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맥도맨드가 제작과 주연을 맡은 <노매드랜드>가 상영 중이다.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그 이후의 삶을 더듬어나가는 펀의 마음을 표현하는 맥도맨드의 명연을 만날 수 있다. 역시 세상 보는 눈은 다 비슷한 걸까.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다시 한번 프란시스 맥도맨드의 이름을 호명했다. 우리 시대의 전설적인 배우 프란시스 맥도맨드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모았다.


신시아 앤 스미스는 태어난 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캐나다 출신의 목사와 병원 접수원인 맥도맨드 부부에게 입양되어 프란시스 루이스 맥도맨드로 이름을 바꿨다. 다른 형제자매 모두 맥도맨드 부부가 입양했다.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펜실베니아에 정착하기 전까지 일리노이, 조지아, 켄터키, 테네시주 등으로 이사를 다녀야 만했다.

1997년 오스카 여우주연상 수상 당시 맥도맨드 부부

<마지막 카니발>을 공연 중이던 80년대 초

── 1979년 웨스트버지니아의 베너시칼리지에서 학사, 1982년 예일대학교 드라마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80년대 초 뉴욕에 거주할 당시, (훗날 <피아노>(1993)로 맥도멘드보다 3년 먼저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배우 홀리 헌터와 룸메이트였다. 나중에 두 사람은 LA로 이사해 코엔 형제, 샘 레이미 감독과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블러드 심플>

연극 무대에서 처음 연기 경력을 시작한 프란시스 맥도맨드의 영화 데뷔작은 코엔 형제의 첫 장편이기도 한 <블러드 심플>(1984)이다. 홀리 헌터가 먼저 주인공 애비 역의 오디션을 봤지만 당시 뉴욕의 한 연극에 참여하게 돼 포기하고, 맥도맨드에게 오디션을 보라고 추천해 성사된 캐스팅이었다. 맥도맨드와 헌터는 코엔 형제의 다음 영화 <아리조나 유괴사건>(1987)에 함께 출연했다. <아리조나 유괴사건> 속 캐릭터 이름 ‘닷’은 여동생 도로시의 애칭이기도 하다.

<아리조나 유괴사건>의 프란시스 맥도맨드와 홀리 헌터

── 오디션에서 처음 만난 맥도맨드와 조엘 코엔 감독은 <블러드 심플>이 처음 공개된 1984년에 부부가 됐다. 결혼식에서 코엔이 맥도맨드에게 끼워준 반지는 몇 년 전 이혼한 전처의 것이었다.

프란시스 맥도맨드와 조엘 코엔

── 영화뿐만 아니라 TV드라마와 연극 무대에서도 활약했다. 80년대의 대표적인 경찰 드라마 <힐 스트리트 블루스>의 시즌 5에 참여하고, 1988년엔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스텔라 역을 맡아 토니 어워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힐 스트리트 블루스>

<미시시피 버닝>

── 앨런 파커 감독의 <미시시피 버닝>(1988)에서 브래드 듀리프(<사탄의 인형> 시리즈에서 처키 목소리의 그 배우!)와 부부 역할을 맡은 데 이어, 2년 뒤 켄 로치 감독의 <히든 아젠다>(1990)에서도 부부로 출연했다.

<히든 아젠다>

<고독한 투쟁>

── 게리 올드만과 <고독한 투쟁>(1989)에서 부부를 연기했다. 맥도맨드와 올드만은 201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나란히 여우주연상(<쓰리 빌보드)과 남우주연상(<다키스트 아워>)을 받았다.

게리 올드만과 프란시스 맥도맨드

── 초창기에 <크라임웨이브>(1985)를 함께한 바 있는 샘 레이미의 <다크맨>(1990)에서 주인공 페이튼(리암 니슨)의 연인으로 출연했는데, 창작 견해차로 마찰이 있었다. 맥도맨드는 제 캐릭터 줄리를 “내가 처음으로 연기한 멍청한 여자”라고 말했다. 이후 맥도맨드와 레이미는 다시 작업하진 않았지만, 맥도맨드/코엔 부부와 레이미는 여전히 친구 사이다.

<다크맨>

── 프란시스 맥도맨드와 조엘 코엔은 1995년 파라과이에서 페드로를 입양했다. “태어난 지 6개월 된 페드로를 끌어안고 그 내음을 맡자마자, 이 아이를 살아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임무라는 걸 깨달았어요.” 페드로는 맥도맨드 코엔이라는 성을 갖게 됐다.

──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파고>에서 러닝타임의 1/3이 지난 시점에서야 처음 등장한다.

── <파고>(1995) 캐스팅 당시 킬러나 매춘부 역할을 찾던 중이라 아이를 가진 경찰 역을 망설였다. 작업을 시작했을 때 마지 역이 이제껏 받은 선물 중 최고라는 걸 깨달았다고.

── 배에 새모이로 채운 베개를 끼고 마지 역에 임했다. 실제 임신한 경찰과 일하면서 캐릭터를 연구하긴 했지만, 임신한 것처럼 움직이는 걸 연습하기보다 그저 몸무게가 불었다는 것만 상정하고 자연스럽게 움직이려고 했다.

── <파고>의 마지 역으로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함께 후보에 오른 배우는 <마빈의 방>의 다이안 키튼, <브레이킹 더 웨이브>의 에밀리 왓슨,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비밀과 거짓말>의 브렌다 블레신이었다. 맥도맨드의 이렇게 수상 소감을 마쳤다. “<파고>의 공동 각본가이자 프로듀서인 에단 코엔, 그는 저를 배우로 만들었어요. 그의 형인 조엘 코엔은 저를 여자로 만들었고요. 그리고 달님이자 햇님인 페드로 맥도맨드 코엔은 저를 진정한 엄마로 만들었습니다.”

<노스 컨츄리>

── 2005년, 맥도맨드는 샤를리즈 테론과 작업한 전혀 다른 영화 두 편을 내놓았다. 만화를 영화로 옮긴 히어로물 <이온 플럭스>와 미국 최초로 여성 피고가 성희롱 소송에서 승소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노스 컨츄리>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 맥도맨드는 조엘 코엔과 가장 많은 작품을 함께 한 배우다. 19편의 장편영화 가운데 맥도맨드가 참여한 작품은 9편이다. <블러드 심플>, <아리조나 유괴사건>, <밀러스 크로싱>(1990), <바톤 핑크>(1991), <파고>,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2001), <번 애프터 리딩>(2008), <헤일 시저>(2016), 그리고 조엘 코엔이 혼자 연출한 신작 <맥베스의 비극>이다.

<번 애프터 리딩>

<헤일 시저>

── 2009년 퓰리처상을 받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의 판권을 구입해 프로듀서 역할까지 맡아 미국 드라마의 명가 HBO와 함께 4개 에피소드짜리 TV시리즈를 만들었다. <아메리칸 퀼트>(1995)의 제인 앤더슨이 각본을, <에브리바디 올라잇>(2010)의 리사 촐로덴코가 감독을, 리차드 젠킨스가 주연을 맡게 된 것도 맥도맨드가 직접 관여했다.

<올리브 키터리지>

<쓰리 빌보드>

── 마틴 맥도나 감독은 프란시스 맥도맨드를 주인공으로 생각하면서 <쓰리 빌보드>(2017)의 시나리오를 썼다. <쓰리 빌보드>를 통해 딸이 잔인하게 살해당했지만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 세상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여자 밀드레드를 연기해 두 번째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수상 소감 중 여성 영화인들을 일으켜 세워, 소위 A급 배우가 출연 계약 시 여성, 유색인종, 성소수자, 장애인 등 다양한 인물을 배우 및 제작진으로 구성할 수 있게끔 요구할 수 있는 조건인 ‘포용 특약’(Inclusion Rider)이라는 개념을 주창해 화제를 모았다. 한편, 오스카 트로피를 도난당했다가 되찾는 해프닝도 있었다.

── ‘트리플 크라운 오브 액팅’(Triple Crown of Acting). 영화의 오스카, TV의 에미(Emmy), 브로드웨이의 토니(Tony) 어워드를 모두 수상한 배우를 칭하는 말이다.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2011년 <굿 피플>로 토니 어워드 여우주연상, 2015년 <올리브 키터리지>로 에미 어워드 여우주연상과 작품상을 동시에 수상해 이를 달성한 25번째 배우가 되었다.

토니 / 에미 어워드 수상 당시

──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의 프로듀서 피터 스피어스와 2017년 제시카 브루더의 논픽션 <노매드랜드>의 판권을 구입했다. 감독을 물색 중이었던 맥도맨드는 <쓰리 빌보드>가 상영됐던 2017년 토론토 영화제에서 클로이 자오 감독의 <로데오 카우보이>를 보고 자오를 감독으로 영입하기로 마음먹고, 2018년 3월 자오가 연출과 각본을 맡기로 결정됐다. 원작의 메인 캐릭터이자 실제 노마드인 린다 메이가 영화 주인공으로 캐스팅 됐으나, 자오가 맥도맨드에게 주인공 역을 맡아달라고 청하면서 그가 연기한 펀이 주인공이 됐다. 맥도맨드는 <노매드랜드>의 모든 장면에 등장한다.

<노매드랜드> 현장의 클로이 자오와 프란시스 맥도맨드

── <노매드랜드>를 통해 맥도맨드는 이번 오스카에서 (프로듀서 자격으로)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두 부문 후보에 올랐다. 그리고 모두 수상했다. 그렇게 맥도맨드는 (캐서린 헵번에 이어)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세 번 받은 두 번째 여성배우이자, 작품상과 주연상을 동시에 안은 최초의 여성배우가 되었다.

프란시스 맥도맨드와 클로이 자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