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디슈>

2021년 여름 안방과 극장 스크린을 오가며 관객에게 가장 부지런히 얼굴을 비추고 있는 배우, 바로 구교환이다. 그를 ‘감독 출신 배우’라 알고 있는 이들이 많겠지만, 알고 보면 연기가 시작인 ‘배우 출신 감독’. 오묘한 목소리, 어떤 장르도 가리지 않는 연기 스펙트럼, 선인지 악인지 종잡을 수 없는 얼굴까지. 수십 편의 독립영화를 통해 독보적인 매력을 쌓아온 그는 지난해 여름 <반도>의 악역, 서 대위를 통해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여러 편의 신작으로 팬들을 만족시키고 있는 ‘열일’ 배우, 구교환의 필모그래피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캐릭터 9명을 소개한다.


<아이들>

1아이들(2008) 진욱 역

구교환의 데뷔작인 단편 영화 <아이들>. 남고를 배경으로 아이들 셋의 이야기를 담는다. 구교환은 연 만들기에만 집중해 괴짜라 불리는 진욱을 연기했다. 감정을 억누른 채 무미건조한 얼굴로 상대를 대하는 진욱은 혈기를 있는 그대로 내비치는 지금의 캐릭터들과 극과 극에 서 있는 인물이다. <아이들>은 <파수꾼>을 연출한 윤성현 감독의 데뷔작이다. 청소년들의 현실적인 관계 맺기를 섬세하게 조명한 <아이들>은 해외를 포함해 다수의 영화제에 초청되며 호평받았고, 구교환 역시 많은 관계자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2남매의 집(2009) 라오우 역

이번엔 <승리호> <늑대소년>을 연출한 조성희 감독의 데뷔작. 심사위원 만장일치여야만 대상을 선정하는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7년 만에 대상을 타고, 칸영화제에서 시네파운데이션 3위를 차지하는 등 국내외에서 훌륭한 성적을 거둔 <남매의 집>에서 역시 구교환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남매의 집에 침입한 괴한 라오우를 연기했다. 특유의 침착함을 앞세워 남매를 위협하는 그의 연기는 극도의 불쾌함과 두려움을 일으킨다.


<4학년 보경이>

두 편의 작품으로 독립영화계 혜성으로 떠오른 구교환은 이후 더 다양한 영역에서 제 재능을 발휘했다. <거북이들> <왜 독립영화 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 <연애다큐> 등에선 연출과 출연을 겸했고, <4학년 보경이> <뎀프시롤: 참회록> 등 오래 기억될 단편 영화의 주연으로 활약하며 캐릭터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우리 손자 베스트>

3우리 손자 베스트(2016) 교환 역

<우리 손자 베스트>는 그의 첫 장편 영화 개봉작이다.(<꿈의 제인>이 그의 첫 장편 연기였으나, <우리 손자 베스트>가 더 먼저 극장에 공개됐다) 헬조선에 살며 ‘너나나나베스트’에서 유일한 안식을 찾던 교환(구교환)이 우익 성향의 할아버지 정수(동방우)를 만나며 벌어지는 일을 담는다. 일베와 어버이연합을 본떠 대한민국의 현실을 내비친 풍자극. 현실의 민낯을 그대로 담아낸 하이퍼리얼리즘이 빛나는 구교환 연기는 어디서도 본 적 없던 것. 파격적인 소재로 주목을 받은 <우리 손자 베스트>는 그 해 수많은 독립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고, 구교환은 제22회 춘사영화제의 신인남우상을 수상했다.


<꿈의 제인>

4꿈의 제인(2016) 제인 역

구교환의 출세작. 가출한 소현(이민지)은 누구라도 자신을 찾아주길 바라는 따스함에 목말라있다. 제인(구교환)은 그를 거둬준 트랜스젠더다. 불친절한 말투 속 따스함이 느껴지는 가르침을 담아 가출한 아이들에게 인생을 알려주던 제인. 그 역시 사랑에 목말라하던 캐릭터다. 트랜스젠더로서 차가운 시선 속에 고독한 삶을 살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그머니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제인은 그간 충무로에서 본 적 없던 유일무이한 캐릭터였다. 구교환은 쟁쟁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제54회 백상예술대상의 남자 신인상을 품에 안았다.


<메기>

5메기(2018) 성원 역

<메기>는 이옥섭 감독의 연출작이다. 이옥섭 감독은 구교환과 오랜 시간 연출 작업을 함께 해왔다. 두 사람은 오랜 연인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메기>와 구교환의 만남은 독립영화 팬들에게 많은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불법 촬영과 데이트 폭력, 무작위의 개발 등 현시대의 문제를 모두 몰아넣고도 특유의 재기 발랄함을 잃지 않고, 뻔한 서사를 피해 간 <메기>는 평단과 관객 모두를 만족시켰다. 프로듀서로 함께한 구교환은 주인공 윤영(이주영)의 남자친구 성원을 연기했다. 특유의 엉뚱함부터 뻔뻔함까지 자유자재로 오가는 구교환의 인상 깊은 얼굴을 만날 수 있다.


<반도>

6반도(2020) 서 대위 역

<부산행> 이후 이야기를 담은 <반도>는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구교환의 얼굴을 알린 작품이다. 좀비에게 점령 당한 뒤 광기의 631부대가 폭력을 휘두르는 서울. 구교환은 631부대의 리더 서 대위를 연기했다. 누구보다 약삭빠르고 냉혹하며, 사악하고, 도무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종잡을 수 없던 캐릭터. 새로운 삶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과 광기에 젖어 폭주하던 서 대위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반도>의 시한폭탄 같던 존재였다. 그간 상업 재난영화 세트 구성에서 본 적 없던, 전형성을 벗어난 캐릭터의 등장에 관객이 환호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반도>와 함께 구교환은 충무로의 라이징 스타라는 수식어를 얻는다.


<킹덤: 아신전>

7킹덤: 아신전(2021) 아이다간 역

넷플릭스 한국 대표 콘텐츠 <킹덤> 세계관에도 발을 들였다. <킹덤: 아신전>에서 그가 연기한 아이다간은 <킹덤>의 새로운 주축, 아신(전지현)의 과거를 무너뜨린 여진족 무리 파저위의 수장이다. 구교환은 피 칠갑을 하고 등장한 몇 장면만으로도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뽐냈다. 아이다간이 앞으로 <킹덤> 세계관에서 어떤 활약을 펼칠지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가 <킹덤>에 불어넣을 독특한 에너지를 기대해보자.


<모가디슈>

8모가디슈(2021) 태준기 역

트랜스젠더, 일베 청년, 디스토피아의 악당까지. 드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구교환의 연기에서 늘 찾아볼 수 있었던 것, 바로 엇박자 유머다. 구교환은 늘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 없는 유머로 각각의 캐릭터에 제 인장(印章)을 새겨왔다. <모가디슈>에선 유머의 그림자를 싹 거둔, 캐릭터 그 자체가 된 구교환을 만날 수 있다. 공격력 ‘만렙’, 북한의 참사관 태준기는 어떤 상황에서든 경계를 늦추지 않는 예민함이 돋보이는 인물이다. 타협이란 없는 태도로 극에 쫀득한 긴장감을 부여하던 캐릭터. 김윤석, 조인성, 허진호까지, 대선배들과 함께해도 묻히지 않던 그의 선명한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었단 점도 인상 깊다.


<D.P.>

9D.P.(2021) 한호열 역

8월 27일 공개를 앞둔 넷플릭스 시리즈 <D.P.>는 웹툰 <D.P. 개의 날>을 원작으로 한다. 육군 헌병대 군무이탈 체포조 D.P.(Deserter Pursuit)를 소재로 한 드라마. 구교환은 이제 막 D.P가 된 안준호(정해인) 이병에게 유용한 수사 노하우를 전하는 군무이탈 체포조 조장 한호열 상병을 연기한다. 최근 <모가디슈> <킹덤: 아신전>에서 선보인 진중함, 무게를 한 풀 벗긴 능청스럽고 코믹한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D.P.>를 시작으로 앞으로 드라마에서 활약할 구교환을 만날 수 있을지 기대해보자.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