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론 스톤, 마이클 더글라스 주연의 <원초적 본능>이 재개봉 했다. 파격적인 설정으로 똘똘 뭉쳐 전 세계 관객들을 매혹 시킨 이 명작 스릴러에 관한 팩트들을 정리했다.


* 시나리오 작가 조 에스터하즈는 롤링 스톤즈 음악만 끊임없이 들으면서 이렇다 할 윤곽도 없이 13일 동안 시나리오를 써 내려갔고, 그게 <원초적 본능> 각본이 됐다. 처음 제목은 ‘Love Hurts’.

샤론 스톤과 조 에스터하즈

* <원초적 본능> 시나리오는 당시엔 전례가 없는 금액인 300만 달러에 팔렸다. 그전까지 최고 금액은 셰인 블랙이 <마지막 보이스카웃>(1991)으로 받은 175만 달러였다.

* 프로듀서 어윈 윙클러와 조 에스터하즈는 <아마데우스>(1984)의 밀로스 포만이 감독이 되길 원했다. 포만 또한 각본을 마음에 들어 했지만 결국 <로보캅>(1987), <토탈 리콜>(1990)의 폴 버호벤이 연출을 맡게 됐다.

<로보캅> 현장의 폴 버호벤

* 폴 버호벤은 섹스 신을 검열이 허용하는 최대한 노골적으로 찍고 싶었고, 나중에 반대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 제작사 중역들에게 스스로 구상한 걸 매우 상세하게 묘사한 스토리보드를 보여줬다.

마이클 더글라스

* 원래 시나리오에서 닉은 젊은 남자였지만 당시 47살이었던 마이클 더글라스가 캐스팅되고 42세로 수정됐다. 그는 영화 촬영 전에 주름 제거 수술을 받았다.

* 마이클 더글라스는 닉이 양성애자라는 설정도 용인하지 않았고, 출연 계약서엔 절대 전신 누드를 찍지 않겠다는 항목이 있었다. AIDS 유행으로 인해 앞으로 할리우드 영화에서 섹스 신이 없어지게 될 거라고 염려해 출연을 원했다고 말했다. 다만 감염 위험을 예방하고자 성기에 패드를 덧대었다.

<토탈 리콜>

* 샤론 스톤은 13명의 배우들이 캐서린 역을 거절한 끝에 처음으로 수락한 배우였다. 시나리오를 읽은 스톤은 자신이 캐서린 역에 딱이라고 생각했지만, <토탈 리콜>(1990)을 이미 작업한 바 있는 폴 버호벤에게 부담을 줄까 싶어 굳이 직접 연락하지 않았다. 얼마 뒤 버호벤은 <토탈 리콜> 기내 버전의 더빙을 위해 스톤을 불렀고, 스톤은 캐서린이 입을 법한 드레스를 차려입고서 남성편력자 역할을 소화할 수 있다는 걸 어필했다. 의도는 적중했다. 스톤은 마이클 더글라스와 테스트 샷을 찍고 배역을 따냈다.

* 유명한 배우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 마이클 더글라스는 캐서린 역에 데미 무어, 미셸 파이퍼 등을 제안했고, 처음엔 무명인 샤론 스톤의 캐스팅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폴 버호벤은 <토탈 리콜>(1990)에서 확인한 매력과 스크린 테스트를 하면서 다정함과 무자비함을 단숨에 오갈 수 있는 역량을 확인한 뒤 샤론 스톤을 강력히 주장했다.

* 샤론 스톤은 캐서린의 팜므 파탈 캐릭터를 위해 <이중배상>(1944)의 바바라 스탠윅, <보디 히트>(1981)의 캐슬린 터너를 레퍼런스 삼았다.

<이중배상>의 바바라 스탠윅, <보디 히트>의 캐슬린 터너

* 모든 배우들이 대역 없이 섹스 신을 직접 소화했다.

* 샤론 스톤이 오프닝 정사신을 찍을 때 오디션에서 보여줬던 연기를 재연해낼 수도 없을 정도로 매우 불안해해서, 폴 버호벤은 집중적으로 스톤의 연기를 지도하는 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마이클 더글라스는 버호벤이 자기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해 결국 트레일러에서 격렬한 언쟁이 벌어졌다. 그때 스트레스로 인해 버호벤은 코피가 터졌고, 스태프들은 버호벤의 피 묻은 옷을 보고 더글라스가 그의 얼굴을 쳤다고 생각했다.

1992년 칸 영화제에서 샤론 스톤과 폴 버호벤

* 영화 오프닝 속 자니 보즈의 코에 얼음송곳이 관통하는 장면은 모형 머리를 사용해 찍었다.

* 닉과 가너 박사의 섹스 신은 간단히 리허설만 했던 배우들은 처음 와본 공간에서 촬영됐다. 분위기는 금세 달아올랐고, 폴 버호벤은 두 배우의 연기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 그 유명한 샤론 스톤의 다리 꼬기는 시나리오엔 없는 설정이었다. 폴 버호벤이 촬영 중에, 대학 시절 파티에서 어떤 여자가 똑같이 행동해서 당황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낸 아이디어였다.

* 스티븐 스필버그는 <원초적 본능>에서 취조실 신의 웨인 나이트를 보고 즉시 그를 <쥬라기 공원>(1993)의 데니스 역에 캐스팅 하기로 결정했다. 그의 이름을 확인하기 위해서 엔딩 크레딧을 지켜봤다고.

<원초적 본능>과 <쥬라기 공원>의 웨인 나이트

* 샤론 스톤은 촬영 내내 마이클 더글라스와 불편함을 느꼈지만, 오히려 그런 긴장감이 캐서린과 닉의 관계를 나타내는 데에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 전직 카레이서였던 마이클 더글라스는 카체이싱 신을 스턴트 없이 직접 연기했다.

* 마이클 더글라스와 샤론 스톤의 섹스 신을 어마어마한 분량으로 찍어둔 덕분(?)에 대체로 쓸 만한 샷들이 넉넉해서 편집을 망치지 않고도 등급 지침을 지킬 수 있었다.

* <원초적 본능>은 가너 박사를 연기한 진 트리플혼의 첫 영화이자 헤이즐을 연기한 도로시 말론의 마지막 영화다.

진 트리플혼, 도로시 말론

* 폴 버호벤은 <원초적 본능>을 알프레드 히치콕 스릴러의 현대판으로 만들고자 했다. 조형적인 계단의 이미지, 해변가의 집 같은 설정은 분명 <현기증>의 영향을 떠올리게 한다. <현기증>의 킴 노박과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의 스타일링도 마찬가지.

<현기증>

<원초적 본능>

조 에스터하즈

* 캐서린과 록시와의 레즈비언 러브 신을 보여주는 걸 두고 폴 버호벤과 조 에스터하즈 사이의 의견 대립이 있었다. 에스터하즈는 그 장면이 지나치게 선정적으로만 보일 거라고 생각해 굳이 보여주지 않고 언급만 되길 원했고, 버호벤은 하다못해 두 여자의 정사를 닉이 훔쳐보고 있는 걸 찍으려고 했다. 나중에야 버호벤은 그 장면이 영화의 페이스를 망친다는 걸 깨달았고, 에스터하즈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폴 버호벤은 3년 후 에스터하즈가 시나리오를 쓴 <쇼걸>을 연출하기도 했다.

* <원초적 본능>에 짙게 드러나는 양성애자 혐오에 비판이 쏟아졌다. 개봉 당시 샌프란시스코 경찰서는 매일 같이 몰려드는 게이/레즈비언 활동가들의 피켓팅에 대응하기 위해 50명의 시위 경찰을 배치했다.

* 영화가 나온 1992년 당시만 하더라도 DNA 검사가 범죄 수사에 흔히 활용되던 때라서, 오프닝에서 자니 바즈를 죽인 사람을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각본을 쓴 조 에스터하즈는 DNA 검사를 간과한 건 분명 플롯의 구멍이었다고 고백했다.

1992년 칸 영화제 <원초적 본능> 팀

* 1992년 칸 영화제 개막작이었다. 경쟁부문 후보이기도 했던 <원초적 본능>은 무관에 그쳤고, 황금종려상은 빌 어거스트의 <최선의 의도>가 받았다.

* 1971년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부터 <원초적 본능>까지 폴 버호벤과 일곱 작품을 함께한 촬영감독 얀 드 봉은 1994년 액션영화 <스피드>로 감독 데뷔했다.

얀 드 봉과 폴 버호벤

* 2000년에 인후암을 진단 받은 조 에스터하즈는 영화가 흡연을 미화한 걸 사과했다. 알아주는 헤비 스모커였던 마이클 더글라스 역시 2010년에 인후암(나중엔 설암으로 밝혀졌다)에 걸렸다고 보도됐다.

* 마이클 더글라스는 닉을 다시 연기하기엔 너무 늙었다고 생각해 속편 출연을 거절했다.

* <원초적 본능>과 더불어 <로보캅>(1987), <스타십 트루퍼스>(1997), <할로우 맨>(2000) 등 폴 버호벤의 영화들은 훗날 버호벤이 감독을 맡지 않은 속편이 제작됐는데, <로보캅 2>를 제외하곤 모두 망하거나 극장에서 개봉하지 못했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