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에겐 저마다의 서인국이 있다. 누군가에게 서인국은 과거 '슈퍼스타K'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사랑해U'를 외치는 모습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서인국은 "만나지 마까"라는 명대사를 남긴 윤윤제이며, 요즘 시청자들에게 그는 멍하니 담배를 물고 있는 멸망의 얼굴이다. 가수 그리고 배우. 이젠 그 어떤 모습의 서인국을 떠올려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그는 배우로서, 가수로서 형형한 궤적을 그려왔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갈증은 있었다. 그동안 드라마와 연이 깊었던 서인국에게 영화는 욕심의 영역이었다. 제 말마따나 영화에 대한 갈망이 "용암처럼" 들끓고 있다는 서인국은 인터뷰 도중 '영화' 이야기가 나오자 말이 빨라졌다. 갑작스런 생기가 돌았다. <노브레싱>(2013) 이후 8년 만에 <파이프라인>으로 돌아온 서인국이 얼마나 영화에 목말라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서인국은 인터뷰 내내 차분했지만, 머뭇거림은 없었다. 이번 작품에 대해서도, 캐릭터에 대해서도, 동료에 대해서도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서도 솔직했다. 매일 매일 조금씩 깊어지고 싶다는 배우 서인국과의 대화를 전한다.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이하, <멸망>) 촬영이 얼마 전에 끝났다고 들었다. 아직 몇 화 방영되지는 않았지만, 벌써부터 '서인국 인생캐'라는 반응들이 많더라. 기쁜 마음으로 모니터링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겠다.
사실 딱 어제부로 <멸망>의 모든 촬영이 종료돼서 아직 3, 4화는 제대로 보질 못했는데, 많은 분들이 좋게 봐주셔서 다행이다. 멸망이라는 캐릭터가 인간이 아니다 보니까 시청자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좋아해 주셔서 기분이 좋다.
<파이프라인>이 드디어 개봉을 하게 됐다. 촬영을 끝낸 지는 좀 됐지만 코로나 시기와 맞물려 개봉을 못 하고 있었지 않나. 개봉을 하게 된 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 영화는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맞다, 드디어 개봉을 하게 됐다. 영화를 보면서 되게 새록새록 기억이 뿜어져 나오더라. 함께 출연한 배우들과의 추억이 깃든 작품이다 보니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떠올랐다. 영화도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 땅굴 안에서의 처절한 모습이 잘 담긴 것 같아서 그 부분이 특히나 좋더라.
무엇보다도 <파이프라인>은 6년 만에 관객들을 찾은 유하 감독의 복귀작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유하 감독과의 첫 만남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제작보고회를 보니 캐스팅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좋아서 뛰어다녔을 정도라고 하던데. 정말 딱 유하 감독의 작품들을 보며 자란 세대니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유하 감독님이 키가 굉장히 크시다. 그냥 이야기만 들었을 땐 몰랐는데, 실제로 보니 또 다르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 처음 만나는 날, 자리에 감독님이 미리 앉아 계셨었는데. 내가 문을 딱 열고 들어가니까 정말 환하게 반겨주시더라. 사실 난 눈매가 눈매다 보니 처음부터 좋은 인상을 주지는 못하는 편이다. 특히 어른들인 경우에는 더더욱? 근데 유하 감독님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부터 "이 친구와 뭔가를 하고 싶다"는 뉘앙스를 전해주셔서 기분이 정말 좋았다. 유하 감독님의 팬으로서도 좋았고, 인간적으로도 좋았던 기억이 난다.
유하 감독의 팬이라고 했는데, 어떤 작품을 가장 좋아하나.
어릴 때 <비열한 거리>를 너무너무 좋아하면서 봤다. 아, 물론 성인이 돼서 봤다. (일동 웃음)
누아르 장르가 취향인가 보다.
누아르 굉장히 좋아한다. 뭐랄까, 그런 작품들을 보면 같이 좀 끓는 편이다. 액션 장르도 그렇고. 누아르, 스릴러 같은 장르들은 인물들을 압박하는 상황이 많다 보니까 나도 막 몸이 뜨거워진다. 그런 긴장감을 즐기는 편이다. <달콤한 인생>도 좋아하고, 누아르 장르는 아니지만 <파이트 클럽>도 생각이 난다.
아,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파이프라인>에 함께 출연한 이수혁 배우도 <파이트 클럽>을 굉장히 좋아한다던데.
그렇다더라. (웃음)
<고교처세왕> <파이프라인> 그리고 <멸망>까지. 세 작품을 함께 하면서 서로 영화 이야기를 많이 나눴나 보다.
맞다. 특히 둘이 <파이트 클럽> 이야기를 많이 했다. 예전부터 서로 좋아하는 영화 그리고 그에 관한 생각들을 많이 공유했었다. 겹치는 작품들이 꽤 있었는데, 그중에 <파이트 클럽>이 있었다.
다시 <파이프라인>으로 돌아와서. <파이프라인>은 땅굴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여러 캐릭터가 사사건건 부딪치는 영화다. 특히나 핀돌이는 도유꾼들의 리더다 보니 극 중 비중도 많고 서사적인 면에서도 중심을 잡아야 하는 역할이었다. 그런 점에 있어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을 것 같은데 뭐가 가장 어렵고 힘들었나.
음, 솔직히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들이 많았다. 영화의 모든 사건들이 땅굴 안에서만 벌어지다 보니까, 대부분 땅굴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근데 아무래도 좁은 공간에서 연기를 하다 보니까 여러모로 압박감 같은 게 느껴지더라. 장소가 협소하다 보니 몸을 움직이는 데 있어서도 어느 정도는 제약이 있었고 체력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힘든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근데 또 영화를 보니까 고생한 흔적들이 너무 잘 담긴 것 같더라. 도유꾼들의 '막장스러운' 느낌이 더 잘 살아났고, 처절한 느낌으로 승화된 것 같아서 좋다.
모든 전략을 진두지휘하는 핀돌이처럼, 서인국 역시 촬영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였을 것 같다.
음, 그런 것보다도 나중에 메이킹에 담길지는 모르겠는데, 촬영 들어가기 직전에 다들 지쳐있으면 파이팅하자고 "으아아-" 소리를 지른다거나. "파이팅!!!" 이런 걸 되게 많이 했다. (웃음) 카메라 감독님도 그럴 때마다 진짜 힘이 난다고 해주시더라.
단편적인 이야기만 들었을 뿐인데도 힘들었던 현장이라는 게 단번에 느껴진다. 근데 또 힘든 만큼 동료 배우들과는 더 끈끈해졌을 것 같은데, 현장에서 가장 의지가 됐던 동료 배우는 누구인가.
단연 유승목 선배님이다. 워낙에 너무나 대선배님이기도 하지만 현장에서 늘 웃고 지치지를 않으셨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선배님이 굉장히 나긋나긋하게 이야기를 해주시기도 하니까. (웃음) 그 누구보다도 에너지를 쏟아내시고, 웃고, 장난치고 하시는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감히 힘들다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더라. 선배님이 그렇게 으쌰으쌰 해주면 다들 힘든 게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만큼 긴장도 풀리고.
영상 인터뷰만 보더라도 그저 영화 촬영만 함께한 '동료'가 아니라 '찐친'같은 느낌이 들더라. 팀워크가 굉장히 좋은 걸 보니 촬영도 촬영이지만, 회식도 많이 했을 것 같다.
맞다. 촬영 당시는 코로나가 터지기 전이어서 회식을 정말 많이 했다.
술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웃음)
맞다, 술을 즐기는 편이다.
혹시 술궁합이 가장 좋았던 배우는 누구였나.
유승목, 태항호 형님과 같이 많이 마셨었다. (웃음) 촬영 직전에 저희가 단체 리딩을 끝내고 으쌰으쌰 해보자는 마음으로 아침까지 술을 마신 적도 있다. 근데 나도 이젠 때려 넣는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는 안 마시고 조금씩 조금씩 마시려고 한다. (웃음) 예전에는 술을 마시면 술한테 이겨 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근데 지금은 그냥 딱 내가 기분 좋을 때까지 마신다. 즐거운 시간이 길게 유지됐으면 해서 정말 천천히 마시고 있다.
드릴을 사용하는 것부터 맨몸 액션까지. <파이프라인>은 몸을 많이 써야 하는 작품이었다. <왕의 얼굴> 때도 그렇고, <고교처세왕> 때도 그렇고 몸을 사리지 않아서 부상을 입었다고 들었는데, 이번에는 괜찮았는지 궁금하더라.
아, 이건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긴 해서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이번 작품에서 굉장히 악을 쓰는 장면이 있다. 밧줄에 묶여서 그걸 풀려고 몸부림을 치는데, 정말 내 몸에 있는 압력을 다 사용하고 온 힘을 다해서 몸에 힘을 주다 보니까 왼쪽 손에 마비가 왔었다. 그다음 신에서도 손을 써야 했는데 손에 힘이 안 들어가더라. 실제로 손가락에 피가 안 통했던 것 같다. 현장에선 잠깐 그러고 말겠지 했는데 그게 일주일 정도 갔다. 근데 그 장면이 또 굉장히 잘 담겨서 뿌듯하다. (웃음)
여러 인터뷰들을 살펴보니까 현장에서 굉장히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편인 것 같더라. 데뷔작인 <사랑비>에서 사투리를 쓰는 설정도 감독님께 먼저 제안한 거라고 들었는데. 혹시 이번 작품에도 서인국의 생각이 반영된 부분이 있나.
즉흥적인 아이디어들이 정말 즉흥적이기 때문에 지금 바로 기억이 안 나는데. (웃음) <파이프라인> 같은 경우에는 유하 감독님에 대한 엄청난 팬심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의지했던 것 같다. 감독님도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작업을 하는 편이셨고. 아, 이런 건 있었다. 영화 속에서 제가 거친 대사들을 많이 하는데, 이게 너무 거칠다 보니까 심의에 걸릴 수도 있어서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줄이는 작업들을 했다. 후시 작업도 해서 좀 더 잘 안 들리게끔? (웃음)
사실 배우 입장에서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무언가를 수정하고 창조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여행을 떠나는 걸 좋아할 만큼 즉흥적인 걸 즐긴다고 들었는데, 그런 성향들이 촬영 방식에서도 드러나나보다.
맞다, 촬영을 하다 보면 나와의 접점이 튀어나올 때가 있는 것 같다.
가수에서 배우가 되기까지, 지금까지 한 번도 연기를 배운 적이 없다고 들었다. 연기를 함에 있어서 계획적인 천재라기보다는 동물적인 감각이 발달된 배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옛날에는 계획이 없었다. 계획을 짤 줄도 몰랐고. 당시에는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와 비슷한 레퍼런스를 찾아서 따라 하는 경향이 많았던 것 같다. 또 정말 처음 연기를 하는 거 다 보니까,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기 바빴고, 캐릭터 자체도 내면적인 것보다는 외면적으로 접근한 것 같다. 다행히도 당시엔 그런 부분들을 재밌게 봐주신 분들이 많았고, 그저 타이밍과 싱크로율이 잘 맞아떨어진 거라 생각한다. 근데 작품을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경험이 쌓여서 더 철저히 계획을 하게 되더라. 이젠 즉흥적인 면과 계획적인 면을 고루 나눠 쓰려고 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가수 서인국의 정체성이 존재하지만, 과거 무대 위에 올라 노래를 했던 경험들이 연기를 하는데도 큰 도움이 됐을 것 같다.
도움이 많이 됐다. 마치 이런 거다. 우리가 자기 직전에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그저 되감기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게 이랬다면 어땠을까? 라며 새로운 상상을 하고, 새로운 신을 만드는 것처럼 노래를 부를 때도 어떤 상황을 가정하고 무대에 오른다. 이렇게 구체적인 상황을 형상화 시키는 과정이 연기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됐다.
배우 서인국의 출세작인 <응답하라 1997> 윤윤제도 그렇고, 지금 방영 중인 <멸망>만 봐도 그렇고.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를 쭉 훑어보면 다들 츤데레 같은 면이 뚜렷한 것 같더라. 핀돌이도 겉으론 한없이 까칠하지만, 정작 행동은 팀원들을 위하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 성격이 반영되다 보니 비슷한 느낌이 부각된 걸까?
보니까 내가 좀 츤데레기가 있는 것 같긴 하다. 남사스러운 걸 워낙 좀 못 참기도 해서, 칭찬을 해주면 "어우 됐어~"이러면서 뒤돌아서서 좋아한다. (웃음)
동료 배우들 인터뷰를 보면 한없이 다정한 면도 있더라. 배우 이시언이 한 인터뷰에서 본인이 가장 힘들었을 때 가장 위로가 됐던 사람으로 서인국을 꼽은 걸 본 적이 있다.
기억난다. 사실 그때가 이시언 씨랑 친해진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응답하라 1997> 때였는데. 이시언 씨가 그때 좀 멘탈적으로 굉장히 힘들어했다. 그래서 저희 집에 가는 길에 미래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굉장히 마음이 아팠었다. 그래서 형한테, "형, 형은 잘 될 거야. 우린 무조건 잘 돼"라고 한마디 했는데 이 말이 당시 이시언 씨한테는 굉장히 큰 위로가 됐나 보다. (웃음) 형이 위로가 됐다는 말을 해줄 때마다 나도 고마운 마음이다.
<파이프라인>은 <노브레싱> 이후 8년 만에 찍은 영화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영화보다는 드라마 매체와 더 친숙한 배우였는데. 영화에 대한 열망 혹은 갈망도 있을 것도 같다.
어마어마하다! (일동 웃음) 거의 용암급이다. 영화에 대한 열망이 들끓고 있다.
그럼 이제부터 서인국의 영화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웃음)
사실 제 취미가 그거다. 집에서 혼자 영화 보면서 소주 한잔하는 거. 요즘에는 집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플랫폼이 너무 많아서 좋은데. 예전에 그런 플랫폼이 없을 땐 한 달 요금이 어마어마하게 나왔다. 다 개별 결제를 해서 본 바람에. (웃음)
혹시 인생에서 가장 처음 본 영화를 기억하고 있나?
오 난 기억한다. 처음으로 본 영화가 아니라,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는 <쥬라기 공원>(1993)이다. 난 어릴 때 아버지 옆에서 영화를 많이 봤었는데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단연 <무간도>다. 정말 머릿속에 모든 장면들이 박혀있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무간도> 시리즈를 다 찾아봤다. 관련된 작품인 <디파티드>도 챙겨 보고.
영화 취향에 대한 언급도 거의 없더라. 맨 처음에 이야기한 것처럼 <무간도>와 같은 범죄/누아르 장르를 즐기는 편인가.
범죄/누아르도 좋아하지만, 한때 스릴러 장르에 미쳐있었던 적이 있었다. 액션, 스릴러, 타임슬립과 관련된 영화들을 정말 좋아해서 한동안은 하루에 영화를 다섯 편씩 계속 본 적도 있었다. 근데 그러다 보니까 영화 내용들은 다 기억이 나는데 영화 제목은 기억이 안 나더라. (웃음) 한 번에 여러 작품들을 계속 봐서.
뻔한 질문이지만, 인생 영화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사실 정말 매번 바뀌는 편이다.
2021년 서인국의 인생 영화는?
로빈 윌리엄스가 출연하는 <천국보다 아름다운>(1998)을 얼마 전에 봤다. 판타지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이야기가 펼쳐져서 마음으로 아파했다. 미술적인 요소도 아름다워서 굉장히 오래 마음에 남더라.
지금 활동 중인 두 작품만 놓고 보더라도 <멸망>은 SF고, <파이프라인>은 범죄/액션 영화다. 약 10년간의 필모그래피를 훑어보니 로맨스, 사극, 스릴러 등 한 장르에 고정되지 않고 매번 색다른 작품에 도전한 흔적이 엿보이더라. 본인 스스로도 다양성이 가득한 필모그래피를 자랑스러워한다고 들었다. 의도적인 선택인가.
성격 문제인 것 같다. (웃음) 물론 제일 첫 번째는 대본이 재미있는 거지만.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다른 걸 하고 싶어진다. 정말 순수하게, '다른 걸' 하고 싶다. 예를 들면, 핀돌이를 연기하면서 땅굴에서 고생을 했으니, 그다음에는 초호화 환경에 놓인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 물론 그런 것들이 내가 하고 싶다고 다 되는 건 아니지만, 그때그때 다양한 캐릭터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왔었던 것 같다.
'슈퍼스타K' 시즌1 우승을 하던 당시 서인국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도 많다. 그땐 오디션 프로그램이 성행하지도 않았을 때라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평범한 학생에서 한순간 스타가 된 셈이니 그러고 보면 서인국의 인생 자체가 영화같은데, 본인 인생을 영화로 만든다면 하이라이트는 언제라고 생각하나.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 인생을 책이나 영화로 만든다면, 아무도 그걸 보지 않더라도 기록을 남기면 정말 재미있지 않을까라고. 음, 내가 생각했을 때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죽을 때라 생각한다, 아니 딱 죽기 직전. 죽기 직전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죽기 직전 내 표정이 어떠냐에 따라서 하이라이트 장면이 결정될 것 같다. 어떻게 살았냐에 따라 슬플 수도 있고, 행복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10년간 '배우' 서인국의 활동을 뒤돌아봤을 때 하이라이트는?
<38사기동대>를 찍었던 시기를 꼽고 싶다. 이 작품을 통해서 연기에 대해 좀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 그전까지는 몰랐던 거다, 내가 더 깊이 내려갈 수 있다는 걸. 1cm가 깊어졌던, 10m가 깊어졌던 그게 중요하다기보단 머물러 있지 않고 조금이라도 성숙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해준 작품이어서 여전히 <38사기동대>를 배우 인생의 터닝포인트라 생각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엄청, 엄청 부족하지만 매일 1cm씩, 1mm씩 깊어지는 배우가 되길 스스로 기대하고 있다.
글 씨네플레이 유정아 기자
사진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리틀빅픽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