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살소설가>

극장에 걸리진 않았지만 이대로 놓치기 아쉬운 영화들을 한 주에 한 편씩 소개합니다.

<척살소설가>는 4월 15일(목) 올레TV에서 '올레TV 초이스' 서비스를 통해 국내 최초로 단독 공개됩니다.


현실과 판타지의 기묘한 줄타기

관닝

소설가 루쿵원

관닝(뇌가음)은 6년째 유괴된 딸 샤오쥐쯔를 찾아 헤매고 있다. 매일 밤 그는 다른 세계의 도성과 샤오쥐쯔가 나오는 꿈을 꾸지만, 잠에서 깨면 샤오쥐쯔를 찾지 못한 현실에 절망한다. 그런 관닝의 앞에 대기업 알라딘의 회장 리무 밑에서 일하는 투링(양미)이란 여성이 나타난다. 투링은 관닝에게 샤오쥐쯔를 찾아주는 대신 소설가 루쿵원(동자건)을 죽여줄 것을 제안한다. 루쿵원이 쓰는 소설이 진행될수록 리무의 건강도 악화되기 때문. 일종의 초능력을 가진 관닝은 루쿵원에게 접근하는데, 경계심이 없는 루쿵원은 관닝을 도리어 소설 속 캐릭터로 승화한다. 루쿵원을 죽여야만 잃어버린 딸을 찾을 수 있는 관닝, 그러나 루쿵원의 소설과 현실이 기묘하게 닮았다는 걸 알게 되면서 새로운 갈림길에 서게 된다.


흥미진진 이중 플롯

소설의 주인공 쿵원

판타지라 함은 보통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상상의 세계를 가리킨다. 그래서 현실과 얼마나 다른지, 얼마큼 참신한 세계를 구성하는지를 판타지의 척도로 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전 세계를 뒤흔든 <해리 포터> 시리즈가 그렇듯, 때론 현실에 기반한 또 다른 세계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판타지가 되기도 한다. <척살소설가>는 그런 현실과 판타지가 포개질 때 발생하는 재미를 극한까지 끌어낸다. 전개의 기폭제인 자식이 유괴된 아비 관닝의 마음은 관객 누구라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기틀을 잡아주고, 소설 속 쿵원의 여정은 판타지 모험의 재미를 더한다. 이런 현실적인 요소와 현실과 다른 소설 속 세계가 만나니 현실의 페이소스에 이세계(異世界)의 경이로움이 더해져 독특한 재미를 안겨준다.

투링

글로 보면 <척살소설가>가 무척 복잡하게 보일 수 있는데, 이 영화의 똑똑한 점은 여기에 있다. 이런 이야기를 전혀 어렵지 않게 전한다는 것. 관닝은 샤오쥐쯔를 찾아야 하고, 투링은 어떻게든 관닝이 루쿵원을 죽이게끔 해야 하고, 루쿵원은 소설을 완성해야 한다. 각 인물들의 목표가 뚜렷하고 이를 관객들에게 정확하게 설명하기 때문에, 여러 시간과 공간이 겹치는 이야기에도 그들이 나아가는 방향이 명확하게 보인다. 마치 스릴러 같은 구성과 시놉시스지만 이야기를 전달하기 때문에 판타지 특유의 모험이 훼손되지 않고 오히려 일반적인 판타지 영화보다 더 풍부한 볼거리와 감정을 선사한다.


휘황찬란 대신 현실감을 선택한 중국 판타지

소설 속 세계는 이런 식으로 다크 판타지에 가깝다.

중국 판타지라면 손사래부터 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공간과 디자인이 항상 휘황찬란하고, 나풀거리는 옷을 입은 이들이 경공술로 날아다니면서 칼질하는 거 아냐? <척살소설가>는 이런 중국 판타지(정확하게는 무협 판타지)의 획일화에서 벗어난다. 현실과 소설의 이야기가 중첩된다는 점에서 살기 힘든 퍽퍽한 현실의 이면처럼 소설 속 세계도 어느 정도 현실적인 질감을 추구한다. 그리고 전체적인 디자인 또한 중국풍의 화려함 대신 어두운 색감과 거친 질감의 다크 판타지풍을 선택해 독자적인 세계를 소개한다.

이 소설 속 세계에서 펼쳐지는 모험 또한 장대하다. <척살소설가>의 영제는 '라이터스 오디세이', 작가의 서사시란 뜻이다. 오디세이란 단어를 사용한 만큼 루쿵원의 소설에선 전설적 존재 적발귀를 척결하기 위해 쿵원이 다양한 위기에 봉착한다. 대규모 전쟁, 위협적인 존재와의 추격전, 상상 이상의 적과 펼치는 결투까지. 두 시간이란 한정된 시간에서 얼마나 스펙터클하겠어 싶지만, <척살소설가가>는 판타지가 보여줄 수 있는 액션을 종류별로 제공하는 알찬 장면들을 반드시 만나보길 권하고 싶다.

소설 세계의 액션을 위주로 언급했지만, 현실 속 액션도 나름의 묘미가 있다. <척살소설가>의 현실은 관닝을 비롯해 각자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몸 대 몸으로 맞붙는 싸움부터 서로의 능력을 이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초현실적 대결까지 그려진다. 소설 세계가 상대적으로 화려해서 그렇지, 현실의 액션 또한 수준급이다.


미친 존재감의 캐릭터들

재밌는 영화의 조건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판타지 영화라면 꼭 필요한 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인상적인 캐릭터의 존재 유무다. <척살소설가>는 그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줘도 무방하다. 현실 파트와 판타지 파트로 나눠보면, 전자의 인물들은 우리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구석이 있다. 관닝의 가족을 그리워하는 악착같은 성격이나 루쿵원의 스스로를 책망하는 마음 등이 그렇다. 반면 판타지 세계의 인물들은 정말 괴상하고 독특한 캐릭터, 정말 ‘다른 세계’에 있을 법한 캐릭터들이 빼곡하게 차 있다.

교룡갑

홍갑무사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캐릭터는 교룡갑과 홍갑무사. 교룡갑은 쿵원에게 기생하는 갑옷으로 징그럽게 생겼지만 쿵원의 유일한 동료다. 영화 중후반부 본래 모습이 돼 펼치는 액션은 상당히 스피디하면서도 기괴한 모습이 시너지를 내 극중 가장 인상적인 순간을 안겨준다. 홍갑무사는 백성들을 통제하는, 붉은 갑옷을 입고 있는 척살귀의 부대원이다. 묵직한 무게가 느껴지는 겉모습 뒤로 한 번 정한 상대는 어떻게든 추적하는 집요함과 날랜 움직임이 돋보인다. 홍갑무사가 쿵원을 쫓는 시퀀스는 긴장감을 유발한다. 이외에도 쿵원의 복수 대상 척살귀는 '인간이 아니다'라는 설명처럼 어마 무시한 풍채로 클라이맥스에 상당한 중압감을 선사한다.


재미 보장하는 수준급 판타지

<척살소설가>는 그동안 중국 판타지에서 볼 수 없던 현실적인 질감의 판타지 서사시다. 현실과 소설이 함께 호흡한다는 설정도 제법 재기발랄하게 풀어낸다. 판타지 세계에서 펼쳐지는 모험과 대결은 이 영화를 선택한 관객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기 충분하다. <척살소설가>는 대중이 열광한 작품들의 레퍼런스를 절묘하게 조합하여 자신만의 레시피로 승화시킨다. 수많은 영화 중에서 오랜만에 '탈중국'적인 느낌으로 이 정도의 감각과 재미를 뽑아낸 <척살소설가>를 극장에서 만날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