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7일(미국 현지 기준)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개최됐다. 시상식의 명성을 증명하듯 멋진 결과물을 내놓은 영화계 실력자들이 오스카 트로피를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두 주연상 수상자인 프랜시스 맥도맨드, 앤소니 홉킨스를 비롯해 이번 시상식으로 두 번 이상 오스카를 수상하게 된 이들을 소개한다.


여우주연상

프랜시스 맥도맨드

1997년 <파고>

2018년 <쓰리 빌보드>

2021년 <노매드랜드>

<노매드랜드>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은 <노매드랜드>라 할 만하다. 예년처럼 수많은 부문을 독식하진 않았지만, 작품상과 감독상 그리고 여우주연상까지 굵직한 상들은 <노매드랜드> 차지였다. 제작자로서 작품상까지 수상한 프랜시스 맥도맨드는 올해도 주연상을 받아 여우주연상 3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주연상을 2번 받은 배우는 더러 있었지만, 3번째 수상은 <링컨>(2012)의 대니얼 데이 루이스 이후 8년 만, 여성배우로 따지면 <황금연못>(1981)의 캐서린 헵번 이후 39년 만이다. 반려자인 조엘 코엔이 연출한 <파고>로 처음, 3년 전 <쓰리 빌보드>로 두 번째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던 맥도맨드는 <노매드랜드>에서도 눈부신 연기를 보여줬음에도 아카데미 수상의 바로미터가 되곤 하는 골든 글로브, 전미비평가협회상 등에선 수상하지 못했는데, 아카데미 협회의 선택은 결국 맥도맨드였다. 하나 더 특기할 만한 점. 주연상 후보에 오른 해에 맥도맨드는 단 한번도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은 반면, 조연상 노미네이트엔 모두 고배를 마셨다.

<파고>

<쓰리 빌보드>


남우주연상

앤소니 홉킨스

1992년 <양들의 침묵>

2021년 <더 파더>

<더 파더>

치매를 앓는 아버지의 혼란을 끄집어낸 명연으로 일찌감치 강력한 남우주연상 후보로 점쳐졌던 앤소니 홉킨스는 83세 나이에 수상해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1989)로 수상한 당시 80세 제시카 탠디의 '최고령 주연상' 기록을 21년 만에 경신했다. 1992년 <양들의 침묵>에선 러닝타임의 20% 남짓에 해당하는 24분 출연 분량만으로 수상했다면, <남아 있는 날들>(1993)과 <닉슨>(1995) 이후 오랜만에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더 파더>는 가히 앤소니 홉킨스의 원맨쇼라 할 만큼 그를 위주로 돌아가는 작품이다. 연출과 각본을 맡은 플로리언 젤러는 <더 파더>의 주인공은 무조건 홉킨스가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시나리오를 썼기에 캐릭터 이름도 앤소니였고 심지어 생일도 실제 홉킨스의 것과 일치한다. 두 작품 속 홉킨스의 극명한 차이는 물리적인 비중만이 아니다. 매순간 확신에 찬 눈빛으로 상대의 이성을 장악하는 한니발 렉터와 기억의 오류가 거듭되는 혼란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앤소니는 서로 완전히 딴판이다. 그걸 가능케 하는 것이 대배우의 힘이리라.

<양들의 침묵>


각색상

크리스토퍼 햄프턴

1989년 <위험한 관계>

2021년 <더 파더>

<더 파더>

<더 파더>를 통해 한번 더 오스카를 수상하게 된 또다른 인물, 바로 각색상의 크리스토퍼 햄프턴이다. 햄프턴은 플로리언 젤러 감독이 2012년 처음 선보인 연극 <더 파더>를, 젤러와 함께 영화 시나리오로 옮겼다. 영화보다 훨씬 이전에 연극계에서 활동해온 그의 첫 번째 오스카 수상 역시 연극과 관련한 작품. 프랑스 혁명 이전 배경의 시대극 <위험한 관계>(1988)는 피에르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소설을 원작 삼아 집필한 동명의 연극을 영화화했다. 원작자인 햄프턴은 직접 각색까지 도맡아 영화까지 성공으로 이끌었다. 이후 <어톤먼트>(2007)로 각색상 후보에 올라 수상하진 못했지만, 플로리언 젤러의 프랑스어 희곡들을 2014년부터 줄곧 영어로 번역해오며 쌓인 남다른 파트너십이 담긴 <더 파더>는 햄프턴에게 두 번째 오스카 트로피를 선사했다.

<위험한 관계>


장편 애니메이션상

피트 닥터

2010년 <업>

2016년 <인사이드 아웃>

2021년 <소울>

<소울>

'장편 애니메이션'은 2002년 처음 신설된 부문이다. 픽사 창립작 <토이 스토리>(1995)로 각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피트 닥터는 감독 데뷔작 <몬스터 주식회사>로 첫해 후보에 올랐지만, 드림웍스의 <슈렉>(2001)에게 밀려 수상하진 못했다. 이후 닥터는 <업> <인사이드 아웃> 최신작 <소울>까지 총 세 작품을 더 연출했고, 모두가 장편 애니메이션을 수상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픽사의 동료 브래드 버드, 조나스 리베라, 앤드류 스탠튼, 리 언크리치 등과 함께 2관왕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올해 <소울>까지 수상하게 되면서 유일한 3관왕이 됐다. 픽사의 CCO를 맡아 한동안 연출은 하지 않을 거라고 발표했으니 닥터의 네 번째 수상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업>

<인사이드 아웃>


음악상

트렌트 레즈너 & 애티커스 로스

2011년 <소셜 네트워크>

2021년 <소울>

90년대 인더스트리얼 록의 대표주자 나인 인치 네일스를 이끈 트렌트 레즈너는 데이빗 린치 감독의 <로스트 하이웨이>(1997) 사운드트랙에 참여하면서 영화계에 발을 들여, 이전부터 협업해온 애티커스 로스와 함께 2인조 체제로 <소셜 네트워크>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만들어 본격적인 영화음악 작업을 시작했다. 2005년 데이빗 핀처 감독이 나인 인치 네일스의 'Only'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인연으로 비롯된 프로젝트. 신디사이저와 드럼 머신의 조합이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을 소셜 네트워크의 최강자로 만드는 기괴한 과정을 물 흐르듯이 수식하는 결과물은 당시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영화음악 감독 첫 작품으로 오스카 음악상을 받은 레즈너/로스 듀오는 이후 <나를 찾아줘>(2014) <버드 박스>(2018) 등을 작업했지만 오스카 후보엔 오르진 못했는데, 올해는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과 핀처의 흑백영화 <맹크> 두 작품을 후보에 올렸고, 영화에서 재즈 파트를 담당한 존 밥티스트와 함께 후보에 오른 <소울>이 수상하게 됐다.


미술상

도널드 그레이엄 버트

2008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2021년 <맹크>

<맹크>

미술감독 도널드 그레이엄 버트는 2007년 작 <조디악>부터 데이빗 핀처 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인을 전담해왔다. <조디악>에 이어 협업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1918년부터 2005년에 이르기까지 벤자민의 삶에 시대적 공기를 고스란히 담은 공간으로써 현실감을 부여하면서 오스카 미술상을 받았다. 이후 이어진 핀처와의 현대극들을 거쳐 12년 만에 작업한 시대극 <맹크>는 보수주의가 할리우드를 잠식한 1930~40년대의 풍경을 재현해 또다시 미술상을 차지하게 됐다. 눈을 사로잡기 용이한 컬러가 없는 흑백영화가 미술상을 수상한 건 <쉰들러 리스트>(1993) 이후 17년 만이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의상상

앤 로스

1997년 <잉글리쉬 페이션트>

2021년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채드윅 보스만(R.I.P)과 비올라 데이비스의 호연으로 화제를 모은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는 올해 아카데미에서 분장상과 의상상을 수상했다. 1920년대 말 재즈/블루스 뮤지션들과 당시 대중의 차림새를 제대로 구현한 이는 올해 89세의 베테랑 앤 로스다. 1957년부터 지금까지 현역으로서 영화뿐만 아니라 TV, 브로드웨이를 종횡무진해온 로스는 1985년 <마음의 고향>으로 처음 의상상 후보에 올라,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사하라 사막에서 사랑을 키워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잉글리쉬 페이션트>로 처음 오스카 트로피를 가져갔다. 전쟁 중을 배경으로 한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옷에는 화려함이란 찾아볼 수 없는 반면, 무대에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이들을 조명한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는 사뭇 달랐다.

<잉글리쉬 페이션트>


특수효과상

스콧 R. 피셔 & 앤드류 로클리

2015년 <인터스텔라>

2021년 <테넷>

<테넷>

미술감독 도널드 그레이엄 버트와 마찬가지로, 특수효과를 맡은 스콧 R. 피셔 역시 한 감독의 두 작품으로 두 번의 오스카를 받았다. 바로 크리스토퍼 놀란이다. <터미네이터 2>(1991)의 제임스 카메론,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의 스티븐 스필버그 등과 작업한 피셔는 <인셉션>(2010)부터 놀란과 협업하기 시작해 눈부신 비주얼로 우주의 풍경을 재현한 <인터스텔라>로 처음 특수효과상을 받았다. 피셔와 더불어 특수효과를 맡은 또 다른 아티스트 앤드류 로클리는 <배트맨 비긴즈>(2005)부터 놀란과 함께 작업했는데, <인터스텔라>와 올해 수상작 <테넷>은 모두 피셔와 로클리가 힘을 합친 작품이다.

<인터스텔라>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