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컴한 어둠이 내린 밤, 두 명의 밀수업자가 비밀리에 물건(!)을 옮긴다. 어딘지 어설퍼 보이는 두 사람이 비밀리에 들여온 건 마약도, 금괴도, 담배도 아니다. 바로 작디작은 아기 사자. 계획대로라면 날이 밝자마자 아기 사자를 팔아넘겼어야 하지만, 늪에 빠진 허술한 밀수업자들은 역시나 아기 사자를 놓치고 만다. 아직 어미 젖도 떼지 못했을 것 같은 아기 사자는 외로이 혼자 남겨지지만, 머지않아 그 앞에 한 소녀 레나(멜리사 콜라조)가 나타난다. 아기 사자를 외면할 수 없었던 레나. 하얗디하얀, 방금 내린 눈처럼 뽀송뽀송한 아기 사자에게 '스노우볼'이란 이름을 붙여주며 둘은 뜻밖의 동거를 시작한다. 물론 소녀와 아기 사자의 한집 살이는 녹록지 않다. 레나는 아빠에게 스노우볼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마음도 모르는 아기는 집을 엉망으로 만들기 일쑤. 레나를 난감하게 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말을 더듬는다는 이유로’ 레나를 괴롭히는 동네 친구들은 호시탐탐 스노우볼의 존재를 까발리려 혈안이고, 아기 사자를 놓쳤던 밀수업자들은 레나의 집 근처를 배회한다. 스노우볼과 레나는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을까?
<화이트 라이언 스노우볼>은 단언컨대 스노우볼, 아기 사자가 '다 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CG로 가공된 동물이 아닌 '진짜 아기 사자'를 데려다 놓고 촬영한 이 영화는 아기 사자의 서투른 몸짓과 재롱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심장이 찌릿, 마음이 간질간질해지는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 단연 동물 영화가 주는 가장 큰 기쁨일 거다. 더욱이 <안녕 베일리>라던가,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처럼 반려견, 반려묘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는 많지만, 야생 사자와 집사 사이의 정(情)을 섬세하게 표현해낸 영화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화이트 라이언 스노우볼>은 생경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촬영이 아기와 동물이라는데. '아기 + 사자'의 움직임을 한없이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앙증맞은 순간을 포착해 앵글에 담아낸 것만으로도 영화는 박수받아 마땅하다. 덧, <화이트 라이언 스노우볼>엔 '스미티'라는 레나의 반려견도 함께한다. 아기 사자와 강아지. 쉽사리 볼 수 없는 투샷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화이트 라이언 스노우볼>을 '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동물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곳곳에서 몸서리칠 수밖에 없을 것.
레나와 스노우볼의 정서적인 교감만을 담았다면 <화이트 라이언 스노우볼>은 어쩌면 아기 사자 '성장 다큐'가 됐을지도 모르겠지만, 브라이언 허즐링거 감독은 극적인 재미를 위해 맛깔나는 장치를 촘촘히 설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중 하나가 앞서 언급한 (허술한) 밀수업자 콤비다. <나 홀로 집에> 시리즈가 좀도둑 콤비 해리(조 페시)와 마브(다니엘 스턴)를 통해 케빈의 명석함을 극대화해 큰 사랑을 받았던 것처럼, <화이트 라이언 스노우볼> 역시 어리숙한 밀수업자 콤비와 10대 소녀 레나 사이에 각을 세우며 흥미진진함을 더한다. 늪에 얼룩진 꾀죄죄한 몰골로 레나의 집 근처를 뛰어다니는 두 '아재 콤비'를 보고 있노라면, <나 홀로 집에>에서 느꼈던 쾌감과 유쾌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더욱이 이 두 캐릭터가 매력적인 건 못돼먹은 빌런으로 그칠 수도 있었던 두 사람에게 미워할 수 없는 입체감이 덧입혀졌기 때문. 아기 사자를 밀수해 팔아넘기려는 심보를 가지고도 "힘없는" 레나를 괴롭히는 동네 남자 아이들에게 '참교육'을 시전한다거나. 레나를 향해 거친 행동을 하면서도 뒤돌아선 죄책감을 느낀다거나. 위험한 순간, 아이들에게 "도망가!"를 외치는 인간적인 모습을 통해 선과 악의 대결 그 이상의 결을 만들어 냈다. 허술한 콤비와 동물, 그리고 어린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지점에선 한국 영화 <마음이 2>를 소환해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트럭에 몰래 숨어 탈출을 도모하는 레나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2> 속 트럭에 실려가던 장군이의 모습이 자연히 겹쳐 보일 것. <마음이 2>와 <나 홀로 집에>를 떠오르게 만드는 <화이트 라이언 스노우볼>은 어린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가족 모두가 둘러앉아 관람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족 영화라는 수식 어구에 유치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이들이라면 주목. <화이트 라이언 스노우볼>은 그저 귀여운 장면만을 엮어내거나 동물이 얽힌 소동극에 머무르는 영화는 아니다. 머리가 다 큰 어른들의 어깨마저 감싸 쥘 성장의 순간들을 곳곳에 녹여냈기 때문. 아기 사자를 도맡게 된 레나는 부유하거나 풍족해서 한 생명을 거두는 것이 아니다. 어린 나이지만 레나의 삶 역시 어른의 삶 못지않게 퍽퍽하고 고되다. 엄마의 품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적응도 해야하고, 동네 친구들은 철이 없다는 이유를 방패 삼아 레나를 괴롭히고, 레나를 홀로 키워야 하는 아빠는 늘 바쁘기만 하다. 타인의 삶을 돌아보기도 힘든 상황에 놓였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그럼에도 어린 소녀는 한 생명의 구원자가 되는 걸 자처하며 온 힘을 다해 자신보다 연약한 생명을 돌보고 지킨다. 어른이 될수록 모든 관계에 있어 계산적인 잣대가 앞설 수밖에 없기에. 레나의 주저 없는 용기는 '어른이' 관객들에게 뜻밖의 반성의 시간을 마련한다. 레나의 순수한 마음 그리고 성장의 순간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때 묻은 마음이 조금은 정화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아이부터 어른까지, 영화를 보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꼬집는다는 것이 <화이트 라이언 스노우볼>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