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시스>

캐나다 메디컬 드라마 <널시스>가 한국에 상륙했다. <널시스>는 토론토 세인트 마리 병원에 부임한 다섯 명의 신입 간호사의 이야기다. 소외된 캐릭터를 다루는 데 특히 탁월한 이 시리즈를 웨이브에서 독점으로 공개했다. 10개의 에피소드를 지금 바로 웨이브에서 만나보자.


<널시스>

<슬기로운 의사생활>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떠오르는 이유

세인트 마리 병원에서의 첫날을 시작한 간호사 그레이스(티에라 스코브예), 애슐리(나타샤 칼리스), 울프(도널드 맥린), 키언(조던 존슨 하인드), 나즈닌(샌디 시두). <널시스>는 이들의 매일을 담는다. 쇼가 시작하면 '널시스' 5인방이 출근하고, 주임 간호사 데이미언(트리스탄 D. 렐라)이 그날의 근무조를 알려준다. 매회 같은 형식을 취하지만 다섯 명에게 각각 배정된 환자는 매번 다르다.

어쩐지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떠오른다. 메디컬 드라마이고, 다섯 명의 동기이자 친구가 등장한다는 것은 단편적인 공통점이겠지만. 그저 그렇다고 하는 안일한 비교는 당연히 아니다. <널시스>와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신원호 PD는 드라마의 제목을 이렇게 붙인 것에 대해 "병원 드라마를 하는데 으레 기대하시는 부분이 저희는 없습니다, 라는 뉘앙스를 전달 드리고 싶었다"고 한 적이 있다. “물론 의학적인 취재를 오래 해서 준비했지만, 의술적인 것은 배경이고 과정일 뿐이다. 그냥 사람들 사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라고 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드라마 기획의 계기를 그대로 가져와 <널시스>를 설명하는 데 써도 무방하다고 할 수 있겠다. <널시스>는, 정작 자신을 돌볼 줄 모르던 헌신적인 다섯 명의 간호사가, 환자의 모습을 통해 동료의 모습을 통해 때로는 제 자신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마주하며 치유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99즈'가 극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그랬듯, 개성 강한 캐릭터는 이 드라마의 핵심이다.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무고하게 전 직장에서 해고되어 과거를 잊고 새 출발을 하려는 그레이스. 그레이스의 안타고니스트 애슐리. 잘나가는 대학 미식축구 스타에서 돌연 병원으로 필드를 옮긴 키언. 인도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캐나다로 이주해 인생 첫 직장으로 병원을 얻은 나즈닌. 겉으로 봐서는, 누구보다 마음이 풍족해 베풀고 또 베풀지만 남모를 비밀로 고통받으며 하루하루를 겨우 견뎌내고 있는 울프까지. 이들이 겪은 과거의 터닝 포인트는 이들을 더 입체적인 캐릭터로 만들었다.


<널시스>가 다양성을 말하는 법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혹은 여겨져야 마땅한 다양성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작품을 만난다는 건 행운이다. 여전히 그렇지 못한 작품이, 생각이 많기에. <널시스>는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지를 적극적으로 포착한 드라마다. <널시스> 세계관의 인물 배치는 꽤나 이상적이다. 세인트 마리 병원 의사의 인종에는 경향이 없다. 백인이 주를 이루게 두고, '그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하니까 흑인, 동양인, 라틴계 한명 정도씩 넣자'는 식이 아니라는 거다. 수십 명의 환자와 보호자 캐릭터의 인종과 문화에도 차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LGBTQ 커뮤니티도 포괄했다. 가령 쇼는 동성애자 산모 환자를 한 치의 편견 없이 바라본다.

그러면서도 소수자가 겪을 수밖에 없는 문제에 대해서 방관하지 않았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 아래 자란 성 소수자 애슐리가 가족에게 있는 그대로 인정받게 되는 과정과 같이, 이들이 매일 직면할 크고 작은 상황을 겉으로 드러내는 데 힘썼다. 이는 이 드라마가 시도한 일련의 설정이 '변화'의 일부로 생각되지 않을 미래의 날들을 위한 노력일 것이다. 다양성이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일상적인 무언가로 여겨지는 날을 위한 노력 말이다. 포용성 이슈를 잘 다룬 작품은 종종, '대단한' '칭찬받아 온당할'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그마저도 인지하지 않아도 될, 그야말로 다양한 세상을 향한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은 <널시스>의 큰 장점이다. 디즈니, 마블 등의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에서 이러한 시도를 우선순위에 두는 이유도 다르지 않으리라.


널시스(Nurses), 간호사 이야기

앞서 언급했듯 이 메디컬 드라마는 의사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레이 아나토미> <나이트 쉬프트> <굿 닥터>. 이름 들으면 알만한 의학 드라마의 주인공은 모두 의사였다. <널시스>는 제목이 말하듯 간호사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차별을 뒀다. 웅장한 배경 음악에 수술실 집도 장면이 몇 번 나와 줘야 의학 드라마가 굴러갈 것 같지만, <널시스>의 주 무대는 기존 의학 드라마에서 종종 수다의 배경이 되던 간호원실이고, 병실이다.

의사와 같은 조직 내 주류 집단이 아닌, 주변 집단을 극의 중심에 둔 작품은 그동안 꽤 많이 있었다. 국내 드라마의 경우 국회의원이 아닌 보좌관을 다룬 <보좌관>이 있었고, 야구선수가 아닌 프런트 세계를 그린 <스토브리그>가 있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이미 주류 소재를 소비할 대로 해버려서 한 경제적인 선택이고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이 설정이 시청자에 새 시각 새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시리즈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게 한 가지 더 있다면, 그것은 직업관과 관련된 것이다. 2화에 이런 장면이 있다. 치료를 원치 않는 암 4기 환자의 일을 안타까워하는 그레이스에게, 동료 의사 에반(라이언 제임스 하타나카)이 말한다. "의사와 간호사의 의술은 다르죠. 난 사람을 봉합하고 수술실로 보내고 심장을 다시 뛰게 하기도 하지만, 환자가 그런 치료를 거부하면 내 일은 거기서 끝이에요." 그레이스는 답한다. "네, 하지만 난 아니죠." <널시스>에서 의사와 간호사의 역할에는 다름이 있을 뿐, 상하 관계가 없다. 쇼는 철저하게 모든 캐릭터를 존중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드라마 속 세인트 마리 병원을 본보기로 할만한 세계로 그리고는 있지만, 잔재된 현실의 문제를 반영하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소수자가 겪는 문제를 바라볼 때 그랬듯, 권력 관계에서 약자에 놓일 수밖에 없는 이들이 처할 상황에 눈감지 않았다. <널시스>는 각 회 등장하는 환자 중심의 에피소드 위주로 구성되지만, 10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 에피소드가 몇 있다. 그중 하나가 그레이스가 전 직장에서 겪은 일에 관한 것이다. 그레이스는 명망 높은 의사에게 추행을 당했으나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잘렸다. 쇼는 아직까지도 비일비재한 이런 사건을 수면 위로 드러내는 데에도 크게 러닝타임을 할애했다.


"우리의 정체성이 돌봄 방식이 된다"

일상 이야기,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메디컬은 메디컬이다. 극의 배경은 병원이다. 그중에서도 널시스 5인방은 종잇장 차이로 생사가 갈리는 순간을, 하루에도 수없이 마주하는 중환자실과 응급실 소속이다. 드라마 속 한 에피소드를 빌려 말해보자면, 중환자실에서 일한다는 건 이런 거다. 환자가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소식을 지금 막 전해 들은 보호자에게 환자의 장기 기증을 권유해야 하는 일. 일상적이지만, 삶과 죽음이 달렸기에 필연적으로 철학적일 수밖에 없는 질문을 <널시스>는 끊임없이 던진다. 범죄자 환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피해자에게 범죄자의 입원 여부를 알릴 것인가. 간호인에게 그럴 권리가 있는가. 선의라면 환자 개인사에 개입해도 되는가. 의료진으로서 맞닥트릴 윤리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질문한다.

흔히들 회사 일을 집으로 가져가지 말라고 한다. 가정사를 직장으로 가져와도 안 된다고 한다. 직장에 출근한 이상 속 시끄러운 일은 잊고 걱정과 두려움은 서랍에 넣어 뒀다가 고된 하루 끝에 퇴근하며 다시 찾아가라는 거다. 사생활이 간호 업무에 지장을 줘서는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정체성과 우리의 생활 환경이 우리의 돌봄 방식이 된다. 자기 자신도 돌볼 줄 모르는 사람이 남을 돌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널시스> 3화

누군가는 환자에 감정적으로 이입하는 것이 의료진으로서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처사라고 한다. 외부인의 입장에서 이에 쉬이 이견을 달 수는 없지만. 적어도 <널시스>에서 다섯 간호사가 돌고 돌아 환자에게 맞는 치료법을 터득하게 되던 지점에는 항상 유대가 있었다. 환자와 함께 쌓은 기억과 경험은 이들을 성장하게 했고, 결국 이것이 이 시리즈가 말하고자 하는 바일 테다.


씨네플레이 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