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미스>

제45회 국제에미상 작품상 노미네이트에 빛나는 영국 코미디 드라마 <어반 미스>가 한국에 상륙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퍼져서 출처도 진위도 따질 수는 없는, 신화에 가까운 소문. 너무 들어 귀에 익어 이젠 진짜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이야기. 영국 드라마 <어반 미스>(Urban Myths)는 시대를 대표한 예술계 유명 인사들과 얽힌 있음 ‘직한’ 이야기다. 시청자의 소중한 시간까지 고려한 짧은 러닝 타임으로 매력을 더한 이 시리즈를 웨이브에서 독점으로 공개했다. 3개의 시즌, 21개의 에피소드를 지금 바로 웨이브에서 만나보자.


20분짜리 단편 영화.zip

내용을 말하기에 앞서 구성부터 이야기해보겠다. 해외 시리즈의 경우 보통 시즌제로 제작된다. 이미 극에 빠진 팬이라면 속편의 속편까지 만날 수 있는 시즌제 시리즈를 반기겠지만. 아직 그러지 못한 이들이나 해외 시리즈 경험치가 낮은 이들이라면, 정주행하는 건 고사하고 첫 번째 에피소드를 재생할 엄두도 못 내겠다. <어반 미스>는 이에 공감할 이들을 위한 괜찮은 선택지다. <어반 미스>의 각 시즌 각 에피소드는 하나의 완결된 스토리를 갖는다. 어느 에피소드부터 시작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시즌 1의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1907년 오스트리아 빈에 지내며 화가가 되기를 꿈꾸는 히틀러의 젊은 시절을 그리다가, 바로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1958년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할리우드 촬영장을 다룬다. 시간과 공간에 연속성이 없고 각 에피소드가 완전히 독립적이다. 단편영화 같기도 하다. 회당 분량도 짧게 21분, 길어야 26분으로 부담 없다.


프레디 머큐리와

게이 클럽에 간 다이애나비?

“사실인 부분도 있고, 사실 같은 부분도 있다. 그리고 어떤 부분은… 완전히 헛소리다.”

Some of this is true. Some of this is sort of true. Some of this is… total fxxking false.

시즌 2 에피소드 2 ‘라이브 에이드의 무대 뒤편’ 오프닝

사람과 그 사람이 산 시대에 대한 향수 때문일까. 사람의 이야기를 어떻게 영화(시리즈)적으로 재구성하고 각색했을지에 대한 기대 때문일까. 실존 인물을 다루는 작품은 소재만으로도 화제를 모으곤 한다. 제1회 아카데미 이래로 주연상을 받은 배우의 절반가량이 실존 인물을 연기했던 것을 고려해도, 이와 같은 작품은 평단과 좌중을 모두 사로잡는 힘을 가졌다고 할 수 있겠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잘 만들어졌을 때 큰 사랑을 받는 만큼 그 기대를 저버렸을 때, 가령 모델이 되는 인물과 배우의 합이 좋지 않거나, 더하게는 작품이 사실을 왜곡했을 때는 크게 비난을 받기도 한다. <어반 미스>는 분명 실존 인물을 다루지만, 평범한 전기 프로젝트는 아니다. 쇼는 앞으로 다룰 내용이 온전한 사실이 아니라 벌어진 일에 약간의 어림짐작을 더해 만든 이야기라는 걸, 각 에피소드의 오프닝에서부터 시청자에게 주지시킨다. 믿거나 말거나 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어반 미스> 속 케니 에버렛, 다이애나비, 프레디 머큐리

프레디 머큐리(맨 왼쪽), 케니 에버렛(맨 오른쪽)

비틀즈, 데이빗 보위, 마릴린 먼로, 아서 코난 도일… <어반 미스>의 주인공은 문화 예술계와 관련한 인사들이다. 못해도 한 번쯤 이미 극에서 다뤄졌던 적이 있는 유명인들이다. 일반적으로 전기영화는 이들 인생에서 하이라이트가 될 만한 사건의 전후를 담는다. <어반 미스>가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 큰 사건과 다른 큰 사건의 틈에 주목했다는 데 있다. 쇼는 뻔히 잘 알려진 이야기를 반복하는 대신, 자세히 알려지지 않은 소소한 사건을 파고들었고 여기에 상상을 얹었다.

<어반 미스> 속 앤디 워홀, 도널드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앤디 워홀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에게 아주 작은 진실의 조각 하나를 던져 주면? <어반 미스>는 사실에 허구성을 보태 넣어 만든 시리즈라기보다, 차라리 픽션에 약간의 진실을 곁들였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이런 식이다. 다이애나비가 남장을 하고 프레디 머큐리와 함께 게이 클럽에 간 적이 있다는 말이 있다. 혹시, 진짜 갔다면 그곳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을까. 혹시, 인파에 밀려 클럽 안을 헤매다 우연히 그 클럽에서 공연하던 여장남자의 대기실에 들어가진 않았을까. 혹시, 에이즈에 감염된 그 공연자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을까. (시즌 3 에피소드 8, ‘다이애나 공주와 프레디 그리고 케니’) 1984년, 도널드 트럼프는 미식축구팀의 구단주가 되었다. 트럼프 타워에서 치어리더 오디션이 열렸고, 앤디 워홀이 심사 위원으로 참여했다. 과거 트럼프에게 그림을 그려주고 값을 받지 못한 일로 심기가 불편했던 워홀. 혹시, 워홀이 그 자리에 가는 것이 내키지 않아서, 제시간에 심사장으로 가는 것 대신 건물 안을 돌아다니며 영감을 얻지는 않았을까. 마침내 심사장에서 트럼프를 만났을 때 직접 불만을 드러내지는 않았을까. (시즌 3 에피소드 2, ‘앤디 워홀과 도널드 트럼프’) <어반 미스>는 우리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소소한 야사다.


루퍼트 그린트, 이완 레온

<해리 포터> 루퍼트 그린트,

<왕좌의 게임> 에이단 길렌...

시대를 반영한 영화 미술, 배우의 외모와 어투, 분장. 실존 인물을 다루는 작품에서 그 자체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치들이 몇 있고, 이 중 대부분이 배우와 연관되어 있다. 21개의 에피소드가 별개의 사건을 다루는 만큼 수많은 배우진이 동원되었다. 일단 소위 싱크로율이 높다면, 위키피디아에 프로필 등록도 되지 않은 신인 배우일지라도 주연이 될 수 있었다. 결국 인지도보다 퍼포먼스가 중요했다는 말과 같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베테랑 배우도 만날 수 있다.

<어반 미스>의 벤 채플린, 에이단 길렌

<왕좌의 게임>의 소피 터너, 에이단 길렌

영원한 론, 루퍼트 그린트가 시즌 1 에피소드 3 ‘예술가 아돌프 히틀러’에서, 예술에 집착을 보이는 젊은 시절의 히틀러(이완 레온) 옆에서 그의 광기를 더 돋보이게 하던 고향 친구 아우구스트 쿠비첵을 연기했다. 에이단 길렌은 시즌 1 에피소드 4 ‘캐리 그랜트가 티모시 리어리에게 LSD를 소개했을 때’에서, LSD의 긍정적 잠재력을 지지했던 심리학자 티모시 리어리를 연기했다. 그의 이름이 익숙하지 않다면, <왕좌의 게임> 시리즈의 피터 베일리쉬를 떠올리자. <왕좌의 게임>에서 일명 리틀핑거를 연기하며 얼굴을 알린 그는 <메이즈 러너> 시리즈, <보헤미안 랩소디> 등에서 조연으로 활약했고 최근에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에서 안젤리나 졸리와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셜록 홈즈> 시리즈, <젠틀맨>, <바이스>, <아토믹 블론드> 등에 출연한 다작 감초 배우 에디 마산도 시즌 1 에피소드 1 ‘밥 딜런, 데이브의 문을 두드리다’에서 밥 딜런으로 함께했다.


IMDb 베스트 에피소드 3

<어반 미스>는 2017년 1월 첫 방송 이후 네 번째 시즌까지 방영됐고, 시즌 3까지 웨이브에서 감상할 수 있다. 웨이브에서 볼 수 있는 에피소드 중, IMDb를 기준으로 높은 평점을 받은 에피소드 3개를 아래 소개한다.

<어반 미스> 속 밥 딜런, 데이브

밥 딜런

전설적인 뮤지션이 내 집에?

밥 딜런, 데이브의 문을 두드리다│S1E1

밥 딜런의 노래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에서 제목을 빌린 이 에피소드(Knockin’ on Dave’s Door)는, 1980년대 중반의 어느 날 딜런(에디 마산)이 런던 북부에 사는 동료 뮤지션 유리스믹스 멤버 데이브 스튜어트를 방문한 일화를 그린다. 미국에서 영국까지 긴 여행을 한 딜런은 길을 좀 헤맸지만 다행히 데이브의 집을 곧 찾는다. 잠시 집을 비운 데이브(폴 리터)를 대신해 그의 아내 엔지(캐서린 파킨슨)가 딜런을 거실로 맞았다. 외출 후 돌아온 데이브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 딜런을 보고 놀란다. 딜런도 마찬가지다. 거실로 돌아온 데이브는 그의 동료 데이브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둘은 이미 알고 지낸 사이라도 되는 것처럼 어색한 듯 어색하지 않은 대화를 이어간다.

오랜 시간 ‘어반 미스’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이 일화는, 후에 데이빗 스튜어트가 딜런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라고 밝히면서 일종의 신빙성을 얻었는데. 그에 따르면, 그 데이브의 집에는 이미 딜런의 사인이 새겨진 LP가 있었다고 한다. 전설적인 뮤지션과 전설적인 팬의 짧은 담소를 담은 이 에피소드는 <어반 미스>의 시즌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기 있는 에피소드다.


<어반 미스> 속 사무엘 베케트, 앙드레 루시모프, 보리스 루시모프

사무엘 베케트, 앙드레 더 자이언트

문학가와 레슬러의 만남

앙드레를 기다리며│S1E2

노벨문학상을 받은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가, 한때 전설의 프로레슬러 앙드레 더 자이언트의 멘토였다면? 1953년 아직 12살의 앙드레 루시모프였던 앙드레 더 자이언트와 그의 가족은 파리 근교의 작은 마을에 살았다. 그리고 베케트는 작품 활동에 집중하려 이 마을로 이사를 왔다. 베케트의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제목을 빌린 이 에피소드는 특별한 인연을 그린다. 이 둘이 오다가다 마주친 것은 사실이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는 전래동화에 가깝다.

베케트(데이비드 스릴펄)가 마을에 이사를 오자마자 한 일은 별장을 짓는 것이었다. 온갖 변명을 갖다 붙이며 늑장을 부려 작업 기간을 늘리던 인부 보리스 루시모츠(빈센트 론데즈)는 어느 날 그럴듯한 핑곗거리가 떨어졌는지, 큰 덩치 때문에 스쿨버스에 탈 수 없는 거인 아들의 등하교를 도와야 한다며. 베케트에게 작업이 더 느려질 것이라고 했다. 변명이 지긋해진 베케트가 보리스를 나무라려던 차, 2m의 앙드레(리암 맥도널드)가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부터 베케트는 보리스를 대신해 앙드레의 등하굣길에 함께했고, 자연히 앙드레의 멘토가 되었다. 훗날 앙드레가 파리로 가 레슬러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베케트와 함께한 1년의 영향이 컸다. 끝.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앙드레의 형 앙트완에 따르면 앙드레는 걸어서 등교했고, 보리스는 베케트의 별장을 짓지 않았다고.


<어반 미스> 속 무하마드 알리

조, 무하마드 알리

"나는 중요한 사람이다!"

역대 최고의 선수│S1E5

최고의 복서(The Greatest) 무하마드 알리는, 1980년 래리 홈즈에게 TKO로 패한다. 역사적인 패배 후 알리는 아직 재기를 꿈꾼다. 이 에피소드는 1981년 1월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조(오시 이키에)라는 이름을 가진 흑인 청년이 LA의 한 건물 9층 난간에 매달려 몇 시간 째 버티고 있다. 경찰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때, 집에서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자살 소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뉴스로 본 알리(노엘 클라크)가 현장으로 달려와 조를 만난다. 몇 분 후 조는 알리와 함께 내려온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 “상상력이 없는 사람은 날개도 없다.” 수다쟁이 알리로도 불렸던 그는, 생전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이런 그가 조와 어떤 대화를 나눠, 협상을 업으로 하는 이들도 설득하지 못했던 그를 내려오게 했을까.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청년과의 대화가 알리에게 다시 은퇴할 힘을 주지는 않았을까. 선수가 아닌 인간 알리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걸 깨닫게 하지 않았을까. 조 못지않게 큰 깨달음은 얻은 건 알리 쪽도 마찬가지이지 않았을까. 이 에피소드는 이런 작은 상상에서 시작되었다. 극 중 알리와 조의 대화는, 알리와 함께 인권 운동에 앞장섰던 제시 잭슨이 자주 인용했던 시 '아이 엠 섬바디'(I Am Somebody)를 재구성해 짜였다.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연설의 목소리도 제시 잭슨의 것이다.


씨네플레이 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