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여배우들>(2009)에서 윤여정이 말했다. “난 재래시장이나 지킬게.” 그러나 그녀가 활보하게 될 시장은 훨씬 넓었으니, 할리우드 시장으로 뻗어 30여 개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수상 장바구니에 담더니 오스카 조연상 후보에도 지명됐다. 꿈의 공장이라는 할리우드에 그녀의 존재감을 심은 건 알다시피 <미나리>다. 미나리를 즐겨 먹어야 할 이유가 이렇게 또 하나 추가됐다. 올해 오스카 시상식을 사수해야 할 강력한 이유 또한 생겼다.

<미나리>

잘 알려졌다시피 <미나리>는 미국에 이민 간 한인 가족의 정착기를 다룬다. <미나리>의 활기와 긴장은 한국에 살던 순자(윤여정)가 손주들을 돌보기 위해 딸(한예리)과 사위(스티븐 연)가 사는 아칸소주로 오면서 본격적으로 작동한다. 왜 그럴까. 순자가 한국에서 멸치와 고춧가루만 들고 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공기와 딸 내외가 한국 땅을 떠날 때 품었던 아메리칸드림의 초심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멸치를 보며 우는 딸에게 “야 또 울어? 멸치 때문에 울어?”라고 농을 치지만, 설마 순자가 모를까. 그 눈물의 의미를.

윤여정 개인의 퍼스널리티가 캐릭터와 맞닿아 빚어지는 유머는 <미나리>를 즐기는 또 하나의 감상 포인트다. 손주들에게 화투를 가르치며 내뱉는 “지랄~”이라는 비속어조차도 윤여정이라는 피사체를 통과하는 순간 정겹고 유쾌하게 변모한다. 손자 데이빗(앨런 김)은 쿠키를 구울 줄 모르고 입이 거칠며 남자 팬티를 입는 순자를 보고 “할머니는 할머니 같지 않아요”라고 투덜대는데, 할머니 같지 않다는 저 말은 다른 의미에서 딱 윤여정이다. 거침없지만 경우 바른 말투, 세련된 유머와, 세월을 초월한 감각적 패션의 소유자인 윤여정은 결코 할머니 같지 않다. 독립적인 동시에 타인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으려는 태도 또한 그녀의 저력이라면 저력. 그녀가 청춘들이 따르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흥미로운 건 우리에겐 익숙한 윤여정의 이러한 면모에 세계 영화인들도 마음을 빼앗겼다는 점인데, 솔직히 그녀의 릴레이 수상 소식을 듣고 난 후 <미나리>를 보면서 조금 어리둥절한 것도 사실이다. 처음 든 생각은 ‘아니, 이 정도로?’ 오해는 말자. 그녀의 연기에 이의가 있어서가 아니다. ‘다른 작품에서의 윤여정 연기를 보면 뒤로 까무러치겠네!’라는 생각이 미나리처럼 자라서다. <미나리>로 윤여정에게 입문한 해외 팬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 목록이 너무나 많아서다.

<충녀>

그중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은 김기영 감독과 작업한 데뷔작 <화녀>(1971)와 두 번째 작품 <충녀>(1972)다. 어떤 배우에게 데뷔작은 배우 인생을 관통하는 의미심장한 예고가 되는데, 윤여정이 그렇다. 등장과 함께 ‘파격’을 들고나온 이 배우는 데뷔 55년이 지난 지금도 스테레오 타입에 갇히지 않고, 오로지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윤여정의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소식이 전해진 날, 나는 <화녀>와 <충녀>를 다시 꺼내 봤다. 두 작품을 노트북에 따로 소장하고 있는 건 아니고. 세상이 좋아져서 인터넷에서 고전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으니, ‘한국고전영화극장’에 접속해 성인 인증만 하며 <화녀>와 <충녀>에 바로 접속할 수 있다. 그러니까 마음만 먹는다면, 인터넷 세상이 당신을 과거의 윤여정에게 데려다줄 것이란 이야기다. 장담하건대,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더 충격적인 윤여정이 그곳에 있다.

김기영 감독이 자신의 60년대 영화 <하녀>를 리메이크한 <화녀>는 시골 출신의 하녀가 집주인의 아이를 임신하고 낙태를 당한 후 점점 미쳐 집안을 파멸로 이끄는 ‘사이코 스릴러’다. 여기서 한 가정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팜므파탈 명자가 윤여정이다. 영화에서 그녀는 섬뜩하다. 후덜덜하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라는 말의 뜻을 온몸으로 기괴하게 시연한다. 그렇게 윤여정은 영화라는 세계를 찢고 들어오자마자 각종 영화제(대종상신인여우상, 청룡영화상여우주연상, 시체스여우주연상)를 휩쓸어 버렸다. 그리고 이듬해, 김기영 감독의 또 한편의 여(女) 시리즈 <충녀>에 명자로 재출연, <화녀>로 얼얼해져 있던 관객의 뺨을 다시 한번 후려갈겼다.

<장희빈>, 오란씨 광고 포스터

그 무렵 출연한 TV 드라마 <장희빈>은 윤여정에게 더 큰 인지도를 안기고, CF를 앗아갔다. 표독스러운 장희빈 캐릭터를 너무 실감 나게 표현하는 윤여정을 보며 시청자들은 육두문자를 날렸고, ‘오란씨’ 광고 포스터 안에서 상큼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눈을 도려냈다. 캐릭터와 배우를 혼동하던 시대의 ‘그땐 그랬지’ 식 에피소드라고 하기엔 파급력은 컸다. 결국 소비자 항의로 광고 하차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대중의 관심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어서 <화녀> <장희빈> <충녀>를 통과하며 배우로서의 존재감도 그만큼 확장됐다. 그러니까 윤여정은 NEW 타입의 배우였고, 그로 인해 시대적 저항을 받기도 했지만, 김기영처럼 시대를 앞서간 감독들에겐 영감을 주는 존재로서 시대와 기분 좋게 충돌했다.

그리고 펑. 1973년 윤여정은 절정의 시기에 돌연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배우가 결혼과 동시에 은퇴 수순을 밟는 게 흔한 시대였다고는 하지만, 시기적으로든 뭐든 여러모로 급작스러웠다. 그렇게 윤여정은 비범한 재능을 스스로 묻어버렸다. 84년 MBC 베스트셀러 <고깔>로 복귀하기까지 10여 년의 시간을. <고깔>이 있긴 했지만, 그녀다웠던 진짜 복귀작은 영화 <어미>다. 김수현 작가가 시나리오를 쓴 <어미>(1985)는 여고생 딸이 납치돼 사창굴에 팔린 것을 발견한 어머니가 처절한 복수극을 벌이는 가슴 섬뜩한 작품. 이 영화에서 윤여정은 ‘어미’라는 이름으로 딸을 유린한 범죄자들을 염산과 면도칼과 쇠사슬 등으로 살벌하게 살해한다. 보고 있자면 70년대 명자는 물론 <테이큰>의 그 유명한 대사가 방백처럼 떠오르니, “아이 윌 파인드 유, 앤드 아이 윌 킬 유!”

<어미>는 평단의 호평 속에 대종상 작품상을 받았지만, 윤여정의 경력은 작품 외적인 부분에서 암초를 만났다. 복귀한 여배우와 쎄시봉 출신 가수의 이혼(1987년)은 언론이 흥분하기에 충분한 것이었고, 결혼과 경력단절과 복귀와 이혼이라는 터널을 통렬하게 지났을 때 그녀를 기다리는 건 ‘이혼녀’라는 주홍글씨였다. 작품을 같이 하자는 제안이 줄었고, 선택 가능한 캐릭터 폭도 좁아졌다.

세간의 편견 속에서 그녀가 어떤 세월을 보냈는지, 사실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최고의 연기는 돈 필요할 때 나온다.”(<무릎팍도사>) 라거나, “60이 돼도 인생을 몰라.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꽃보다 누나>) 라거나,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라는 외신기자의 언급에 “그분과 비교는 감사하지만 저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 배우다. 제 이름은 윤여정이고, 저는 그저 저 자신이 되고 싶다”라고 대답하는 모습 속에서 직업으로서 책임감, 배우로서의 자존감, 주체적 인간으로서 그녀가 지켜 온 삶의 결기를 감지할 뿐이다. 김수현 인정옥 노희경 등의 드라마 작가들이 그녀의 매력을 사랑한 것 역시, 윤여정에게 쉼터를 제공했을 것이다.

<바람난 가족>

그리고 임상수 감독이 그녀의 인생에 등판한다. 임상수는 오랜 시간 봉인돼 있던 윤여정 안의 무엇인가를 건드렸다. 나는 지금도 <바람난 가족>(2003)이 진정 ‘바람난 가족으로 거듭난’(?) 데에는, 아들과 며느리가 바람났을 때 함께 바람을 피운 병한(윤여정) 덕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상을 치르자마자 “사귀는 남자 있다. 15년 만에 섹스했다. 생전 처음 오르가슴도 느꼈다”고 고백하는 엄마라니.

<돈의 맛>

‘평창동 비구니’라고 스스로를 희화화하지만, 윤여정 곁에는 그를 지지하는 동료들이 많다. 임상수 감독에 이어 이재용 감독이 그녀의 인생에 나타났고, 역시나 범상치 않은 인물들을 그녀에게 안겼다. 그렇게 윤여정은 <그때 그 사람들>(2005) <여배우들>(2009) <돈의 맛>(2012) <죽여주는 여자>(2016) 등에서 ‘모성’을 경유하거나 ‘어머니’에 갇히지 않고, 그저 ‘THE 윤여정’으로서 대중에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웃기고 세련된 윤여정의 진가를 알아본 나영석 PD의 눈썰미나 자신이 원하는 할머니 연기에 윤여정을 가두지 않았던 <미나리> 정이삭(리 아이작 정) 감독의 예우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2016년 윤여정의 50주년 파티에서 전도연이 말했다. “선배님이기도 하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여배우로서 경쟁의식도 느끼고 자극도 받아요. 앞으로도 많은 여배우에게 자극되는 모습을 보여주셨으면 좋겠어요.” 일정한 나이가 되면 누군가의 절절한 어머니이거나 독한 시어머니이거나 조력자로만 활용되는 한국 연예계 시스템 안에서 윤여정은 일흔이 넘어서도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토를 확장 시켜나가며, 전도연의 바람대로 여배우들에게 자극을 전하고 있다. 그것은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배우의 여정이다. 전무후무한.


글 정시우 영화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