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적인 풍경을 떠올리라면 아마 야자수가 한껏 핀 해변가, 아니면 소복하게 눈이 쌓인 설산을 떠올릴 것이다. 일반인들에게도 그나마 친화적인 풍경이 전자라면, 후자는 경외감이나 모험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산악'과 '자연'이 테마인 울주세계산악영화제(이하 UMFF)는 눈이나 얼음, 설경에 관한 영화도 많이 만날 수 있는 장이다. 특히 환경과 자연에서 주요하게 논의되고 있는 빙하에 관한 다양한 작품 또한 준비돼있다. 초가을에 개최했던 예년과 달리 4월에 개최한 이번 2021년 제5회 UMFF에서 자연에 대한 각성의 메시지를 서늘하게 전하며 '대리 추위' 안겨주는 영화들을 소개한다. 아래 영화는 영화제가 열리는 4월 2일부터 11일까지 온라인 상영관에서 만날 수 있다.
스키 맘스
포커스|14분|전체 관람가
영화 <툴리>에 이런 말이 나온다. “아기는 밤새 자라 있을 거예요, 우리도 그러잖아요.” 그렇다,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것만이 아니라 육아를 하는 부모도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스키 맘스>는 남편을 잃은 후 다시 산으로 향한 전문 스키인 테사 트리드웨이의 이야기를 그린다. 테사와 남편 데이브는 두 아이와 함께 캠핑과 스키를 즐기는 유쾌한 부부였다. 그러나 테사가 셋째 출산을 앞두고 있을 때, 데이브가 크레바스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테사는 세 아이와 함께 싱글 마더로 세상에 남겨졌다. 상실의 아픔은 쉽게 잊을 수 없지만, 테사는 다시 산으로 향한다. 그처럼 전문 스키인이자 엄마인 이지 린치, 그리고 자녀들과 함께. 스키라는 스포츠를 통해 부재의 간극을 메워가며 다시금 삶의 의지를 다지는 테사의 모습에서 힘든 일상에서 점점 지쳐가는 스스로를 다잡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윌 파워
포커스|40분|전체 관람가가
산이 있으니까 오른다는 말이 있다. 윌 개드도 그렇다. 그는 빙벽이 있으면 오른다. 유엔 환경위원회에서 산악 영웅으로 지정한 윌 개드는 세계 각지의 빙벽을 올라 기후 문제, 환경 문제를 전 세계에 상기시켰다. 물론 메시지와 함께 자신의 한계에 끊임없이 도전하면서 산악계에 새로운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윌 파워>는 윌 개드가 새로운 빙벽 등반에 도전하기 위해 중국을 향한 모습을 담았다. 윌 개드의 등반 도전기를 다룸과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문화와 지역에 도착한 한 사람이 어떻게 적응하며 도전을 이루는지를 포괄적으로 접근한다. 저 멀리서 촬영한 풍경을 볼 때면 가슴 벅찬 웅장함이 느껴지고, 반대로 윌 개드 개인에게 초점을 맞출 때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관객에게 전이된다. 그야말로 단짠의 맛을 담은 다큐멘터리.
쿰바카르나 : 그림자의 벽
국제경쟁 / 넷펫|95분|전체 관람가
산에 등정하는 것. 우리는 그걸 위대한 여정에 비유하곤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명예나 위대함이 아닌 생계 때문에 산에 오른다. <쿰바카르나 : 그림자의 벽>은 독특하게도 셰르파 가족이 주인공이다. 셰르파 가족은 유럽에서 온 원정대와 함께 히말라야의 자누(쿰바카르나) 정상으로 향하는데, 이들의 목적은 하나다. 아들의 학비를 버는 것. 자누는 현지에서 '신의 저주를 받은 산'이란 신화가 있는 금기의 공간이다. 그러나 셰르파 가족은 그 금기의 땅을 밟기로 결정한다. <쿰바카르나 : 그림자의 벽>은 원정대가 아닌 셰르파들에게 시선을 돌린 것처럼, 화려한 영상미 대신 색감을 최대한 뺀 영상으로 산악의 쓸쓸한 풍경을 포착한다. 산에 오를 수밖에 없는 셰르파들의 얼굴이 드라마를 형성해 관객들에게 다가온다. 산악인 가족을 잃은 경험으로 카메라를 들어 <하늘을 향한 여정, K2>를 제작한 엘리자 쿠바르스카 감독의 시선은 여전히 등정이 아닌 등정을 선택한 사람들에게로 향한다.
라스트 아이스
파노라마|83분|12세 관람가
지구 온난화, 빙하 해빙... 이런 뉴스를 한 번도 못 들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두가 알고는 있는데, 그동안 빙산이 녹고 갈 곳 잃은 동물들의 모습은 종종 봤음에도 쉽게 체감하긴 어려운 현실. 그런 사람들에게 <라스트 아이스>는 이누이트 족의 현실을 제시하며 주의를 환기한다. 일반적으로 북극은 그저 '자연'이란 카테고리의 이미지로 머물지만 이누이트족에겐 그곳은 삶의 터전이며 현실 그 자체다. 그러나 기후 변화로 해빙이 빨라지는 시기에도 세상은 그들의 현실이 아닌 자신들만의 허구를 꾸며냈고 결국 캐나다와 그린란드의 이누이트족은 힘을 합쳐 세상에 진실을 알리기로 결심한다. 이들의 움직임에 내셔널지오그래픽을 포함해 여러 환경 공동체가 힘을 실어 이번 <라스트 아이스>가 탄생했다. 광활한 북극 바다가 안겨주는 청량감 뒤로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현실에 다가올 때, 입안에 맴도는 씁쓸함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면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보금자리
투게더|8분|전체 관람가
애니메이션 <보금자리>는 화면만 보면 정말 예쁘다. 그 아름다움이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서늘하게 강조한다. 털실 하면 따뜻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보금자리>는 고정관념을 뒤집어 북극곰을 털실로 표현했다. 북극의 빙하 또한 스티로폼 재질을 시각적으로 활용해 언제라도 쉽게 부서질 수 있는 현 상황을 은유했다. <보금자리>는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긴 북극곰 두 마리가 주인공이다. 8분이란 짧은 시간에 자연 보호와 이민, 꾸준히 논의가 필요한 주제를 혼합한 스토리가 인상적이다. <보금자리> 제작진이 도달한 결론이 과연 현실에서도 실현 가능한지는 차치하더라도 한 번쯤 우리의 문제를 다시 환기하는 목적은 성공한 듯하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