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보면 <정글피쉬 2>의 메시지는 너무도 절박했다. 아이들이 쓰러지고 쫓겨나고 죽어가고 있다고. 누군가 나서서 이 고삐 풀린 질주를 멈춰야 한다고.

<정글피쉬 2>

‘김수현과 박보영의 신인시절을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아직도 회자되곤 하는 KBS 청소년 드라마 <정글피쉬>(2008)의 결말은, 지금 다시 보면 생각보다 훈훈하다. 시험지를 사전에 유출해 특정 학생들의 입학시험 성적을 조작했던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한 작품인 걸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정글피쉬>는 오로지 성적 향상과 명문대 진학만을 목표로 제시하는 어른들의 탐욕 속에서 길을 잃은 학생들을 ‘회오리바람에 휘말려 정글에 떨어진 뒤 바다로 돌아갈 방법을 몰라 버둥대는 물고기’에 비유하며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더 높은 성적을 원하는 부모님의 요구에 부정한 것을 알면서도 성적 조작에 가담하고,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의혹을 캐려는 친구들과의 사이가 틀어지고, 결국에는 혼자가 되는 학생들. 주인공 재타(김수현)는 성적 조작에 가담한 것이 들켜 궁지에 몰린 친구들이 학교 옥상 난간 위로 올라가자, 그들을 비난하거나 미워하는 대신 “어른들이 시켜서 한 일이지, 너희 잘못이 아니”라는 말로 회유한다. 그러니까 죽지 말고 진실을 밝히자고.

<정글피쉬>

사건을 주도한 선생들은 경찰의 조사를 받은 뒤 학교를 떠나고, 학생들도 대부분 전학을 간다. 사건에 연루되었으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신이 그 당사자였노라 고백한 은수(박보영)는 학교에 남아 주변의 눈총을 받지만, 가장 가까웠던 친구 솔(차민지)과의 우정을 회복하며 어떻게든 학교 생활을 이어간다. 이 모든 사건을 들려주는 화자인 재타는 말한다. “학교는 예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아무도 우리에게 남긴 상처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넘어지고, 상처받고, 다시 일어서고. 그리고 우린 또 성장한다. 그게 정글의 법칙이다. 여긴 정글이고, 우린 여기 있다. 우리 모두는 바다를 꿈꾸는 정글피쉬다.” 아무도 학생들에게 아프지 않냐고 묻지 않는 것을 질책하고 반성하면서도, <정글피쉬>는 진실은 밝혀질 것이고 학생들은 다시 일어나 자라줄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그래, 우리에게도 그렇게 순진한 희망을 믿던 시절이 있었다.

2년 뒤에 만들어진 스핀오프 작인 <정글피쉬 2>(2010)의 세계는, 조금 달랐다. 전교 1등 서율(박지연)은 성적 향상을 위해 ADHD 치료제를 과다 복용하다가 병원에 실려가고, 바우(이준)는 어른들의 오해로 학원폭력 가해자로 몰린 뒤 학교에서 쫓겨나 거리를 헤매며, 라이(신소율)는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자퇴를 강요당한다. ‘꼴통 학교’ 풍림고 선생들은 학생들을 좋은 길로 인도하는 것보단 윽박지르고 통제하는 데 더 관심이 많고, ‘명문 사학’ 가화고 선생들은 돈 많은 집 학생들로 꾸린 ‘특별반’에서 거둬들이는 고액의 수업료에 눈이 팔렸다. 돈 많은 집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 사회적 특별 보호 대상자로 위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기간제 교사 인우(윤희석)는 이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결심하지만, 침묵하는 대가로 정교사 자리를 제안받고는 그에 굴복한다. 어딜 가든 현실은 더럽고 냉정하며, 돈과 권력을 손에 넣은 사람들은 안정적인 미래와 일자리 같은 것들을 미끼로 흔들며 사람들 목에 걸린 사슬을 바짝 당겨 쥔다.

<정글피쉬 2>

누구 하나쯤 죽으면 사람들이 좀 주목해줄까. 인우와 힘을 합쳐 학교의 비리와 불평등을 공론화하고 상황을 바꿔보려 발버둥치던 학생 효안(한지우)은 끝내 세상을 떠난다. 도와줄 어른 하나 없어진 상황에서 혼자 힘으로 학교를 바꾸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으므로, 자신의 죽음이 화제를 낳는다면 학교도 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절박한 마음이 그런 선택을 낳았다. 아마 <정글피쉬>의 세계였다면, 효안의 죽음은 많은 것들을 밝혀내고 개중 적지 않은 것들을 바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글피쉬 2>는 한결 더 냉정하다. 돈 많은 집 학생들을 대상으로 운영되던 ‘특별반’은, 돈 많은 집 부모들의 재력에 힘입어 고스란히 유지된다. 교장과 교감은 각각 3개월, 1개월 정직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비리를 밝히기 위해 제 목숨까지 걸었던 효안의 최후는 단 한 줄도 기사화되지 못했다.

다시 돌아보면 <정글피쉬 2>의 메시지는 너무도 절박했다. 아이들이 쓰러지고 쫓겨나고 죽어가고 있다고. 누군가 나서서 이 고삐 풀린 질주를 멈춰야 한다고. 그런데 메시지의 절박함에 비해, 작품을 대하는 세간의 반응은 애매했다. 너무 자극적인 소재가 많다고, 약물 중독이니 임신이니 학교 비리니 가출청소년이니 하는 자극적이고 비일상적인 소재에만 천착한다고 투덜대는 평들이 많았으니까. 지금 실제로 저런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학생들이 있다는 말에도, 많은 이들은 ‘청소년 드라마’가 ‘청소년 드라마’답기를 요구했다. 왜, 있지 않나. 아무도 죽거나 다치거나 심각한 비행을 저지르지 않는, 맑고 밝고 티 없는 청소년들이 꿈을 키우는 그런 드라마. 어떤 이들은, 그런 작품만 보면서 안심하고 싶었던 걸게다.

<인간수업>

어느새 <정글피쉬 2>가 방영된 지도 11년이 지났다. 이제 드라마 속 청소년들은 돈을 벌겠다고 성매매 산업의 중개자로 일하거나(넷플릭스 <인간수업>), 입시 경쟁을 두고 서로를 미워하며 살의를 내뿜고(SBS <펜트하우스>), 자신의 인생을 망친 이들을 모조리 불행하게 만들겠다며 살인을 계획한다. (MBC <목표가 생겼다>). 그때 정글 속에 떨어져 퍼덕거리며 바다로 돌아가려고 발버둥치던 물고기들의 메시지를 조금 더 귀담아들었더라면, 세상은 좀 달라졌을까.


이승한 TV칼럼니스트