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 직전에 참여한 웹드라마 <핸드메이드 러브>도 판타지 장르다. <밤을 걷는 선비>도 그렇고. 이수혁에게는 익숙한 장르인 듯한데. 어떤 설정에서든 인간으로서 느끼는 감정이야 매한가지이겠지만, 작중 몽환의 세계에 몰입해야 하는 작업이 추가적으로 필요한 장르다.
가장 중요한 건 대본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는 거다. 보시는 분들이 작중 서사를 납득하실 수 있게끔, 비주얼이든 행동이든, 대사 톤 조절이든, 연출님과 회의를 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경험을 덧붙여 말하자면. 나는 미니시리즈나 장편 드라마를 주로 했었는데, <핸드메이드 러브>라는 숏폼 드라마를 하면서 단시간에 여러 스태프분들이 모여서 이만한 퀄리티의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숏폼에 대한 내 인식도 바뀌었다. 이런 플랫폼에서 실험적인 캐릭터를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핸드메이드 러브>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많이 봐주시기도 했고.
당연한 말이겠지만, 들어보니 제작진과의 대화를 특히나 중요시하는 것 같다.
그런 편이다. 어릴 때는 캐릭터 위주로 작품을 선택하려 했었는데. 점점 내 캐릭터보다는 연출님, 작가님들이 기준이 되는 것 같다. 같이 해보고 싶은 분들이. 그러다 보니 대화도 많아질 수밖에 없고 그렇다.
중간중간 <일리있는 사랑> <동네의 영웅> 같은 고마운 작품들 덕에, 이수혁의 목수, 고시생 캐릭터를 만날 수 있긴 했지만. 멀끔한 이미지 덕일까, 종종 검사, 본부장 등 수트를 주로 입는 캐릭터를 연기해왔다. 흐트러진 인물에 대한 갈증은 없나.
항상 있다. 좋은 배우가 되는 게 꿈인데, 모델 때의 이미지도 있어서. 체중을 증량한 것도, <동네의 영웅> 같은 작품을 선택했던 것도,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했던 도전들이었다. 연기를 시작했을 때는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많이 했어서. 제작발표회나 인터뷰를 할 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번엔 사람 역할이에요,” 이런 식으로 유쾌하게 말한 적도 있다. 이제는 그래도 시청자분들께서 내가 주익이 같은 인물을 연기해도 팀장으로 그대로 받아들여 주시는 것 같고. 이런 지점에서 조금은 발전이 있지 않았나 싶다. 망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고, 이것저것 많이 해보고 싶다.
필모그래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도 <일리있는 사랑>을 꼽았더라.
가장 성장, 성장이라고 말하면 웃길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연기적으로 스스로 배움의 폭이 가장 컸다고 생각되는 작품이 <일리있는 사랑>이다. 한지승 감독님께서 많이 가르쳐주셨다. 아직까지도 김준, 김목수 역할을 좋아한다.
겸손하다. ‘성장’이라는 말을 쓰는 것도 조심스러워하고.
내가 내 입으로 하기가 좀. 배움이 가장 적당한 단어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