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 걸리진 않았지만 이대로 놓치기 아쉬운 영화들을 한 주에 한 편씩 소개합니다.
<기문둔갑>는 4월 29일(목) 올레TV에서 '올레TV 초이스' 서비스를 통해 국내 최초로 단독 공개됩니다.
"기문둔갑(奇門遁甲)은 자연의 모든 것이며 오행과 음양 그리고 발전하고 변화하는 그 모든 현상이다. 기문이란 만물을 포괄하는 법술이며, 갑은 힘의 원천이다. 갑은 기물 밖으로 숨어야 진정한 위력을 발휘한다. "
<기문둔갑> 중
음양의 변화에 따라 몸을 숨기고 길흉을 택하는 용병술. <기문둔갑>은 제목이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는 영화다. 영제 역시 직관적이다. 'Fantasy Magician'. 간편하게 요약하자면 이 영화는 판타지 마술사(!)들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동양의 무협 판타지. 그 중심엔 '주동'이란 인물이 서 있다.
영화가 브레이크도 없이 뻗어 나가기 시작하는 건 주동의 아버지가 세상을 어지럽히는 요괴들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제 아버지의 옥살이를 눈앞에서 지켜본 주동이 피끓는 복수를 다짐하는 그 순간. 주동 앞에 나타난 한 노인이 모든 힘의 원천인 '기문둔갑'을 전수해주며 주동은 평범한 시민에서 특별한 능력을 지닌 초능력자로 변신한다.
남다른 능력을 가지게 된 주동은 아버지를 궁지에 빠뜨린 요괴들에 복수하기 위해 정진하지만, 비범한 능력을 거머쥔 주인공을 고분고분하게 놔둘 리가 없다. 이 구역의 '빌런'. 각종 요괴들이 주동의 능력을 빼앗으려 혈안이 됐기 때문. 특히 최강 빌런 요괴 '필방'은 800년간 봉인되어있는 자신을 풀어줄 힘이 주동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주동을 쫓는다. 주동은 이 과정에서 제 능력치를 가다듬어줄 네 명의 도사들을 만나 부적술, 체술, 둔술 등을 익히며 서서히 몸집을 불리기 시작한다. 주동은 제힘을 잃지 않고 요괴들을 물리칠 수 있을까.
킬링타임용 무협/오락 영화로 제격인 이유
평상시 무협 영화를 즐기지 않는 이들이라면 <기문둔갑>은 어쩐지 진입장벽이 높게 느껴지는 영화다. 줄거리만 읽어선 요괴, 둔술, 부적술, 도사… 꽤나 복잡다단한 사건들이 얽히고 얽혀있는 방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소 낯선 용어들이 등장하는 건 사실이나 영화는 그 모든 것을 친절하게, 하지만 지지부진하지 않고 빠르게 풀어나간다. <기문둔갑>이 지닌 훌륭한 장점 중 하나다. 영화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무은문파의 사부가 "내 가족들도 요괴들의 손에 죽었다"며 주동의 어깨를 감싸 쥐는 장면. 자칫하면 그 인물의 전사를 구구절절하게 풀어놓을 법도 하지만, 영화는 말을 아낀다. 주동을 중심으로 등장하는 벼룩이, 요술 사부, 낙군 사부, 원숭이 사부 등 주요 캐릭터가 가진 '초능력'만을 드러낼 뿐, '그들이 왜 이런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관한 플래시백이라던가 눈물을 쥐어짜는 이른바 '신파'가 일절 없다. '복수'라는 키워드로 중심을 꼿꼿하게 세운 영화는, 기문법술을 익혀가는 주동이 요괴들에 복수를 해나가는 과정에 오롯이 집중한다.
이 영화가 얼마나 알차게 이야기를 꾸렸는지는 러닝 타임에서도 또렷하게 드러난다. 83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을 가진 <기문둔갑>은 빠릿빠릿. 부지런하게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오랜만에 킬링타임용 무협 영화를 찾고 있는 이들이라면, <기문둔갑>은 지루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떠오르는 이유
판타지 무협이라는 대찬 소개답게 <기문둔갑>은 CG를 즐기는 맛이 우선시 되는 영화다. 간결한 스토리를 가졌지만, 이 영화가 납작하지 않은 오락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건 시각적인 재미를 꽉 붙들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영화 곳곳에서 펼쳐지는 '부적술(부적을 이용한 공격)'이 압권. 도사의 몸을 감싸고, 상대방의 시야를 가리는 부적술이 펼쳐지는 모습에서 동양 무협 판타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가득하기 때문. 물론 도사들을 상대하는 요괴들의 디테일 역시 섬세하다. 제 몸을 자유자재로 변형하는 거미요괴의 몸짓은 CG라는 사실도 잊게 만들 만큼 리얼하다.
몇몇 장면에서는 <닥터 스트레인지> 속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여러 기술을 단련하던 카마르 타지 속 일련의 장면들이 겹쳐 지나간다. 기문법술을 펼치는 무은문파 도사들과 요괴들의 치열한 대치신에서 <닥터 스트레인지> 속 스트레인지와 캐실리우스의 대결이 떠오르기 때문인데. 그만큼 카마르 타지를 연상시키는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각종 술법이 화려하게 표현되어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와의 공통점을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의 재미는 평범한 사람이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되며 시작된다. 어설픈 솜씨로 마술을 조작하던 스트레인지가 그랬던 것처럼, <기문둔갑>에서도 서툴게 기문법술을 익혀가는 주동의 성장과 변화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극이 시작한 지 20분도 채 되지 않아 펼쳐지는 무은문과 요괴들의 대결, 그리고 술법을 익히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닥터 스트레인지>와 닮은 점을 찾아보는 것. <기문둔갑>을 더욱 재밌게 즐기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겠다.
무공 액션을 완벽하게 소화한 배우들
<기문둔갑>의 수준 높은 CG가 '판타지'를 책임졌다면, 배우들의 수준 높은 액션은 무협 장르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아무리 고퀄리티 CG가 화면 위에 안착했다 한들 배우들의 몸짓과 자연스레 어울리지 않았다면, CG만이 둥둥 떠다니는 영화가 됐을텐데. <기문둔갑>은 CG와 액션의 알맞은 조화를 통해 '판타지 무협'이라는 제 장르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다양한 앵글을 시도하며 배우들의 움직임을 역동적으로 담아낸 감독의 공도 크지만, 다소 어색하게 묘사될 수 있는 술법들을 자연스럽게 표현해낸 배우들에게 더 큰 공을 돌리고 싶다. 오랜 시간 무술을 연마한 듯 보이는 배우들의 움직임은 주동이 처음으로 무은문에게 각종 술법을 배우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진법, 체술, 부적술, 어물을 차례대로 선보이는 장면. 배우들의 몸짓엔 서투른 흔적이 없다. 5명의 무은문 도사들 그리고 주동이 펼치는 액션들은 무협 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공의 참맛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씨네플레이 유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