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커버>

조금 과격한 말을 쓰자면 흔해 빠졌다는 말이 어울릴까. 언더커버(Undercover)는 십수 년 동안 범죄 영화에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소재 중 하나다. 언더커버의 정확한 뜻은 몰라도, 우리는 언더커버 영화들을 잘 알고 있다. 국내 영화로는 <신세계>(2013) <무뢰한>(2015)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를 예로 들 수 있겠고, 좀 더 멀리 눈을 돌리면 <무간도>(2002) <저수지의 개들>(1992) <디파티드>(2006)가 떠오른다. 단체나 조직에 신분을 위장해 잠입한 언더커버. 이들을 조명한 영화나 드라마들은 소재 자체로만 놓고 보면 새로울 것이 없다. 아니다 없다고 생각했다. 영국 BBC 드라마 <언더커버>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니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제목부터 <언더커버>인 이 드라마를 재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설명이 길었다. <언더커버>는 '20년을 함께한 남편이 나를 감시하는 언더커버였다면?'이라는 물음표에서 시작하는 드라마다. <언더커버>는 어떤 답을 보였을까. 오랜만에 소파에서 등을 떼게 만든 드라마, <언더커버>는 오직 웨이브에서만 만날 수 있다.


기만 그리고 배신

"20년 동안 함께 산 남편이 실은 나를 감시하는 언더커버였다"

<언더커버>의 첫인상은 당혹감일 수 있다. 기존의 언더커버 작품들을 떠올리고 이 드라마를 재생한 이들이라면 말이다. 초반부터 쉴 새 없이 조직의 비밀을 나열하고, 언더커버가 될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의 사연을 늘어놓는 작품들과는 달리 <언더커버>는 '언더커버가 아닌' 주인공의 뒤를 재빠르게 쫓는다. 인권 변호사이자 존경받는 법정 변호사 마야 코비나(소피 오코네도)는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일과 가정을 모두를 살뜰히 챙기는, 완벽한 '워킹맘'이다. 그녀가 일과 가정의 균형을 이토록 잘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남편 닉 존슨(에드리안 레스터)의 공이 컸다. 작가로 일하며 아내의 외조를 도맡은 건 물론, 세 남매를 물심양면으로 돌봤으니 말이다. 마야 코비나의 삶은 풍요롭고 완벽해 보인다. 물론 우리는 알고 있다. 대개 모든 드라마가 그렇듯, 이 드라마 역시 그 완벽함에 금이 가기 시작하며 달려 나갈 것이라는 걸.

오프닝으로 돌아가 볼까. 루이지애나주 110번 고속도로. 시속 180km는 돼 보이는 속도로 달리는 차를 비추며 <언더커버>는 문을 연다. 핸들을 잡은 이는 마야 코비나(소피 오코네도). 다급해 보이는 그녀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교도소다. 마야 코비나는 지난 20년 동안 살인죄로 억울하게 수감된 루디 존스(데니스 헤이스버트)를 변호해왔고, 두 시간 후면 곧 루디 존스의 사형 집행이 시작되기 때문. 여기서도 우린 알 수 있다. 마야는 완벽한 사람, 아니 완벽한 변호사다. 20년이 넘도록 한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꼿꼿한 사람.

이후 <언더커버>의 본격적인 시작은 마야 코비나가 큰일을 제안받으며 시작된다. 영국 최초의 흑인 여성 검찰 기소국장 후보로 지명된 그녀는 말 그대로 역사의 한 가운데 서게 됐다. 그녀에게 이 자리가 더 귀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20년이 넘도록 싸워 온 루디 존스 사건은 물론, 20년 전 흑인 인권 운동 사건으로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제 동료의 억울함을 다시 한번 심판대에 올릴 수 있겠다는 희망을 엿봤기 때문. 여기까지 와도 이 드라마엔 '언더커버'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의외의 장면에서 스위치를 전환한다. 남편 닉에게 한 남자가 찾아온다. 남자는 말한다. 마야가 기소 국장이 되는 걸 막아야 한다고. 그 순간, 이 드라마는 언더커버 부부 스릴러로 방향키를 튼다. 그리고 마야와 닉이 처음 만난 20년 전으로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간다.


한 편의 드라마에 담긴 N가지 맛

"부부 스릴러부터 미스테리

쉽지 않은 이야기들을 품위 있게 엮어낸 데에는 <언더커버> 각본가인 피터 모팻(Peter Moffatt)의 자전적 경험이 큰 몫을 했다. 전직 변호사인 그는 꾸준히 사법 제도와 관련된, 그리고 범죄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온 스타 작가다. 형사사법제도의 문제점을 그린 <크리미널 저스티스>, 여성 변호사들을 내세운 <실크>를 즐겨본 이들이라면 그가 얼마나 밀도 있는 필력을 가진 작가인지 이미 잘 알고 있을 것. 제 세계관의 '끝판왕' 급으로 공을 들인 <언더커버>는 사상 최악의 인종 증오 범죄로 기록된 '스티브 로렌스 사건'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시작된 이야기다. 여기서 우린 작가가 전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언더커버>는 부부 사이의 배신과 기만을 '오락적으로' 전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다. 마야와 닉이 배신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리고 배신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을 통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질문들을 던지는 영리한 드라마다.


<굿 와이프> <부부의 세계> 보다 짙은

"부부 사이 치명적인 비밀이 생기며 벌어지는 이야기"

(왼쪽부터) BBC <닥터 포스터>, JTBC <부부의 세계>

(왼쪽부터) CBS <굿와이프>, tvN <굿와이프>

(왼쪽부터) BBC <언더커버>, JTBC <언더커버>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해서 장르적 재미가 반감됐다면. <언더커버>는 진지함만이 가득한 법정·정치 드라마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사회적인 메시지를 쥐고 있으면서도 이 드라마는 부부 스릴러, 언더커버 소재가 줄 수 있는 장르적 이점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이런 지점이 바로, JTBC가 <닥터 포스터>에 이어 <언더커버>를 리메이크하기로 결정한 이유이지 않을까. 영국 BBC에서 방영된 이 드라마는 곧 방영될 JTBC 드라마 <언더커버>의 원작이기도 하다. BBC <언더커버>가 기소국장 아내와 언더커버 경찰 남편의 이야기를 그린다면, JTBC표 <언더커버>는 공수처장 아내와 언더커버 요원 남편의 이야기를 그릴 예정.

작년 한 해 <닥터 포스터>를 리메이크한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통해 '부부 스릴러'가 가져다준 쏠쏠한 맛을 본 JTBC는 그다음 계보로 <언더커버>를 선택했다. 그렇게 유명하지도 않은 이 드라마를 리메이크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단연 장르적 ‘날’ 때문이겠다. <언더커버>는 부부 사이 치명적인 비밀과 치부가 드러나는 과정을 자극적이지 않게, '막장스럽지' 않게. 심리 묘사에 중점을 둬 격조 높은 부부 스릴러를 완성했다. 부부라는 관계의 날, 언더커버라는 장르적 날을 적절히 세우며 두 가지 소재를 적절히 잘 버무려낸 <언더커버>는 리메이크하기 참으로 적절한 ‘장르 드라마’ 중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JTBC <부부의 세계> 그리고 tvN <굿 와이프>를 즐겨본 이들이라면 <언더커버>는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부부의 세계> 1화, 이태오(박해준)의 차 트렁크를 여는 김희애의 모습이 방영되며 <부부의 세계> 시청률이 급상승했던 것처럼. <언더커버> 1화, 주차장에서 결혼반지를 빼는 닉의 모습을 본 이들이라면 이 드라마의 재생 버튼을 멈출 수 없을 것. <부부의 세계>와 <굿 와이프>가 '불륜'이라는 사적인 영역으로부터 출발하는 부부 스릴러라면. <언더커버>는 내 남편이 사실 나를 감시하기 위해,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인권 운동을 파괴하기 위해 언더커버가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다소 사회적인 영역으로부터 출발하는 드라마다. 그렇기에 <부부의 세계> <굿 와이프>와는 다른, 뻔하지 않은 전개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은 이 드라마만의 장점이기도. <부부의 세계> <굿 와이프>가 방영된 이후 BBC <닥터 포스터> (<닥터 포스터>는 현재 웨이브에서만 만나볼 수 있다.) 와 CBS <굿 와이프> 다시 보기 열풍이 불었던 것처럼. <언더커버> 역시 두 작품의 뒤를 이을 차세대 '역주행 영드(영국 드라마)'가 되지 않을지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소피 오코네도를 기억하게 될 것

"6화 내내 쏟아지는 에너지"

너무나 늦게 언급했지만. <언더커버>가 가진 모든 장르적 재미, 스토리적 재미를 차치하고. 이 드라마는 마야 코비나를 연기한 배우 소피 오코네도를 향해 기립 박수를 보내고 싶은 작품이다. 쫀쫀한 각본의 몰입감을 더한 소피 오코네도는 제 배우 역사상 가장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다. <호텔 르완다>(2004)를 통해 제77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되기도 한 오코네도는 제 역량에 비해 다소 적은 비중의 역할들을 주로 맡아왔다. <언더커버>를 통해 비로소 극의 정중앙에 서게 된 그는 기다려왔다는 듯,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여러 명의 대법관들을 상대하며 법정에서도 꼿꼿한 태도를 잃지 않았던 그가 남편의 비밀을 마주하게 된 그 순간, 순백의 정의를 쌓아가던 그의 20년이 거짓으로 얼룩진 그 순간. 그 순간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언더커버>는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발작을 일으키며 눈이 뒤집어지고, 처절하게 무너지는 그녀의 얼굴이 형형하게 남는 것과 더불어 이 드라마를 보고 나면 우린 그의 이름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배우 소피 오코네도. 소피 오코네도의 호연으로 <언더커버>는 빈틈없는 균형을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씨네플레이 유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