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영화 <낙원의 밤>에서 마 이사를 연기하는 차승원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차승원이란 배우는 정말, 코미디에 능하구나. 그저 웃기기 위한 코미디를 넘어 캐릭터의 성격을 놓치지 않으면서 관객에게 웃음을 유발하는 그의 연기는 참 위트 있고 절묘하단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 그가 코미디 영화의 황제로 정점을 찍은 2000년대 출연작을 정리했다. 그의 출연작을 보며 자란 '차승원 키즈'들이 추억에 흠뻑 빠질 만한 그의 출연작들이다.


2001년_

<신라의 달밤>_

거 아까부터 디게 꼬라보시네. 뭐 그렇게 꼬라보면 뭐 눈에서 레이저 광선 나오나?

<주유소 습격사건> 카메오 출연 이후 김상진 감독의 작품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차승원이 맡은 최기동 역은 학창 시절 친구들의 우상이자 '짱'이었으나 지금은 선생님이 된 최기동. 짱이 선생님이 되고 범생이가 조폭이 된다는 참신한 설정만큼 실제 '엄친아' 이미지가 강한 차승원이 툭툭 던지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뭉갠 코믹 연기가 영화의 화룡점정이다. 한때 자신과는 눈도 못 마주쳤을 박영준(이성재)의 성공을 시기하면서 열등감에 열혈 운동하는 장면은 지질한데 멋있는 오묘한 감정마저 들게 한다.


2002년_

<라이터를 켜라>_

<광복절 특사>_

<라이터를 켜라>

​2002년은 무려 주연작만 두 편을 공개했다. 먼저 개봉한 <라이터를 켜라>는 건달 보스 양철곤 역을, <광복절 특사>는 빵 하나 훔쳐 수감된 최무석 역을 맡았다. 최종 승자는 <광복절 특사>. 김상진-차승원 조합이 다시 입증된 순간이다. 최무석이 오랜 시간 탈옥을 시도하는 시퀀스는 영화의 웃음 포인트 중 하나. <라이터를 켜라> 양철곤은 최무석에 비하면 무서운 악역이지만, 라이터를 내놓으라고 쫓아오는 허봉구(김승우)에게 무너지는 양철곤의 모습은 능청스럽기가 둘째가라면 서러운 차승원이기에 곧잘 영화에 녹아들었다.

수저만 보면 눈물나는 이 남자


2003년_

<선생 김봉두>_

영화 초반과

영화 후반의 온도차 무엇

자 그게 뭐지? (봉투요~)

각자 집에 가서 부모님과 꼭 상의해서 써오고, 알았지?

차승원의 코믹연기와 인간미가 딱 만난 영화 <선생 김봉두>. 그저 촌지만 밝히던 교사 김봉두가 강원도 산골에 있는 학교로 좌천당하면서 겪는 일을 그렸다. 사실 촌지만 밝히는 교사란 캐릭터가 호감으로 그려지기 쉽지 않으나 차승원은 본인의 능청스러운 연기를 앞세워 관객들이 캐릭터의 미운 면까지 흥미를 갖게 만들었다. 코미디에 최적화된 강원도 사투리, 탄탄한 코미디 이후 이어지는 감동, 캐릭터 간의 교감과 변화 등 흥행하는 코미디 영화의 정석을 정확하게 실현한 <선생 김봉두>, 무엇보다 '차승원 원톱 주연'의 대성공으로 방점을 찍었다.


2004년_

<귀신이 산다>_

인생 목표 새집 마련 달성! 그런데 새집에 귀신이 나온다…? 심플한 스토리를 미친듯한 웃음으로 살린 건 박필기를 연기한 차승원의 몫이다. 이전까지 영화들이 캐릭터를 중점으로 유발하는 코미디라면 <귀신이 산다>는 순간순간의 무서운 상황에 반응하는 코미디가 좀 더 많은 편. 그래서 차승원의 진짜 공포를 체험한 듯한 '미친 연기'가 영화 초반에 힘을 실어준다. 귀신 연화(장서희)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중후반은 코미디가 순한 맛이 되지만 당시 최고의 스타 차승원-장서희가 차곡차곡 쌓아가는 감정적 교류가 코미디의 빈자리를 채워준다.


2005년_

<혈의 누>_

<박수칠 때 떠나라>_

<혈의 누>

​2005년은 차승원의 변화가 가장 도드라진 해라 봐도 무방하다. 먼저 <혈의 누>는 차승원의 첫 사극, 그것도 코미디가 전혀 없는 스릴러 정극으로의 도전이었다. 차승원은 조사관 이원규 역을 맡아 영화 전반에 웃음기 하나 없이 냉철한 인물을 연기했다. 코믹 배우 이미지가 강해 몰입이 어려웠다는 평가도 없진 않았으나, 진실에 목도하면서 점차 변하는 이원규의 심리를 엔딩까지 점층적으로 쌓아가며 차승원의 연기 깊이를 재평가하게 했다.

<박수칠 때 떠나라>

​<박수칠 때 떠나라>도 '말맛'을 잘 살리는 장진 감독의 영화이라 기존의 코미디와는 또 다른 톤의 연기를 선보였다. 검사 최연기는 자신만의 철칙을 가지고 '카피라이터 정유정 살인 사건'의 생중계 수사를 맡게 된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 김영훈을 연기한 신하균과 대사를 주고받으며 차곡차곡 긴장감을 밀도 높게 쌓아가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사건이 마무리된 후 크나큰 변화를 경험한다는 점에서 <혈의 누>의 이원규와도 비슷한 궤를 가는 캐릭터. 2005년의 이 두 작품은 역대급 흥행까지 아니었으나 대중적인 성공과 완성도의 호평 모두 잡으면서 차승원의 대표작으로도 안착했다.

너 이제부터 나한테 애기 할 때 1형식 문장으로만 말해. 주어, 동사, 그걸로만 말해. 쓸데없는 목적어나 목적보어, 형용어구 관용어구 넣었다간 이빨 다 부셔버릴거야. 알았어?


2007년_

<이장과 군수>​_

'20년째 라이벌'이 아닌 20년 넘게 우정을 쌓은 두 배우의 공동 주연작

개봉 당시보다 지금 더 많이 관심을 받는 영화 <이장과 군수>. 흥행에서는 조금 아쉬웠지만 지금은 '삼시세끼' 차승원-유해진 콤비의 주연작이라 은근히 자주 거론된다. 차승원은 최연소 이장 조춘삼을, 유해진은 군수 노대규를 연기한다. 어떻게 보면 <신라의 달밤>의 정치 버전 같지만, 코믹 연기에 일가견 있는 두 배우의 진검승부가 상당하다. 특히 차승원은 이 영화에서 손뼉 치는 연기, 큰일(?)을 참는 장면 등이 밈으로 승화돼 2000년대 말 인터넷을 휩쓸기도.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