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 세상 사람들이 다 내 마음 같지 않구나.” 번잡한 멀티플렉스에 갈 때마다 늘 되뇌는 생각이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영화에 몰입하는 사이, 갑자기 환하게 켜진 휴대폰 불빛이 시야를 방해하고, 옆 사람이 쩝쩝대는 소리와 함께 심한 냄새를 풍기며 음식을 먹는 꼴을 어김없이 목격하기 때문이다. 관객으로서 경험했던 일화뿐 아니라, 극장 현장에 종사하는 관계자들에게서 들은 내용까지 엮어, 영화관에서 남들을 힘들게 하는 진상관객의 유형을 5가지로 정리해보았다.
시도때도 없는 휴대폰 사용
영화 관람 중 휴대폰 사용은 극장에서 느끼는 불편의 가장 보편적인 사례다. 영화 보다가 느닷없이 ‘까톡!’이 울려서 분위기를 깨는 건 기본이고, 버젓이 전화벨이 울리는 경우도 빈번하다. 벨이 울려서 황급하게 휴대폰을 꺼놓는 이들은 그나마 양반이다. “어~ 나 영화 보는 중인데~” 하며 전화를 받고 자리를 뜨거나 계속 통화를 이어가는 사람도 많다.
휴대폰 불빛이 스크린보다 더 밝다
극장 곳곳을 환하게 비추는 휴대폰 불빛도 마찬가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쓰고 있는 요즘, 조명이 다 꺼진 상영관에서 간간이 켜지는 휴대폰 액정이 만들어내는 빛은 상당히 밝다. 간간이 시간을 확인하기 위함이라고 넘어가기엔 영화를 보러 온 건지 휴대폰을 만지러 온 건지 모를 정도로 오랫동안 휴대폰 불빛이 켜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영화 보는 와중에 메시지로 한참 대화를 나누거나, 뒤늦게 영화의 정보를 검색해서 한참 들여다보는 이들도 있다.
영화 <터널> 스틸
보다 심각한 건 휴대폰으로 스크린을 촬영하는 케이스다. 지금 보고 있는 장면을 사진 찍고 “영화 핵노잼” 같은 멘트와 함께 SNS에 올린다. 휴대폰의 카메라 성능이 좋아지고 용량도 커진 요즘은 영화를 아예 동영상 모드로 촬영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앞선 경우는 어디까지나 감정적인 문제지만, 스크린 도촬은 ‘누구든지 저작권으로 보호되는 영상저작물을 상영 중인 영화상영관 등에서 저작재산권자의 허락 없이 녹화기기를 이용하여 녹화하거나 공중송신하여서는 아니 된다’(저작권법 제104조6)라는 규정을 어기는 위법 행위다.
후각과 청각을 마비시키는 취식 행위
현재 모든 멀티플렉스에서는 매점에서 판매하는 팝콘, 콜라, 나쵸, 핫도그 등뿐만 아니라 모든 외부 음식 반입을 허용하고 있어, 극장 내 취식 행위에 대한 갖가지 볼멘소리가 제보된다. 햄버거, 치킨, 만두, 김밥 등 냄새가 심한 음식을 옆자리에서 쩝쩝대면서 먹는 경우, 괴로워하던 경험을 다들 한번쯤 겪어봤을 것이다.
영화 <황해> 식사 신
간단히 허기를 달래고자 요기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대놓고 ‘식사’를 준비해 입장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갓 사온 양념치킨 한 마리를 먹고, 피자 한판을 그대로 펼쳐놓고 먹으면서 페트에 담긴 탄산음료를 따라 마시고, 컵라면에 물을 데워 와서 먹고, 명절에는 전을 바리바리 싸와서 먹는 등 온갖 케이스가 멀티플렉스 고객 게시판을 통해 제보된다. 족발을 먹은 후에 그 뼈를 바닥에 널브러뜨려 놓은 걸 목격했다는 극장 관계자도 있다.
보기만 해도 뒷골이 땡기는...
하지만 이걸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외부 음식 반입 허용은 2008년 공정거래위원회가 권고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냄새나 소리를 참지 못해 상영 도중 직원에게 처리를 부탁하는 경우에도 극장 측에서는 그저 취식 관객에게 자제를 부탁하는 방법밖엔 없고, 그마저도 다른 관객에게 방해가 될 수 있어 난처한 상황이라고 한다.
영화와 관객 모두에게 피해 극장가의 '노쇼'(No-Show)
예약을 해놓고 취소 연락 없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는 '노쇼' 현상에 대한 인식이 넓어지고 있다. 노쇼는 최근 극장 관계자들의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감독·배우가 함께 하는 관객과의대화(GV), 유명 영화평론가·작가들의 강연 등 영화와 관련한 다양한 토크 프로그램이 흔하게 진행되는 요즘, 노쇼의 폐해가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양상은 레스토랑이나 호텔과는 다르다. 극장의 노쇼는 주로 상영시작 직전까지 가능한 예매 취소 시스템에서 비롯된다. 날짜와 시간대가 다양한 일반영화 상영과는 달리, 한시적으로 기획된 프로그램은 회차가 극히 제한돼 있어 티켓을 구하려는 경쟁이 심하다. 예매가 오픈되고 수 분만에 매진을 기록하는 경우도 흔하다. 많은 사람들이 추가 티켓 오픈을 요구할 만큼 인기 프로그램이지만 당일 현장에서는 40%가 빈자리인 상태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속출되고 있다. 극장 측은 그만큼 수익에 구멍이 생기고, 관객은 참석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피해가 생긴다.
최근엔 다분히 특정 영화에 대한 악의적인 예매 취소 현상도 엿보인다. 여성 퀴어 로맨스를 그린 <연애담>의 특별상영에서 1명의 관객이 영화 상영 직전 30석이 넘는 좌석을 전부 취소해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다양성영화의 경우 예매를 통해 관람하는 경우가 많아 그 타격이 보다 크다. 한 예술영화관에서는 여러 좌석을 예매해놓은 후 영화 시작 직전에 자기 자리만 빼고 다 취소시켜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앉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적 행위가 알려지기도 했다.
결론은 "환불해줘"? 막무가내 컴플레인
무리한 조치를 요구하는 것 역시 관계자들이 난색을 표하는 고질적인 사례다. 영화가 시작한 지 30분이 지난 후에 극장에 도착해서는, 앞부분을 못 봤으니 다음 회차에 그 부분만 보고 나오겠다거나 아예 티켓을 환불해달라는 요구가 특히 많다. “재미가 없다”, “내가 예상한 것과 다른 영화였다”, “예매율 1위라길래 봤는데 나를 속인 거 아니냐”, “극장 공기가 별로다” 등 환불 받기 위한 별별 구실들이 다 동원된다. 어떤 이유든 끝까지 관객을 응대해야 하는 극장 직원들은 재차 규정을 설명하는 수밖에 없다. 매점에서는 반 이상 먹은 팝콘을 가져와서 “눅눅하다”며 새 팝콘을 받아가거나 음식 색깔이 혐오스러웠다고 환불해달라는 경우도 있다고.
"저 성인인데요..." OOO (19)
상영 등급 제한을 어기려는 이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경우도 있다. 주로 청소년이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보기 위한 과정에서 벌어진다. 12세이상관람가와 15세이상관람가 등급의 영화는 해당 연령 미만의 아동 및 청소년이라도 부모 등의 보호자를 동반할 경우 영화를 관람할 수 있지만,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는 무조건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 게 ‘법’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감정적으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뜻이다. 이 제한을 넘어서기 위한 눈치 싸움이 있다. 무작정 성인이라고 우기는 경우에서부터 부모가 직접 와서 성인이 맞다고 대변하는 것까지 제한을 넘기 위한 술수가 다양하다. 수를 높여, 티켓 발권의 신분 확인 절차를 피해 인터넷 예매나 기기를 통해 발권을 하는 이들도 있는데, 상영관 입구에서 티켓 확인하는 직원에게 2차 확인을 받아야 해서 대부분 여기에서 입장이 제한된다. 청소년들도 극장 직원들에게 반말, 폭언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보통 등급 제한으로 인한 승강이를 벌이다가 일어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