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흔히 가정의 달이라 부른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5월이 되면 새삼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보기도 한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나에겐 어떤 의미일까. 사실 5월이 아니라도 가족의 의미 찾기는 복잡한 문제다. 영화에서 가족을 소재로 많이 다루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버이날이 있는 주말, 가족의 의미를 다루는 5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어떤 영화는 가족과 함께 보는 것도 좋겠다. 가족과 함께 보다가 민망해질 수 있는 작품도 있다.
토니 에드만
토니 에드만은 누구일까. <토니 에드만>의 제목만 보고 궁금해질 수 있다. 토니는 가상의 인물이다. 아버지(페테르 시모니슈에크)가 만들어냈다. 아버지는 장난이 심하다. 때로 가발을 쓰고 분장용 틀니를 끼고 토니를 연기한다. 한편으로는 농담중독자 같다. 재밌는 농담을 하는지는 의문스럽다. 그런 아버지는 늘 휴대전화를 붙들고 사는 잘나가는 컨설턴트인 딸 이네스(산드라 휠러)가 진정 행복한지 궁금하다. 아버지는 무작정, 불쑥, 아무런 연락도 없이 딸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간단한 시놉시스만으로 <토니 에드만>을 소개하는 건 무책임하다. 그렇다고 가상의 인물 토니가 된 아버지의 기행을 구구절절 나열하기도 그렇다. <토니 에드만>은 이상한 영화다. 아버지가 이상한 행동만 하니 이상한 영화가 됐다. 이상하다고 재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낯선 즐거움이 <토니 에드만>에 가득하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를 궁금하게 만드는 이유다. 가족, 아버지와 딸이라는 관계, 행복이라는 의미라는 식상한 소재와 주제를 <토니 에드만>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이상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상한 영화라고 해서 재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토니 에드만>의 포스터 속 이상한 이미지를 영화에서 확인하는 순간의 짜릿함을 맛본 사람이라면 아래 소개하는 가족 이야기가 심심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도쿄 소나타
도쿄의 기찻길 옆 집에 사는 한 가족이 위기에 봉착한다. <도쿄 소나타>의 첫 시퀀스는 이 불길한 위기를 암시한다. 열린 문을 통해 거실에 비바람이 들이친다. 다급하게 문을 닫고 물바다가 된 바닥을 닦던 어머니(코이즈미 쿄코)는 문득 다시 문을 열고 비바람에 몸을 맡긴다. 진짜 위기의 시작은 아버지(카가와 테루유키)의 실직이었다. 비바람을 맞던 어머니(코이즈미 쿄코)는 홀로 외로움을 견디고 있고, 큰 아들(코나야기 유)은 가족과 아무런 상의 없이 미군에 입대하기로 했다. 그는 중동의 전쟁터로 파견될 예정이다. 편의상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작은 아들 켄지(이노와키 카이)는 피아노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지만 앞서 언급한 것 같은 집안 형편이 발목을 잡는다. 그렇다고 켄지가 모범생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 역시 반항적인 아이다. <도쿄 소나타>는 러닝타임 내내 이 가족의 위기 진행상황을 지켜본다. 시간이 지날 수록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 가족은 금방이라도 산산조각날 것만 같다. 가족 구성원이 아닌 캐릭터를 연기한 아쿠쇼 코지가 등장하는 순간이 위기의 절정이다. <큐어>, <회로>, <인간합격> 등을 연출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면 <도쿄 소나타>의 이 파국이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도쿄 소나타>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필모그래피의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라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다. 파국의 끝에 아버지는 말한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구로사와 기요시의 대답은 영화의 끝, 켄지의 피아노 선율에 담겨 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이 영화가 빠지면 섭섭하다. 가족의 의미, 가정의 달 특집 영화 소개에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빼놓을 수가 없다. 사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 <걸어도 걸어도>, <태풍이 지나가고>, <바닷마을 다어어리> 같은 영화도 여기 소개하는 게 가능해보인다. 그럼에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5월 가정의 달의 영화로 가장 탁월한 선택 같아 보인다. 이유는 가족이라는 의미에 집중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언뜻 출생의 비밀을 소재로 한 주말 연속극 같은 설정을 영화에 끌어들였다. 신생아 때 산부인과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었다는 설정이다. 비슷한 설정이라고 하더라도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칸영화제가 이 영화에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이가 바뀌고 6년의 시간이 지난 뒤 영화가 시작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아버지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자신을 꼭 닮았다고 믿었던 아들이 사실은 다른 사람(릴리 프랭키)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통보 받았다. 진짜 아들과 살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키워온 아들을 받아들일 것인가. 낳은 정과 기른 정. 이 오랜 쟁점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떤 해답을 내놓았을까.
고령화가족
<고령화 가족>은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는 영화로서 비교적 편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영화들에 비하면 특히 그렇다. 왜냐면 일단 좀 웃기기 때문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 구성부터 재밌다. 철없는 백수인 첫째 아들(윤제문), 실패한 영화 감독인 둘째 아들(박해일), 결혼만 3번 한 이혼 전문 자칭 로맨티시스트 딸(공효진)이 등장한다. 이들은 다 실패한 인생처럼 보인다. 대책 없는 자식들과 되바라진 사춘기 손녀(진지희)가 엄마(윤여정)의 집에 들어앉아 지지고 볶고 사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고령화 가족>이다. 천명관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파이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 소설 원작 영화를 만든 바 있는 송해성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박해일, 윤제문, 공효진, 윤여정, 진지희 등 개성 있는 출연진을 꾸렸다는 것만으로도 소설의 영화화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눈치 빠른 사람들은 짐작하고 있겠지만 최근 <미나리>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의 출연작이라는 점에서 <고령화 가족>을 이 포스트에 포함시켰다.
캡틴 판타스틱
<캡틴 판타스틱>은 가족 자체의 의미를 탐구하는 영화가 아니다. 세상에 이런 가족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남들과 다른 삶을 선택한 <캡틴 판타스틱>의 가족은 벤(비고 모텐슨)과 6명의 자녀들이다. 그들은 숲속에 산다. 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숲의 생존 법칙을 기본으로 한 홈스쿨링으로 키우고 있다. 이 홈스쿨링도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난다. 미국 권리장전과 <총, 균, 쇠> 같은 책이 이들의 교과서다. 아이들은 새로 나온 닌텐도 게임에는 무지하지만 트로츠키나 스탈린의 정치 철학은 알고 있다. 크리스마스 대신 언어학자이자 인도주의자인 노암 촘스키를 기념하기도 한다. 벤은 학교가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킨다는 판단하고 자신만의 교육 철학으로 아이들을 길렀다. 이렇게 자본주의 세계와 담을 쌓고 살아온 가족이 엄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세상에 나온다. 장례식장에 알록달록한 원색의 옷을 입고 등장한 이들을 보는 보통 사람들의 시선은 불편하기 그지 없다. 벤의 장인(프랭크 란젤라)이 아동 학대로 벤을 신고한 것도 이해할 만하다. 여기서 논쟁이 발생한다. 벤의 결정은 정당한가. <캡틴 판타스틱>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주제를 이야기하지만 가족, 부모의 역할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