 극장으로 확대되면서 4DX, IMAX로의 상영이 추가됩니다. 의도였든 아니던 간에 배급에 있어 플랫포밍(Platforming: 일종의 진지구축방식의 배급, 초반에는 몇 군데(또는 지역)에서 상영하고 이후 반응을 보고 와이드릴리즈로 전환하는 방식) 형태를 띠게 되면서 관객 증가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경쟁영화의 부재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같은 시기 개봉된 애니메이션 <소울>과 <명탐정 코난: 진홍의 수학여행>과는 소구대상이 달랐고 15세이상관람가라는 것이 오히려 차별점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이 영화를 위협할 만한 경쟁영화가 이 영화의 2주차에는 개봉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설 연휴(개봉 3주차)에도 2위 자리를 지켜냄으로써 흥행을 이어가게 됩니다.
앞서 역주행 흥행은 관객들이 만들어가는 흥행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기존의 역주행 흥행영화들과는 사뭇 다르게 개봉 8일차에 있었던 극장확대가 주효했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관객 반응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극장들이 스스로 극장을 확대해 주었다는 것은 관객들의 호응을 제대로 읽어 냈다는 것이고, 그런 과감함이 역주행 흥행이 이루어진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영화의 역주행 흥행은 기존 역주행 흥행과는 다르게 극장과 관객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 가름해보길 펜데믹은 극장 개봉을 꺼리는 배급사들에게만 위기이지 극장과 관객 입장에서는 이 위기 속에서도 지켜내고픈 엔터테인먼트 공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은 3월 6일 개봉 39일차, 펜데믹 상황에서 대박이라 할 수 있는 관객 100만 명을 넘기며 순항 중입니다.
글 | 이하영
하하필름스 대표, 《영화 배급과 흥행》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