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영화제 가운데 하나인 베니스국제영화제가 9월 1일 개막을 앞두고 상영작 전반을 공개했다. 봉준호 감독이 심사위원장을 맡은 경쟁 부문 후보작들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다. 봉준호를 비롯한 클로이 자오 감독, 배우 비르지니 에피라, 배우 사라 가돈 등의 심사위원진은 어떤 영화에 손을 들어주게 될까. 올해 베니스영화제 경쟁작 가운데 특히 화제를 모은 여덟 작품들을 소개한다.
패러렐 머더스
Madres paralelas
Parallel Mothers
페드로 알모도바르
지난 20년간 꾸준히 칸영화제를 통해 신작을 공개해왔던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2년 전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베니스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처음 초청됐다. 이번 영화제의 개막작이기도 한 <패럴럴 머더스>은 안토니오 반데라스 주연의 자전적인 영화 <페인 앤 글로리>(2019)와 틸다 스윈튼과 함께한 소품 <휴먼 보이스>(2020)를 잇는 알모도바르의 22번째 장편이다. 제목부터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 <귀향>(2006), <줄리에타>(2016) 등에서 알모도바르가 천착해온 오랜 테마인 모성에 집중한 작품이다. 같은 병원에 입원해 같은 날 아이를 낳은 서로 다른 세대의 두 여자 재니스와 아나를 따라가는 영화는, 의도치 않게 아이를 갖게 된 싱글맘의 연대를 그린다. 어느덧 알모도바르 영화 속 어머니의 표상으로 자리잡은 페넬로페 크루즈와 스페인의 신예 밀레나 스미트, 그리고 재니스와 아나 사이를 잇는 또 다른 여성 캐릭터 테레사를 연기한 아이타나 산체스 기종, 세 배우의 앙상블이 빛을 발할 것 같다.
파워 오브 더 독
The Power of the Dog
제인 캠피온
<피아노>(1993)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첫 여성 감독 제인 캠피온의 <파워 오브 독>은 드라마 <탑 오브 더 월드> 시리즈에 매진한 캠피온이 12년 만에 발표하는 새 영화다. 일련의 웨스턴 소설로 일가를 이룬 작가 토마스 세비지가 1967년 발간한 대표작 <파워 오브 독>을 영화화 했다. 1920년대 미국 서부 몬태나 주를 배경으로 한 <파워 오브 더 독>은 외향적이고 악랄한 필(베네딕트 컴버배치)이 함께 대규모 농장을 일궈낸 정반대 성격을 가진 동생 조지(제시 플레먼스)가 마을의 과부 로즈(키어스틴 던스트)와 가정을 꾸리자 그의 가족을 망가트리려고 하는 과정을 그린다. <탑 오브 더 월드>의 주인공으로 활약한 엘리자베스 모스와 폴 다노가 각각 로즈/조지 부부 역에 일찌감치 캐스팅 됐으나, 결국 키어스틴 던스트와 제시 플레먼스가 역할을 맡게 됐다. BBC 호주와 영국이 공동 제작하고 넷플릭스를 통해 대중을 만날 예정이다.
모나리자 앤 블러드 문
Mona Lisa and the Blood Moon
아나 릴리 아미르푸르
올해 베니스 경쟁부문엔 한국 감독의 신작이 초청되지 않았지만, 한국 배우 전종서가 주연을 맡은 영화 <모나리자 앤 블러드 문>이 포함됐다. 스타일리시한 비주얼이 돋보이는 장편 데뷔작 <밤을 걷는 뱀파이어 소녀>(2014)로 주목 받은 감독 애나 릴리 아미푸르는 첫 영화 <버닝>(2018)으로 세계를 놀래킨 배우 전종서를 일찌감치 캐스팅 해 2019년 촬영을 마쳤다. 위험한 힘을 가진 루나틱이 정신병원을 탈출해 뉴올리언스를 집어삼키려 한다는 이야기. 전종서가 주인공 루나틱 역을 맡은 가운데 케이트 허드슨, 크레이그 로빈슨, 에드 스크라인 등과 호흡을 맞췄다. 아미푸르 감독은 여자가 이끄는 <클리프행어> 리부트를 염두에 두고 <모나리자 앤 블러드 문>을 작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스펜서
Spencer
파블로 라라인
칠레의 시네아스트 파블로 라라인은 파블로 네루다와 재클린 케네디의 삶을 독특한 연출로 그려낸 <네루다>와 <재키>를 2016년 한해에 내놓은 바 있다. 신작 <스펜서>는 20세기 저명한 실존인물을 소재로 한 <네루다>와 <재키>에 이어 영국 전 왕세자비 다이애나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불행한 결혼 생활에도 불구하고 대외적으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구가한 다이애나가 이혼을 마음먹은 1991년 크리스마스 시즌 즈음에 초점을 맞췄다. 엄연한 명배우로 성장한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다이애나의 결혼 전 성인 스펜서를 내세운 영화의 주인공으로 활약한다. 주요 캐릭터에 영국 배우들이 캐스팅 된 것과 달리, 역사상 가장 유명한 왕세자비인 다이애나를 미국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연기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가 (앞서 소개한 <파워 오브 더 독>과 더불어) 영화음악을 담당했다.
잃어버린 사랑
The Lost Daughter
매기 질렌할
<잃어버린 딸>은 배우 매기 질렌할의 감독 데뷔작이다. 전작 <나의 작은 시인에게>(2018)의 제작까지 맡았던 질렌할은 이탈리아 작가 엘렌 페란테의 소설 <잃어버린 사랑> 판권을 구입해 직접 제작, 연출, 각본을 맡아 영화화에 도전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로부터 도망쳐버리겠다는 위협을 받고 자란 레다(올리비아 콜먼)는 남편과 헤어지고 두 아이를 홀로 키워왔다. 여름휴가를 떠난 해변에서 만난 니나(다코타 존슨)와 그 딸의 단란한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마저 남편에게 돌아간 자기 처지를 곱씹게 된다.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2007), <행복한 라짜로>(2018), <전혀 아니다, 별로 아니다, 가끔 그렇다, 항상 그렇다>(2020)를 찍은 엘렌 루바르가 촬영감독을 맡았다.
공식 경쟁작
Official Competition
Competencia oficial
가스통 듀프라 & 마리아노 콘
‘공식 경쟁부문’이 영화 제목이다. 즉 <공식 경쟁부문>이 베니스 공식 경쟁부문 후보에 올랐다. 영화는 억만장자 사업가가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기 위한 영화를 제작하고, 이 영화를 위해 세계적인 명감독(페넬로페 크루즈), 할리우드 섹시 스타(안토니오 반데라스), 과격한 연극 배우(오스카 마르티네즈)가 기용된다. 예고편에서 엿볼 수 있는 <공식 경쟁부문>은 저마다 한 자의식 하는 재능들이 만나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어가는 영화 현장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매 장면 힘주어 찍은 듯한 비주얼도 인상적이다. 스페인의 국민 배우 페넬로페 크루즈와 안토니오 반데라스에 가스통 듀프라/마리아노 콘 감독의 전작 <우등 시민>(2016)으로 베니스 남우주연상을 받은 아르헨티나 배우 오스카 마르티네즈까지, 배우진까지 기대 요소가 그득하다.
신의 손길
È stata la mano di Dio
The Hand of God
파올로 소렌티노
이탈리아의 거장 파올로 소렌티노는 주드 로 주연의 TV시리즈 <영 포프>(2016) 이후 5년 만에 베니스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이번 신작 <신의 손>은 소렌티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 데뷔작 <원 맨 업>(2001) 이후 20년 만에 감독의 고향인 나폴리에서 촬영됐다. 초창기부터 소렌티노와 꾸준히 작업해온 배우 토니 세르빌로가 출연한다는 것 외엔 <신의 손> 제작은 비밀리에 진행되었는데, 그 사이 (지난해 생을 마감한) 축구선수 디에고 마라도나의 변호사가 영화 제목인 ‘신의 손’이 마라도나의 발언을 겨냥한 것 아니냐며 문제 삼고, 넷플릭스 측이 직접 “스포츠 영화가 아닌, 소렌티노의 유년시절에서 영감을 얻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일축하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카드 카운터
The Card Counter
폴 슈레이더
2017년 베니스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된 <퍼스트 리폼드>로 여전히 건재한 연출력을 뽐낸 폴 슈레이더의 신작. 전직 군 심문관이었던 주인공 윌(오스카 아이작)은 고르도 대령(윌렘 대포)에게 복수하려는 청년 서크(타이 셰리던)과 도박자금 투자가 라 린다(티파니 해디시)와 함께 월드 시리즈 오브 포커 대회에 참가한다. 작품에 관한 정보에 유령과 원죄라는 키워드가 언급되는 걸로 보아, 슈레이더의 오랜 테마인 구원에 관한 형이상학적인 비전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