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개봉한 독특한 스릴러 <포제서>의 감독 브랜든 크로넨버그는 공포/스릴러 거장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아들이다. 크로넨버그와 더불어 아버지를 따라 감독의 길을 택한 이들을 소개한다.


데이빗 크로넨버그

브랜든 크로넨버그

<폭력의 역사> / <포제서>

브랜든 크로넨버그의 영화는 아버지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그의 나이 즈음에 만들었던, 인간 육체에 대한 상상을 극한으로 밀어붙인 '바디 호러' 작품들을 떠올리게 한다. 브랜든의 장편 데뷔작 <항생제>(2013)는 연예인의 바이러스를 열혈 팬들에게 판매하는 회사에서 일하면서 몰래 상품을 제 몸에 투입하고 불법 유통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데이빗 크로넨버그를 향한 꾸준한 편애를 드러내 온 칸 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된 전작을 잇는 최신작 <포제서>는 작년 선댄스 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돼 평자들의 고른 호평을 받았다. 타인의 몸을 훔쳐 그 무의식에 침투해 고위층을 암살하는 조직을 소재로 한 영화는 브랜든 크로넨버그의 독창적인 영화 세계를 만방에 알렸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소피아 코폴라

로만 코폴라

지아 코폴라

<지옥의 묵시록> /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감독 집안'은 가히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가족에게 가장 걸맞은 수식어일 것이다. 아내 엘레노어 코폴라부터 1991년 <지옥의 묵시록>의 제작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를 발표한 뒤 연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막내딸 소피아 코폴라는 대를 이어 감독이 된 이들 가운데 단연 견고한 입지를 다졌다. <대부> 시리즈를 비롯해 아버지의 수많은 작품들에 배우로 얼굴을 비췄던 소피아 코폴라는 1999년 첫 장편 <처녀자살소동>을 연출한 이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2003), <마리 앙투아네트>(2006), <썸웨어>(2009), <매혹당한 사람들>(2017) 등 천부적인 감각을 뽐내는 작품들을 내놓으면서 때마다 이름난 영화제들이 러브콜을 보내는 거장으로 발돋움했다. 소피아의 오빠 로만 코폴라는 60년대 유럽 스파이 영화에 오마주를 바친 <CQ>(2001)를 연출하고, <다즐링 주식회사>(2007)부터 꾸준히 웨스 앤더슨의 영화에 시나리오 작가로 활약하고 있다. 22세에 세상을 떠난 장남 지안 카를로 코폴라의 딸인 지아 코폴라 역시 <팔로 알토>(2013)를 발표하면서 3대를 잇는 감독 집안이 됐다. 위에 소개한 작품들은 모두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조지 루카스와 함께 세운 영화사 '아메리칸 조에트로프'가 제작에 관여했다.


다리오 아르젠토

아시아 아르젠토

<서스페리아>(1977), <페노메나>(1985) 등 이탈리아 지알로 호러를 대표하는 다리오 아르젠토의 딸 아시아 아르젠토는 9살부터 연기를 시작해 차근차근 배우로서 입지를 다져 2000년대 들어 프랑스 영화계와 할리우드에서 상업/예술영화를 아우르는 필모그래피를 구축하고 있다. 첫 감독작은 <스칼렛 디바>(2000). 디지털 카메라를 통한 영화 제작이 서서히 퍼지던 당시 발표된 <스칼렛 디바>는 스스로 주연까지 맡아, 어린 시절부터 배우로 살아왔던 고통스러운 삶을 반영한 자전적인 이야기를 영화화 한 것이다. 훗날 아시아 아르젠토는 영화 속 프로듀서가 바로 하비 와인스타인을 바탕으로 했다고 폭로했다. JT 로르이의 소설을 원작 삼은 <이유없는 반항>(2004) 이후 10년 만에 내놓은 세 번째 연출작 <아리아>(2014)를 발표하면서 연기를 그만두고 연출에만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고 현재까지 필모그래피는 멈춘 상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앨리슨 이스트우드

세간에 알려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자녀 4명은 저마다 다른 역할로 영화계에서 활약 중이다. 재즈 베이스를 연주하는 카일 이스트우드는 아버지의 <이오지마마에서 온 편지>(2006)와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2009) 영화음악을 만들었다. 간간이 아버지 영화에 출연하면서 현장 감각을 익힌 프란체스카/스콧 이스트우드 남매는 스크린과 TV를 오가며 배우로서 인지도를 넓히고 있다. <브롱코 빌리>(1980)로 처음 연기를 시작해 근작 <라스트 미션>(2018)까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여러 작품에 얼굴을 비췄던 앨리슨 이스트우드는 2007년 <레일스 앤 타일스>로 감독 데뷔 했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프로덕션 '맬파소'에서 제작했고, 그의 오랜 조력자 톰 스턴이 편집을 맡았으며, 오빠 카일이 음악을 만들었다. 피부병으로 인해 밤에만 활동하는 남자가 이방인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린 두번째 연출작 <배틀크릭>(2017)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늘은 보이지 않았다.


알폰소 쿠아론

조나스 쿠아론

알폰소 쿠아론의 아들 조나스 쿠아론은 사진 스스로 촬영 편집 미술까지 도맡아, 사진 이미지를 나열해 내레이션을 얹은 형식의 <이어 오브 더 네일>(2007)로 영화계에 등장했다. 아버지와 함께 <그래비티>(2013)의 시나리오를 함께 썼고, 2015년 자국 멕시코를 배경으로 추적 스릴러 <디시에르토>(2015)를 연출했다. 알폰소 쿠아론의 영화사 '에스페란토'가 제작을 맡은 영화는 <이 투 마마>(2001)의 주역이었던 배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아들을 만나기 위해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지대를 넘으려다가 총격에 쫓기는 주인공 모세를 연기했다. 또 한번 베르날이 주연에 캐스팅한 신작 <Z> 촬영을 준비 중이다.


이반 라이트먼

제이슨 라이트먼

<주노>(2007), <인 디 에어>(2009) 등으로 한국 관객에게도 꽤나 친숙한 제이슨 라이트먼은, <고스트 버스터즈> 시리즈와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非 액션'연기 재능을 이끌어낸 코미디 영화들을 연출한 이반 라이트먼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고스트 버스터즈 2>(1989), <유치원에 간 사나이>(1990)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현장이 친숙했던 제이슨 라이트먼은 고스란히 영화에 푹 빠져서 단편들을 만들기 시작했고, 28세에 발표한 장편 데뷔작 <땡큐 포 스모킹>(2005)이 평단과 시장에서 좋은 결과를 낳았다. 제작비의 30배를 훌쩍 넘는 대성공을 거둔 <주노>와 조지 클루니의 최고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인 디 에어>를 통해 오스카 감독상 후보에 지명됐다. 이후 케이트 윈슬렛, 아담 샌들러, 샤를리즈 테론 등 명배우와 함께한 소소한 코미디/로맨스를 만들어온 그는 아버지의 대표작 <고스트 버스터즈>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 <고스트 버스터즈 라이즈>(2021)를 완성해 오는 11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존 카사베츠

닉 카사베츠

미국 인디영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명감독 존 카사베츠의 아들 닉 카사베츠는 연기자로 먼저 영화계에 입성했다. 이번 기획에서 소개한 감독들이 대개 어릴 적 아버지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현장 경험을 쌓았던 것과 달리, 닉 카사베츠의 출연작은 대부분 다른 감독의 영화들이었다. 감독 데뷔작은 <스타를 벗겨라>(1996). 어머니 지나 롤렌즈를 비롯해 마리사 토메이, 제라드 드파르디유 등 유명 배우들이 참여한 첫 영화는 꽤 좋은 평가를 이끌어냈고, 아버지의 미발표 시나리오를 영화화 한 두 번째 영화 <더 홀>(1997)은 숀 펜에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겼다. 덴젤 워싱턴 주연의 <존 큐>(2002)로 흥행 면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 닉 카사베츠는 한국에서 유독 큰 사랑을 받은 로맨스 <노트북>(2004)의 감독이기도 하다.


리들리 스콧

조던 스콧

루크 스콧

제이크 스콧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력한 연출력을 자랑하는 리들리 스콧은 무려 3명의 감독 아들/딸을 두고 있다. 수많은 록스타들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해온 제이크 스콧은 게리 올드만이 프로듀서를 맡은 1999년 <플렁켓과 맥클레인>으로 영화감독 출사표를 내밀었지만 지난 20년간 2편의 신작만 더한 상태다. 루크 스콧은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 <마션> 제2조감독을 맡아 현장 감각을 익혀, 리들리/토니 스콧 형제의 영화사 '스콧 프리'가 제작한 스릴러 <모건>(2016)을 통해 입봉했다. 리들리 스콧이 파일럿을 연출한 드라마 <레이즈드 바이 울브즈>(2020) 일부 에피소드의 감독을 맡기도 했다. 사진 작업과 광고 연출을 병행했던 조던 스콧 역시 '스콧 프리'가 제작한 시대극 <크랙>(2011)으로 영화감독 신고식을 치렀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