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실해 보이는 한 청년이 다가와 울먹이는 목소리로 동생의 행방을 묻는다. 그 절절한 목소리에 누구라도 그를 선뜻 도울 듯하다. 그런데 사실, 이 남자가 연쇄살인마라면? 심지어 일부러 자신의 그럴싸한 외면을 이용할 줄 아는 영리한 악인이라면,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
위하준이 이번에 연기한 <미드나이트>의 도식은 이중생활을 즐기는 섬뜩한 연쇄살인마. 위하준은 때로는 선의를 머금은 미소로, 때로는 모든 걸 깔보는 냉소로 목격자 경미(진기주)를 쥐락펴락한다.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 지서준과 <18 어게인> 예지훈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달콤함은 온데간데없다. 6월 30일, 극장과 OTT 서비스 티빙에서 만날 <미드나이트>. 그 중심에 서있는 배우 위하준을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릴러를 하고 싶단 얘기를 몇 년 전부터 했었다.
항상 하고 싶었다.
그게 <미드나이트>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인지 궁금하다.
사실 로맨스 같은 장르는 많이 낯간지러워 한다(웃음).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스릴러나 액션 쪽에 관심이 많았고, 마침 이번 작품의 도식이란 인물을 만나게 돼 흔쾌히 도전해보겠다 했다.
<미드나이트>는 스릴러 영화의 정수 같은 느낌이었다. 도로에서 달리고 경찰서에서 싸우고. 그러면서 액션이라 또 많이 다쳤을 거 같기도 한데, 어떤 식으로 촬영을 준비했나.
추격신이 정말 많았고, (박)훈이 형이랑 액션할 때도 정교하게 짜여진 액션도 아니었다. 맞아야 하고 던져야 하고 처절하게 짓밟히는(웃음) 그런 액션이라 다칠 수밖에 없었는데 모두가 다 그런 환경이었기 때문에 감독님 믿고, 배우들 모두 서로 믿었다. 너무 친해서 다 같이 으쌰으쌰하면서 버텼던 거 같다. (영화가) 나온 걸 보니까 보람이 있다.
이번 영화는 낮 시간이 전혀 없다. 촬영 기간 내내 밤낮이 거꾸로였을 거 같은데 적응하는 과정이 있었나.
도식이란 인물을 분석하고 연구하면서 자연스럽게 밤낮이 바뀌었다. 아무래도 밤에 더 깨어있어야 할 거 같고, 밤에 그런 장르의 영화나 책을 접하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그래서 시작할 때는 잘 적응한 상태로 촬영에 들어갔다.
도식이란 캐릭터에 잡아갈 때 과거사를 어떻게 정했는지 궁금하다. 감독님과 함께 의논했는지, 아니면 본인에게 모든 게 맡겨졌는지.
감독님하고 많은 걸 나눴다. 캐릭터의 전사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이땐 어떤 감정인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도 얘기했다. 물론 연쇄살인범에 사이코패스라 그걸 우리가 이해할 순 없지만, 나름의 타당성을 찾아보자는 식으로 거의 같이 만들었다. 저도 감독님께 완전 맡기지 않고, 감독님도 저한테 완전 맡기지 않고 서로 좋은 의견 나누면서 캐릭터를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혹시 본인이 도식에게 부여한 특정한 설정이나 요소가 있나.
특정한 설정보단 마음가짐. 상대를 바라보는 태도? 도식이는 세상 그 누구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는 입장에서 (상대방을) 거의 갖고 노는 거다. 그런 입장에서 임하려고 했다.
도식이란 캐릭터가 '배우'라는 직업의 은유라는 생각도 했다. 감독님하고 그런 얘기를 한 적 있었나?
원래는 위장하고 있는 그런 모습의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원래 이런 인간인데, 안 좋은 환경이나 상처, 충격들 때문에 도식스럽게 변하지 않았나…. 영화에서 착한 척, 동생을 걱정하는 척하지만 그런 모습도 원래 있었던 인간이 아니었을까 싶었고. (도식은) 죽어야 마땅한 사람이지만 그렇게 생각해 보면 안타깝기도 하다.
권오승 감독님은 현장에서 어떤 타입인가? 딱 계획대로 진행하는 타입인지, 아니면 아이디어 같은 걸 잘 받아주는 타입인지.
많이 받아주시는 타입이시다. 환경적으로 회차가 적고 시간에 구애받는 게 너무 많아서 감독님께서 많이 힘드셨을 것 같다. 배우가 원하는대로도 많이 해보고 감독님께서도 원하는 방향으로도 해보고 여러 방식으로도 해보고 싶었지만 촉박한 시간 때문에 조율하는 과정이 짧아서.... 그래서 사전에 많이 만나서 얘기를 했다. 현장에서 최대한 빨리해야 하니까. 의견을 잘 들어주시면서도 본인이 생각하시는 부분들은 확실히 애쓰셔서 전 편했다.
촬영 기간 중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매 순간들이 다 기억에 남는다. 지금 딱 생각나는 건 첫 촬영 때. 경미의 엄마(길해연)를 발견하고 따라가다가 소정이(김혜윤)를 만나면서 타깃을 바꾸는 그 장면이다. 제 주머니 안에 진짜 칼이 들어있었다. 진짜 날이 있는 칼이었다. 어쩌다가 아주 깊게 패어버렸다. 첫 촬영날 피를 봤다. 아프진 않았는데, '이거 나중에 잘 되려고 그러나. 첫 촬영부터 리얼 피를 보네' 그런 생각으로 넘어갔다(웃음).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났다.
평소에도 운동을 꾸준히 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이번 영화에서 특별히 어려웠던 게 있다면?
<미드나이트> 캐스팅되기 직전이 저한텐 살면서 몸이 가장 무거웠던 시기다. 처음으로 살이 많이 붙었을 때다. 역할을 맡다 보니 평소보다 더 쪄있는데 더 빼야 하니까 76kg에서 시작해서 촬영 끝날 때는 63kg이었다. 거의 13kg... 초반에 한 10kg 정도 빼고 촬영하다 보니 3kg 정도 더 빠졌다. 도식이를 연기하면서 예민한 적도 있지만, 다이어트 때문에 더 예민해졌었다(웃음). 그런 부분이 힘들었다. 액션이나 이런 건 모두가 힘드니까.
다이어트 중 가장 먹고 싶은 건?
무조건 라면이었다(그는 다른 인터뷰에서 라면을 워낙 좋아해 기막히게 잘 끊인다고 말한 바 있다).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는?
100% 훈이형이라고 (말하겠다). 진짜 너무 웃기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재밌다. 작품이 스릴러고 몸도 고되고 시간에 쫓기고, 그런 와중에 형이 원래도 재밌지만 현장에선 더 재밌게 했다. 동생들 다치기도 하고 힘드니까 형 입장에서 더 기운을 내는 게 보였다. 그게 진짜 고마웠다. 덕분에 힘내서 더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샤이닝>, <추격자>의 오마주 같은 장면들이 보였다.
시나리오상에서도 있었다. 감독님도 염두에 둔 부분이고. 감독님은 <걸캅스>에서 막 광분하고 힘을 꽉 준 제 연기를 보셨는데, 근데 도식이는 정말 여유 있고 힘이 툭 빠져있는 듯한 톤과 표정을 원하셔서 많이 참고를 했다. 그래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실제로도 좋아하는 작품들이라 많이 봤다.
완성본을 봤을 때 촬영 당시보다 더 좋게 나왔다 싶은 장면은?
<미드나이트>는 '음소거 추격 스릴러'인데, 현장에선 경미(진기주)가 수어를 쓰고 연기를 한다고 해도 제 입장에선 현장 소리 다 들리고, 경미 시점에서 볼 수 없다. 경미 시점에서 안 들리는 상황에서 제가 갑자기 나타나고, 분명히 아무도 없는 거 같은데 조명이 반짝이고. 이런 장면들이 영화로 보니까 우와! 하게 되더라. 추격 장면도 그렇고.
스스로도 여기는 정말 잘했다 싶은 장면이 있나?
음… 오프닝 장면. 경찰에 신고하고 목격자인 척하는 그 장면. (제 연기가) 다 아쉽지만 왜 그 장면이 그나마 마음에 드냐 하면 시간에 쫓기다가 해가 다 떠서 한 30~40분 만에 찍었다. 저에겐 얼마나 중요한 장면인가.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감독님은 '진짜 다 좋아서, 잘해줘서 빨리 OK 한 거니까 걱정 마라' 하셨는데 제 눈으로 보지 않는 이상 아쉬움만 남았었다. '이거 망했다, 오프닝인데 어떡하지, 한 것도 없는 거 같은데'. 그런데 제가 (완성된 영화를) 봤을 때는 그렇게 찍은 거에 비해 잘 나온 거 같아서 기억에 남는다.
팬들이 '드라마는 서브남, 영화는 스릴러'라고들 말한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더 마음에 드는 쪽은 어느 쪽인가.
저는 이쪽(스릴러)이다(웃음). 어릴 때부터 이쪽을 선호했고 좋아하고. 서로 틱틱대고 장난치는 친구들은 제가 로맨스를 하면 욕을 한다(웃음). 저를 오랫동안 안 친구들은 이런 연기를 하면 '너 같은 거 했네' 이런 장난을 칠 정도로 이런 유를 좋아했다. 그래서 더 많은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로맨스와 스릴러가) 상극이지만, 전혀 다른 분야를 할 수 있다는 게 저에겐 복이다.
요즘에 많이 듣는 음악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듣는 노래인데, 오늘 라디오에서도 말했다(웃음). 제가 좋아하는 곡인데, UFC '코리안 좀비' 정찬성 선수의 등장곡이다. 크렌베리스(The Cranberries)의 좀비(zombie). 제가 정찬성 선수의 진짜 팬이다. 티랑 후드티, 글로브도 있다. 평소에 다운돼있는 타입인데 이 음악을 들으면 투지가 좀 생기는 것 같고, 운동하기 싫어 죽겠는데 이거 들으면 선수가 된 것처럼 '으아!' 하는 효과가 있다(웃음).
오늘의 TMI는?
오늘 라디오 출연한 건 얘기했고... 너무 떨려서 잠을 못 자고 왔다. 그래서 죽겠다(웃음).
조금 있으면 만으로도 30대가 된다. 30대는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마음적인 여유가 유년기부터 없었던 거 같다. 복잡한 환경도 있었고 남을 많이 의식하고. 자존심과 악에 받쳐 살아왔던 거 같다. 못나 보이기 싫고 무시당하기 싫고. 항상 저를 사랑하지 못하니까 남 앞에 서는 것도 조금만 실수해도 미치겠는 거다. 연기하는 초반에도 그게 크게 작용했다. 조금만 꼬여서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보는 것 같고, 난 거기서 왜 그랬을까 하고. 저를 나락으로 막 몰았다. 10대, 20대 다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내려놓으려고 하고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하고. 하고자 하는 것, 나 믿고 가자. 30대 때는 그런 마인드가 생겼으면, 그럼 모든 일에 더 행복할 거 같다. (연기도) 더 잘 나오고.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올해에 공개할 작품만 <미드나이트>, <샤크: 더 비기닝>, <오징어 게임> 세 작품이다. 남은 6개월은 어떻게 보내고 싶나.
다음에 하는 작품 잘 마무리하는 게 목표이고, 그 캐릭터 또한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나올 티빙의 두 작품(<미드나이트>, <샤크: 더 비기닝>)과 <오징어 게임>…. 보시고 저를 아시는 분에게 '그래도 많이 늘고 있네' 정도의 칭찬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미드나이트> 기다리는 이들에게 영화의 포인트 소개와 인사를 부탁한다.
<미드나이트>는 속도감 있는 추격전이 가장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다들 어려운 환경 속에서 투혼을 발휘하면서 열심히 찍었고. 저도 드라마로 기억해 주는 분들에게는 180도 다른 모습으로 다가가게 됐는데, 부족은 하겠지만 어느 작품보다 몰입하고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그만큼 좋은 작품으로 여러분들께 가슴 깊이 남았으면 좋겠다. "6월 30일, 많이 많이 봐주세요. 감사합니다."
글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사진 티빙 / CJ ENM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