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지위 때문에 모두가 두려움의 눈으로 바라볼 때엔 보이지 않던 매력이, 그 조건을 지우고 오롯이 ‘나상실’만 바라보는 순간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서 다시 처음부터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 해보신 적이 있으신지? 나는 자주 한다. 살면서 뿌듯하고 보람찼던 순간만큼이나, 후회와 회한으로 가득 차서 달아나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던 탓이다. 그 동안 자다가 걷어찬 이불은 몇 장이며, 식은 땀으로 일어난 새벽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탓에 가끔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간절하게 기도한다. 제발, 아무도 저를 모르는 곳에서, 저 자신조차 제 창피함을 기억하지 못하게 다 잊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주세요. 안다. 일어나기 어려운 상황을 가정해가면서까지 도망가고 싶은 마음의 이름은 ‘비겁함’이고, 그런 상황을 상상할 시간에 눈 앞에 놓인 삶을 잘 사는 게 더 남는 장사라는 것을. 하지만 상상이 좋은 게 뭔가. 혼자 하는 상상 속에서는 얼마든 더 과감해지고 비겁해져도 괜찮은 게 상상의 장점 아닌가.

커트 러셀과 골디 혼 주연의 영화 <환상의 커플>(1987)을 리메이크한 MBC 드라마 <환상의 커플>(2006)은 그런 상상의 가장 끝자리에 서 있다. 어릴 적 부모님을 잃고 물려받은 재산을 기반으로 사업을 크게 일으켜 세운 재력가 안나 조(한예슬)는 좀처럼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차가운 사람이다. 어린 나이에 손에 쥐게 된 재산을 노리고 접근하는 사람들을 경계하다 보니,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고 귀찮은 일들은 지갑을 여는 것으로 대신하며 살았던 것이다. 자신의 주변에서 일하는 부하직원들은 물론 남편인 빌리(김성민)에게도 싸늘하기 짝이 없는 안나는, 어느 날 자신이 소유한 요트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고는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안나의 인생을 뒤바꾼 건 어쩌면 응급실 침대 배치였을지도 모른다. 마침 눈을 뜬 병원 침대가 하필이면 안나와 몇 차례 악연으로 엮이며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사이가 된 남해마을 건설업자 장철수(오지호) 옆자리였던 것이 문제였다. 자신에게 온갖 굴욕을 주었던 안나가 신분을 증명할 만한 신분증도 없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걸 알게 된 장철수는, 안나에게 당한 정신적 수모와 금전적 피해를 안나에게 150만원어치 집안일을 시키는 것으로 메우겠다는 창대한 복수의 계획을 세운다. 장철수에게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남해 여인 나상실’이라는 가짜 정체성을 부여받은 안나는, 장철수의 손에 이끌려 그와 그의 세 조카가 살고 있는 집에 오게 된다.

원작 영화에서는 조안나(골디 혼)가 거친 블루칼라 노동자 딘(커트 러셀)에 의해 일방적으로 끌려 다녔지만, 드라마 판에선 권력구도가 사뭇 다르다. 드라마 속에선 단 한 순간도 장철수가 나상실을 압도하지 못하고 나상실의 페이스에 질질 끌려 다닌다. 일평생 마음에 없는 소리는 못 하고 집안일 따윈 해본 적 없는 안나는, 나상실이 된 이후에도 같은 삶의 태도를 유지한다. 그는 여전히 집안일을 시키는 장철수의 말을 귓등으로 넘기기 일쑤다. 나상실이 해먹은 세간살이가 150만원어치 손실이 났으면 났지, 죽었다 깨어나도 장철수가 나상실로부터 150만원짜리 노역을 뽑아내진 못했으리라.

대신 안나가 지니고 있던 매력들은 나상실이 되어서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 일평생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 앞에서도 꿀려 본 적 없던 안나의 거만함은,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남해마을 ‘미친 년’ 나상실의 자리로 가자 당당함이 된다. 부하 직원들을 평가하던 안나의 냉철함은, 나상실의 자리로 가자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한 명민함이 된다. “지나간 짜장면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은 안나가 했다면 냉혹한 이야기처럼 들렸겠지만, 나상실의 입에서 나오자 스스로 내린 선택을 책임지는 삶의 자세에 대한 교훈이 된다. 돈과 지위 때문에 모두가 두려움의 눈으로 바라볼 때엔 보이지 않던 매력이, 그 조건을 지우고 오롯이 ‘나상실’만 바라보는 순간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기억을 되찾은 안나가 빌리의 곁에 머무는 것을 선택하는 대신 장철수의 옆으로 돌아간 것은 장철수를 향한 사랑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상황과 환경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이라는 환상의 정체는 어쩌면 그런 건지도 모른다. 아무도 나의 출신 가문이나 학력, 살림살이나 오래 전에 지나와서 이제는 유효하지 않은 과거의 일들로 나를 평가하지 않는 곳.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내 모습 그대로를 바라봐 주는 곳에 가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욕망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나상실/안나만큼 당당하고 명민하며 매력적이지 않고, 기억을 잃고 뚝 떨어진 곳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줄 사람들로 가득할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니, 현실을 사는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건 차선일 것이다. 일단 나부터 내 앞에 서 있는 상대가 누구이며 과거에 무슨 일을 했고 자산이 얼마가 되는가 따위에 얽매지 않는 일. 있는 그대로의 상대만을 판단하고 상대하는 일. 나부터 상대를 그렇게 대한다면, 혹시 또 아는가. 상대도 나를 그렇게 대해줄지.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