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7일 제헌절이 공휴일이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일 년 중 가장 관객이 많은 주가 바로 7월 17일을 낀 28주차(혹은 29주차)였죠. 28주차를 정점으로 해서 조금씩 조금씩 관객이 줄어들어 8월 말까지 이어지던 모습이 그때의 여름시즌 흥행 모습이었습니다. 마치 기온변화와 유사했다고나 할까. 그랬던 여름 시장에 2008년 주5일근무제가 도입되면서 제헌절이 공휴일에서 제외되고 그와 함께 여름흥행판이 춘추전국시대로 도래합니다.
늘 여름시즌에 나오던 박스오피스 1위가 겨울에 나오는 등 혼란을 겪기 시작합니다. 단지 공휴일 하나가 없어졌을 뿐인데 시장은 마치 큰 핵폭탄을 맞은 것 같았습니다.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해답 없이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2010년 <이끼>가 7월 17일이 낀 주를 그대로 노렸지만 확실히 예전만큼은 아니었습니다. 2011년 <고지전>이 또다시 같은 날을 노렸지만 확실히 달랐습니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는 것이 확실해집니다. 오히려 예전과는 다르게 8월을 노렸던 <아저씨>와 <최종병기 활>이 더 편하게 흥행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8월 개봉은 늦기도 하거니와 흥행을 이어가기에는 너무 짧아 그보다는 이른 날 흥행 적기 날짜를 찾아야 했습니다.
2012년 7월 17일 주가 아닌 7월 말을 택해 <도둑들>이 개봉을 합니다. 그렇게 개봉된 영화가 오래간만에 여름시장에서 천만을 넘깁니다. 그런데 스코어를 보니 7월말보다 2주차였던 8월초에 관객이 더 많이 들었습니다.(2주차는 일반적으로 1주차보다 적게 듭니다. 하지만 <도둑들>은 오히려 1주차 보다 2주차가 더 많이 들었습니다) 이로써 여름시장에서 가장 좋은 날짜는 7월 말이 아니라 8월 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2013년으로 접어들자마자 8월 초 경쟁이 불붙기 시작합니다. CJ엔터테인먼트(이하 CJ)와 롯데엔터테인먼트(이하 롯데)가 가장 먼저 각각 <설국열차>와 <더 테러 라이브>로 맞붙습니다. 결과는 <설국열차> 승. 그로 인해 CJ가 그 자리의 첫 주인이 됩니다. 그 외 배급사들은 극장을 소유하지 못한 이유로 눈치만 보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렇게 눈치만 보다 여름 시장이 점점 치열해지면서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합니다.
2014년으로 접어들어서야 시즌으로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합니다. 7월 말 쇼박스가 <군도>로 여름 시즌 스타트를 끊고 8월 초를 선점한 CJ가 <명랑>으로 불을 붙이고, 그 뒤를 바짝 붙어 롯데가 <해적: 바다로 간 산적>으로 맞불을 놓으면 NEW가 <해무>로 마무리를 하는 식으로 말이죠, 이렇게 한 주차 숨 막히는 경쟁으로 자리를 잡아가다보니 여름시장은 이 4개의 배급사 외에는 진입하기 힘든 턱 높은 시장이 되어 버립니다.
2015년은 새롭게 형성된 진영에 따라 각자 자리 굳히기에 들어갑니다. 역시 쇼박스가 7월 말에 <암살>을 출전시키며 시장 문을 열자 한주 뒤 CJ가 <베테랑>을 출전시킵니다. 호시탐탐 8월 초를 노리는 롯데는 그 뒤를 바짝 붙어 <협녀>를 출전시켰고, 약자의 서러움을 안고 NEW가 <뷰티 인 사이드>로 마무리합니다. 고진감래한 NEW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2016년 NEW는 <부산행>을 앞세워 진격을 시작합니다. 맨 앞자리를 차고 들어가 쇼박스를 쳐냅니다. 이제 남아있는 것은 매주 개봉되는 영화들과의 순차적 전쟁. 첫 주는 독식을 한 덕에 편하게 자리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이제부터입니다. 한주 뒤 CJ의 <인천상륙작전>과 1차 전쟁을, 이어 롯데의 <덕혜옹주>와 2차 전쟁을, 그리고 앞선 전쟁으로 출혈이 낭자한 상태에서 NEW에 복수심이 더해진 쇼박스의 <터널>과 마지막 전쟁을 치루죠. 매주 치열한 전쟁을 치러야 했던 <부산행>이 승리를 거둡니다. 제대로 한풀이를 한 NEW, 그가 7월 말을 택한 이유에는 아무리 들고 있는 카드가 세다 하더라도 조커(극장)를 들고 있는 CJ, 롯데와 맞붙기에는 영 껄끄러워서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힘든 전쟁을 치룬 <부산행>을 통해 그들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름시장을 독식하려면 7월 말을 노려야 한다는 것을 말이죠.
2017년 CJ가 느닷없이 자신의 본거지를 버리고 7월 말을 택해 <군함도>를 출전시킵니다. 그 모습에 모두들 긴장하고 호시탐탐 8월 초를 노리던 롯데마저 당황합니다. 각자 계산기 누르기에 바빠집니다. 호기라 판단한 쇼박스가 과감히 CJ가 비워놓은 8월 초에 말뚝을 박고는 <택시운전사>를 가져다 댑니다. 나머지는 자리보전에 힘을 씁니다. 롯데는 <청년경찰>로 NEW는 <장산범>으로 말이죠, 결과는 < 택시운전사>의 승이 됩니다.
2018년 롯데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롯데는 이미 지난겨울 <신과함께-죄와 벌>의 파워를 만천하에 들어낸 터라 이만한 기회가 없다고 판단 <신과함께-인과 연>을 들고 위풍당당 8월 초로 무혈입성을 합니다. 피하는 것도 전략 중 하나인지라 CJ는 롯데가 있던 8월 둘째 주로 후퇴하며 <공작>을 대기시키고, 이어서 NEW는 조심스럽게 <목격자>를 대기시킵니다. 쇼박스는 상황을 보고 출전을 포기하지요. 롯데는 그토록 원했던 8월 초를 차지합니다.
2019년 여기서 그냥 물러설 CJ가 아니죠. 8월 초 경쟁이 다시 불붙기 시작합니다. 롯데는 버티기 위해 <사자>를 CJ는 수복을 위해 <엑시트>로 맞불을 놓습니다. 그리고 어부지리 비어버린 자리에 쇼박스가 <봉오동 전투>를 가져다 놓습니다. NEW는 이번에는 포기합니다. 결과는 <엑시트>의 승, 이미 8월 초 맛을 본 롯데라 순순히 양보할 리 없으니 이 싸움은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려 하는데, 그만 코로나가 터집니다.
이제는 오월동주라! 코로나 난국을 극복하려면 지금은 싸움을 멈추고 연합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올해 붐업을 책임진 <모가디슈>와 <방법: 재차의>가 7월 말 동시에 개봉되어 임무 수행 중에 있고 이어서 <싱크홀>이 시장 활성화라는 중대한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이어 <인질>이 그 바통을 이어받아 불씨를 그대로 추석영화로 넘겨줘야 합니다. 각자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해 주길 바라면, 다시 신나는 여름 경쟁 시대가 와주길 기대해 봅니다.
글 | 이하영
하하필름스 대표, 《영화 배급과 흥행》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