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인 11월 17일 문화계를 술렁이게 만드는 뉴스가 떴다. 오는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노벨상 시상식에 밥 딜런이 다른 선약 때문에 불참한다고 전한 것이다. 노벨상을 수상하는 한림원 측은 딜런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문학상 수상자가 시상식에 오지 않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문학계 측에선 크나큰 결례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음악계 측에선 밥 딜런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란 반응이다. 1901년 노벨상이 생긴 이래 115년 만에 가수가 처음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된 것도 큰 사건이지만, 이런 해프닝까지 생겨 더더욱 이슈가 되었다. 밥 딜런이 대체 어떤 가수기에 이처럼 화두가 되는 걸까.

1960년 초, 그는 포크라는 음악을 통해 기타 하나로 세상에 저항하고, 차별과 전쟁에 얽매인 기성세대에 일침을 날리며 반전운동과 공민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반전과 히피 문화가 창궐하기 전 이미 일상의 언어로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풍자하고 비판했으며, 방황하고 좌절하는 청춘에 하나의 촛불이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하나의 틀 안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자유롭게 노래했으며, 포크를 넘어 록과 가스펠, 컨트리와 블루스를 오가며 삶과 사회, 종교에 대해 이야기했다. 밥 딜런의 노래는 단순한 음악을 넘어 문학이자 시였고, 철학이자 사상이었다. 지난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37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하며 꾸준히 자신의 세계를 설파했으며, 여전히 대중음악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거장으로서 활발히 노래하고 있다.

시대에 대한 비판 정신과 깊은 고민을 바탕으로 한 가사는 문학적 경지에 이르렀고, 위대한 미국 음악 전통 내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했다는 이유로 스웨덴 한림원은 그를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호머와 사포 같은 그리스 시인들의 작품 정신을 공연을 통해 관객의 귀로 듣게 만들었다는 찬사도 뒤따랐다. 실제 그의 가사들은 상당히 예술적이며, 간단명료하고 함축적인 언어로 중의적인 의미를 내포하며 세상을 담아내었다. 그의 음악이 힘을 갖고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 건 강렬하며 아름다운 멜로디의 덕도 있지만, 무엇보다 가사가 보인 다양한 해석과 냉소적이지만 시원한 화법도 무시 못 할 요소였다. 밥 딜런은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그래미상 그리고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오른 동시에 노벨상을 받은 유일한 가수가 되면서 대중문화에 전무후무한 업적을 남겼다. 

그런 그가 발표한 수많은 노래들 중 사람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을 뽑으라면 단연 'Knockin’ On Heaven’s Door'를 들 수 있다. 발표 당시 빌보드 차트 12위까지 올랐던 이 노래는 사실 밥 딜런 노래들 가운데 가장 히트했던 곡도, 그렇다고 상을 수상한 노래도 아니다. 하지만 곡이 가지고 있는 성찰적인 분위기와 영적인 가스펠을 떠올리게 만드는 울림 있는 멜로디, 그리고 단순하지만 인상적인 가사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꾸준히 많은 사랑을 받았다. 상징적인 의미와 명징한 멜로디 때문에 영화나 TV에서도 전형적이라 할 만큼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밥 딜런은 불참하지만 오는 12월 초에 있을 그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기념하며 이 곡이 사용된 대표작들을 살펴본다.


관계의 종말 (1973)
밥 딜런

'Knockin’ On Heaven’s Door'가 처음 쓰인 건 바로 샘 페킨파 감독의 수정주의 서부극 [관계의 종말]에서였다. 밥 딜런은 이 영화에서 조연과 음악을 동시에 맡았다. 원래 감독은 컨트리 가수 로저 밀러에게 곡을 맡기려고 했는데, 주연을 맡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밥 딜런을 적극 추천했다. 그전까지 딜런의 노래들을 들어 본 적이 없는 샘 페킨파는 영화를 위해 작곡한 곡을 듣고 주저 없이 이를 영화음악으로 발탁했다. 영화음악이라곤 한번 맡아 본 적 없는 딜런이었지만, 그의 곡들은 허무하고 공허한 서정과 비극적인 운명이 교차하는 영화에 독특한 기운을 선사했다. 샘 페킨파와 주로 호흡 맞췄던 작곡가 제리 필딩은 자신의 음악적 역할이 줄어들자 불만을 표했다고 한다.

영화의 중반 옛 보안관 동료가 죽어갈 때 흘러나오던 이 곡은 시대가 변해 어쩔 수 없이 도태되고 밀려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 자신의 심정을 고스란히 표현한 노래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개봉되던 시기 베트남전에서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는 젊은 초상을 반영한 노래이기도 했다. 직설적이지만 중의적인 가사가 그 시대를 살아가던 많은 이들에게 크게 어필하며 긴 생명력을 갖게 되었다.


리썰 웨폰 2 (1989)
랜디 크로포드, 에릭 클랩튼

영화음악가 마이클 케이먼과 탁월한 기타리스트이자 가수인 에릭 클랩튼, 그리고 색소폰 연주자 데이빗 샌본이 의기투합한 리썰 웨폰 시리즈의 음악은 그 지명도만큼이나 확실한 듣는 재미와 독특한 풍취를 안겨주는데, 그건 두 번째 편에서도 마찬가지다. 클랩튼의 친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조지 해리슨의 곡이 엔딩 크레딧에, 또 비치 보이스의 신나는 노래도 영화 중간에 쓰였지만 가장 인상적으로 활용된 건 바로 'Knockin’ On Heaven’s Door'다. 사실 에릭 클랩튼은 1975년 자메이카 가수 아서 루이스와 함께 이 곡을 레게 풍(!)으로 리메이크한 바 있는데, 이 영화에선 자신의 장기인 블루스로 편곡해 영화의 엔딩을 더욱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원래 각본에선 멜 깁슨이 맡은 캐릭터인 릭스가 죽는 것으로 세팅됐었고, 수정된 영화에서도 죽음 직전에서 간신히 살아 돌아오기에, 이 노래가 흘러나오는 건 적절하고도 탁월한 선곡이었다. 미국보단 유럽에서 더 성공했던 재즈 가수이자 알앤비 가수인 랜디 크로포드의 달콤하고 소울풀한 목소리를 축으로, 에릭 클랩튼의 블루지한 기타와 데이빗 샌본의 멜랑꼴리한 색소폰 연주가 곁들어져 원곡이 지닌 포크와는 또 다른 감성을 선사한다.


폭풍의 질주 (1990)
건즈 앤 로지스

[탑건]의 흥행 주역들이 다시 모여 만든 영화로 전투기 대신 데이토나USA라는 자동차 경주 대회를 다루고 있다. 다만 전작의 음악을 맡았던 해롤드 펠터마이어가 사정상 물러나며 대신 추천했던 이가 바로 한스 짐머였고,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제브 벡을 섭외해 자동차 배기음만큼이나 강렬한 스코어를 완성해냈다. 이에 못지않게 사운드트랙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의 면면도 호화롭기 짝이 없는데, 엘튼 존과 데이빗 커버데일, 티나 터너, 시카고, 셰어 등이 포진해 있고, 여기에 방점을 더하는 게 바로 건즈 앤 로지스다. 포크와 레게, 블루스로 나왔던 'Knockin’ On Heaven’s Door'를 그들은 당연하게도 하드록 스타일로 새롭게 편곡했다.

사실 영화에서 이 곡은 중요한 장면에 쓰이지 않아 애써 신경쓰지 않으면 찾기도 어려운데(차가 부서진 후 차고에서 전화 통화하던 장면에 잠깐 흘렀다), 목숨 걸고 스피드를 위해 경쟁하는 선수와 관계자들의 열정과 투혼 그리고 사랑과 우정을 표출하는 데 있어 액슬 로즈의 거친 보컬과 강렬한 기타 사운드는 썩 멋들어졌다. 실망스러운 리메이크라는 평도 있지만 빌보드차트 록 앨범 부분 18위까지 올랐고, 영국에선 2위에 진입하는 등 제법 성공했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 (1997)
셀릭

죽음의 문턱 앞에 선 두 남자가 바다를 향해 생의 마지막 여행을 떠나며 버킷리스트들을 채워나가는 여정을 그린 토마스 얀 감독의 이 독일 영화는 아예 밥 딜런의 원곡 명을 제목으로 삼은 작품이다. 왁자지껄 코믹한 소동극을 버디물로 풀어낸 동시에 담담하고 아련한 감성을 안겨주기도 하는데, 이 완급조절을 능수능란하게 해내는 건 음악의 역할이 크다. 음악 프로듀서 프란츠 플라자는 록과 펑크, 테크노를 넘나들며 영화 내내 활력 넘치는 사운드와 에너지를 표출시킨다. 마치 그들이 모든 걸 쏟아내며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는 것처럼 이 곡들은 그들의 강렬한 삶의 희망이자 의지 표현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야말로 요란뻑적지근한 'I Will Survive'의 선곡도 의미심장하지만, 무엇보다 바닷가 엔딩에서 전율하듯 흐르는 'Knockin’ On Heaven’s Door'는 평생 잊지 못할 스산한 전율과 저릿한 가슴 통증을 안겨준다. 독일의 록밴드 셀릭이 쇳소리 가득한 가성과 읊조리는 진성을 오가며 부르는 노래는 앞서 건즈 앤 로지스의 풍취와는 완전히 다르다. 죽음을 앞둔 고통과 마지막이란 편안함이 공존하는 절규와 같다.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 (2004)
유미

[엽기적인 그녀]와 [클래식]으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린 곽재용 감독이 다시 전지현과 만나 찍은 판타지 순애보로, 많은 비판이 있었음에도 흥행에선 제법 성공을 거두었다. 홍콩 자본이 투입된 만큼 음악에서도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졌는데, 모리스 윌리엄스&조디악, 샘 더 샘 앤 더 파라오스의 올드팝과 엑스 재팬의 유명 록발라드, 엠씨 스나이퍼의 곡들이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 영화 역시 죽음이 중요한 테마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유미가 부른 'Knockin’ On Heaven’s Door'가 가장 인상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영화의 시작과 중후반 각각 임팩트 있게 등장하는 것 외에 영화음악가 최승현이 짧게 편곡한 오케스트라 버전도 흘러나온다.

호소력 넘치는 보이스 컬러가 일품인 유미가 부른 'Knockin’ On Heaven’s Door'는 록발라드로 편곡돼 극중 전지현의 심리를 대변한다. 구슬프고 애달픈 한편, 이를 극복해나겠다는 굳건한 의지와 아름다움도 함께 드러난다. 최근 슈가맨과 복면가왕, 불후의 명곡에 나와 얼굴을 알렸지만, 이미 그전부터 여러 영화들과 드라마에서 주제곡을 불렀던 가수 유미의 관록과 매력이 유감없이 표현됐다. 2시간짜리 전지현 뮤비라는 비판에도 이 곡이 주는 감정만큼은 진짜다.


아임 낫 데어 (2007)
안토니 앤 더 존슨스

밥 딜런의 삶과 음악을 일곱 명의 캐릭터를 통해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색다른 느낌의 토드 헤인즈 감독의 전기물이다. 6명의 배우들이 딜런의 외피를 뒤집어쓴 채, 시인과 선지자, 외부인, 가짜, 유명스타, 로커, 기독교인이라는 각기 다른 역할들로 하나의 시대, 한 사람의 인생을 조망해낸다. 당연하게도 영화 시작 타이틀부터 엔드 크레딧까지 주구장창 밥 딜런의 음악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데, 'Knockin’ On Heaven’s Door'는 엔드 크레딧 음악들 중 세 번째이자 가장 마지막으로 흘러나온다. 안타까울 수도 있고, 가장 마지막을 장식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할 수도 있다.

노래를 부르는 건 안토니 앤 더 존슨스의 보컬 안토니 헤가티의 목소리로, 중성적이고 비브라토가 가득한 울림이 슬프고도 경건하게 다가온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그 감흥을 되새기게 만들 이 노래는 밥 딜런이라는 아티스트에 대한 찬가이자 헌정곡으로 너무나 잘 어울린다. 그는 여기에 있지만, 또 여기에 없다. 규정할 수 없는 밥 딜런에 대해 대답해줄 수 있는 건 혼돈의 시대와 음악뿐. 안토니는 천국의 문을 두드려 천상의 목소리로 그 대답을 노래한다. 


사운드트랙스 / 영화음악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