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스튜디오 작품 제작진의 필수 조건은 뭘까? 무엇보다, 입이 무거워야 한다. 2019년 9월, <블랙 위도우>의 촬영이 한창이었던 영국 런던 외곽의 파인우드 스튜디오에서 만난 <블랙 위도우>의 제작진들은 모두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기자들에게 웃음을 전했다. 이제 드디어 그들과의 대화를 풀어놓을 때가 되었으니. 오는 7월 7일, 드디어 개봉을 앞둔 <블랙 위도우>가 궁금한 팬들을 위한 반가운 소식들을 준비했다. <블랙 위도우>의 촬영 현장에서 제작진에게 직접 들은 제작기와 비하인드들이다.

내부에 붙어있었던 <블랙 위도우> 로고

2019년 9월 이른 오전, 런던 중심부에서 버스를 타고 약 1시간 정도를 달린 끝에 파인우드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안내된 건물 내부 곳곳에 빨간색과 검은색으로 디자인된 <블랙 위도우>의 로고들이 붙어있었다. 영어 대신 러시아로 문구가 적혀있단 점이 인상 깊었다.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담당자는 기자들의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에 보안을 위한 스티커를 붙였다. 이후 기자들은 내부 깊숙한 곳에 위치한 회의실로 안내됐다.

<블랙 위도우>에서 나올 것으로 추측되는 각종 이색적인 장소들의 사진이 회의실 벽면을 메우고 있었고, 책상 가운데엔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와 태스크마스터의 격투가 펼쳐졌던 다리, 알렉세이(데이빗 하버)가 수감 중인 굴라크(소련에서 노동 수용소를 담당하던 정부 기관)를 구현한 3D 모형이 놓여있었다. 곧이어 <블랙 위도우>의 공동 프로듀서, 브라이언 차펙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영화에 대해 물어볼 시간이다.

*아래 링크에서 <블랙 위도우> 촬영장에서 진행된 스칼렛 요한슨, 플로렌스 퓨의 인터뷰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마블 스튜디오의 새로운 스릴러

<어벤져스: 엔드게임>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는 세상을 떠났다. <블랙 위도우>는 블랙 위도우가 존재하지 않는 2021년 관객 곁을 찾은 영화다. “영화의 배경이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 브라이언 차펙은 “1995년”이라는 예상치 못한 답을 내놨다. 이어 그는 줄줄 영화의 도입부를 소개했다. 예고편에 등장한 장면 외, 단 한 줄의 스포일러라도 듣고 싶지 않은 관객이라면 아래 문단은 건너뛰길 바란다.

<블랙 위도우>는 1995년을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두 어린 소녀가 등장하죠. 관객은 이들이 누구인지 확신할 수 없어요. 이들은 미국 중서부, 평범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지내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우린 이들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죠. 이들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하루를 마치고 퇴근해 귀가한 것 같지만,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이 가족은 빨리 집을 떠나야 하죠. 이 장면은 큰 액션 시퀀스로 이어집니다.

이들은 미국을 탈출해 쿠바에 상륙합니다. 쿠바에 들어서면 관객은 두 소녀가 나타샤 로마노프(스칼렛 요한슨)와 옐레나 벨로바(플로렌스 퓨)의 어린 시절이란 걸 알 수 있죠. 곧 가족은 뿔뿔이 흩어집니다. 이후 2016년,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직후로 넘어가죠. 나타샤는 로스 장군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습니다.

- 브라이언 차펙, <블랙 위도우> 공동 제작자

<블랙 위도우> 예고편

차펙이 친절히 소개해 준 도입부를 지나면, 관객은 블랙 위도우, 나타샤 로마노프의 얼굴로 가득 찬 134분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에 몸담은 시간만 10년이 넘었지만, 그 긴 시간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한 번도 내보이지 않은 캐릭터. <블랙 위도우>는 러닝타임 내내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생경한 경험이 될 작품이 분명하다.

이는 마블 스튜디오에게 역시 마찬가지였을 터. 마블 스튜디오는 그간 다양한 히어로들의 솔로 영화에 특유의 장르를 더해 캐릭터의 개성을 부각시켜왔다. “블랙 위도우의 솔로 영화만을 위한 새로운 톤을 구상했냐”는 질문에 차펙은 “지난 작품을 복제한 듯한 느낌은 얻고 싶지 않았”고 “그간 하지 않았던 것에 도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고 답했다. “스릴러 장르에서 우리만의 입지를 다지고 싶었다”고 이야기한 그는 <블랙 위도우> 속 나탸사의 입장을 상세히 상황을 설명하며 <블랙 위도우>의 한핏줄 영화를 제시했다.

<블랙 위도우>는 도피 중인 나타샤를 따라가는 영화예요. <도망자>(1993)나 다름없죠. 그녀에겐 아무런 지원이 없어요. 어벤져스도 없는 상황인데 여러 세력에게 쫓기고 있죠. 각각 다른 장소에서 더 큰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이곳저곳을 가로지르는 나탸사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 브라이언 차펙, <블랙 위도우> 공동 제작자

<블랙 위도우> 예고편


인간 나타샤 로마노프에 대해

<블랙 위도우>

같은 날 진행된 인터뷰에서 스칼렛 요한슨은 케이트 쇼트랜드 감독이 “블랙 위도우의 용기와 인내력, 그의 내면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인간 나타샤 로마노프를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는 답은 제작진과의 대화에서도 강조되었던 부분이다.

나타샤 로마노프는 어린 시절부터 암살자로 훈련받았어요. 그 과정이 그녀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었을까요? 어벤져스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것도 당연해요. 늘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배신당해왔으니까요. 우리는 늘 어떤 일을 처리하느라 바쁜 블랙 위도우의 모습만 봐왔습니다. 거대한 전쟁, 거대한 전투 한가운데에서 멋진 슈트를 입고, 멋진 동작을 펼치고, 포즈를 짓는 그런 모습들이요. 그런 사람이 혼자 남겨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녀의 주변이 조용해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녀는 어떻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까요? 그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그녀의 과거로부터 비롯된 장애물들이 그녀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요? 그녀는 그녀 자신을 바로잡고 싶은 걸까요? 우리는 나타샤 로마노프가 인간으로 살아가는 그 작은 순간들을 발견했고, 그를 더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 에릭 피어슨, <블랙 위도우> 작가

<블랙 위도우>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이후 어벤져스는 갈등에 빠졌다. 소코비아 협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블랙 위도우를 비롯한 몇몇의 히어로들은 도망자 신세에 놓였다. 새로운 가족이었던 어벤져스와 헤어진 블랙 위도우는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에 놓인다. <블랙 위도우>는 이 시점에서 시작해 슈퍼 히어로 블랙 위도우, 그 이면에 숨은 인간 나타샤 로마노프의 심연을 탐구한다.

케이트 쇼트랜드 감독은 이 영화의 뚜렷한 비전을 제시했어요. 나타샤 로마노프를 인간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했죠. 그녀가 인간으로서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요. 우리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전체에 걸쳐 나타샤가 짊어진 속죄의 여정을 이끌어왔어요. 이번 영화를 통해 우리는 그녀가 누구인지, 무엇이 그녀를 움직이게 만드는지, 그리고 무엇이 <어벤져스: 엔드게임> 속 나타샤의 선택을 이끌어냈는지에 대해 배울 수 있었어요.

- 브라이언 차펙, <블랙 위도우> 공동 프로듀서

<블랙 위도우>

<블랙 위도우>의 시나리오를 쓴 에릭 피어슨 역시 “이번 영화에서 우리가 할 일은 진정한 그녀와 대면하는 일” “<블랙 위도우>에 등장할 나타샤 로마노프의 내면, 그녀가 지금의 블랙 위도우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삶의 환경을 보며 관객이 <어벤져스: 엔드게임> 속 나타샤의 선택, 그 감정의 빈칸을 채우길 바란다”고 전했다.


헝가리, 노르웨이, 모로코…

현실을 기반에 둔 슈퍼 히어로 무비

<블랙 위도우>

이 모든 장소가 한 영화에 나온다고? 비행기가 지나가고 있는 투명한 바닷가, 쿠바의 복잡한 시장 골목, 하얀 눈으로 덮인 노르웨이… 회의실 벽을 메운 사진 속 장소는 그야말로 제각각이었다. 차펙은 아름다운 풍경 사진들을 가리키며 <블랙 위도우>를 “세계 곳곳을 누비는 스파이 무비”로 소개했다.“캐릭터들을 다양한 장소에 배치시키는 것이 중요했다”고. 이어 기자들을 흥분시키는 말도 덧붙였다. “부다페스트에서 활약하는 나타샤를 보고 싶으시다면, 나타샤를 부다페스트에 보내야죠. 가장 최선의, 흥미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요”.

<블랙 위도우>의 가장 멋진 점은 다양한 국제적인 배경을 담아냈다는 거예요. 마블 스튜디오는 처음부터 이 영화가 글로벌한 느낌을 전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노르웨이, 모로코의 탕헤르, 미국,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등 다양한 장소에서 촬영을 진행했죠.

- 찰리스 우드, <블랙 위도우> 프로덕션 디자이너

이에 대해 더 상세한 이야기를 들려준 건 프로덕션 디자이너 찰리스 우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어벤져스: 엔드게임> 등 다양한 마블 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아온 그는 “<블랙 위도우>의 작업은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며 선을 그었다.

<블랙 위도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내 얼마 되지 않는(!) 인간 슈퍼 히어로, 블랙 위도우의 이야기는 우주로 뻗어나가는 대신 지구 곳곳을 탐방한다. 우드는 “지구를 제외하곤 아무 곳도 가지 않는다. 그것이 이번 작품의 시작점”이라 밝히며 “현실의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고 밝혔다. 케이트 쇼트랜드 감독은 “캐릭터를 둘러싼 환경, 백스토리를 현실을 기반으로 쌓아가길 원했고, 그로 인해 캐릭터의 과거, 그들의 역사가 담긴 장소가 보다 선명해지길 바랐다”고. 덕분에 우드를 비롯한 프로덕션 디자인 팀은 실제 장소를 헌팅하거나, 실제 장소를 바탕으로 세트를 구축해나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영화 초반, 노르웨이 다리 위 격투 신 촬영이 필요했어요. 우리는 다리 위에서 싸움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죠. 촬영을 하려면 다리를 봉쇄해야 하니까요. 대부분 촬영에서 운이 좋으면 1시간 정도의 시간을 얻을 수 있는데, 우리는 몇 주간 촬영을 진행해야 했어요. 이 시퀀스를 위해 우리는 실제 스코틀랜드에 있는 다리 디자인을 본 따 기초적인 세트를 만들었고, 그 위에 시각효과로 디테일을 더했습니다.

- 찰리스 우드, <블랙 위도우> 프로덕션 디자이너

<블랙 위도우>, 미술팀이 제작한 다리 세트


캐릭터의 경험에 따라

액션도 발전한다

<블랙 위도우>

우드는 책상 위에 놓인 원형 돔 모양의 굴라크 3D 모형을 가리키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가장 흥미로운 작업이었어요. 옥외 촬영지에 거의 100%, 실제 제작한 세트였죠. 저곳에서 아주 큰 액션 신을 촬영했어요. 나타샤와 옐레나가 그들의 아버지, 알렉세이를 굴라크에서 구해내는 장면이었죠”.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이었냐는 질문엔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블랙 위도우> 예고편

<블랙 위도우> 예고편

헬리콥터와 관련된 중요한 시퀀스들이 있었어요. 우리는 크고 오래된 러시아 헬리콥터를 찾아야 했는데, 그야말로 미친 짓이었어요. 여러 유닛이 동시에 촬영에 임했기 때문에 총 네 대의 헬리콥터가 필요했어요. 이건 꽤 복잡한 일인데요. 네 대의 항공기가 정확히 일치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어떤 비행기는 날 수 있지만, 어떤 비행기는 날개가 없기도 하고… 컬러 등 디자인에 관련된 문제라기보단, 작은 부품, 다이얼 하나까지도 신경을 써야 했죠.

구매하기엔 비쌌지만, 제작하기엔 너무 어려웠어요. 결국 우린 헝가리로 팀을 보내 헬리콥터를 구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도 동유럽엔 많은 장비들이 있거든요. 다행스럽게도 러시아 헬리콥터로 들판을 가득 채운 판매자를 찾을 수 있었어요. 약 한 달 후, 네 대의 헬리콥터를 받을 수 있었죠.

- 찰리스 우드, <블랙 위도우> 프로덕션 디자이너

우드는 앞서 이야기했듯 현실의 리얼리티에 기반을 두는 것이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였기 때문에 가능한 장비의 고증을 살리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덧붙였다.

<블랙 위도우>

항공기만큼 구하기 어렵진 않지만, 부다페스트의 차량 추격 신 역시 많은 차량을 필요로 했던 촬영. 캐릭터의 서사에 있어서 중요한 장소, 부다페스트 일부를 봉쇄해가며 촬영했던 카체이싱 신 역시 관객이 기대하고 있을 부분 중 하나다. 과연 우리는 MCU 내 그 어떤 영화에서보다 짜릿한, 더 업그레이드된 카체이싱 장면을 만날 수 있을까? <블랙 위도우>에서 가장 어려웠던 촬영으로 부다페스트 카체이싱 장면을 꼽은 공동 프로듀서 차펙, 그가 제시한 기준은 조금 달랐다.

우린 캐릭터의 경험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보통 그런 것들이 액션 신의 강도를 업그레이드하곤 하죠. 새로운 카체이싱 장면을 위해 자동차를 더 세게 부수거나, 빨리 몰 순 있어요. 하지만 그에 유머를 담아내지 못하거나 캐릭터의 경험을 담아내지 못한다면 그건 그냥 반복이나 다름없겠죠.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에서의 카체이싱 신을 이겨야 한다고 이야기하긴 했어요.(웃음) 이제 이 작품이 MUC 최고가 되어야겠죠?

- 브라이언 차펙, <블랙 위도우> 공동 프로듀서


블랙 위도우의 새로운 슈트가

하얀색인 이유는?

<블랙 위도우>

점심을 먹은 뒤 기자들은 <블랙 위도우>의 의상실로 안내됐다. 들어서자마자 보인 건 마네킹에 전시된 <블랙 위도우>의 새로운 의상들. 화이트 슈트를 비롯한 캐릭터별 의상 6벌이 기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마주한 벽면엔 캐릭터별로 정리된 의상의 컨셉 아트와 코믹스 자료, 배우들이 의상을 입고 테스트한 사진과 해당 의상의 패브릭 등이 붙어있었다. 1995년 알렉세이의 레퍼런스 자료로 브래드 피트, 해리슨 포드의 사진이 붙어있었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어린 나타샤의 레퍼런스 자료로는 아역 배우 시절의 드류 베리모어, 브리트니 머피, 제시카 알바, <레옹>의 마틸다 사진이 붙어있었다.

1995년 알렉세이의 레퍼런스로 붙어있던 사진들, (왼쪽부터) 브래드 피트, 해리슨 포드, <블랙 위도우> 예고편 속 알렉세이(데이빗 하버)

1995년 나타샤의 어린 시절 레퍼런스로 붙어있던 사진들

<블랙 위도우>의 의상을 담당한 댄 그레이스는 “촬영 5개월 전부터 의상을 제작했다”는 말로 설명을 시작했다. “프로젝트에 따라 의상 제작 기간이 더 길어지기도 해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처럼 복잡한 의상이라면, 26주? 27주? 약 6개월 전부터 의상 작업을 시작하죠”.

“대본을 바탕으로 캐릭터들의 현실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는 것에서부터 의상 디자인 작업이 시작”되는데, 마블 스튜디오 작품의 경우 캐릭터가 출연한 작품이 여러 편 겹치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작품의 타임라인을 정리해야 한다고. 댄 그레이스는 그간 MCU의 작품들에서 스칼렛 요한슨이 입어왔던 모든 슈트를 나열한 자료를 가리키며 엄살(!)을 피웠다. “이번 영화를 위해 1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들부터 다시 봐야 했어요”.

블랙 위도우 슈트 변천사

댄 그레이스가 가장 눈을 반짝였던 순간은 <블랙 위도우>의 슈트를 설명했을 때. 수많은 위도우들이 등장하는 이번 작품에선 특히 슈트 작업이 중요했다. 얼핏 보기엔 비슷해 보이지만 디자인에 다양한 변형을 주었고, 각각의 슈트가 저마다의 전술적 능력을 뽐낼 수 있는 기술을 지니고 있다고. 단순히 외적인 디자인에 신경을 쓴 게 아니라, 슈트의 기능에 중점을 둔 의상팀의 섬세함이 돋보였다. 나타샤의 슈트 역시 마찬가지다.

<블랙 위도우>

나타샤의 슈트가 하얀색인 데엔 다 이유가 있어요. 이번 작품에서 그녀는 설원을 배경으로 활약하죠. 하얀색 슈트는 더 전술적이에요.

(...)

이번 슈트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처럼 최고의 첨단 기술을 자랑하진 않지만,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보단 더 높은 첨단 기술을 필요로 했어요. 영화와 영화 사이 기술이 어떻게 발전했을지, 나타샤의 의상과 캐릭터가 어떻게 변화했을지에 대해 살펴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었죠.

- 댄 그레이스, <블랙 위도우> 의상 슈퍼바이저

(왼쪽부터) <블랙 위도우>, 코믹스 <블랙 위도우>

원작 코믹스 역시 마블 캐릭터의 스크린 의상 제작에 가장 중요한 자료 중 하나다. “팬들은 그들의 만화 속 모습을 알아보고 싶어 하죠. 그들이 늘 사랑해왔던 거니까요”. 이번 작품의 의상에서도 코믹스 속 블랙 위도우만의 클래식한 설정을 확인할 수 있으니, 손목에서 번쩍이는 금색의 위도우 스팅이다.

코믹스에서 블랙 위도우는 골드 모티브를 지니고 있었어요. 이전 영화에선 그런 요소를 찾아볼 수 없었죠. 이번엔 블랙 위도우의 슈트에 금빛을 넣자는 아이디어를 밀었어요. 클래식하니까요.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번이 그를 시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고요. (슈트의 손목과 벨트 부분을 가리키며) 보시다시피 이 부분에서 확인 가능하죠.

- 댄 그레이스, <블랙 위도우> 의상 슈퍼바이저


블랙 위도우가

태스크마스터를 이길 수 있는 방법?

<블랙 위도우>

“저분이 태스크마스터라는 분이십니다. 코믹스 팬들이 오래도록 기다려왔던 캐릭터죠?” 태스크마스터의 의상을 걸친 마네킹을 가리키며 댄 그레이스가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의상팀이 가장 많은 시도를 겸할 수 있어 즐거워했던 캐릭터였다고. 이유는 다음과 같다. “태스크마스터는 한번 본 건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어요. 토니 스타크와 같은 헬멧을 쓰고 있고, 클린트 바튼처럼 활과 화살 모두를 사용할 수 있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캐릭터였어요”.

<블랙 위도우>

의상 뿐일까. 여러 슈퍼 히어로의 전투 능력까지 골고루 지닌 <블랙 위도우>의 빌런, 태스크마스터는 여러 제작진이 가장 말을 아꼈던 캐릭터 중 하나다. 개봉을 코앞에 둔 지금까지도 그를 연기한 배우가 공개되지 않고 있는 상황. “태스크마스터를 연기하는 배우가 누구냐”는 기자의 장난스러운 질문에 난색을 표하며 고개를 저었던 스턴트 담당 롭 인치는 “태스크마스터를 만나 운이 좋았다”고 고백했다.

태스크마스터를 만날 수 있어 운이 좋았어요.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마블의 슈퍼 히어로 캐릭터들의 대표 능력을 찾아냈고, 그를 조각조각 모았어요. 우리가 한 건 각자의 조각을 캐릭터에 더하는 것뿐이었죠. 관객 역시 태스크마스터의 격투 신에서 그 조각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 롭 인치, <블랙 위도우> 스턴트 감독

<블랙 위도우>

공동 프로듀서 차펙은 태스크마스터에 대한 가장 이색적인 힌트를 던져줬다. 태스크마스터와 싸울 땐 몸뿐만 아니라 머리도 써야한다는 것. 나타샤가 차펙의 팁을 잘 활용했을지는 극장에서 확인해보자.

태스크마스터는 나타샤에게 아주 힘든 악당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봐왔던 나타샤의 다양한 전투 스타일과 기술을 즉시 복제해낼 테니까요. 그런 면이 나타샤에게 큰 부담이지만, 고정관념을 깨볼까요? 나타샤는 그를 패배로 이끌 수도 있어요.

- 브라이언 차펙, <블랙 위도우> 공동 프로듀서


레드룸,

드레이코프의 사무실 세트에 가다

모든 제작진과의 인터뷰를 마친 후 기자들은 <블랙 위도우>의 촬영이 진행 중인 세트장에 발을 디뎠다. 담당자는 “이제까지 80%가 촬영된 상태이며, 촬영 완료까진 아직 몇 주의 스케줄이 남았다”고 전했다.

<블랙 위도우>, (왼쪽부터) 드레이코프 역의 레이 윈스턴과 태스크마스터

<블랙 위도우>, 드레이코프의 사무실. 기자들이 직접 방문한 세트다.

이날 기자들에게 오픈된 세트의 배경은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설립한 암살자 프로그램이 이뤄지는 레드룸을 총괄하는 악당, 드레이코프(레이 윈스턴)의 사무실. 이미 한바탕 싸움이 치러지고 난 후인지 사무실 바닥에 먼지와 유리 조각이 잔뜩 깔려있었다. 술병과 서류 조각들로 난장판이 된 사무실. 스칼렛 요한슨의 더블을 비롯해 많은 스탭들이 촬영을 준비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한쪽 구석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블랙 위도우> 예고편

얼마 지나지 않아 촬영이 시작됐고 기자들은 세트 맞은편에 위치한 천막에 들어가 약 1시간 동안 <블랙 위도우> 현장 모니터를 확인했다. 여러 위도우들이 스칼렛 요한슨을 동그랗게 둘러싸는 장면이 여러 각도로 여러 차례 촬영됐다. 영화에 대한 정보가 아예 없던 2년 전 당시에도 하이라이트 장면이라는 사실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법한, 고밀도의 비장함이 세트장을 메웠다. 차펙은 이 장소에서 “나타샤가 수년 만에 드레이코프 장군을 마주하고, 과거에 저질렀던 죄의 정점을 마주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물음을 던졌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받아들이고, 자신을 용서하며 제 자신과 똑바로 마주 설 수 있을까요?” 그에 대한 답은 영화에서 확인해보자.


<블랙 위도우>

우리는 늘 관객을 놀라게 만들고 싶어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우린 그녀의 죽음을 봤죠. 이후 우린 어디로 가야 할까요? 이게 단지 그녀의 끝이 될 순 없을 거예요. <블랙 위도우>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소개한 캐릭터, 그들의 신화를 확장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어느 위치에 놓아야 하는지 결정하는 건 매우 흥미로운 도전이었어요.

- 브라이언 차펙, <블랙 위도우> 공동 프로듀서

자신을 희생하며 페이즈 3의 막을 닫은 블랙 위도우. 마블 스튜디오는 왜 그의 이야기로 페이즈 4의 문을 열기로 결정했을까? 그 이유를 묻는 차펙의 답엔 마블 스튜디오가 블랙 위도우에게 보내는 경의가 담겨있었다. 그들이 확장시킨 블랙 위도우의 새로운 신화를 궁금하게 만드는 답변. 이를 확인하고 싶다면 7월 7일을 기다려보자.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블랙 위도우의 마지막 이야기, <블랙 위도우>는 7월 7일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

사진제공 월트 디즈니 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