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XX야, 거리 두란 말이야!…욕설하고 박수받은 톰 크루즈” (연합뉴스 2020.12.17)
“일상도 영웅 같은 톰 크루즈…<미션7> 촬영 중 카메라맨 구했다” (매일경제 2021.04.30)
“위기의 골든글로브…톰 크루즈도 트로피 3개 반납, 보이콧 합류”(머니투데이 2021.05.11)
예정대로라면 이미 공개됐어야 하는 <탑건: 매버릭>이 코로나19로 밀리고, <미션 임파서블 7> 또한 극장에서 만나려면 한참이 남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이미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를 몇 편 본 기분이 든다. 바다 건너 들려오는 톰 크루즈 관련 소식들 때문인데,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사뭇 영화적이다.
할리우드가 매년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지는 동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톱배우의 욕설이 그대로 유출되는 일은 드물다. 그보다 더 드문 건 욕하고도 칭찬받는 일인데,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은 스태프를 향한 경고였고 그 안엔 수천 명의 일자리를 책임지는 <미션7> 제작자로의 근심이 담겼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톰 크루즈는 욕을 하고도 공감을 샀다. 이후 그가 ‘방역 감시 로봇’을 거액에 구입해 현장에 투입한 건 이 사건의 화룡점정.
배우가 달리는 기차 위에서 스태프를 구한 사례의 경우 그 자체로 극적이다. 여주인공이 회전하는 헬기 날개에 말려들어 갈 뻔한 사고를 몸을 날려 막았다는 과거 <칵테일>(1990) 촬영 일화까지 소환돼 톰 크루즈를 향한 온갖 성찬이 SNS에 리트윗됐다. 인종 및 성차별 논란에 휩싸인 골든글로브에서 받은 과거 트로피를 반납한 일은 자신의 행동 하나가 파급력을 낳는다는 걸 꿰뚫고 있는 스타가 그 영향력을 소신 있게 사용한 예일 것이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례는 톰 크루즈가 할리우드에서 점하는 위치뿐 아니라, 그의 성격과 영화를 대하는 자세를 읽게 하는 거대한 힌트다. 프로의식 냉철한 워커홀릭 제작자, 현실에서도 불가능을 모르는 불굴의 배우,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엣지있게 휘두르는 슈퍼스타. 근면과 성실을 이름표처럼 붙이고 다니는 톰 크루즈는 고지식해서 재미없어 보이는 면이 있는 배우로 평가받기도 하는데, 그것이 할리우드라는 정글 속에서 그를 살아남게 한 8할임을 부인하긴 힘들어 보인다.
1981년 스크린으로 걸어 들어 온 톰 크루즈는 <아웃사이더>(1983)로 ‘브랫 팩’(brat pack) 군단에 입성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브랫 팻’은 1980년대 할리우드에 새바람을 일으킨 아이돌 스타 군단으로, 뒤늦게 빛을 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빼고 브랫 팻 배우 중 시대를 초월해 대중의 환심을 받은 배우는 톰 크루즈가 유일하다. 톰 크루즈라는 신화의 본격적인 서막은 잘 알려졌다시피 <탑건>(1986)이다. <탑건>의 엄청난 흥행은 항공 점퍼와 레이밴 선글라스의 판매량 뿐 아니라, 톰 크루즈의 인지도에도 제트 엔진을 달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
<탑건>의 비행사, <7월 4일생>(1989)의 베트남 참전군인, <어퓨 굿 맨>(1992)의 제복 입은 군법무관, <파 앤 어웨이>(1992)의 서부 개척민 이미지는 유령처럼 그에게 들러붙어 톰 크루즈를 ‘아메리칸 드림’을 대변하는 배우이자, 책임감 있고 성실한 남자로 각인시켰다. 앤 라이스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각색한 <뱀파이어와의 인터뷰>(1994)에선 브래드 피트의 목에 이빨을 박으며 항간에 떠돌던 성 정체성 논란에 기름을 붓기도 했지만, 르네 젤위거와 합을 맞춘 <제리 맥과이어>(1996)에서 “당신이 나를 완성해요(You complete me)”라는 명대사로 여성들의 넋을 빼앗으며 치명적 스타로서의 자리를 공고히 했다.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라느니 ‘미더운 흥행 미다스’라느니 하는 말이 진부할 정도로 자주 그를 수식한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는 1996년 <미션 임파서블>을 통해 일생의 ‘부캐(부캐릭터’)를 만난다. 이단 헌트 말이다. 대역을 쓰지 않고 위험천만한 상황에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톰 크루즈의 극한 스턴트 연기는 어느 순간부터 이 시리즈의 서명이 됐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자아내는 짜릿한 긴장감은 액션이 선사하는 스펙터클뿐 아니라, 톰 크루즈가 관객의 쾌감을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의 신체를 극한으로 몰아붙이고 있다는 사실에서 온다. 블루 스크린이 구비된 디지털 시대에 여전히 직접 뛰고 구르는 톰 크루즈의 행보는 일견 무모해 보이기도 하지만, 아날로그에 대한 로망을 메워주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톰 크루즈만큼이나 이 바닥에서 아날로그 신봉자로 통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에 그가 출연하는 상상을 가끔 해보곤 하는데…아, 액션 장면 상상만 해도 등골이 싸해진다.
무서울 정도로 완벽을 추구하는 그의 기질은 주변 사람들을 자주 오금 저리게 한다. “톰이 스턴트 연기를 할 때마다 현장에 있는 우리는 그가 혹시 죽지 않을까 걱정하게 된다”라고 말한 사이먼 페그의 진술이나, “당신이 죽으면 영화는 어떻게 찍느냐”고 노랗게 질린 얼굴로 스턴트를 극구 만류했다는 오우삼 감독의 일화 외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증언들은 차고 넘친다. <잭 리처>의 에드워드 즈윅 감독은 톰 크루즈와의 호흡을 “마치 좋은 운동선수와 작업하는 것 같다”라고 표현했는데, 실제로 그는 어린 시절 프로 레슬링 선수로 인생을 걸었던 적이 있다. 부상으로 인생을 틀지 않았다면, 우린 아마도 올림픽 무대 시상식대 위에서 건치를 보이며 웃는 그를 만났을 것이다. 그의 승부욕과 미친 노력은 보면 이 예측은 합당하다.
물론 톰 크루즈도 인간인지라 쓸어 담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과거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 케이티 홈즈에게 구애하며 소파에서 방방 뛰어오른 모습은 정말이지, 그를 지지해 온 팬덤을 향한 대단한 ‘빅엿’이었다. 물론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그런 흑역사에도 불구하고 그는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로 경력을 연장해 나갔고, 여전히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의 영웅으로 관객의 뜨거운 환대를 받고 있다.
<미션7> 현장에서의 톰 크루즈는 보면 이 남자는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를 태세다. 영화 산업을 어떻게든 돌아가게 하려는 노력은 눈물겨울 지경인데, 그는 스태프 안전을 위해 사비로 대형 크루즈를 빌리고, 영국 군사기지를 개조하는가 하면, 앞서 언급했듯 ‘방역 감시 로봇’까지 구입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제작비에도 멈추지 않고 촬영을 밀어붙이는 건 수많은 스태프의 일자리를 걱정하는 제작자로서의 책임감 때문일까. 책임감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납득하긴 힘들다. 뭘까. 톰 크루즈로 하여금 열정적인 에너지를 쏟게 하는 원동력은.
이것은 지난 2015년 <미션 임파서블-로그네이션>을 들고 내한했을 때 그가 한 말에서 유추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일이든지 헌신을 요구한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일이므로 희생이라고 느끼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으니, 내겐 일종의 특권이기도 하다.” 누가 당할 수 있을까. 헌신과, 그에 따르는 만성 스트레스와 완벽주의자로서 갖는 예민함까지도 ‘특권’이라 생각하며 즐기는 배우를.
글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